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행진

신음소리와 죽어가는 이들의 앓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자우와 귀신 군은 진료실 안을 아무렇게나 놓인 침상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쓰러진 부상자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의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환자들을 일일이 챙겨줄 수가 없었고 진통제나 마취제는 턱없이 부족했다. 자우와 귀신 군 둘은 그 사이에서 고통에 찬 부상자들의 기억을 강제로 지웠다. 자신들이 왜 부상을 입었는지 잊어버린 이들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자우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다음 부상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이, 그 사람은 신경쓰지 마. DOA야.” 건너편에서 진땀을 흘리며 붕대를 감던 의사가 소리쳤다.

“DOA라뇨?” 자우가 반문하자, 귀신 군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도착 당시 사망(Dead On Arrival)’이라고. 이 정도면 대충 된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네요, 귀신 군. 박사님, 나가서 바람 좀 잠깐 쐬고 올게요.” 둘은 임시 부상 병동을 나섰다. 아무렇게나 지은 투박한 가건물들이 이곳저곳에 서 있었고, 소총을 멘 요원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멀리서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고 날벌레들이 끝도 없이 엉켜들었다. 자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뭐하네요. 보통은 혼돈의 반란에 공격당한 기지로 파견을 갔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반란을 공격한 곳에 와 있네요.”

“어쨌든 다루는 사람들은 재단 직원인 건 똑같지. 그리고 그게 무슨 상관이나 있는 건가?” 귀신 군이 그렇게 대꾸했다. “아니, 그냥… 불편하니까. 우리가 인류를 지킨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전쟁을 벌여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전후처리과에 속해 있었기에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눈동냥으로 엿본 것이나 아니면 그들이 업무를 시작할 때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늘에 울려 퍼지는 굉음과 폭격기 소리. 마치 불꽃을 토해내듯 불타오르던 반란의 건물들. 죽은 듯이 쓰러진 요원들. 비명소리. 끝없는 비명소리.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목적지 없이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재단이 점령한 곳에 설치한 가건물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바빠서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점령지에서 뽑아 낸 정보들을 분석하고, 다음 공격 목표를 설정하고, 최대한 이 공격이 알려지지 않도록 뒤처리를 해야 하니까.

그들이 터벅터벅 걷다 멈췄을 때 보이는 것은 나무뿐이었다. 불길도 건물도 여기저기 늘어선 나무들이 어둠과 함께 완전히 가려주고 있었다. 자우와 귀신 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우는 주저앉는 순간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고 느꼈다. 순식간에 눈이 감겼다. 몇 시간 동안 병동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피로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이렇게 자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마가 바닥에 닿는 찰나 그대로 수마가 그를 덮쳤다.

“어이, 그 사람은 신경쓰지 마. DOA야.” 의사의 말이 들려왔다. 그는 다시 DOA가 뭔지 질문하려 몸을 돌렸다. 역시 꿈이군, DOA가 뭔지 알고 있으면서도 물어보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하려는 찰나, 의사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의사의 얼굴은 완전히 뜯겨나간 채로 눈 부분에는 안구가 사라진 채로 뼈가 다 드러나 보였다. 입술이 완전히 뜯겨져 나간 입이 열리고 뻐끔거렸다. “여기 더 급한 환자가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의사는 미친 듯이 웃으며 쓰러졌다. 자우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건물 문을 나서는 순간, 그는 아까와 똑같은 방에 다시 들어와 있었다.

“어이, 그 사람은 신경쓰지 마. 반란 포로라고.” 의사의 말이 들려왔다. 자우는 하얗게 질려 그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침상 위에는 팔 한 짝이 뜯겨나가고, 폭격을 맞은 듯 전신에 끔찍한 화상을 입은 형체가 누워 있었다. 그 형체가 의사가 하는 말을 들은 듯 불분명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침상에 단단히 묶여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그 형체는 버둥거리며 팔을 어찌어찌해서 움직여 조그마한 권총을 꺼내들었다. 투박한 총소리와 함께 의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자우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그 형체는 총을 사방으로 난사했고, 다른 침상에 놓인 환자들이 피를 흘리며 침상에서 떨어져 내렸다.

“어이, 그 사람은 신경쓰지 마. DOA야.” 의사의 말이 들려왔다. 자우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눈 앞에는 흰 천이 놓여 앞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왜지? 그 때 그 천이 천천히 내려갔다. 빛이 희미하게 번뜩였고 눈앞이 온통 뿌옇게 흐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자우는 가까스로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지금 죽어 있는 것이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우는 숨을 헐떡거리며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귀신 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괜찮나? 계속 신음소리를 내더군. 악몽이라도 꿨나보지?”

“네, 하지만 뭐-” 자우 군이 그렇게 말했을 때, 멀리서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찢어질 듯한 소리가 적막을 가로지르며 울렸다. 둘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급한 목소리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SCP-049-KO가 나타났다. 전 인원은 지금 즉시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 다시 한 번 알린다. SCP-049-KO가 나타났다. 전 인원은 지금 즉시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 허가 받지 않은 접촉 시 징계할 것이다.” 사이렌이 그 말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울렸다.

“SCP-049-KO라.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그게 뭔지 아나?” 귀신 군이 물었다. “당연히 모르죠. 난 연구원이나 격리 담당가가 아니라 요원이니까. 한가롭게 SCP 보고서나 열람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럼. 지시를 따르는 게 최선일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걱정할 것 없어, 유클리드 급이기는 하지만 그리 위험한 건 아니니까.” 날카롭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구경이나 하는 건 어때?” 둘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를 보아도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야, 여기. 요원치곤 눈썰미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은데?” 나무 위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둘이 그 위로 눈을 홱 들어 올리자, 나무 위에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희고 검은 털에 한쪽 눈을 윙크하듯 감고 있는 평범한 고양이. 그들이 빤히 고양이를 쳐다보자, 고양이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왜, 고양이가 말을 한다니까 SCP인 줄 아나? 젠장, 여기 사람들 반응은 다 똑같아. 처음에는 일단 무슨 속임수가 있나 쳐다보고, 그 다음에는 SCP나 변칙 개체가 아닌지 생각한다고. 그냥 멀쩡하게 말하는 고양이가 있다고 인정하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나 보지?”

