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자 (2)

백악관 상황실 녹취기록

(고성, 고함이 오감)

국방부 장관: 자, 일단, 1급 기밀 비인가자는 전부 다 나가시오. 부국장. 백악관 변호사. 재무부 장관, 그리고 재단 직원 당신도.

O5-4: 제가 나가면 이 작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국방부 장관: 우리 작전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나가요.

O5-4: 아뇨, 진짜로. 펜타곤에서 O5 위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또 재단 고위층 중에서 누가 강경파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거고? 또 저 사람이 그냥 요원인지 호텔 직원인지 재단 직원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거죠? 제가 나갔을 때 그 정보는 어디서 구하시려고요?

국가안보국(NSA) 국장: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귀중한 정보자산인 건 맞지만 어쨌든 민간인이요. 애초에 여기 상황실에 들어온 것부터가 엄청난 특혜고. 나가시오. 지금 당장. 안락한 NSA 안가로 모실테니.

O5-4: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지금 이 결정은 이 임시직 공무원들이 결정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일입니다.

대통령: 어…일단 작전은 그대로 진행해. 그대로! 그러려면… 좋아. 당신도 남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가서 떠들지만 않으면 묻을 수 있는 일이니까! 애초에 러시아 본토에 델타포스를 보냈을 때 최악의 경우에는 러시아와 전쟁할 수도 있다고 각오한 거 아닌가?

국가안보보좌관: 각하. 지금 그 최악의 경우가-

대통령: 진행하라니까!

특수작전사령부 사령관(원격): 알겠습니다. 작전 속행한다. 생포된 자들 중 확인된 자는 로비로 옮기고, 위층을 계속 제압하라. 스페츠나츠 도착 예정 시간은?

오퍼레이터(원격): 17분 뒤입니다.


카에스틴 차장은 빈 총을 버리고 계단 위로 도망쳤다. 뒤쪽에서 군홧발 소리가 쿵쾅거리며 울렸다. 말도 안 돼. 붉은 오른손 절반은 지금 크렘린에 있어야 하는데 이 병력은 뭐야?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킬리 차장이 배신했거나, 정보가 누설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는 끝장이었다. 계단실 문을 열고 나와 그는 열려 있는 문 안으로 펄쩍 뛰었고, 객실 안을 살펴볼 틈도 없이 일단 문을 잠궜다.

한숨 돌리고 객실 안을 둘러보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카에스틴이 기민하게 (최소한, 나이가 50이 넘은 사람치고는 그랬다) 현관에 있는 소화기를 집어들고 머리를 겨냥해 던졌다. 소화기는 정확하게 명중했지만, 그 사람은 앞으로 축 늘어질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에스틴이 빙 돌아 소파 앞에 섰다. 그 사람은 죽어있었다. O5-5다.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보라색인 것이나, 발치에 떨어진 약통을 볼 때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왜?" 카에스틴이 중얼거렸다. 쿠데타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었다면 O5가 자살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가능한 경우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중무장한 군인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한 순간 모든 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잡히면 어떤 고문을 받게 될지 (러시아 알파 그룹이든, 재단 기동특무부대든), O5-5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생각한 끝에, 그는 객실 베란다로 달려나갔다.

7층이었으나 그 높이에서 바라본 땅은 아찔했다. 그는 난간 너머로 몸을 넘기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래로 낙하하기 직전에 군인 하나가 그의 옷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카에스틴은 발버둥치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군인들의 손은 그를 바이스처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객실로 끌려들어갔다.


UN-GOC 태평양 사령부 특별관찰관 보고서

특별관찰관: UD-14

개요: SCP-505(재단 명칭) 및 저장 성 내 타입 블루 개체

초위협 증거: 현재 미식별된 타입 블루 개체는 여전히 타이저우 시(台州市) 전역을 뒤덮고 있으며,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한편 소위 SCP-505는 현재 사오싱 시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실개천 일부가 검게 변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에 있는 식생(植生)은 전멸한 것으로 보이고, 동물 역시 비가역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현재 사령부는 첸탕 강을 봉쇄하는 방안을 계획하는 중이나, 더 근본적인 청산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AEA(美 특이사건단속국) 및 HMPC(英 초자연격리청) 등 새로 창설된 초위협 대응 기관들이 관련 용어를 재단이 사용하는 걸로 통일하기로 했는데, 지침을 받지 못해 일단 우리 용어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지침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 UD-14


킬리 차장이 객실 안에 앉아있는 O5-3를 쏘아보았다. 노인이 서글프게 웃었다. "아직 난 자네 상관이네. 그렇게 쏘아볼 것까지야. 그래. 이 작은 쿠데타는 성공했군. 축하하네."

