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하우스

“저기, 저쪽에 하나. 그리고 거기서 15m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키패드요.”

소음기를 단 UZI가 불을 뿜었다. 경비를 서던 남자 하나의 머리에서 피가 흰 벽으로 쫙 튀었다. 소음기로 작아진 총소리였지만 좁은 통로에서는 충분히 귀를 멍멍하게 할 정도는 됐다. 사무관의 인도로 그들은 SCP-065-KO의 통로까지 별 어려움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QRF 팀은 이름에 걸맞게 빨랐고 가차 없이 대응했다. 사무관이 위치를 알려주면 그들은 P 부서의 다른 인원들을 전부 쏴버렸다. 브릴러 박사는 슬쩍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뿐이었다. 그들이 할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뒤에서 후방을 경계하는 것 정도? 이대로라면 아무 문제없이 모든 걸 끝낼 수 있어. 그런 희망어린 생각을 할 때, QRF 대원 하나가 말했다.

“클리어. 이상 없습니다.”

카에스틴이 앞으로 나와 키패드를 톡톡 두들겼다. “이봐요, 사무관 양반. 이 키패드 번호는 압니까? 지하로 가는 거면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게 좋지. 밖에서 지원군이라도 와서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미안하지만 모르네.” 사무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설계 끝이야. 이 밑으로는 들어가 본 적 없네. 누구 말마따나 계파 갈등이 심각해서 비밀 유지가 심하거든.”

“뭐 그렇다면야.” 카에스틴이 고개를 끄덕이자, QRF 대원 둘이 앞으로 나섰다. 하나는 사무관의 팔을 잡고 앞으로 끌어냈고, 하나는 허리춤에 찬 폭발물을 엘리베이터의 문틈에 꾸겨넣었다. “당신이 앞장서면 되니 별 문제는 안 되겠군.” 나타샤가 발끈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손에 쥔 권총을 들어 올렸고, 카에스틴이 한 번 와보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둘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에 끼워진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주의를 돌렸다. 철문이 박살나 떨어져 나갔고 밑으로 쭉 뚫린 엘리베이터 통로가 나왔다. 사무관 먼저, 그 다음으로 대원들이 앞장서서 그 통로 밑으로 뛰어내렸다. 다른 이들이 모두 뛰어내리고, 곧 고든 소령만이 위에 남게 되었다. 소령은 고개를 그 통로로 빼꼼 내밀었다. 엘리베이터는 머리 위에서 멈추어 서 있었고, 뛰어내려야 할 높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잠시 다리를 구부렸다가 뛰어내리는 순간, 갑자기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오, 젠장!” 다른 이들이 저 멀리에서 그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몸을 날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너무 빨랐고, 거기에다 높이 역시 낮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정통으로 깔리는 것은 피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그의 다리 한 쪽을 깔아뭉갰다. 고든이 고통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발이 통째로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소령님!” “괜찮으십니까!” 그의 부하들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아래층에는 키패드가 아닌 그냥 평범한 스위치만이 달려 있었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위로 올려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고든의 다리는 온전히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뼈가 으스러진 것 같았다. 브릴러와 카에스틴이 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카에스틴이 사무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이게 당신이 꾸민 짓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 분명히 당신이 알려준 대로 지상에 있는 경비들은 전부 제거되었어. 그런데 누가 지금 엘리베이터를 내려보내서 고든 소령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지? 여기서 분명히 이중 음모의 냄새가 나!” 그가 품에서 권총을 빼들고 사무관의 턱에 갖다댔다. 그 옆에 있던 나타샤도 순식간에 카에스틴을 총으로 겨누었고, QRF 대원들도 일제히 들고 있던 총을 들여올렸다. 카에스틴이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으르렁거렸다. “이 따위 허튼 수작을 부리려 들었다가는 큰코다치게 될 거라고 경고해 두지. 알았나?”

