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회의장의 분위기는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O5-2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보안부장, 시작하시오.”

맞은편에 서 있던 보안부장이 그 말에 바로 프로젝터를 켰다. 프로젝터가 내뿜는 빛에 인공위성 사진이 떴다. “어제, 우리 재단에서 급파한 공격기 두 대가 부서진 신의 교단 집회를 기습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AC-130의 모습이 나왔다. “공격목표가 위치한 곳이 나토 회원국이 아닌 스웨덴이었고, 비밀리에 작전을 실시해 GOC나 나토의 반격 없이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O5-2가 말을 끊었다. “그런데 GOC의 공격을 받고 그 두 대가 전부 박살났소. 작전이 완전히 실패했단 말이지!” 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설명 좀 해 보시게! 외무부!”

격리불가라는 이름을 쓰는 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예! 외무부에서는 현재 GOC나 UN 쪽에 어떤 경로로 정보가 누출되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GOC 측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정보 누출 경로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런 소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소리네.” O5-2가 팔을 내저었다.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정보국은 어떤가?”

카에스틴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죄송합니다만, 사건이 발생한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외무부와 마찬가지로, 정보국에서도 현재 정보가 누출된 경로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그 이상의 정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O5-2가 한숨을 푹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부서는? 보안부? 과학부? 어디 없나? 도대체 이렇게 무능한 부하들을 가지고 무슨 큰일을 처리할 수 있겠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원탁을 짚었다. “지금 이 상황의 심각성이 그리 다가오지 않는 모양인데, 내가 설명해 주겠네. 지금 비밀리에 실시된 공격작전이 완전히 역공을 받아 실패했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 정보가 고의로 누설된 것인지, 실수로 나간 것인지도 모르고, 어떤 계통을 통해 나간 건지도 모르고, 누가 했는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 안 드나?” 불호령에 회의장에 있던 이들이 움찔했다. 격리불가나 카에스틴의 이마에는 조금씩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 회의장 문이 열리고 요원 하나가 황급히 들어와 카에스틴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카에스틴이 그 종이를 쭉 훑었다. O5-2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있습니다. 지금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화색이 되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가 소리쳤다. “GOC측 내부 첩자에 따르면, 한국 지역사령부에서 귀순한 샐리 박사가 지역사령부 쪽과의 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곳을 공격할 것을 안 것은 아니고, 공격 예상 타겟 목록을 넘겨줬답니다.”

O5-2가 손가락으로 원탁을 두들겼다. “제군들, 노래마인 관리자가 이전에 O5 결정을 방해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놓고 재단 기밀을 넘겨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즉각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일이지.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잠시 임시로 평의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O5 임원 여러분.” O5-2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한국 지역사령부의 해체와 지도부 모든 인원의 해임, 그리고 지금 즉시 부대를 파견해 모든 주요 인원을 사살할 것을 일차적으로 발의합니다. 또 무슨 조치를 취할지는 차차 고민하기로 하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리위원회 의장이기도 한 O5-4가 입을 열었다. “굳이 토론이니 투표니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른 O5들도 연이어 박수에 동참했다. 박수소리가 방을 메우는 가운데, O5-2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격리불가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외무부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붙여놓은 애완견 사진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바쁘게 서류들을 한 아름씩 들고 지나다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쯔산 – ISD 실세 발신자를 확인하고 격리불가가 전화를 받았다.

“아, 쯔산 요원님. 아니, 요원이라 부르면 안 되지요. 차장 대리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사실상 차장이라고?”

“그냥 요원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래, 오늘 회의는 어땠습니까?”

격리불가는 주변을 경계하듯 눈을 굴리며 입으로 손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손이 깨끗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저도 윤리위원회 가면 징계 받을 짓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슬슬 듭니다.”

“왜? 오늘 회의에서 무슨 얘기라도 있었나 보죠?”

“아우, 지금 전 부서에 비상 걸렸어요. 역시 내부보안부는 이번 회의에 참석을 안 하니 이런 판국에도 좀 여유가 있나 보군요. 한국 지역사령부를 반역으로 통째로 날린답니다. 해체하고 주요 인원은 사살. SCP-KO는 전부 일련번호 재배치하고 이관.”

“우리 부서가 정보 업데이트에 좀 뒤처지기는 하죠, 하도 보안을 신경쓰니. 근데 그것까지야 뭐, 반역 행위라면 그 정도 조치는 가능한 것 아닙니까? 약간 성급해 보이기는 해도.”

“그건 그런데 말입니다.” 격리불가가 음성을 높였다. “아무리 그래도 윤리위원회는 꼬장꼬장한 양반들 모여서 원칙이니 인권이니 하면서 목소리 좀 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O5 평의회가 아무리 막강하다지만, 이런 조치를 보고받고 몇 분도 안 돼서 결정해요? 그런데 윤리위원회 의장이 나서서 투표도 아니고 박수로 처리해 버리고, 이상하지 않아요?”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하기야, 그 보고도 이상하기는 하군요. 지역사령부가 반역 행위를 해서 정보를 빼돌리면서 정작 그 인원들은 안 도망가다니. 옆에는 일본 지부, 위에는 러시아 지부가 있는데.”

“그러니 말입니다. 혹시 정보국의 그 카에스틴 차장이 질책 안 받으려고 꾸며낸 게 아닐까요? 그 GOC 내부에 그렇게 정보통이 많을 리가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부보안부는 그래도 정보국을 견제하지 않습니까?”

“흠, 확실히…” 쯔산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마 정보국이 진짜로 첩자를 심어놓기는 했을 겁니다. 카에스틴 차장이 스파이를 과할 정도로 심어놓고 있어서. 그 양반도 좀 구리기는 하죠. 이력도 이상하고 5년 넘게 보직 이동도 한 번 없으니.”

“나 원,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격리불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GOC로 도망갈 수도 없고, 지역사령부를 도울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재단에 남자니 이거 나중에 뉘른베르크 같은 데로 끌려갈 것 같단 말이죠.”

“사실… 지역사령부를 도울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 그가 화들짝 놀랐다가 주변을 돌아보고 허둥지둥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문이 잠긴 걸 확인하고, 격리불가가 핸드폰을 가져다 댔다. “지역사령부를 도울 수 있다뇨? 무슨 통신이 가능한 겁니까? 어떻게요? 안전한 겁니까?”

“워워,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역사령부와 통신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완벽하게 안전하죠. 공격을 미리 경고해 줄 수는 있는데, 문제는 도망칠 장소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아는 데 있습니까?”

격리불가가 잠시 이마를 싸맸다. “어… 네. 네. 한 군데 있어요. 103-Γ01기지라고, 중국에 있는데 거기라면 안전할 겁니다. 그쪽 관리자들하고 저하고 평소에 생각이 비슷했어요. 제가 연락을 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쯔산이 끼어들었다. “내가 간다고도 연락을 주세요. 아무래도 내가 직접 그쪽 인원들을 받아야겠어요.”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직급도 높으신 분이니 관리부에서 눈치를 챌지도 모르는데.”

“사람 빼돌리는 데는 내부보안부가 가장 안전합니다. 거기다가 지역사령부에서 의심을 안 하려면 내가 직접 나가는게 안전해요. 아시겠죠? 그렇게 연락을 취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죠. 이걸로 뉘른베르크에 가면 써먹을 변명이 생기는군요.” 격리불가가 그렇게 농담을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른 번호를 눌렀다. 103-Γ01기지의 관리자, 하사드의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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