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공수작전

“안 돼요.” 노래마인이 딱 잘라 말했다. 책상 앞에는 브릴러 박사와 고든 소령이 서 있었다. 그녀는 브릴러 박사가 올려놓은 서류를 한쪽으로 쭉 밀었다. “지금 보안부의 인원 40%가 동원 불가능한 상황이고, 언제 평의회에서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 상황에서 특무부대원 50명을 빼내가서는 자살 미션에 투입하겠다고요? 사령관이 동반하는? 말도 안 돼는 소리 말아요.”

“하지만 지휘관님.” 브릴러 박사가 다시 서류를 책상 중앙으로 밀었다. “지금 이 문서를 읽어보셨잖습니까. 이걸 막아내지 못하면 상상도 못할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이 문서의 출처가 어디죠? 이걸 믿을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메신저에 본명이나 코드네임 안 쓰면 접속 불가능한 거 당신도 알잖아요. 위버맨시(Ubermensch)라는 사람은 여기 없다고요.”

“그 자는 정상적인 재단 인원 같아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자는 O5 평의회가 GRU ‘P’ 부서를 공격하기로 결의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정보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노래마인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럼 메신저를 정보국에 시켜서 분석해 보도록-” 말실수를 깨닫고 그녀가 말을 끊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고, 고든 소령이 잠시 창 밖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힐끗 보았다. 앞으로 화장장은 몇 주는 더 돌려야 할 터였다. 노래마인이 눈을 감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난 멀쩡한 인원이 최대한 많이 필요해요. 지금 한 명 한 명이 정말 아쉬운 상황이라고요.”

브릴러 박사는 잠시 주저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자, 위버맨시의 말이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TF 세계멸망 시나리오가 뭡니까?” 노래마인이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걸… 어떻게…” 그녀가 허우적거렸다. 고든 소령이 끼어들었다. “관리자님, 만약 지금 어떤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라면, 당장 말해 주셔야 합니다.”

노래마인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박사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책상에 놓인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그녀는 서랍의 맨 마지막 칸을 열었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소각로로 곧장 이어진 구멍이 열렸고, 그 서류는 곧 그 속으로 떨어졌다. 안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랍을 다시 닫고, 노래마인은 딱딱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그 위버맨시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죠. 만약 그렇다면, 그걸 막을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까?”

고든과 브릴러는 서로 놀란 듯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그걸 놓치지 않고 말했다. “난 TF 시나리오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 없어요. 나 자신으로써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나라고 자세한 내용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 단어가 당신 입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의 말이 사실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작전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브릴러 박사, 고든 소령. 나로서는 그냥…” 그녀가 얼굴을 숙였다. “파견 인원들 잃은 셈 칠 테니까.”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어깨가 흔들렸다.

“사령관님, 지금 평의회가 우크라이나로 군대를 이동시키기는 했지만, 아직 교전이 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움직이면 어떻게든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브릴러 박사가 눈치 없는 소령을 팔꿈치로 찔렀다. 둘은 뒷걸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났고, 곧장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브릴러 박사가 헐떡거리며 물었다.

“지금 기동특무부대는 준비된 것 맞죠? 지금 당장 텔리온 이륙 가능합니까?”

“내 부하 50명에 텔리온 9대 준비시켰습니다. 당장 출발합시다.”

그들은 수송기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부대원들이 오가는 가운데, 요원 하나가 둘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요원은 눈에 띄지 않게 핸드폰을 꺼내서는, 조심스럽게 보안 코드를 입력하고 광역 정보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카에스틴은 골똘히 지도를 쳐다보았다. 상황이 꽤나 흥미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쟁 수행 부대가 이동한 곳으로 지역사령부가 특무부대를 보내? 미친 것 아닌가? 텔리온의 스텔스 기능을 레이더로 간파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고 있는 것을 아는 부대를 막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때 그가 탄 차량이 크게 덜컹거렸다. 몸이 따라 거칠게 흔들렸다. 부대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곳곳에 돌무더기와 자갈이 가득했다. “젠장할.”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는 운전석 앞유리 너머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임시로 설치한 부대시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예프에 설치된 재단 사령부에 도착한 것이다. 이렇다 할 P 부서와의 교전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지역사령부 인원들이 굳이 온다면야 꽤나 재미있는 일인 건 분명했다. 카에스틴은 전투기를 얼마나 내보낼지 고민하며, 다시 좌석에 등을 기댔다.


텔리온들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착륙하는 건가? 브릴러 박사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고든 소령과 같이 탄 부대원들이 좌석 밑에서 노란색 가방 같은 걸 꺼내기 시작했다. “뭡니까?” 고든 소령이 박사에게 그것을 던져주었다. “낙하산입니다. 조금 있으면 낙하해야 하니까 준비하시죠.”

