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음

샐리 박사는 텅 빈 사무실에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알 피네 사무차장의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는 차갑게 식어있어서 맛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책상 밑에 있는 휴지통에 커피를 종이컵째로 던져버리는 순간, 알 피네 사무차장이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샐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하고 사무차장에게 웃어보였다.

“커피도 안 가져다 줬나? 비서에게 가져오라고 하면 되는데.” 사무차장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고든 소령과 함께 움직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절 호출하신 이유가 뭡니까?”

“자, 우린 당신이 UIU 쪽에 인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여기로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겠지. 그리고 당신이 지역사령부를 구조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도 알지.”

당신이라, 정말 대놓고 무시하는군.

사무차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재단을 쓰러뜨리는데 지역사령부 자체는 큰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되는 건 지역사령부 때문에 일본과 극동러시아에 있는 재단 인원들이 한국과 중국으로 빠져 있다는 거지. 병력이 빠져있는 틈을 타 우리가 재단 일본 지부를 공격하자는 걸세.”

“하!” 샐리 박사가 코웃음쳤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재단은 러시아, 폴란드, 프랑스, 스페인에 지부가 있고 유럽 전체에 재단 시설이 널려 있는데. 유럽 전체가 까딱하면 재단 손에 넘어갈 수도 있는데, 지금 동아시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겁니까?”

“유럽에는 그만큼 반-재단 세력도 많지. 우리 GOC, NATO, UN까지. 재단이 그렇게 쉽게 움직일 수 없어. 하지만 동아시아는 달라. 러시아와 한국, 일본을 쥐고 있는 재단 세력이 우세이지만, 지금 한국이 빠지고 일본을 밀어버리면 게임 오버라고! 재단에 대항할 거점이 생기는 거지!” 알 피네 사무차장이 흥분해서 손을 열정적으로 휘저으며 소리쳤다.

샐리 박사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그 정도 분석은 재단에서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쉽게 밀어버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닐걸요.”

“그래서 나도 체스판에 말 하나를 더 추가했지. 전함을 탄 나이트 말이야. 그 말을 상대하려면 재단도 꽤나 애 좀 먹을거야.”

“뭐… 지금 설마…” 그녀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고든 소령을 미끼로 써서 재단 병력을 그쪽으로 끌어내겠다는…”

“고든 소령의 솜씨에다가, 재단이 병력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레 겁먹고 인원을 추가로 보낼 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길 확률이 꽤 높아지지 않겠나?”

“당신 지금 너무 나갔어.” 샐리 박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지역사령부를 구출하겠다는 약속도 무시하는 거고, 고든 소령까지 당신 속셈에 따라 멋대로 미끼로 이용하시겠다. 가만 두지 않겠어.”

“가만 두지 않으면 뭐 어쩔 건가?” 알 피네 사무차장이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사무차장이 박사의 눈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말했다. “속셈? 당신은 뭐 아무 속셈도 없이 깨끗하기라도 하나보지? 내가 당신이나 고든 소령을 이용한다고? 샐리 박사 당신도 나, 우리 GOC를 이용할 생각 아니었던가? 당신이 신경쓰는 건 지역사령부에 있는 몇 명을 구해내는 것이었을 텐데. 내가 분명히 말해 두는데, 박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 읽어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야.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순순히 같이 일본으로 이동하자고.”

알 피네 사무차장이 벽에 달린 벨을 눌러 비서를 불렀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와 목례를 하고 말했다. “선발 부대 현재 출발했습니다. 일본 자위대와 UN군 일부가 교전 중이고, 추가로 태평양 함대가 대기 중입니다.”

“여기 있는 샐리 박사와 함께 전선으로 이동할 테니, 즉시 이동편을 준비하도록!”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서 나갔다. 알 피네 사무차장이 느긋하게 웃어보였다. “그럼 이제, 준비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고. 아직도 커피 생각 없나?”


킬리 차장은 작전 차량 안에 앉아서 할 말을 잊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널찍한 작전 차량 안에는 그녀 자신과 운전수를 포함해 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여덟 명은 전부 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기본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작전 차량은 엄폐물을 찾아 죽어라 도망치고 있었다.

해안가에 SCP-217-KO가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쳐버리겠군.” 차장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도대체 저 빌어먹을 배는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네. 첫 단추부터 잘못 들어갔어. 쯔산을 그렇게 혼자 보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망할!”

