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

“자, 신도 여러분. 모두 기뻐하십시오! 일어나요! 축하할 날입니다!”

정장을 입고 얼굴을 완전히 덮는 가면을 쓴 남자 하나가 껑충거리며 설교대 위로 올라섰다.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제각각 웃고, 떠들고, 박수를 쳤다. 어떤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기도를 했다. 남자는 두 팔을 벌리고 여유롭게 그 광경을 보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손으로 연단을 쳤다.

“자, 자.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신께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정신을 닦는 것도 중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앉으세요, 여러분. 앉아. 이제 시작합시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웃음을 싹 지우고 신심으로 가득 찬 경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느리게 말을 시작했다.

“며칠 전, 우리를 억압하고 신께 거역하는 더러운 재단, 그 재단의 우두머리 중 하나를 우리 충성스러운 기사단에서 잡았습니다.” 박수 소리가 간간히 났다. 설교대의 남자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네, 네. 훌륭했습니다. 그 자는 이단에게 어울리는 대가를 받았고, 우리의 의지를 알리기 위해 다시 그 더러운 재단에게 돌려보내졌습니다. 우리는 그 역겨운 자들에게 침을 뱉어 주었습니다. 맥스웰파나 톱니바퀴 정교 따위는 꿈도 못 꿀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요, 여러분. 부서진 신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겁니다!”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몇몇 사람들은 거의 기절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댔다. 남자는 흐뭇한 듯 팔을 저어 보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여러분. 자, 경전을 읽읍시다. 어제 어디까지 읽었죠? 뭐라고요? 음…19장? 그 쪽은 시련에 대한 내용이죠? 지금은 시련이 아니라 시련의 대가로 축복을 받고 있는 때입니다. 24장을 봅시다. 여러분. 모두 24장을 펴세요. 됐습니까? 그럼 시작하죠. 여러분이 한 일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되겠습니다. 보라. 무릇 해악을 끼치는 자는 그 해악을 곱절로 돌려받을 것이니, 의로운 일을 행하는 자가 직접 친히 그 곱절로 돌려주는 일을 맡을 것이라. 그러니 너희는 오직 신심을 지켜 의로운 일을 행해 너희를 억압하는 자에게 그 억압을 곱절로 돌려줄 것이요-”


“이 새끼가 뭐? 이 개새끼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남자가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에 사지를 결박당한 추레한 남자가 억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의자를 걷어찬 남자는 화를 주체 못하고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 빼더니, 의자에 묶인 남자의 뺨을 두어 번 후려쳤다. “야, 이고르 메나코프. 지금 우리가 여기서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뭐? 영장? 변호사? 미란다 원칙? 하, 이 새끼 웃기고 자빠졌네. 니는 재단이 지금까지 무슨 경찰이나 법원인 줄 알았나. 뭐 윤리 위원회가 D계급 인원 쓸 때 유가족한테 손해 배상 해주디? 이런 병신새끼. 이거 아무래도 한 번 더 맛을 봐야겠구만.” 그 요원은 한 구석에 놓인 기계장치로 다가가 다이얼에 손을 올려놓았다. 의자에 묶인 남자, 이고르 메나코프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에 씌워진 헤드폰을 어떻게든 떼어내려 했다. 헤드폰의 끝은 그 기계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요원이 다이얼을 돌리자, 이고르는 눈을 까뒤집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킬리 박사, 아니 킬리 차장은 그 모든 장면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일방향 유리가 그녀의 모습이 심문실에서 보이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전부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선 남자는 무표정하게 심문실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킬리가 침묵을 못 견디겠다는 듯 물었다.

“이게 다 필요한 절차인가요? 이 모든 게? 내가 내부 보안부에 처음 배치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게 존재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윤리위원회에서 이 모든 걸 묵인한다고요?”

남자는 유리에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서류를 휘휘 넘기다가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었다. “Ethics Committee Code 157-B. 심문 방법은 영구적이거나 전문적인 치료를 요하는 신체적 징후를 남기지 않는 한에서만 허용된다. 지금 쓰는 방법은 청각적 인식재해 물질을 이용한 심문 방식입니다. 이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미 약 4년 전부터 현장에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딱히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차장님?”

킬리는 그만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만해요, 쯔산. 규정에 어긋나는지 물어본 질문이 아니잖아요.”

쯔산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혼돈의 반란 때문에 일어난 난장판이 어땠는지 기억하시잖아요?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뭐… 물론 도덕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이렇게라도 해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거죠. 보다 큰 선. 어쨌든, 곧 전쟁이 시작됩니다. 아니, 이미 시작됐죠. 지금 저 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가치를 헤아릴 수 없으니까요. 그 정보를 캐내야 지금 하는 공격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어요.”

