배신

노래마인은 불편하게 텅 빈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회의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으니 분명히 회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O5-2의 디지털 화상이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미 O5-1이 보낸 편지에서 모두 들었던 것이었다. 복수. 부서진 신. 전면전. 기타 등등. 모든 게 들어맞았다. 평의회는 부서진 신과 반란이 함께 공모해 O5를 공격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제 복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멍하니 앞에 놓인 화상 서류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동안, 회의는 이미 한참은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이미 표결이 시작되었다. 부서진 신과 반란을 완전히 밀어 버리자는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것이다. 그녀는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과연 그 고백서가 진짜일까? 설령 진짜라 하더라도, 과연 그 시나리오가 그렇게 가능성이 높을까? 재단이 자제력을 발휘해서 그 적대적인 두 조직만 밀어버리고 끝날 수는 없는 걸까? 명분도 충분히 선 마당에?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O5-1의 말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그가 고백한 다른 것 때문이었다. 가짜 SCP들. 그런 의심은 항상 들 수밖에 없었다. 고위 인원들은 위험성 때문에 SCP에 가까이 가지조차 못한다. SCP들을 직접 다루는 것은 실무자들뿐. 그렇다면 그녀가 보고받은 내용은 완전히 사실일까? 직접 본 적도 없고, 사진과 영상은 충분히 조작할 수 있는 것들인데? 2000개가 넘어가는 본부의 항목들을 떠올려 보면, 꽤나 그럴듯했다. 동사모트라케 이슬람 공화국. O5 평의회가 둘로 완전히 분열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기에 멸망의 기념비. 그냥 북한의 독재를 설명해 보려는 억지 설정. 창녀와 짭새. 재단에 그런 종류의 테이프까지 잡아낼 정도로 광범위한 인터넷 검열 규약이 어디 있다는 건지 원. 한번 든 의심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다른 이들의 눈이 그녀에게 쏠렸다. 천천히 노래마인은 입을 열었다. “반대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곤거렸고, O5-2는 대놓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무 말도 없이, 투표는 계속되었다. O5-2가 말했다. “반대 1표. 나머지 전부 찬성. 통과되었습니다. 이만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곧 구체적인 결의안 시행령을 보내드리겠습니-”

“잠깐만요.”

O5-2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뭡니까, 노래마인 관리자? 의견을 바꿀 생각입니까?”

“아니요. 지역사령부 관리자의 제 지위를 걸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헛기침. “O5 평의회가 보낼 시행령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관리자? 지금 정당한 절차를 거쳐 통과된 O5 평의회의 결의안을 집행하는 걸 거부하겠다고요? 거기다가 그 결의안의 내용은 지금 혼돈의 반란, 부서진 신의 교단을 공격하겠다는 것인데? 지금 당신의 충성심에 상당히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뭔가 평의회에 보고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라도 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녀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O5-2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여기 계시는 내부 보안부를 총괄하시는 O5-6, 정보국을 총괄하시는 O5-12, 외무부를 총괄하시는 O5-10보다 제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죠.” 시나리오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그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없는 SCP들을 조사해서 거기 있는 예산을 공격으로 돌리는데 쓸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그녀 자신도 회의적인 시나리오를 믿으라고 O5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다만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비용-편익 분석을 거쳐야만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 두 조직을 밀어버리면,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죠? 제가 보기에는 민간인 피해나, 아니면 UN, 국가들과의 관계만 나빠질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 일에 대한 복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전면전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그래요?” O5-10이 비웃음을 던졌다. “그건 당신 생각입니다, 관리자. 당신은 그래서 반대표를 던졌잖소. 다른 이들은 전면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결론내리는 거고. 우리가 그런 거 하나 생각 안 해봤을 것 같소? 외무부는 그런 마찰을 충분히 처리할 능력이 있소. 안되면 기억 소거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관리자.” O5-3가 말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서 쌕쌕거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지금이라도 투표를 바꾼다면, 여기서 말한 모든 발언은 불문에 부치겠소. 그러나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의 충성심을 의심하게 될 것 같소이다. 그리고 내 의심을 산 자 중 오래 버틴 자는 없소.”

“저도 그 의심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평의회에서 담당 업무가 전략 수립 및 시나리오 예측인 분과는 더더욱요. 하지만 저는 내규를 지금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Ethics Committee Code 193-A b항에 근거해서, 저는 그 시행령을 거부하겠습니다.”

“그 빌어먹을 조항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뭔데 O5 평의회의 결의를 거부할 권한을 준다는 겁니까!” O5-2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화상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보기에는 충분했다.

노래마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O5-4, 윤리위원회 의장을 겸임하는 그녀가 말했다. “윤리위원회 코드 193-A b항. 보안 등급 4등급 이상으로 충분한 정보를 가진 인원은 O5 평의회의 결의가 윤리적 실패이거나 재단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되면 그 실행을 유보할 수 있다.” 그러고는 O5-4는 차갑게 웃었다. “c항. 윤리위원회는 직권으로 실행을 강제할 수 있다. 미안하지만 노래마인 관리자, 내가 윤리위원회를 소집해서 당신이 도망칠 구멍을 막아 버리는 건 하루도 안 걸려요. 그냥 포기하시죠?”

“아니 됐소이다.” O5-3의 쌕쌕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아하니… 노래마인 관리자는 재단을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충분히 보고 들었소. 윤리위원회를 소집할 것도 없이, 곧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그만 회의를 해산합시다, 여러분. 이제 끝난 것 같소.”

화상들이 모두 사라졌다. 노래마인은 텅 빈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O5-4의 말대로 그녀에게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도 따르지 않으면 보나마나 그녀를 해임할 게 뻔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노래마인은 직원 카드를 들고 회의실을 나섰다. 이제 끝이라고? 아니, 이제부터 시작인걸. 오히려 그녀는 어디서 끝이 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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