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짠 자들이 있고 (3)

해가 뜨고 다시 질 때가 되어도 사람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간 사제들이 분류한 등급에 맞추어 높은 등급에게는 찍소리도 못하고 죽어살았던 사람들은 그 울분을 토해냈다. 마침 그 대상도 공안과 꺼림칙한 이교도들, 먹물 서생들이었으니 마다할 터도 없었다. 붙잡힌 사람들은 옷이 벗겨지고 명패가 씌워져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조리돌림당했고, 그 다음에는 처형당했다. 절벽에서 던져지는 자들도 있었다. 산 채로 파묻히는 자들도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매달려 버드나무마냥 휘어진 나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속에 큐빅도 있었다.

처음에는 큐빅은 사제들 무리 틈바귀에 섞여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은 최소한의 규율과 질서는 가지고 있었다. 네탈시포가 내린 명령에 따라 사제들과 군인 일부는 사르킥을 잡으러 이동했고, 격렬한 교전이 벌여졌다. 사르킥 잔당들이 곳곳에 숨기고 있던 기괴한 형체들이 덤벼들었고, 살덩어리로 된 벽과 덫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사제들은 불을 지르고 찔러댔고, 군인들은 총검으로 맞섰다. 큐빅도 나무를 조잡하게 깎아 만든 창을 하나 집어들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총알이 부족했고 사제의 수는 적었기에, 싸움은 길게 이어졌다. 사르킥 잔당들은 그들의 발을 묶어놓고 도망치고 있었다. 저 멀리 숲속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형체들이 보였다. 사제 하나가 안 되겠는지 크게 외쳤다. "사제들이여, 한데 모인 악의를 꿈꾸라!"

사제들 모두가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고 양 손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큐빅이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사제가 큐빅을 툭 치며 눈치를 주었다. 큐빅이 마지막으로 양 손을 들어올리자, 처음 입을 열었던 사제가 낮게 무어라 읖조렸다. 그 순간, 큐빅은 자신의 정신이 사제들 모두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앞이 하얗게 물들고 밝은 빛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환상이 몰려왔다. 범접할 수 없는, 저 드높은 곳에 네탈시포가 있었고, 그가 사제들 모두를 내려다보며 찬란한 빛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환상 속에서, 사제들 모두가 입을 모아 소리 없이 똑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큐빅 자신도 그 말을 무아지경에 빠져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빛이 사라졌다. 모든 사르킥 잔당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군인들이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제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큐빅은 심한 토악증을 느끼고 속에 든 것을 게워내며 허리를 숙였다. 다른 사제 하나가 다가와 등을 두들겨 주었다. "너도 이제 우리와 하나가 될 거다. 우리와, 네탈시포 사제님과."

큐빅은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들이 정신을 잃은 형체들을 짊어지고 처리하는 사이, 사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큐빅은 술에 취한 것처럼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 모두와 하나가 되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몇 시간이 지나서 그 느낌이 사라질 때, 큐빅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자신이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둥글게 그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중국어로 무어라 함성을 지르며 열광하고 있었고, 오토바이 뒤에는 피투성이의 사람 하나가 노끈으로 묶인 채였다. 땅에는 오토바이가 만든 타이어 자국이 원형으로 선명하게 나 있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큐빅은 핸들을 놓쳤다. 오토바이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사람들이 웃고 깔깔거리며 큐빅을 일으켜 주었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받쳐들어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큐빅은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북소리와 함께 네탈시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째주의 지도자와 사제 하나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고, 그들은 축 늘어진 즈소의 팔을 하나씩 붙잡아 끌고 오는 중이었다. 네탈시포와 그 수행원들이 급조된 연단 위로 올라섰다. 네탈시포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가 없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울렸다. "잘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본산에도 급히 명령을 내렸고, 그곳에서도 지금 반역자를 처단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관여한 재단 직원을 하나 잡았습니다. 공안들과 교수들, 학생들에게 재단에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받아내고 우리를 와해시키려던 자이니, 마땅히 죽여야 할 것입니다. 아닙니까?"

