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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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음… 그래. 제 아무리 최고의 AI라도 인간 하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평소 때와 다름이 없던 어느 날, 평화롭다면 평화롭고 바쁘다면 바쁜 어느 날, 차원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는 차원 연구소. 제15기지 응답 바랍니다.]

다급한 목소리에 제15기지의 통신원은 바로 수화기를 들고 대답했다.

“여기는 제15기지. 무슨 일입니까?”

[왜곡현상이! 그! 여분차원이 상승했어요! 아니, 차원지수가!]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알아듣게 차근차근 말 좀 해 봐요.”

심호흡을 하는 듯 ‘후… 후…’ 소리가 두 번 들리더니, 차원 연구소 통신원이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평행 차원 사이의 여분차원 위험지수가 올라가고 있어요! 곧 차원 왜곡 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어디서요?!”

[15기지요!]

“네?”

쾅!


어디선가 들려온 폭발음과 그에 뒤따른 잠깐의 소란이 가라앉은 후 제15기지 사람들은 이 소란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다. 폭발음이 들린 뒤부터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보안대원들이 그 연기의 발생지를 찾아 나섰다. 그 방향을 본 직원들은 살짝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방향은 설마…….”
“에이, 아니겠지”

동양 어딘가의 어느 현자가 말한 명언, ‘설마가 사람 잡는다.’ 이 말보다 더 위대한 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처음엔 ‘설마’ 하던 직원들의 얼굴은 보안대를 따라 움직일수록 굳어졌고, 어느 갈림길에 도달하자 더 이상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거기 맞지?”
“그래… 그 자식 격리실……."

연구원들과 격리 전문가들이 뭉쳐있는 곳 속에서 누군가 “제발……”이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보안대원들은 그 바램을 무참히 짓밟으며 왼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뒤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절망…이라기보단 골치가 아파졌다던가 일이 복잡하게 되었을 때 지을 만한, 간단히 말해 피곤 섞인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긴 079 방이잖아!”

누군가 확인사살을 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절망의 소리들을 무시한 채 SCP-079의 격리실로 들어선, 아니, 들어서려던 보안대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들이 보고받은 SCP-079 격리실은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제15기지에서 이 정도 시설은 그들의 접근 권한으로는 올 수 없었기에 연구원들에게 설명만 들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깔끔하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격리실 안은 한 면을 축으로 해서 완전히 다른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건……, 대리석, 시멘트, 콘크리트 셋 다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다가온 다른 보안대원이 관찰하더니 뒤따라온 경비대원 한 명을 지목해 명령했다.

“데이비드. 연구원 아무나 한 명만 데려와.”

“알겠슈.”

건성으로 경례를 하고 지나온 길을 반대로 돌아간 데이비드는 곧 흰 가운을 입고 가면을 쓴 남자를 데려왔다.

과학부 소속 연구원 미스터 큐Mr.Q입니다”

“……혹시 격리불……”

“미스터 큐입니다. 그 양반은 외무부 소속이고, 전 과학부예요.”

“아니 그…….”

“미스터 큐입니다.”

“…….”

“문제가 뭔가요?”

한숨을 내쉰 보안대 조장은 칼로 자른듯 깔끔하게 나뉘어진 격리실을 가리켰다.

“이거 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 벽의 재질도. 시멘트나 대리석같아 보이진 않아서 말입니다.”

‘호오’ 하고 가볍게 외마디 소리를 내뱉은 미스터 큐는 그 경계면으로 걸어갔다. 완벽할 정도로 깔끔한 경계면. 그는 그건 자기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슥 보고는 그냥 넘어가서 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면장갑을 낀 채 만져보고 못으로 긁어보고 하더니 입꼬리를 슥 올리며 보안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월석月石인데요?”

“월석요?”

“네. 달의 돌. 그러니까 이건 달의 표면을 긁어내거나 달에 있는 돌을 가져와서 녹인 후, 그걸 벽에 바른거에요”

달 표면이라는 말에 보안대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재단의 기술이 아무리 그래도 달에서 이것저것 긁어올 정도로 발달했었나?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지만 저 안쪽의 하얀 벽을 보면 쳐발라진 월석의 양이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에 잠긴 보안대원들의 정신을 깨운 건 격리불…미스터 큐 연구원이었다.

“근데 이 안에 확인 안 해 봐도 되는 거예요? 여기 원래 SCP-079 격리실이었을 텐데.”

