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풀러 제공: 놀라운 달팽씨
평가: +3+x


놀라운 달팽씨

달팽이야 사람이야?
줄기처럼 자라나는 눈을 보세요!

아무리 구경해도 신기한 생물!



춤출 줄 압니다!

노래도 합니다!

인생 역대급 쇼를 찾으세요!

이게 사람이야 달팽이야? 둘 다랍니다! 서커스 최상급 공연꾼 달팽이맨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여러분의 발이 음악에 맞춰서 놀 수 있게 해 드립니다. 달팽이 눈자루로 여러분의 이름, 게다가 생김새까지 만들어내는 모습도 감상하세요!

단 하루 공연

이번주 금요일 오후 9시, 앨러미다 카운티 장터
단 한 번의 기회! 놓치지 마세요!

이하는 『서커스의 탄생: 허먼 풀러의 기형쇼』라는 제목의 출판물의 페이지이다. 출판인도 작가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페이지 낱장들이 전세계의 도서관에 소장된 서커스 관련 책들의 사이에 끼워진 채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책 쪼가리를 퍼뜨리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람 또는 조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놀라운 달팽씨

나를 풀러 씨한테 팔고 싶어하지 않으셨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셨던 것 같다. 이 동네 주임한테 크게 대들었다고 잘린 이후라면 꼬리표가 남기 마련이다. 어디서든 아버지를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결코 노력이 없지 않으셨는데도. 매일 밤 아버지는 기진맥진하고 낙담하신 채로 돌아오셨다.

1912년 6월, 그 후덥지근한 날에 풀러 씨가 나를 데려갔을 때는 물론 나도 멀어버린 내 눈에서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나같은 어린애한테 서커스는 또 모험이 가득한 공간이었고, 그런 감정이 너무 오래가진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것들이 다 뭐인가 싶은 기분이었다. 몇 시간 훌쩍이고 나서는 내 생각은, 사자랑 춤추는 곰이랑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것뿐이었다. 거기다가 풀러 씨는 나한테 서커스가 우리 동네로 올 때는 어머니랑 아버지랑 언제든 찾아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나중에 풀러 씨한테 듣기로는 부모님은 몇 년이 지나면서 풍족하게 잘 살고 계신댔다. 정말인지 아닌지 나야 모른다. 서커스는 루이지애나의 우리 동네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고, 부모님은 다시 뵌 적 없다.

어쨌든 그렇게 서커스로 들어오고 나서, 나는 정말 감탄했다. 크다는 말의 뜻만큼이나 큰 곳이었다. 커다란 텐트에 갖가지 트레일러며 마차들, 되게 멋진 것도 수두룩했다. 풀러 씨는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며, 자기 서커스에서 일하려면 독특한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분을 소개하겠다면서. 진짜였다. 와,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온하다"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때 알 것만 같았다. 풀러 씨가 보여준 사람은 재봉사 샐리(Sally the Seamstress)였다. 으악.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자, 유리엘, 샐리가 네 두 눈을 멋지게 만들어줄 거란다. 가만히 있으렴." 샐리는 크고 말똥말똥한 인형 눈으로 그저 웃음만 지으며 나한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라벤더향이랑 늪 갈대 냄새만이 났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고 있다가, 풀러 씨한테 가볍게 툭 밀쳐져 샐리의 품에 안겼다. 샐리는 날 위로해 줬다. 내가 그저 겁먹은 소년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내 샐리는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게 제일 별일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피부가 당겨지면서 눈구멍을 덮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샐리가 곱표를 꿰매는 것도 느껴졌다. 그런데 아프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꿰맨 곳에 샐리가 입을 맞추자 갑자기 앞이 보였다! 7년만에 눈이 보이는 그 기분은 다시 태어났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내가 상상했던 대로 생기지 않았다. 사실 세상은 차치하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나한테 불온하다는 느낌을 가장 크게 줬던 건 그런 점이었지 싶다. 풀러 씨는 혹시 내가 기절했나 싶어 날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때렸다. 맞기는 했다. 그때 기절했으니까.

깨어나 보니 내 트레일러였다. 상상이 가려나? 달랑 일곱 살짜리 꼬마가 자기 트레일러가 있다니? 안쪽을 온통 밝은 노랑을 칠했다고 기억한다. 옛날에는 풀러 씨가 데리고 있던 광대 구스토 것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이었나 보다. 어떻게 됐다는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풀러 씨는 맨날 구스토를 보고 자기 서커스의 비전이랑 "알맞지 않은" 사람이라 그랬는데, 그 이상 더 자세하게 말이 없었다. 여러 번 그 이름을 다른 공연꾼들한테 꺼내 봤는데, 다들 쉬쉬하면서 침울한 기색이었다. 뭐 당신들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쨌거나, 풀러 씨는 매니를 소개해 줬다. 얼굴 거꾸로 된 남자였는데, 내 공연을 좀더 발전시킬 방법을 가르쳐줬다. 진작에 나는 춤도 잘 추고 해서 소녀들 깔깔거리게 해주고 수녀님들도 멋진 동작 보고 졸도하고 그랬는데, 그걸로 충분하지가 않았다. 풀러 공연에서는 진짜로 껌뻑 죽이는 게 필요했다. 매니는 내가 눈자루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고, 또 그걸 굽혀서 모양을 만드는 법도 일러 줬다. 처음엔 간단한 것부터. 원, 네모, 그리고 난이도 키워서 세모, 또 매니 말로 육각형이라 불렀던 모양. 나중에는 하트나 글자도 만들 수 있었고, 몇 년 연습하니 얼굴도 가능하게 됐다. 이런 게 바로 킬링 컨텐츠라 하겠지.

바로 쇼를 시작하지는 않고 서커스에 들어온 지 여섯 달이나 지나서야 시작했는데, 시작했을 때 잠시 동안 광고 맨 윗자리를 내가 차지했다. 나붙는 포스터마다 크고 굵게 내 이름이 들어갔다. "유리엘 피쉬본즈, 놀라운 달팽씨". 그러니까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모님이 보시기를 바라기도 했다.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쇼 한 번이 끝나면 트레일러로 가서 풀썩 쓰러졌다. 다른 공연 같으면 몸을 훨씬 더 많이들 썼다. 막 달리고 재주 넘고 그네 타고 다들 그러는데, 나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눈자루만 움직이는 게 끝이었다. 그랬는데도 끝날 때마다 엄청나게 피로했다. 그래도 박수갈채가 고팠다. 그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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