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연락

브릴러 박사는 얼굴을 쓸며 자신의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정보국 요원들의 끔찍한 사보타주는 죽을 정도로 위험했었다. 그 역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텅 빈 사무실 안의 몇몇 책상에 흰 국화가 한 송이씩 놓여 있었다. 노래마인 관리자가 한 일이 얼마나 거대한 일인지 새삼 실감이 왔다. 노래마인 관리자는 평의회를 따르지 않겠다고 가니메데 규약을 터뜨렸고, 평의회는 대놓고 노래마인을 적대시하겠다고 사보타주를 했으니. 그 때 핸드폰이 윙윙거렸다.

“여보세요.” 텅 빈 사무실에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페테르 브릴러 연구원님?” 고든 소령이었다. “아, 고든 소령. 오늘 낮에는 고마웠습니다.”

“아닙니다. 저야 지휘관님이 불러서 간 거니까요. 평의회에서 이미 병력을 대부분 빼앗아가서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서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노래마인 지휘관이 X-17을 호출해서 정보국 요원들을 진압하게 하지 않았다면, 지역사령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을 거요. 이미 샐리 과장도 실종되었고, 보안부 요원들 절반이 죽거나 실종 상태고, 정보 설비가 통째로 마비되었으니…”

“정보국 요원들도 전부 제 부대원들에게 처리되었죠. 하지만 박사님도 만만치 않으셨습니다. 안전 등급 격리실에서 SCP-127-KO를 이용해서 쫓아오던 요원을 제압하셨잖아요?”

“그거야 뭐 약간의 재치일 뿐이지.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못하고 거의 긴장병 상태에서 안전 등급 금고실 안에 갇혀 있었으니 할 말은 없지.”

SCP-127-KO로 칼륨을 만들어서 요원에게 던지고, 그 요원이 반사적으로 손으로 그걸 콱 잡는 순간 불이 붙어 타오른다. 아무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생각인 것 같은데요?”

“니트로글리세린이나 염소도 아니고 기껏해야 칼륨이었으니 별 대단한 것도 아니지. 어쨌든 대충 해결된 것 같으니 다행이고, 무슨 일로 전화한 거요?”

“아, 그냥 인원 전체 점검입니다. 모든 인원에게 전화를 돌려서 생존 인원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브릴러 박사는 그 군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존 인원’이라 말하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는 대꾸했다. “그랬군. 그만 나는 끊어야겠는데.”

“네, 그러시죠. 저도 전화를 걸어봐야 할 사람이 백 명은 더 남았답니다.” 전화가 뚝 끊겼다. 전화기를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브릴러 박사는 피곤한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문득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대화를. 그는 컴퓨터를 켜고 인트라넷으로 들어갔다. 메신저 창을 띄워보니, 안타깝게도 접속자는 아무도 없었다.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갑작스레 누군가가 접속했다는 것을 알리는 문구가 떴다.

Ubermensch가 접속했습니다.
[23:45] Ubermensch: 처음 뵙는군요. 브릴러 박사님. 아마 저는 모르시겠지만.

Ubermensch? 나도 독일어쯤은 할 줄 안다고. 초인(Superman)이라니, 연구원이나 요원이 쓰기에는 약간 자아도취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23:46] 브릴러: 내가 알기로 메신저 접속 때 본명이나 코드네임을 사용하지 않으면 징계 대상인 걸로 아는데.
[23:46] 브릴러: 벌써 한 몇 명 그걸로 견책이나 메신저 사용 금지 처분 받았을 텐데, 배짱이 두둑하군.
[23:46] Ubermensch: 이 상황에서 그런 걸 신경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23:46] Ubermensch; 더군다나 절 잡아낼 사람은 또 누가 있고 말이죠.
[23:46] 브릴러: 나야 본명을 쓰니까 당신은 날 알겠지만 난 ‘초인’이라는 사람은 전혀 모르니 좀 알려주는 게 어떨지.
[23:46] Ubermensch: 초인. 니체가 쓴 말이죠. 그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23:46] 브릴러: 별 관심은 없지. 철학이야 내 전공은 아니니까.
[23:47] Ubermensch: 안타깝군요. 그나마 이 세상을 근원에서 고찰한 사람인데 말이죠. 공허로 돌아갈 이 세상이 가진 결함을 극복하려 했죠.
[23:47] Ubermensch: 물론 그 결함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초인이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지역사령부가 공격당한 직후에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계속 접속이 되어 있는 거지? 메신저 관리자는 어차피 컴퓨터가 담당하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본명을 사용하지 않은 걸로 강제 퇴장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23:49] 브릴러: 당신 누구지?