“네, 네. 나도 알아요. 지금 방 밖에 우리가 알아낸 정보를 전달하려고 관리부 연락관 하나가 전화기를 붙들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 정보를 알아야 반란의 주요 지도원이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 지도원을 쳐내야 나머지 조무래기들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고요. 하지만 맙소사, 당신은 지금 저걸 보고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어요?”


“그러니 보라! 이제 징벌의 때가 왔고 거역하는 자들은 초개와 같이 산산히 부서질 것이라, 다시 성스러운 복수가 눈을 뜨고 자신의 희생양을 찾아 날갯짓하리라. 그 때에 모두가 비명 지르며 흩어질 것이요 토끼들이 사자에게 잡혀 죽듯 다 잡혀 죽을 것이니 이는 내가 그렇게 말함이라!” 남자는 열을 올려 그렇게 외쳤다. 몇몇 신도들은 감격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남자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어 외쳤다. “자 여러분! 모두 일어나 보십시오! 모두 하늘을 보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바로 지금이 네놈들이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신도들의 눈이 모두 남자에게 홱 쏠렸다. 남자가 얼굴에 쓴 검은 가면을 홱 벗어던졌다. 그 안에는 물음표가 그려진 또 다른 가면이 있었다. 그는 소매 속에서 우아하게 스위치를 꺼내들고, 눌렀다. 빠드득 소리와 함께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신의 신자들이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샹들리에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격리불가는 품 속에서 흰 지팡이를 꺼내 휘휘 돌렸다. 신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격리불가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혀를 쯧쯧 찼다. “머리가 있다면 이게 작전 시작 신호라는 걸 눈치 챌 만도 한데 말이지.” 다음 순간, 교회의 창문이 전부 깨져나가며 기동특무부대가 들이닥쳤다.

신도들과 특무부대원들은 곧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신도들의 무기는 기껏해야 교회 곳곳에 놓인 이상한 기계들뿐이었으나, 광신으로 무장한 그들은 사납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신도 하나를 지팡이로 후려치며, 격리불가가 외쳤다. “감마 팀은 나와 함께 이동한다! 이 광신도 소굴에 있는 비밀 방을 최대한 빨리 확보해야 해!”

들이닥친 특무부대원들 중 감마 팀이 격리불가가 있는 설교대 쪽으로 달려왔다. 감마 팀은 묵직한 연단을 밀어냈고, 그 밑에는 바닥이 아닌 뻥 뚫린 구멍과 사다리가 있었다. 격리불가는 사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구멍 속으로 뛰어내렸다. 사뿐히 지하에 착지하자 그 앞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그 중 한 무더기를 들춰보았다. “빙고. 기부금 내역, 회원 목록, 변칙 개체들… 전부 다 있군. 훌륭해. 이걸로 부서진 신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겠지. 감마 팀! 여기 있는 문서들 다 확보해! 외무부로 보내서 분석해야 하니까 훼손 안 되게 조심하고!”

그 때 그가 외친 소리를 들은 듯 갑작스레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 하나가 얼굴을 서류 더미 너머에서 내밀었다. 그는 손에 흰 무언가를 들고 흔들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던 감마 팀 팀장이 외쳤다. “폭탄이다!” 다음 순간, 격리불가가 말릴 틈도 없이 감마 팀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조그마한 지하 터널은 총소리가 메아리쳤고, 남자는 수십 발의 총탄을 맨몸으로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총소리가 그치고 격리불가는 잠깐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온 사방에 튄 피에 닿지 않도록 피해가며 그 남자에게 다가가 보았다. 손에는 조잡하게 만든 백기가 들려 있었다. 격리불가는 지팡이로 그 백기를 손에서 떼어내고, 손으로 들어올렸다. 감마 팀 팀장이 총구를 내리고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게 뭡니까?”

격리불가는 속으로 살짝 피곤함을 느꼈다. 그 팀장이 물어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품에서 그는 라이터를 꺼내 백기에 불을 붙였다. 조심스럽게 백기를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고, 팀장에게 살짝 빈정거리는 뉘앙스를 담아 대답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네. 윤리 위원회가 뭔가 조사할 만한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고.”

“그렇지요. 방금 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적대 행위를 시도하던 신도 하나가 사살되었을 뿐. 밖에 운송용 차량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만한 양의 문서여도 대충 다 실을 수는 있을 겁니다. 붙잡은 신도들은 어떻게 할까요?”

격리불가가 손가락으로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턱을 만지며 말했다. “일일이 심문해서 뭐 정보를 얻어내려면 너무 오래 걸리고, D계급 인원으로 다시 재배치하자니 광신도들이어서 그것도 영 그렇고… 거기다가 어차피 이 서류들도 있으니… 전부 사살하도록.”

“총으로 할까요?”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고… 정신자 물질로 가지. 시체는 소각하도록.”