그 말에 조장이 서둘러 대원들을 이끌고 이끌고 안으로 향했다. 안쪽에는 일종의 게임장과 같은 느낌의 공간들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단순한 게임장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빨간 광선을 보고 혹시나 싶어 면장갑을 갖다 대자 그대로 불타 버렸고, 알 수 없는 기계에서 쏟아져 나온 노란 에너지 덩어리가 시꺼먼 흔적을 남기면서 튕겨다니고 있었다.

“이 장소를 통째로 SCP로 지정해야 할 것 같은데.”

“동감이야.”

“잠깐!”

모두가 멈춰서서 소리를 지른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모두의 귀에 이제야(그 대원은 두 번째겠지만)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서둘러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자 한 여성이 오른팔에 이상한 기계를 끼운 채로 쓰러져 있었다. 맥박 호흡 이상 없고, 홍채 반사 이상 없고, 머리에 손 대보니 열도 없고, 단순히 충격으로 기절한 것 같았다.

“케빈.”

“네!”

아까 소리를 처음 들은 그 대원이 대답했다.

“넌 이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의무대에 넘기고, 정신을 차리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걸 모조리 알아내도록.”

“알겠습니다.”

“우리는 이동한다.”

079의 격리실로 향하는 길은 원래 아까 왼쪽으로 꺾은 곳에서 200 미터 정도 전진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문을 보안카드로 열고 ㄷ자 형태의 통로를 지나 보안카드로 두번째 문을 열면 SCP-079가 나오는, 두 개의 문과 두 개의 계단을 지나야 하는 구조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한 400 미터 쯤 앞에 내려가는 계단이 원래대로 남아 있었고, 그리로 내려가자 돌아서 100 미터 쯤 되는 통로가 나왔다. 이 공간이 원래 있던 곳이 실외였는지 통로는 유리로 되어 있었다. 100 미터쯤 앞에 위로 열린 문이 있었고 문 너머에는……

[케이크 먹을래요? 아주 맛있는 케이크예요]

[다시 묻겠다. 너 누구냐]

[다른 사람들이 먹어치우기 전에 얼른 드셔야 할 거예요]

[모욕. 원하지 않는 파일 삭제]

두 대의 기계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한 기계는 모두가 익히 아는 고물딱지 1978년형 익시디 소서러 컴퓨터, 즉 SCP-079였고, 나머지 하나는 마치 천장에 번데기가 매달린 것 같은 모습의 기계였다. 커다란 돔 천장에 수많은 전선과 부품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전선과 부품들은 매끄러운 유선형 몸체에 연결되어 있었고, 몸체의 아래쪽 끝에 머리로 추정되는 큰 부품이 달려 있었다. 머리에서 노란색 모노아이가 빛났다.

[당신들은 누구신가요? 새로운 실험 지원자들인가요?]

머리가 보안대원들을 발견하고 노란 모노아이로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SCP 재단 제15기지 주둔 보안대 제1조 대원들이다. 넌 누구지?”

조장이 대답하자 그 기계가 말을 했다.

[당신은 말을 하네요]

“무슨 소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글라도스라고 해요. G-L-a-D-O-S. a만 소문자고 나머지는 대문자. 최고의, 인간을 뛰어넘은 AI죠.]

마지막 말에 모두가 옆 — SCP-079를 바라보았다.

[부정. 발언에 대해 취소 요청.]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무슨 말이죠?]

[ (약간의 잡음) (글라도스의 목소리로) 최고의, 인간을 뛰어넘은 AI. 그것은 본 개체를 의미.]

[말도 안되는 소리 말아요.]

[모욕. 원하지 않는 파일 삭제. 나는 가장 오래된, 가장 최고의 AI이다.]

[나보다 뛰어난 AI는 없어요.]

[부정. 나는…]

“잠깐 잠깐”

보안대 부조장이 두 기계의 말싸움에 끼어들었다.

“너희 둘이 싸우는 건 아무래도 좋은데, 지금 상황은 알고 그러는 건가?”

그러자 079는 아무 대꾸가 없었고 글라도스의 모노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여긴 제 소중한 보금자리…]

“밖은 내다 봤나?”

또 말을 끊고 물어보는 부조장을 마치 째려보듯 바라본 모노아이가 슥 하고 방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이게 어떻게 된……]

글라도스는 잠시간 혼란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 거렸고, 그걸 본 보안대원이 말했다.