"그래요? 그럼 지금 저 군인들은 뭐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이 상황이 뭔가 하는 걸세. 지금 우리는 TF급 세계멸망 시나리오라는, 지극히 희귀한 가능성이 실현되는 걸 보고 있네. 아마 뭔지 모를 텐데-" 노인이 품 속에서 붉은 일지를 꺼냈다. 킬리가 손을 내저었다.

"뭔지 알아요. 나나 카에스틴이나 바보는 아니죠. 당신이 관리자The Administrator고 그 희귀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잖아요. 네탈시포를 선동자The Firebrand로 만들고. 이제 AEA 같은 새로운 기관들이 생겼으니 파수자The Guardian도 힘을 잃을 테죠. 결국 당신은 재단을 동원해 전 인류에게 맞선 거에요. 저도 축하드리죠. 세계를 가장 비효율적으로 멸망시킨 업적으로 기네스북에 오르시겠어요."

O5-3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 그건 좀 놀랍군. 그래서 쿠데타를 벌인 거였군 그래? 난 또 자네나 카에스틴이 시나리오에 나오는 배신자The Betrayer인 줄 알았지 뭔가."

"뭐?"

"대의도 법도 모르고, 생존에만 급급한 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비수. 하지만 자네는 목숨 말고도 다른 대의가 있었군. 날 막는다. 혼란을 막는다. 세계멸망을 꿈꾸는 미친 늙은이를 막는다!" O5-3가 과장된 목소리로 외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그렇게 오해하더군. 그러나 TF급 시나리오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면-"

"재단이 인류의 적이 되고 새로운 기관들이 등장하죠. 하지만 선동자에 맞설 만한 경험이 없는 초짜 기관들은 재단과 영합하고. 결국 재단을 증오하면서도 버릴 수 없기에, 인류가 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어요. 재단에 격리된 것들, 재단의 노하우와 박사들, 시설, 기술, 과학을 리스크 없이 그대로 인수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다가 세상이 망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정말… 끝까지 다 읽었군? 평의회 내에서도 단 셋밖에 모르는데. 그럼 거기서 잘 보게. 초짜 기관들이 재단과 영합하지… 그걸 극한으로 밀어붙인다면 어떨까? 아예, 재단을 없애고 그 초짜 기관들과 합쳐 버린다면? 재단 스스로 그렇게 한다면? 재단의 모든 걸 그대로 인수할 수 있지 않겠나? 아무 리스크 없이?"

"잠깐, 그러니까 그 말은… 당신 미쳤군요. 완전히. 결국에는… 그렇군요." 킬리는 마침내, 이 염병할 늙은이가 지금까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완전하게 깨달았다. 왜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상할 지경이었다. 비뚤어진 재단 최고위층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생각이었다. "재단을 세계 정부로 만들겠다는 거네요."

O5-3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리를 꺾으며 박장대소한 끝에, 노인이 휘청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세계 정부라니, 맙소사. 너무 프리메이슨식 표현이군. 하지만 뭐, 대충 아이디어는 맞지. 맞아. 음지에서 요주의 단체들과 싸우고, 변칙 개체들을 잡아들여서는 지속할 수가 없네. 재단이 영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 지금의 재단을 완전히 없애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 정부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옛날 재단이 처음 세워졌을 때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 온 세계를 재단 조직 하에 두는 것뿐이지."

"그래서 세계멸망 시나리오를 지금 이 지점까지 실현시킨 다음 멈추는 거군요. 그 다음에는 이제 당신 뜻대로 모든 걸 주무르고."

"아니. 나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네. 재단은 소수의 몇 명이 이어오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없지. 나는 지금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야. 모든 건 자네의 뜻에 달렸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계획을 짜온 그 모든 결실은 지금 자네의 손에 놓였네. 이시스Isis."