사무관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가 침착하게 말했다. “고든 소령은 자네들 입장에서는 배신자라면서? 내가 명령을 내린다면 자네나 자네 부하들이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를 내렸지, 고든 소령이 내려갈 때 하지는 않았을 걸세. 그리고 지금 일단 공동의 적부터 해치우자고. 그 다음에는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가든 어쩌든 마음대로 하고.” 카에스틴이 발을 쿵쾅거리며 홱 몸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고든 소령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이동한다. 소령을 여기 내버려두기는 뭐하군. 그렇다고 카이-17 대원 둘을 죄다 소령 쪽에 투입하면 내가 혼자 떨어진 브릴러 박사를 체포하고 싶다는 생각이 꽤나 들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하지. 카이-17 대원 하나하고 내 부하 하나가 소령을 부축하고, 다른 대원은 브릴러 박사를 호위하도록. 됐나?” 기동부대원들이 소령에게 허락을 구하듯 그에게 눈을 돌렸고, 소령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스틴은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원 둘이 소령의 양 어깨에 손을 집어넣고 들어올리는 동안, 다른 이들은 지하 통로를 지나두꺼워 보이는 철문 앞에 섰다.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철문이 떨어져 나가고, 그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방 안에 있던 러시아인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총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며 방을 가득 메웠고, 탄피가 쉴 새 없이 땡그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신호 장치부터 확보해, 신호 장치부터!” 카에스틴이 소리를 지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밀 방의 안쪽에 거대한 기계 장치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전선들로 복잡하게 이어진 계기판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 계기판으로 달려들었고, 그 주변에서 QRF 대원들이 그를 호위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카에스틴이 계기판에 다다랐을 때 이미 싸움은 끝나 있었다. 곳곳에 시체들이 엎어져 있었고 대원들은 그 시체에 대고 총을 쏴 대며 확인사살을 했다. 브릴러 박사가 땀을 닦았다. “이제 끝난 것 같은데요? 일단 그 기계부터 끄든가 뭘 하든가 합시다. 이거 영 불안해서-”

그 때 카에스틴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가 버튼 몇 개를 누르자,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뭐하는 겁니까?” 박사가 그렇게 물을 때, 카에스틴이 부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샤!” 사무관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QRF 팀 대원들의 총구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브릴러 박사는 뒤로 돌아 철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쓰러지고, 사무관은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쓰러지던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머리에 들어왔다. 그러나 우악스럽게 양 어깨를 모두 붙들리고, 그는 질질 끌려 다시 카에스틴의 앞으로 끌려왔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분명히 합의를 본 걸로-”

카에스틴이 불쌍한 아이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나는 이 기계를 끌 생각이 없다네. 오히려 작동시킬 생각이지.”
“하지만 그 기계는 SCP-1984를 활성화시키는 거요!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핵전쟁-”

“아, 아니야. 이미 내가 기계를 작동시킬 거라는 걸 평의회는 알고 있네.” 카에스틴이 박사의 말을 끊었다. “지금 러시아에서 발사될 수 있는 모든 ICBM이든 뭐든 격추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지.” 그가 버튼 하나를 누르자, 기계는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카에스틴이 계속 말했다.

“자, 아마 궁금할 걸세. 왜 SCP-1984를 활성화시키고, 기껏 활성화로 발사된 핵무기는 다 없애버린다고 하는 걸까? 간단하네. 간단하고말고. 생각해 보게. 우리는 매우 엄청난 주장을 펴고 있네. 혼돈의 반란, 부서진 신, GRU ‘P’ 부서로 이어지는 거대한 안티-재단 커넥션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거야. 그걸 뒷받침할 증거가 뭐가 있을까? O5의 살해? 괜찮지. 하지만 부족해. 부서진 신이 그런 짓을 하면서 멍청하게 자기네 표식을 남긴 건 자살행위고 못 빠져나갈 덫에 걸려준 꼴이지만, 문제는 다른 둘을 엮는 거지. 아무 연관도 없는 둘을 이 덫에 밀어 넣을 방법이 뭐가 있겠나? 그것들은 정치적인 커넥션도 꽤 탄탄하고, 개발도상국 곳곳에 뿌리가 있어. 그 둘을 밀어버리려면 국가들의 탄탄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그 협조를 어떻게 구할까?”