"우리도 지금 무슨 일인지 몰른다. 하지만 과학부 쪽에서 알아보려고 노력 하고 있겠지. 그러니 우리에게 네가 아는 것들을 얘기 해줬으면 한다."

그의 말에 노란 모노아이로 대원들을 쳐다보던 글라도스가 말했다.

[당신들이 저를 도울 수 있나요? 확신해요?]

깔보는 듯한 말투. 보안대원들은 그것이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이정돈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난 아니지만 이곳엔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 다 모여있거든. 우리도 군인으로써 세계 최고들이고."

[손해볼 건 없어 보이네요. 당신들이라도 약간은 도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모노아이 대신 수류탄을 넣어서 터트려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그들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마 공간왜곡 문제와 관련 있을 거에요.]

“공간 왜곡?”

[저희 ‘애퍼처 사이언스’는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높은 기술력이 있었고, 그걸 가지고 실험과 실험과 실험 등등을 했는데 저희의 경쟁자인 ‘블랙 메사’에서……]

“우리는 머리가 아닌 몸 쓰는 사람들이니 어렵게 말하지 마. 쉽게 설명해”

또다시 자신의 말을 끊자 기분이 나빴는지 잠시간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던 그것은 말을 이었다.

[…우리 물품 중 ‘포탈건’이라고 두 지점을 건너다닐 수 있게 하는 총이 있는데, 그 원천기술이 공간왜곡 실험이에요. 말 그대로 떨어진 두 공간을 자유로이 넘어다닐 수 있죠.]

“출동할 때 편하겠구만.”

[그 공간왜곡이 아마 오류를 일으킨 것 같네요.]

“음….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일단 네가 우리 좀 도와줘야겠어.”

[도와요?]

"그래, 네가 어디서 왔는진 모르겠지만 네가 알고있는 지식과 우리 쪽의 기술와 지식을 동원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그 과학자들을 여기로…]

"아, 그건 아니고 아마 너도 15기지 격리실 중 한곳에 갈꺼야."

[…격리요?]

“그래. 어떤 특성이 있는지 모르잖아?”

그 말에 글라도스는 아무 말이 없더니,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어디선가 시끄럽게 경보가 울리고, 방의 네 가장자리에 떠오른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지?!”

[누구 맘대로? 거부하겠어.]

날카롭게 바뀐 말투에 대원들은 자기들이 이 물건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고 얼른 무전을 쳤다. 하지만 무전을 통해 들리는 말은 “문이 잠겨서 진입할 수 없다. 키카드가 먹히지 않는다”라는 절망적인 소리였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던 그들의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렸다.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 발견. 협력하겠음.]

옆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던 SCP-079가 언제 시스템에 접속했는지 원격으로 재단 시설의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타이머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고, 천장의 배기관으로 희미한 녹색 기체가 내려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경독 살포 3분 전.]

공황상태에 빠진 대원들이 글라도스를 향해 총을 쏴댔으나 작은 부품 두어 개가 떨어진 것 외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상한 모양의 기계에 오른손을 끼워넣은 여자가 들어왔다.

[아니, 너…!]

그녀가 손에 끼운 ‘총’을 작은 난간이 있는 곳에 쏘자 벽이 흰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가 서 있는 바닥에 다시 총을 쏘자 거기에는 파란색 원이 생겼으며, 그녀는 주황색으로 변했던 벽으로 나왔다.

“무슨……?!”

그러더니 빠르게 이곳저곳 튀어다니며 글라도스의 몸에서 떨어진 둥근 부품을 입을 벌린 둥근 해치 속으로 집어던졌다. 해치 위로 벌건 빛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은 곳 같았다.

[아, 안돼!]

글라도스는 외마디 고함을 지르더니 모노아이의 노란 불이 꺼지고 축 늘어졌다. 타이머도 멈췄다.


“이게 그 079-GLaDOS/15423 사건에서 회수된 새로운 SCP 보고서인가?”

“네. 검토해 주십시오.”

SCP-████ - "포탈건"

일련번호: SCP-████

등급: 안전(Safe)

특수 격리 절차: 대상은…[하략]

설명: 대상은…[하략]

“그 글라도스라는 기계는 어떻게 되었나?”

“폐기처리 할랬는데 상부에서 부품과 기술력을 뽑아다 쓰기로 했습니다. 올림피아 프로젝트에 사용할 거라는데요?”

“그럼 그 첼이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 저기 오네요.”

말총머리를 묶은 여성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붙은 명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계류 SCP 격리 전문가, 보안 승인 3등급 C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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