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샐리 박사와 알 피네 사무차장은 회의실 옆에 딸린 상황실로 향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전면에 놓인 거대한 컴퓨터에서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화면에는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흐릿했고, 비스듬한 각도로 책장 하나가 나오고 있었다. 알 피네 사무차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게 무슨 장면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샐리 박사는 책상에 놓인 헤드셋 하나를 집어 귀에 가져다대며 답했다. “지역사령부, 노래마인 사령관이라고나 할까요.”

알 피네 사무차장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지역사령부, 재단 지역사령부라? 그 쪽과 통신이 가능하다는 건가? 어떻게?”

박사는 딴청을 부렸다. “뭐 그건 비밀로 해 두죠. 저도 패 하나쯤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알 피네 사무차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 한국에 있는 재단 인원들하고 통신이 연결되어도 그리 할 수 있는 건 없어. 지금 재단이 러시아와 일본을 장악하고 압박해 들어오는 판에, 한국은 그냥 호랑이 입 속에 들어있는 꼴이니까. 지금 시급한 건 유럽과 중국 쪽을 방어하는 거야. 그래서 당신의 제안은 뭐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맞습니다. 지금 우선순위는 유럽과 중국 쪽이죠. 그리고 동시에, 재단이 공격하려고 하는 건 어쨌든 요주의 단체들이고. 즉, 재단이 노릴 타겟은 정해져 있다는 거고.”

사무차장이 흥미가 생긴 듯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한국 쪽에서 그게 어디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알려줄 수 있다는 거고?”

“물론이죠. 딱 한 가지 조건 하에서.” 샐리 박사가 답했다. “재단 한국 지역사령부를 지원해 달라는 겁니다. 최대한 많은 인원의 신변을 안전하게 확보하도록.”

“너무 무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우리 연합 정보로도 역추적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샐리 박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럼 어디 한번 재단을 알아서 잘 막아보시죠. 그 훌륭한 피바다 사건 이후로는 나토나 유엔도 슬슬 발을 빼려고 하는 것 같던데. 당신들 오컬트 연합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사무차장이 차갑게 박사를 노려보았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그냥 한 마디만 던지고 방을 나섰다. “알았으니 공격 예상 타겟이나 적어와요.” 그녀가 방을 나섰다.

샐리 박사는 방을 나서는 사무차장의 등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박사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작은 노트북을 하나 꺼냈다. 원래부터 재단과의 통신 따위는 없었다. 공격 예상 타겟은 이미 그녀가 가지고 있는 노트북 안에 있었다. 속임수가 통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뭐 연합 쪽의 스파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재단 내부를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녀뿐이었고, 그래서 약간 수월하기는 했지만. 만약 들통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역사령부를 구해내려면 이것뿐이야.’ 그런 생각에 샐리 박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러시아 지부와 일본 지부에서 한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에서 그녀 혼자서 지역사령부에 남아있는 노래마인 등의 사람들을 구해낼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UN과 GOC의 손을 빌려야 해. 어쨌든 대략적인 정보는 가지고 있으니 GOC도 손해보는 건 아니고. 그렇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설득했지만, 뒤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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