“뭐요?” 박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그냥 민간 비행장에 착륙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극적으로 착륙하려다가는 극적으로 퇴장해 버릴 것 같은데. 낙하산으로 내렸다가는 너무 눈에 띄는데다가 위험할 텐데?”

“아닙니다.” 소령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키예프에 우리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이 없어요. 지역사령부가 재단에서 분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민간과의 협조 공작이 없어서 비행장을 쓸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공항에 내려서는 중화기를 들고 걸어 다니면 누가 봐도 반군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아예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될 겁니다.”

브릴러 박사가 떨떠름하게 낙하산을 내려다보았다. 부대원들은 이미 모두 낙하산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가 낙하산을 어깨에 둘러매고 끈을 매기 시작했을 때, 갑작스레 수송기가 왼쪽으로 쭉 기울어졌다. 수송기에서 기계음과 함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고. 경고. 적기 접근 중. 회피 동작 수행 시작.”

고든 소령이 고함을 질렀다. “모두 준비해라! 30초 후 강하한다!” “뭐요? 지금 전투기가 밖에서 공격을 하는데 강하를 한다니?” “텔리온에는 공격 기능이 없습니다! 공격 받으면 그대로 박살날 거라고요! 그냥 여기서 죽든가, 아니면 뛰어내리든가 마음대로 해-” 고든 소령이 브릴러 박사의 말을 자르고 소리 질렀을 때,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 전체가 뒤흔들렸다. 거센 바람이 한 순간 수송기 내부를 휩쓸었다. 조종석 부분이 공격을 받아 완전히 박살나 떨어져 나간 것이다. 수송기의 몸체가 순식간에 크게 기울어지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쭉 미끄러져 수송기에 뚫린 구멍으로 모두 떨어지고 있었다. 브릴러 박사 역시 미끄러졌지만, 안전벨트에 걸려 어정쩡하게 고정되어 버렸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젠..장.” 가까스로 안전벨트에 손을 뻗어 푸는 순간, 그는 허공으로 자유낙하했다.

뒤이어 텔리온이 완전히 폭발하며 비명 소리를 덮어 버렸다. 그의 몸이 구름을 뚫고 지면을 향해 미친 듯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낙하산 끈을 더듬거리는 순간 미사일 하나가 그를 스치듯 지나가 다른 텔리온에 부딪쳐 폭발했다. 순식간에 그 폭발풍으로 허공에서 홱 내동댕이치듯 밀려난 찰나, 용케 귀에서 떨어지지 않은 교신기에서 고든 소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릴러 박사님? 낙하산을 지금 펴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냥 전투기에 좋은 표적 하나 제공하는 꼴만 될 겁니다! 제가 펴라고 할 때까지 낙하산을 펴지 마십시오!”

알겠다는 말을 할 정신도 없이, 박사는 빙글빙글 돌며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 때 옆에서 홱 하는 소리와 함께 낙하산 하나가 펴졌다.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특무부대원 하나가 낙하산을 펴고 들고 있던 총을 필사적으로 전투기에 쏘아대고 있었다. 이제 괜찮은 건가? 막 낙하산 끈을 당기려는 찰나, 그 부대원의 총격을 받고 있던 전투기가 빠르게 급강하해 기관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낙하산과 대원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낙하산이 느슨해지고 수의처럼 대원의 몸을 감싸며 휘감았다. 그가 보는 앞에서 그 대원의 시체는 그대로 추락했다.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지키겠다고? 지금 꼼짝없이 전멸하게 생겼는데? 노래마인 관리자의 말을 들었어야 했어.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텐데. 그 빌어먹을 위버맨시 새끼가- 그런 생각에 팔려 있던 그는 고든 소령의 고함치는 소리를 거의 놓칠 뻔 했다. “낙하산 펴라고! 낙하산 펴라니까! 빌어먹을, 낙하산을 지금 안 피면 그냥 사망이라고!” 박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낙하산 끈을 당겼다. 낙하산이 홱 펴지며 그를 허공에 붙들어 주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위 멀리에서 전투기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폭발음이 아직도 간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열기가 확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아 버리고 싶었다. 죽음의 사자 같군. 우리 머리 위에서 펄럭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그것들을 보고 있을 때, 갑작스레 그는 수면에 충돌했다. 물보라가 거세게 튀었고 박사의 몸은 그대로 호수 밑으로 잠겼다. 브릴러 박사는 낙하산 가방을 벗어 버리고 허우적거리며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호수 곳곳에 시체들과 낙하산, 텔리온의 잔해가 엉켜 있었다. 기슭으로 올라오자 저 멀리에서 고든 소령이 다가오고 있었다. 낙하 중 접지른 건지, 그는 부하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넷. 그와 소령, 그리고 부대원 둘.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것은 그들 넷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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