"무슨 뜻이죠?"

"이시스Isis. 마지막 희망. 종지부를 찍을 자. 시나리오에 나올 텐데. 자네는 쿠데타를 통해 수많은 재단 강경파를 제거했고, 재단을 멈췄네. AEA든 UN이든 GOC든 인정할 수밖에 없어. 자네가 AEA 국장을 맡는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다르지. 합법적인 신원도 없고, 인맥도 없는, 하찮은 노인일 뿐이니까. 그래서… 자네의 쿠데타에 편승하고 싶다는 거고. 날 새로 태어날 재단에 넣어주게. 나와 자네가 재단을 불태웠으니, 같이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거야. 우리가 새로운 재단의 부모가 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군."

킬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속삭였다. "생각할 시간을 줘요."

"물론."


오퍼레이터 (원격): 7층까지 제압 완료했습니다. 7층에서 생포한 자는 여덟입니다.

(영상 피드 연결. 생포된 자 여덟.)

O5-4: 맨 왼쪽은 카에스틴 정보국 차장. 그 옆은 모르겠네요… 호텔 직원 같은데. 그리고 그 옆은, 잠깐만. 클로즈업 되나요? 확실하게 확인 좀 할게요.


"왜 하필 나죠? 카에스틴 차장도 있을 텐데."

O5-3가 비웃음을 흘렸다. "과거가 있으니까. 그는 애초에 러시아 내 핵무기 발사 사태에 관여했지. 사실 도대체 자네가 왜 그자와 같이 일을 꾸몄는지도 모르겠네. 그자는 우리와 절대 같이 못 가. 그 핵무기 발사에 관여했으니 미국이든 UN이든 그자를 원할 걸세."

"그럼 그 바이러스. 그 지랄맞은 바이러스는 뭐였고?"

"O5-10은 신참이었지. 의욕이 너무 앞섰어. 나는 직접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 애초에 내 목표는 노래마인을 선동자The Firebrand로 올리는 거였으니까. 자네를 비롯해서 내부보안부가 너무 유능해서 실패했지만. 그 바이러스 살포도 그렇게 보면 도움이 되었군. 네탈시포 그자가 전면에 나섰으니. 물론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그러면 또…"

"자네 지금 시간을 끌고 있군. 설마 밑에 있는 델타포스를 믿는 건가?" 노인은 킬리의 얼굴에 스친 당혹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다 계획 안에 있었네. 제발. 나는 자네에게 방해받지 않고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네."


O5-4: 네, 저자에요. 저 여자가 바로 O5-3입니다. 재단 최고위층 강경파. 됐어요. 저자만 잡으면 모든 게 끝입니다.

국가안보보좌관: 좋아요. 이걸로 종료하고 철수합시다. 잡은 자들은 다 데려가고, 시신도 최대한 챙기겠습니다. 구조지점 A 포기하고 B로 이동해서 픽업합니다. 스페츠나츠가 5분 내로 도착한다고 합니다.

대통령: 오케이. 지금 철수해. 기자회견 준비하고, 러시아 대통령 건은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하니까 UN 대사 불러와.


킬리가 호텔 창문의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가져다댔다. 그러나 뜨거운 머릿속의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저 멀리 델타포스 차량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O5-3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델타포스도 갔으니, 이제 끝이군. 부디 결정해 주게.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 SCP-505가 동중국해로 퍼져서 세계가 망하는 것도 막아야 하고, 잡혀간 재단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할지도 알아야지. GOC도 마무리지어서 요주의 단체들을 없앤다는 목적도 달성해야 하고."

킬리는 무한한 무력감을 느꼈다. 이 노인에 대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O5-3는 그녀에게 지금 온전한 선택권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 자체가, 애초에 강요받은 것이 아니었던가. 쿠데타는 성공했으나 동시에 실패였다. 그녀 자신부터가 지금 재단을 증오했으나 버릴 수 없었다. O5-3는 그녀 하나를 움직이려고 온 세상을 인질로 삼았고, 그녀는 응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O5-3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 뒤로 돌아섰다. "움직이지. 4와 2에게 상황을 알리고, 킬리 차장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 10은 살았나? 확인하고, 일단 크렘린으로 가자." 킬리는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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