쯔산은 킬리 박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심문실을 비추는 유리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다이얼이 돌아가고 의자에 묶인 남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밖에서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관리부의 연락관이 초조한 표정으로 얼굴을 비추었다. 쯔산은 그를 힐끗 보고 고개를 저었고, 연락관은 말없이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보이고 문을 닫고 나갔다. 킬리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이고르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몇 번 끊어지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서부 기지요. 자세한 디테일은 당신네가 더 잘 알거요. 거기에 동부 총책임자가 있소. 이제 제발 그만… 그만 좀 하라고…” 말이 끊어지고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킬리 차장이 스피커를 꺼 버리고, 쯔산에게 말했다. “밖의 연락관에게 알리세요. 공격 개시하라고. 그리고 저자는…” 그녀가 잠깐 망설였다.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죠.” 쯔산이 그렇게 말하고 그들이 있는 방의 불을 끄고 나갔다. 초조하게 서성이던 연락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수화기를 잽싸게 집어들고 통화를 시작했다.

“예, 예. 암호는 블랙버드 엡실론-19. 메인 타겟은 14번 타겟, 몽골 소재한 14번 타겟입니다. 폭격 개시하고 MTF들 보내면 됩니다. 14번 타겟을 우선적으로 섬멸하고 이동하면 됩니다. 이상. 암호는 블랙버드 엡실론-19.”

연락관이 기쁜 듯 쯔산의 손을 잡고 한 번 흔들어 보이고, 자신은 관리부로 되돌아 가봐야겠다며 문을 열고 떠났다. 쯔산은 나가는 연락관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방금 나온 방을 힐끗 뒤돌아보았다. 그의 상관은 아직 그 어두운 방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뒤에서 청소부 서넛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을 인솔해 온 관리부의 무슨 비서는 비행기가 아니라 8인용 소형 스텔스 항공기인 ‘텔리온’이라고 주장했지만, 별 신경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비서는 곧 그들에게 일을 할당해 주었다. 클라우드는 그들이 청소해야 할 건물을 얼굴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폭격을 맞은 듯 천장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온 사방에 파편이 널려 있었다. 총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클라우드는 할당받은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회의실 하나였다. 둘러보니 한숨부터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책상은 두 동강 나 있고, TV 하나가 박살난 채로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일단 유리조각이야 빗자루로 쓸어내면 되고, 책상은… 뭐 그 비서가 한 말대로 일단 임시로 접합해 놔야겠구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클라우드는 장비들 중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들었다.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다. 책상이 깨끗하게 두 동강 난 게 아니라 무슨 폭약에 의해 박살난 듯 접합부가 깨끗하게 들어맞지도 않았고, 유리조각들은 너무 많아서 처리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나마 하나뿐이어서 다행이기는 하다만. 클라우드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잠깐 그 부분을 쓸어 보았다. 다행히도 완전히 굳지는 않았고 진득하게 장갑에 쭉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여도 그냥 락스로는 어림도 없고, 재단 생산부에서 특별히 거창한 일련번호 ‘4993EE’까지 부여해가며 만든 특수 세정제를 써야 할 것 같았다. 나머지야 뭐… 대충 처리하고 봉합해서 버리면 될 테고.

클라우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장비통을 뒤적거려 아래통에 처박혀 있던 세정제를 꺼내들었다. 하도 쓰지 않아서 먼지가 끼어 있었다.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쓸어내자 루미놀로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말끔히! 일련번호 4993EE라 쓰인 문구가 보였다. 도대체 판매용도 아닌데 광고 문구는 왜 박아 놓은 건지 원. 그렇게 생각하며 세정제를 집어들고 클라우드는 대걸레에 세정제를 뿌려 바닥의 피웅덩이를 닦아냈다. 세정제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훌륭했다. 진득한 피가 순식간에 걸레에 밀려났다.

그 때 처음 보았던 그 비서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 “죄송한데 얼마나 걸리시죠? 최대한 빨리 끝내주실 수는 없나요? 지금 여기서 급하게 회의를 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

클라우드는 고개를 긁적였다. 남은 건 어차피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만 치우면 세정제 냄새가 좀 독하게 나기는 해도 회의는 할 수 있을 터였다. “어… 저것만 치우면 대충 회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무슨 악취미가 있어서 이런 폭격당한 데에서 굳이 회의를 한다는 거죠?”

비서는 난처한 듯 웃으며 고개를 긁적거렸다. “죄송합니다. 제 상관께서 원하시는 거여서요. 그분 말을 거스르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관리부에도 영향력이 큰 분이서요.”