“차장님?” 요원 하나가 불안하게 물었다. “우리 차량 하나 빼고 전멸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후퇴해야지,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데!” 차장이 소리쳤다. “내가 지금 이끌고 있는 부대가 내부 보안부 기동부대지, 대함부대였나? 거기다가 저건 그냥 배도 아니잖나. 빌어먹을 SCP야! 본부에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지원 병력 보내라고 하고, 아주 심각한 비상 상황이라고 알려. 잠깐만, 내가 직접 얘기할 테니까, 연결시켜봐.”

차장은 부하가 건네주는 헤드셋을 끼고 O5-5와 대화를 시작했다.

“위원님, 상황이 전혀 통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시 병력 보강이 시급합니다!”

O5-5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들려왔다.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건가? 그 미친 SCP-217-KO는 어지간한 병력은 거뜬히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라고.”

“폭격기든, 군함이든, 뭐가 됐든 최대한 병력을 보내서 저것들을 잡아야 한다고요! 지역사령부 놈들 아닙니까!”

“애초에 노래마인을 생포하겠다고 협조를 거부하면서 무리하게 작전을 펼친 건 자네 결정 아닌가. 이제 듣자하니 노래마인도 죽으면서 작전도 실패했는데, SCP-217-KO가 와서 깽판을 치니 도와 달라? 거기다가 멀쩡한 기지는 왜 날려버리고 난리인가? 그 농장에 있는 SCP가 몇 개인데?”

“지금 제 청문회라도 여시는 겁니까?” 킬리 차장이 기가 막히는 듯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건 지역사령부의 반역자들입니다! 지금 평의회에서 불을 켜고 잡으려는 놈들이 도망쳐서는 여기에 와 있고, 거기에다가 SCP-217-KO가 지금 단신으로 혼자 와 있습니다. 잡아낼 절호의 기회라고요. 시간이 없습니다!”

“뭐, 자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만…” O5-5가 말끝을 흐렸다. “요원 피해가 너무 클 게 분명하네. 어떻게든 피해를 줄일 방법이 없겠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의원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뭔데 그러나?” O5-5가 물었다. “우리 요원들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네. 말해보게.”

“무엇이든 된다면야…” 킬리 차장의 입가에 웃음이 스쳤다. “우리 쪽 피해는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지요.”


비좁은 선실 안에 네 명이 앉아있었다. 풀그림이 자리에 앉아 골똘히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립시다.” 풀그림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GOC 태평양 본부로 가게 되면 너무 늦어요. 그 기지가 평의회 쪽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고, GOC가 이 일에 개입되는 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사드가 반문했다.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지금 살아서 나가는 것도 GOC 측의 도움을 받아서 아닙니까. GOC를 여기서 배제할 필요가 있습니까?”

“GOC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아실 텐데요. 그들은 변칙적인 걸 전부 파괴하고 싶어하죠. 그들이 이 상황을 끝낸다면 변칙 물체나 SCP는 모조리 파괴해 버릴 테고. 하지만 우린 재단의 방식이 옳다는 걸 알고 있죠. 평의회가 쓰러지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나는 재단이 GOC에 의해 몰락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재단을 재건하기를 원하지. 그래서 GOC를 빼고 움직일 필요가 있는 거고.”

“상당히 낙관적이군요. 내가 보기에는 세계만 안 망하고 건지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고디스 연구원이 빈정거렸다.

“뭐라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난 지금 구명보트를 타고 이동할 겁니다. 멀지 않은 곳에 27기지가 있으니 거기 도착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지원을 받아서 5기지로 갈 거고. 같이 갈 겁니까, 아니면 말 겁니까?”

풀그림을 제외한 셋은 서로를 둘러보았다. 고디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가야지, 틀린 말은 아닐 테니.”

넷은 줄줄이 선실을 나섰다. 풀그림 연구원이 앞장서 길을 안내했고, 곧 구명보트가 매달려 있는 곳에 다다랐다. MTF X-17 부대원 하나가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우리는 지금 구명보트를 타고 이동할 겁니다. 고든 소령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하나 내려 주시죠.”

부대원이 머뭇거렸다. “저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소령님께 연락을 먼저 해 본 후에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안 괜찮죠.” 풀그림이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어 겨누었다. “이봐요, 지금 우리가 뭐 엄청난 걸 요구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냥 구명보트를 내리고 얌전히 떠나겠다는 겁니다.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텐데요?”

부대원이 망설이다가 그들에게 손짓했다. 넷이 모두 타자 부대원이 사슬을 내렸고, 구명보트가 바다에 내려앉았다.

