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조그마한 항공기의 엔진이 비명을 지르듯이 울렸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날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란란맥은 이제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엔진 과열로 바다에 추락해도 바닷물에 엔진이 식으면 다시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시작할 때, 갑자기 뒤쪽에서 이트륨이 그를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잠깐 무인 비행 모드로 항공기를 돌려놓고, 란란맥이 비행기의 뒤쪽으로 가 보았다. 이트륨은 계기판에서 쉴 새 없이 깜빡거리는 LED 등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등 밑에 쓰여 있는 설명은 거의 다 지워져 있었지만, ‘REM’이라는 희미한 흰 글씨는 아직 알아볼 수 있었다. “REM이라. 렘 수면이라도 돼나 보죠?” 자신도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감추며, 란란맥이 농담을 던졌다. 지금까지 이 등에 불이 들어온 건 요원 생활 하면서 처음이었다. 설명서를 찾아보겠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와 글로브박스를 뒤적거린 끝에, 햄버거 포장지 밑에 들어 있던 다 구겨진 설명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힘겹게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을 더듬어가던 그는, REM 등에 대한 설명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트륨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그 안에 넣어둔 금속 쪼가리들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종석에 놓아 둔 가방에서 좀 더 챙겨올 생각이었다. 그 때, 비행기가 홱 하고 왼쪽으로 쭉 기울었다. 그는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져 바닥에 부딪쳐 데굴데굴 굴렀다. 헬기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어가며 균형을 잡고 조종석에 와 보니, 란란맥이 미친 듯이 조종간을 돌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건가? 러시아로 들어가려면 계속 정북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압니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저 빌어먹을 REM 등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정북쪽으로 나가서 그대로 죽어나갔겠죠! 저 REM 등이 뭘 말하는 건지 압니까? 탄도 미사일 감지 등이라고요!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는 게 감지되면 비상등을 울려대는 정말 장식으로 달아놓은 기능이란 말입니다!”

“뭐?” 이트륨이 소리질렀다. 잔뜩 기울어진 그 안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다른 사람 말을 듣는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탄도 미사일이 왜? 우리를 겨냥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럼 사격관제용 레이더에 감지가 되든가 했을 것 같은데?”

“탄도 미사일은 거의 100% 핵폭탄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된 거 러시아를 포기하고 폴란드 지부까지 날아갑시다. 급유야 중간중간에 하면 되니까-”

그 때 거대한 폭발음이 란란맥의 목소리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저 멀리에서 솟아나온 한 줄기 불꽃이 보였다. 흰 연기를 밑으로 흩뿌리며 솟아오르던 그 불꽃이 갑작스레 굉음과 함께 만개했다. 엄청난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LED 등들이 쉴 새 없이 반짝거렸고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란란맥은 조종간을 이제 완전히 반대쪽으로 꺾고, 열기를 피하려 폭발에서 고개를 최대한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트륨은 이미 그 열기를 피해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더 이상 경고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항공기는 그렇게 러시아를 비껴 가 폴란드로 방향을 잡았다.


샐리와 고든은 특이사건수사대 전세기에 달려 있는 위성 TV로 폭발을 보고 있었다. SCP-1984가 활성화시킨 탄도미사일이 솟아오르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미사일이 그걸 격추하는 모습을. “그래도 다행이군요. 재단이 이렇게 미친 짓을 하는 걸 막아내서.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들다니, 정신 나간 짓이죠.” 고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샐리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대답했다. “아니, 재단은 애초에 핵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어요. 아직은 UN이나 강대국들과 붙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으니까. 저 MD를 작동시키라고 경고한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재단에서 전 국가에 경고한 거에요.”

“예?” 고든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샐리를 돌아보았다. “그럼 도대체 왜 저걸 활성화시킨 겁니까? 어차피 자기네가 막을 거면?”

“P 부서나 반란이 그걸 작동시켰다고 했겠죠. 그리고 자기네가 막아냈다고. 그러면 UN은 핵전쟁을 막기 위해 재단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했을 테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신들 덕택에 실패했군요. 당신들이 평의회를 쫓아오고, 내가 노래마인한테 그 얘기를 듣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서 전모를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어쩌다가 UIU와 같이 있게 된 겁니까? 어떻게 우리를 추적했고?”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UIU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죠.” 샐리 박사가 대꾸했다. “긴 얘기고 너무 오래된 얘기니까. 정보국에서 사보타주가 들어올 때 나는 재단 내에서 맞서려고 했다가는 철저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재단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세 부서를 적으로 돌리고는 뭘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옛 인맥을 통해 UIU로 복귀-, 아니, 잠시 이동했고, 당신들을 쫓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텔리온으로 그렇게 깽판을 치면서 도착했는데 모를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의 인공위성 감시도 꽤나 쓸 만하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의자걸이에 연결된 리모컨을 꺼냈다. 리모컨의 버튼 하나를 누르자, 위성 TV에 뜨던 폭발 장면은 순식간에 뉴스 생방송 화면으로 바뀌었다. 소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단은 선을 넘었어요.” 그녀가 그 표정을 알아채고 설명해 주었다. “넘겨도 한참 넘겼죠. 요주의 단체들을 이참에 완전히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은 용납할 수 없는 짓을 했고, UN을 속여넘기려고 했죠. 그걸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답니다.”

“UN에 이어 GOC와 ORIA라는 조직도 재단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화약고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UN 사무총장의 연설을 지금, 생중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앵커의 목소리가 끝나고, 현 UN 사무총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무총장의 연설이 이어졌다.

“오늘 러시아에서 벌어진 핵무기 발사 사태는 이른바 ‘SCP 재단’이라는 이름의 국제 테러 단체에서 자행한 것으로, 그들은 정부 내 다수의 스파이와 막강한 자원을 바탕으로 이런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대단히 위험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목격되었던 어떤 테러리스트보다도 강력합니다. 이에 따라 오늘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히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적 개입을 결의하였으며, 나는 총회에 이 ‘재단’에 대한 성전에 모든 국가가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2부 끝. 3부에서 계속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에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