“SCP-1984. 핵전쟁. 바로 그거였군.” 사무관이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섰다. 머리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GRU ‘P’ 부서가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시도했다고 하고 재단이 그걸 가까스로 막아냈다는 구도를 만들면-” 카에스틴이 한 손을 들어올리자, 대원이 개머리판으로 사무관의 등을 다시 내려쳤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빙고!” 카에스틴이 박수를 쳤다. “그래, 말하는 재미가 나는군. 사실 순전히 그것 때문에 이렇게 모든 계획을 털어놓는 것 아니겠나. 우리는 이제 UN에 가서 이렇게 말할 걸세. P 부서가 SCP-1984를 활성화시킬 신호 장치를 가지고 있었고 재단이 그걸 막으려고 긴급히 움직였지만 때를 놓쳐서 SCP-1984가 활성화가 되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까지 준비하고 있던 재단이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미치광이 P 부서에다가 구원자 재단! 완벽하지. 아마 UN은 레밍 떼처럼 움직일 걸세. 핵전쟁이 진짜로 일어날 뻔 했다는 공포에 질려서 우리를 철저하게 따라올 걸. 무슨 말이든 다 믿고. 핵미사일들이 실전으로 이어질 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미쳤군. 그럼 아까의 그 엘리베이터는 뭐지?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을 말해주는 이유는 뭐고?” 브릴러 박사가 캐물었다.

“아, 그 엘리베이터는 모르겠군. 그건 아마 저기 저-” 그가 손가락을 엎어진 사무관 쪽에게 까딱거려 보였다. “작자 짓이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이유? 아까도 말했다시피 말하는 재미하고, 아. 하나 더 있군. 곧 죽을 놈한테는 진실을 말해준다고 하잖나. 걱정 말게. 고든 소령도 곧 같이 보내줄 테니까.”

카에스틴이 품에서 자그마한 권총을 꺼내들었다. 한쪽 눈만 뜨고 가늠쇠를 조심스럽게 조준하고, 그가 양팔을 잡힌 브릴러 박사를 겨냥했다. 박사는 눈을 감았다.


고든 소령은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떼어놓았다. 다리가 끔찍하게 아팠다. 차라리 주저앉아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미 총소리가 그친 것으로 보아 싸움은 거의 끝난 모양이었다. “젠장, 좋은 거리는 죄다 놓쳤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찰나, QRF 대원 둘이 그들 쪽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 대원 둘이 UZI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를 부축하던 대원 하나가 그의 팔을 놓고, 그가 비틀거리는 사이 총을 가져다 댔다. “이런 젠장! 이게 뭐하는 짓거리-” 소령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죽음을 직감했다. 이를 악무는 순간 뒤에서 총소리가 났다. 그러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쓰러진 것은 QRF 대원 셋이었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맨 앞에는 샐리 박사가 서 있었고 그 뒤를 양복을 입은 요원들이 따라 들어왔다.

“샐리 과장! 어떻게 된 겁니까?” 그가 다리에서 오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지만, 최대한 반가움을 담아 말했다.

“지금은 한국 재단 지역사령부 연구2과장이 아니라 연방수사국 특이사건수사대 부국장으로 스카웃됐는데.” 샐리 박사가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옛 인맥을 좀 활용했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었어요. 일단 자세한 얘기는 브릴러 박사를 구출해 낸 후에 합시다.”


브릴러 박사는 뒤로 넘어졌다. 숨이 가빠져 왔다. 가슴에 박힌 총알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어떻게든 산소를 들이마시려 했다. 목이 바싹바싹 타는 것 같았다. 뜨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눈물? 아니면 피? 그 때 갑작스레 발소리들이 들렸다. 가벼웠다. 워커나 군화 소리가 아니라,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발소리. 무언가 다른 사람 같았다. 다른 소리들이 계속 들려왔다. 총소리, 고함소리, 말소리들.

브릴러 박사는 필사적으로 초점을 모으려 했다. 그러나 눈앞이 흐렸고 눈꺼풀이 계속 천근만근으로 내려왔다. 귀에 대고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견디십시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요. 이제 다 해결될 겁니다.”

아니, 너무… 늦었어. 모든 게. 그 말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말을 할 힘도 없었다. 몸이 붕 들렸다. 옮겨지는 것 같았다. 숨이 가빠졌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박사님? 브릴러 박사님?” 고든 소령이었다. “조금만 버텨요. 이제 끝납니다.”

“아…”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고든 소령이 귀를 갖다댔다. 브릴러 박사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우리가… 했던 게 완전히 실패였습니까? 우리가… 실패한 겁니까?”

“아니에요. 재단의 계획을 저지해 냈습니다. 카에스틴과 그 부하들은 도망쳤고요. 그들의 야욕을 꺾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브릴러 박사가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 고개가 천천히 내려갔다. 실패하지 않았어. 그의 생각이 그것으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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