클라우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바닥에 놓인 시체에 다가갔다. 죽었으니 피가 쉽게 흐르지는 않겠지만 치우기 위해 움직이면 피가 흘러나올 수도 있었다. 생산부의 일련번호 4993EB인 ‘임시 상처 봉합제’를 집어들고 시체에 뚫린 총구멍들에 대충 바르고, 클라우드는 시체를 바디 백에 끙끙대며 집어넣었다. 그 비서는 고개를 돌리고 코를 막은 채로 애써 그 장면을 보지 않고 있었다. 피식 웃고, 클라우드는 바디 백을 들고 비서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비서가 입으로 손을 막고 바디 백을 외면하며 말했다. 클라우드는 바디 백을 어깨에 메고 장비들을 챙겨 방을 나가려 했다. 그 때, 문으로 정장을 입은 늙은 남자 하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클라우드는 저 늙은이가 비서의 상관인가 생각했지만, 어차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O5-3는 얼굴을 계속 힐끗거리는 청소부 하나를 무시하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꽤나 괜찮은 청소부인 듯,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책상 또한 최소한 멀쩡히 서 있었고, 대충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O5-3는 의자에 앉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비서는 도청 방지 장치와 무선 연결 암호화 장치 같은 보안 장치들을 설치하고 회의실 문을 닫고 나갔다. 책상을 두 번 두들기자, O5들의 화상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임시 O5 평의회가 소집된 것이다. O5-3가 쌕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기뻐하시게나. 축하할 만한 일이지 않나? O5 평의회를 반란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지 중 하나에서 열다니. 지금 내가 있는 방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반란의 동부 총책임자의 시체가 있었다네. 그 청소부가 안 치웠으면 더 좋았겠지만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니까.”

O5-8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이 젠장맞을 반란에게 훌륭하게 제대로 보복을 해 주었지요. 이 정도면 이제 우리를 엿먹일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모두 깨달았을 겁니다.”

“그렇지. 참으로 상징적이지. 마치 시체에 오줌을 갈기는 짓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한다네. 단순히 상징적인 걸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 말이야.”

O5-8의 화상이 흔들렸다. “반란을 완전히 밀어버리자는 겁니까?”

“우리는-” O5-3가 두 손을 맞대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가 눈을 감았다. “극도로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있네. 2000개가 넘는 SCP를 격리하고 있고. 그럼에도 이렇게 훌륭하고 빠르게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전쟁을 약간 더 확대하면 어떨까 싶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다른 요주의 단체까지 건드린다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을-”

“나는 시나리오 수립을 책임지네. 내 예측으로는 매우 긍정적이고 말이야.” O5-3가 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반란의 시설에서 충격적인 자료가 나왔다네. 바로 GRU ‘P’ 부서가 반란을 지원했다는 걸세.”

O5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O5-7, 타우미엘 관리자가 말했다. 희뿌연 눈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우리의 명분은 분명합니다. O5를 살해한 부서진 신과 반란을 밀어버리는 것. 굳이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군요. 반란을 계속 밀어붙이자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단체를 추가로 공격한다? 나는 회의적입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O5-3가 화를 억지로 참는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자네들 P 부서가 우리를 어떻게 골치 아프게 했는지? 이 O5의 암살은 한 단체가 한 일이 아니야. 최소 세 개의 단체가 치밀하게 음모해서 공격한 거라고. 저들을 지금 깨부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는 박살 날 걸세. 이미 Diplomacy Party사건 때 충분히 겪어보지 않았나?”

O5-8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물었다. “또다시 러시아에 군사개입을 하는 건 무리입니다. 언론 통제도 원활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상관없네. P 부서는 우크라이나로 밀려났어. 사실… 거기에 관해 방금 들어온 충격적인 보고서가 있다네. SCP-065-KO에 관한 것일세.”

O5들은 그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곧, 그들은 모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로를 돌아보았다. 불안감과 걱정이 화상으로 떠 있는 얼굴을 지나갔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위성 영상을 띄워보고, 휘하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본 끝에야,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O5-3만을 바라보았다. 그 때 O5-4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기꺼이 찬성표를 던지겠습니다, O5-3. GRU ‘P’ 부서를 밀어버립시다.”

“찬성합니다.” “나도 찬성합니다.” “제청합니다.” “찬성이요.” O5들의 중얼거림 같은 찬성이 이어졌다. O5-3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네. 2015년 1월 2일 O5 임시 평의회 결의. GRU ‘P’ 부서에 대한 전면전을 개시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전력을 현재 P 부서가 대피한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것을 승인하도록 한다. 총사령관은 내부 보안부 담당자 O5-6, 정보국 1차장 카에스틴 브롬으로 한다. 구체적인 안은 내일까지 받을 수 있을 걸세. 이만 해산하지.”

O5-3가 다시 책상을 두 번 두들겼고, 모두의 화상이 사라졌다. 주름 진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미소였다.


1부 끝.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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