SCP-217-KO에서 구명보트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자, 풀그림이 품속에서 핸드폰을 –사실은 재단 직원용 통신기- 꺼내들었다. “이걸로 대충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군요. 27기지에는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빨리 이동하죠.”

구명보트가 계속해서 나아갔다. 하사드는 쌍안경으로 SCP-217-KO 쪽을 비춰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하사드가 고개를 내밀어 중얼거렸다. 넷의 눈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헬기 한 대가 어둠을 뚫고 날아오고 있었다. 헬기에는 컨테이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는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 하나가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헬기에 줄 하나로 매달린 컨테이너는 불안하게 계속해서 흔들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남자가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D-1400. 주어진 변칙적 도구를 작동시켜라.”

D-1400이 품속에서 SCP-403,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라이터 하나를 꺼냈다. “이..이거 말이요? 이게 뭐라고?”

“현재시각 22시 25분, 첫 번째 점화. D-1400, 점화하도록.”

D-1400이 전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에서 평범하게 불꽃이 하나 팍 피어났다. “이..이게 다요? 뭐 아무 일도 없는데?”

“SCP-217-KO에 포착됨. 회피 기동. 회피 기동. 주의하라.”

컨테이너가 거칠게 흔들리며 한쪽으로 홱 기울었다. D계급이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데구르르 굴렀다. 이어폰에서 날카롭게 말이 이어졌다.

“두 번째 점화. D-1400. 빨리 점화하도록.” D-1400이 넘어질 때 놓친 라이터를 더듬더듬 다시 들어서 켰다. 한 순간 불꽃이 컨테이너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그 틈새로 빠져나와 불꽃이 번뜩이며 새까만 하늘을 밝혔다. D-1400이 놀라 헐떡거리며 자기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전혀 화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D계급이 어리둥절해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아니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왜 아무 일도 없는 거고? 썅 이 라이터 뭐가 이상한 거고?”

이어폰의 목소리는 D계급의 질문을 완벽히 무시하고 계속 명령했다. “잠시 후 컨테이너가 SCP-217-KO에 낙하한다. 그때 주어진 변칙적 도구를 점화하라.”

“무슨 이상한 소리요? 어디에 낙하한다고? 왜 이걸 점화하라는 거요? 대답을 하라고!”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처분하겠다. D-1400. 명령에 응하라. 5초 후 낙하한다. 컨테이너가 열릴 테니 바로 점화하라. 5…4…3…2…1”

거칠게 컨테이너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다. D-1400의 몸이 확 쏠렸다가 컨테이너가 바닥에 부딪히며 다시 데구르르 굴렀다. 컨테이너의 문이 쿠당탕거리며 열리고 몇 초만에 손전등 불빛이 훑듯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손들고 나와라! 나는 고든 소령이다. 지금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지금 네놈한테 총을 겨누고 있다. 허튼 짓 하지 말고 천천히 손들고 컨테이너에서 나와!”

D-1400이 라이터를 손에 집어들었다. “에라이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SCP-403에 불이 붙었다.


구명보트 위에 올라앉은 네 명은 멍하니 SCP-217-KO 쪽을 쳐다보았다. 헬기 하나가 다가오고, 배에서 헬기를 격추시키려 하고, 헬기는 컨테이너 하나를 배에 떨구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확 하고 공기가 배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배 전체를 뒤덮었다. 뒤이어 첫 번째 폭발에 이어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나 파편을 온 사방으로 흩뿌렸다. 배에서 떨어져나간 파편이 날아와 바다에 물기둥을 만들며 떨어지고, 후끈거리는 열기가 구명보트에 탄 이들의 얼굴에까지 닿아왔다.

“오 맙소사.” 고디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기서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거죠?”

“이건 말도 안 돼.” 풀그림이 몸을 엉거주춤하게 세웠다. “저 배는 그냥 평범한 항공모함이 아니라 SCP라고요. SCP-217-KO. 그냥 평범한 폭탄 같은 거로는 저렇게 날릴 수가 없을 텐데. 그냥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하지만..”

“하지만 뭐요?” 카일리가 물었다. “하지만 뭐가 어쨌다는 거죠?”

“SCP를 사용했다면. 이건 재단의 기본적인 가치나 강령에 완전히 어긋나는 겁니다. 확보-격리-보호에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만약 진짜로 SCP를 사용한 거라면..” 하사드가 쌍안경을 떨리는 손으로 내려놓았다. “보아하니 재건할 재단도 남아있지 않은 꼴이겠군요. 재단이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해 버린 꼴일 테니.”


샐리 박사는 배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재단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알 피네 사무차장이 전화를 끊고 비웃음을 띄우며 말을 걸어왔다.