함성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연단으로 모여들었다. 다섯째 지도자와 사제가 팔을 놓자, 즈소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연단 위에 쓰러졌다. 큐빅은 그녀가 물과 피로 흠뻑 젖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문한 걸까? 네탈시포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세상을 잉크로 가득 채워 멸망시키려 한다고 조작한 자입니다. 내 온 세상을 잉크로 채울 힘은 없으나, 이자를 잉크로 가득 채울 힘은 있을지니." 사제 하나가 연단 위로 때묻은 어항 하나를 질질 끌고왔다. 어항에는 검은, 알 수 없는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다섯째 지도자가 즈소의 얼굴을 잡고 입에 깔때기를 물렸다. 연단 근처에 몰려든 사람들이 한 순간 갑작스레 고요해졌다. 그들의 얼굴은 곧 보게 될 광경에 흥분해 달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큐빅이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아주 잠깐 동안 찾아온 정적을 뚫고 그의 고함소리가 연단까지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홱 그에게 돌아왔다. 네탈시포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런 망할. 큐빅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서긴 했는데, 이제 나도 죽을 것 같네.


그 시각, 미국 워싱턴 D.C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카에스틴 브롬이 청문회에 출석하는 날이었다. 법무부와 연방 보안관은 법정에서처럼 테러 시도가 있을까봐 우려했고, 그래서 아예 새벽에 그를 이동시키고 청문회가 시작할 때까지 국회의사당 안에서 대기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카에스틴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보안관이 수갑을 풀어준 뒤 대기실 문을 닫고 나가자, 카에스틴은 손목을 문질렀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다시 문이 열리고 샐리가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샐리 차장…이었나? 맞지? AEA 소속. 한국 지역사령부. 그랬던 거 같은데."

샐리가 고개를 까딱하고, 문가에 등을 기대고 섰다. "당신한테 물어볼 게 몇 개 있어서 왔는데."

"흠. 청문회를 진행하고 싶은 거면 공무원보다는 하원의원을 하는게 낫지 않았겠어?"

"당신하고 장난칠 시간 없어. 첫째로, 정보국 차장이나 내부보안부 차장, 윤리위원회 위원 정도 되면 O5들의 신원이나 얼굴, 외양 정도는 최소한 알지 않나?"

카에스틴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재밌는 질문이군. 흥미로운 접근이야. 어제 TV로 하원의원들이 물어보는 걸 봤는데, 거기 나온 질문보다야 훨씬 낫네. 대답은 '예.'야. 본명이야 몰라도 외양 정도는 대충 알지."

"그럼 둘째, 킬리 국장은 왜 O5-3를 체포했다고 발표한 거지? 제니퍼 플레이크는 자신이 O5-13이라고 하는데?"

카에스틴이 박수를 쳤다. "브라보! 그 얘기를 믿는 사람도 있어? 자기 책임을 어떻게든 덜려는 추한 수작이지. 그냥 조용히 묵비권이나 행사하는 게 나을텐데 말이야. 하긴 나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고, 지금 기소된 사람들은 다 인맥을 총동원해서 방어할 자료를 확보하는 중이긴 하지. 자 그럼, 하원의원 흉내는 여기까지 하고-"

"자 셋째!" 샐리가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TF급 세계멸망 시나리오라고 혹시 알고 있나?"

카에스틴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가 자리에 앉고 샐리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다. 샐리는 무시했다. 카에스틴이 시선을 샐리에게 고정하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 알고 있지. AEA와 같은 기관들의 등장, 그리고 재단 직원들이 거기에 들어간다는 것도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내용이야. 그래서, 진심으로 킬리 국장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샐리가 고개를 까딱했다. "믿을 만한 정보원이 있지. 그래서 지금 O5-3를 찾는 중이고."