그렇게 쳐넣고 박사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한참 동안 메신저에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23:51] Ubermensch: 생각보다 빠르네요.
[23:51] Ubermensch: 알아맞춰 보시겠습니까?
[23:51] 브릴러: 혼돈의 반란? 뱀의 손?
[23:51] Ubermensch: 글쎄요, 하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중요한 건 이거죠. O5 평의회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23:51] 브릴러: 반란과 부서진 신을 공격하고 있겠지.
[23:51] Ubermensch: 반은 맞습니다. 하지만 땡, 반은 틀렸어요. 그리고 반만 맞은 건 정답으로 인정 안 합니다.
[23:51] 브릴러: 정보국이 무너졌으니 지역사령부는 지금 정보수집 기능을 잃었어. 당연히 몰라야 정상일텐데? 당신 누구야?
[23:52] Ubermensch: 에이, 재미없어라. 좀 재미있는 얘기를 합시다. O5 평의회는 오늘 반란의 동부 본부를 점령하고 거기서 평의회를 열었답니다. 그러고는 GRU P 부서를 공격하자고 결의했죠.
[23:52] 브릴러: 뭐? 도대체 왜?
[23:52] Ubermensch: 표면적으로는 반란과 공모했다는 거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죠. SCP-065-KO가 GRU P 부서에게 점령당했거든요.
[23:52] 브릴러: 들어본 적 없는 일인데.
[23:52] Ubermensch: 쯧쯧, 보안 등급 4등급 미만이면 모르는 게 많아야 정상이죠. 4등급 이상이어도 자기 부서 빼고는 모르는 게 태반인데.
[23:52] Ubermensch: 하지만 그냥 SCP 하나가 빼앗겼다고 전면전에 나설까요?
[23:53] Ubermensch: 두 번째 문제랍니다. 왜 SCP-065-KO가 그렇게 대단할까요?
[23:53] 브릴러: 이 문제를 내는 의도가 뭐지?
[23:53] 브릴러: 난 기동특무부대 소속도 아니고 그냥 연구원이야. 왜 이런 걸 알려주는 거지?
[23:53] Ubermensch: 우주가 끝날 때 아무도 못 구했잖아요?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거죠.

브릴러 박사의 얼굴이 한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속으로 욕이 나오는 걸 참으며, 그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보안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지나고, 지루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노래마인 지휘관의 명령으로 현재 보안부의 모든 업무는 기동특무부대 카이-17과 고든 소령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자동으로 재연결됩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신호음이 이어졌다. 모니터에는 계속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다.

[23:54] Ubermensch: 왜요?
[23:54] Ubermensch: 왜 기회를 걷어차려고 하죠?
[23:54] Ubermensch: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요. 돌이킬 수 없는 시나리오가 시작될 테고.
[23:54] Ubermensch: TF등급 세계멸망 시나리오. 물론 당신 보안 등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정보지만, 노래마인 지휘관한테 물어보면 대충 알 걸요. 그것 때문에 지금 평의회에 맞서고 난리법석 치는건데.
[23:55] Ubermensch: 이봐요, 핸드폰 내려놓고 나랑 대화나 합시다.
[23:55] Ubermensch: 어차피 연결도 안 될텐데.

소름이 쫙 끼쳤다. 이 자는 누구지?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기계음이 말한 것과는 달리 신호음만 이어질 뿐, 재연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브릴러 박사는 텅 빈 사무실을 다시 둘러보았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23:55] 브릴러: 당신 원하는 게 뭐지?
[23:55] Ubermensch: 뭘까요
[23:55] Ubermensch: 당신이 이 두 번째 기회를 잡는 거?
[23:55] Ubermensch: 당신이 이 시나리오를 멈추기를 시도하는 거?
[23:55] Ubermensch: 당신이 재단을 막는 거?
[23:56] 브릴러: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난 지금 당장이라도 메신저를 종료할 수 있어.
[23:56] Ubermensch: 그리고 며칠 후에 십만 단위가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겠죠. 그리고 당신에게 그걸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할 테고. 이 때가 다시 반복되는 거죠. 안 그래요?
[23:56] Ubermensch: 어떻게 할래요?

키보드 위에서 손이 잠시 멈칫했다. 머뭇거림 끝에 그는 두드렸다.

[23:57] 브릴러: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23:57] Ubermensch: 일단 이거부터 읽으시죠. 재단 서브 네트워크에 있는 문서랍니다.
[23:57] Ubermensch: O5들이 읽은 거랑 똑같은 건 아니지만, 담겨 있는 정보는 똑같으니 뭐.
[23:57] Ubermensch: http://sandbox.scp-wiki.kr/tf-065-ko

브릴러 박사는 링크를 클릭했다. 그 문서를 다 읽고,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맙소사.

[23:59] Ubermensch: 고든 소령이 도움이 될 거에요.
[23:59] Ubermensch: 잘 해봐요.
Ubermensch가 메신저를 종료하였습니다.

그의 핸드폰이 신호음을 울렸다. 자정이 다 된 것이다. 브릴러 박사는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에서 달려나왔다. 그는 고든 소령을 찾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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