“끝났군. 하기야 인력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이 정도 규모로 기습을 했는데 안 당할 리가 있나. 뭐 우리가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약간 심심하기는 하겠다만. 아, 할 일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 저쪽 시설에 O5-10이 있는데 패닉 룸에서 버티고 있다는 군요. 강제로 열 준비야 되어 있다만, 샐리 박사 당신이 가서 순순히 항복할 수 있도록 설득해 주시죠.”

“그러죠. 뭐 안 될 것 있나.” 샐리 박사가 시큰둥하게 답하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배에서 내려 다른 요원들과 함께 재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이리저리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철문 하나가 나오고 무장한 군인들 몇 명이 서 있었다. 샐리 박사의 옆에 선 요원 하나가 고개를 끄덕거려 보이자, 문 앞에 버티고 선 군인이 키패드에 연결된 기기를 조작했다. 문이 열리고 조그마한 방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박사가 옆의 요원에게서 권총을 건네받아 겨누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O5-10이 의자에 앉아서 오른손은 키보드에 올려놓고, 왼손은 총을 든 채로 박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래, 샐리 박사. 재미있는 일이군. 자네가 이렇게 GOC와 함께 들이닥치다니 재미있군 그래. 얼마나 좋은 거래를 했길래 그러나?”

“입 다물고 일어나서 따라 나오시죠.” 샐리 박사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 지금 이 컴퓨터 화면에 뭐가 떠 있는지 아나? 내가 키보드를 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나? SCP-016, SCP-020, SCP-008 세 바이러스가 살포될 걸세. 일본 내 모든 재단 시설을 통해 살포될 것이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네. 세상을 망하게 할 정도는 아니겠지. 하지만 이 전황이 뒤바뀔 정도는 될 걸세.”

“아, 제발.” 샐리 박사가 말을 이었다. “나보고 지금 그걸 믿으라고? 재단이 SCP 개체를 격리하는 게 아니라 무기, 그것도 자폭용으로 해놓았다는 말을 믿으라고? 그게 사실이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당신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저열하다는 것만 달라질 뿐.”

“그렇게 생각하게. 하지만 내 요구사항은 별 것 아니라네. 그냥 간단하게 내 신변을 보장하고 도망칠 수 있도록 교통편을 보장하면 돼. 그러면-”

그 때 군홧발 소리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문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O5-10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리는 순간, 샐리 박사가 총을 들어올려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을 쏘았다. O5-10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감싸쥐고 뒤로 나자빠졌다. 군인들이 달려들어 그를 우악스럽게 끌어냈다. 샐리 박사는 다가가 혐오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젠장. 벌써 해놓고는 시간끌고 있는 거였군. 빨리 당신네들 사무차장한테 안내해. 빨리! 긴급한 일이야. 당장!” 다급하게 그녀가 패닉 룸에서 나갔다.

샐리 박사가 나간 지 몇 시간이 지나, 모자를 비뚤게 쓰고 휘파람을 불며 청소부 하나가 패닉 룸으로 들어갔다. 클라우드였다. 포로로 잡혀서 심문받거나 하는 건 다 높으신 양반 얘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어딜 가도 살아남는다니까. GOC와 UN에서 온 군인들에 의해 붙잡히기는 했지만, 곧 클라우드는 풀려나 하던 대로 엉망이 된 이 건물을 다시 청소하고 있었다. 클라우드의 시선이 책상 위의 컴퓨터에 꽂혔다. 키보드와 모니터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핏자국이 선명하게 있었다. 품속에서 걸레를 하나 꺼내들고 특수 세정제를 듬뿍 바른 뒤, 클라우드는 걸레를 집어 들고 모니터를 문질렀다. 핏자국이 지워지자 모니터에 쓰여진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가 할 일은 청소지, 이런 암호를 읽고 해석하는 건 아니니까.

All system functioning…
Emergency response system online…
backup data retrieving…
All protocol ready:
Translation ready:

살포 대상 : 전 시설
SCP-016 준비 중… 살포 완료.

SCP-020 준비 중… 살포 완료.

SCP-008 준비 중… 살포 완료.

예상 감염자 : 추산 불가(Error Code:009)

경고 : 이 프로토콜은 전 세계적인 감염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영향 및 결과는 추산할 수 없습니다. 계속 진행함으로써 귀하는 Ethics Committee Code 및 재단 강령을 정면으로 위반할 수 있습니다.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귀하는 이를 숙지하였으며 그 책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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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끝.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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