"그렇다는 건…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건가? 재단을 무너뜨린 영웅인 킬리 국장을 노리겠다고?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서 안도하는 세상에게 아직 전쟁은 안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겠어? 이제 간신히 걸음마 뗀 AEA가 무너질 지도 모르는데?"

"정치질은 지겨워. 필요하다면 뭐든 해야지. 내가 그 시나리오에 나오는 '탐구자' 자리를 꿰차기에는 늦은 것 같지만, 진실을 좀 알아야겠어."

카에스틴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변호사가 놓고 나간 서류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건냈다. "이번 사태 동안 평의회는 3, 2, 4 셋이 주도했지. 2나 3은 어디 있는지 나도 전혀 몰라. 전부 다 러시아에서 본 게 마지막이야. 4를 찾는 게 쉬울 거야. 계속 미국에 있었으니."

"아, 그 여자. 아는 자야. 재단에 와서 정보원을 자청했고… 이번에 모스크바를 공격할 때 제니퍼 플레이크가 O5-3라고 특정한 사람도 그 여자야."

카에스틴이 새로운 정보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환상적이군. 애초에 다 짜고 친 거였을 줄이야.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거로는 잭슨빌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4가 쓰는 가명하고 카드 몇 개가 있으니까, 잘 추적해 보라고. 거기 있는 장소 몇 군데에 잠복하고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네."

샐리가 카에스틴이 넘겨준 메모를 쓱 훑어보았다. "왜지? 그냥 요양원하고 카페 주소인데. 여기 간다는 건 어떻게 아는 건데?"

"아, 재단 간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지." 카에스틴이 씩 웃었다. "O5-4가 O5-1 딸이라고 말이야. 듣자하니 자기 아버지를 평의회에서 쫓아낸 뒤 기억소거하자고 앞장서서 주장했다지 아마?"


미합중국 하원
외교위원회
SCP 재단의 반인류적·비윤리적 활동 조사를 위한 청문회

증인: 카에스틴 브롬, 1962년생, 재단 광역 정보국 1차장

외교위원회 위원장: 기록을 보면 증인의 이름은 카에스틴 브롬, 1962년생, 재단 광역 정보국 1차장입니다. 맞습니까?
카에스틴 브롬: 그렇습니다.

외교위원회 위원장: 제19기지에서 확보된 이메일을 보면, 당신은 보고서를 하나 수신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경찰 무선을 상시 감청한 결과 이른바 SCP-2913이 확보된 것으로 나와 있고, '이러한 성과를 볼 때 경찰 무전을 더 광범위하게 감청할 예산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이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까?

카에스틴 브롬: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저는 수정헌법 5조 상의 제 권리에 근거하여 의원님의 질문에 답하기를 정중히 거부하는 바입니다.

외교위원회 위원장: 그렇다면 다른 이메일을 봅시다. 여기서는 부서진 신 —당신 법정에서 테러를 시도한 이교도들이죠— 교도들 여덟을 체포하고 넷을 사살했으며, 체포된 자들을 심문하여 유의미한 정보를 얻었다는 작전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본 적이 있습니까?

카에스틴 브롬: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저는 수정헌법 5조 상의 제 권리에 근거하여 의원님의 질문에 답하기를 정중히 거부하는 바입니다.

외교위원회 위원장: 어제 제니퍼 플레이크 O5 평의회 위원은 경찰과 FBI는 변칙적인 개체를 다루기에는 무능했고, 재단이 준군사 조직을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그 말에 대해 동의합니까?

카에스틴 브롬: 제가 보기엔- (뒤쪽에서 변호사가 어깨에 손을 올림)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저는 수정헌법 5조 상의 제 권리에 근거하여 의원님의 질문에 답하기를 정중히 거부하는 바입니다.

(이후 증인은 모든 질문에 대해 수정헌법 5조 상의 묵비권을 행사함. 청문회는 종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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