자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귀신 군은 자우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조심하는 게 좋겠군, 그리 기분 좋은 녀석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음, 뭐 어찌됐든. 그나저나 가서 구경이나 하는 거 어때? 그 SCP-049-KO 말이야. 길은 내가 안내해주지.” 고양이가 나무에서 펄쩍 뛰어내려 사뿐히 걸어갔다. 자우와 귀신 군은 잠시 서로를 돌아보고는 머뭇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사이렌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고 숲이 끝나는 경계가 보였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더 들렸다. 저벅거리는 끝없는 발소리. 수많은 발소리들이 모여 사이렌 소리에 묻히지 않고 계속 그들의 귀에 와 들렸다.

“나와 비슷한 존재들이군. 물러서는 게 좋겠어.” 귀신 군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름끼치는 무리는 계속 나아갔다. 수많은 이들이 그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목이 잘려나가고 남은 절단부에 리본으로 장식을 해놓은 남자, 흉측하게 머리 오른쪽이 완전히 함몰된 사람, 2차 세계대전 때나 어울릴 법한 낡아빠진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 짙게 분장을 하고 빨간 공을 코에 붙여놓은 사람, 왼팔에 손이 아닌 바이올린 현이 달려있는 여자… 그 기이한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자우는 귀신 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피부색이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전혀 생명체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그 무리의 발밑에서 천천히 깔리며 가건물들을 뒤덮었다. 안개가 점점 자욱해졌다.

안개에 가려 몇 초 만에 사라져 버렸지만, 자우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둘이 나온 건물에 누워 있던 그 수많은 죽은 자들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비단 그 건물만이 아니었다. 다른 건물들, 땅에 누워 있던 이들, 자우는 심지어 불길 속에서도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죽은 자들이 모두 그 행렬에 합류하고 있었다. 분명히 죽는 것을 보았고, 시체가 되어 누워 있던 이들이 일어나 다시 걷고 있었다.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검은… 행진.”

뒤쪽에서 그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그래. 저 녀석의 별칭이기도 하지. 검은 행진. 보고서에 나온 허접한 내용이나마 읽어주자면, 대상은 어느새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에 나타나 행진을 시작하며, 이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사망자들은 행진에 합류한다. 여기에 무슨 힘이 작용하는지는 알 수 없으며, 행진에 합류한 대상은 이후 주변의 그 어떤 간섭도 통하지 않는다. 고 되어 있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걷는 자들이라… 재미있지. 안 그래?”

귀신 군이 눈살을 찌푸리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우릴 만난 적 없어. 이 모든 건 당신이 꾼 꿈일 뿐이야. 청년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고양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여전히 한 쪽 눈만 뜬 채로. “흠, 재미있는데. 기억 소거라. 하지만 초자연적인 힘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안다고 해야겠군. 내가 지금까지 수십 년을 이 분야에서 보내서 말이지. 더군다나 원래 뭔가를 막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어서.”

“젠장, 안 통한다고?” 귀신 군이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Cat With Eye가 나무 위로 다시 폴짝 뛰어올랐다. 마치 체셔 고양이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둘을 내려다보다가 말을 시작했다. “자, 우리.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저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 죽은 자들이 저렇게 걸어 다니는 걸 보고?”

둘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고양이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아마 약간 언짢은 기분이겠지. 하지만 생각을 해봐. SCP-049-KO는 재단이 보고서에 써 놓은 것처럼 수많은 희생자가 생긴 곳에 나타나는 건 맞아. 하지만 재단이 모르는 것도 있지. SCP-049-KO의 행렬은 왜 멈출 수 없을까? 그들이 죽어간 이유, 목적… 그것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 거지. 그들이 죽어가면서 성취하려고 했던 것이 끔찍한 것이고, 세상에 지독한 악을 가져오기에 그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지금 저들도 똑같아. 재단이 내세우는 인류의 평화니 보존이니 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겠나? 이 모든 건 그저 다 그냥 잔혹한 싸움에 불과해. 거기 계속 끼어있을 필요가 있을까? 진짜 인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우가 물으려 하자 귀신 군이 말을 끊었다. “잠깐. 이 고양이를 믿을 수 있나? 만약 지금 우리가 속아 넘어가는 거라면? 어찌 됐든 이 고양이도 그리 평범한 녀석은 아니고, 요주의 단체랑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나?”

“오, 제발.” 퉁명스러운 대꾸가 돌아왔다. “내 말이 맞을지 틀릴지는 직접 생각해 보라고. 이 싸움에 참여했을 텐데. 이게 정말로 인간을 위한 성전이던가? 아니면 그저 재단이 날뛰면서 벌이던 학살이던가?”

둘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자우가 고개를 떨궜다. “귀신 군. 내가 옛날에 물어봤던 적 있죠? 왜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싸우는 건지. 그 때 슬픔을 넓혀나가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나는 이 슬픔이 어떻게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요.”

귀신 군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인상을 썼지만, 자우에게 무어라 따지지는 않고 나무 위에 아직도 올라앉아 있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뭐 좋아. 당신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그래서 뭔가 쓸 만한 계획이라도 있나?”

“잘 생각했어.” 고양이가 안도한 듯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뱀의 손의 Cat With Eye다. 그래… 일단 우리 도서관부터 들르자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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