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란 피할 수 없었던 이별을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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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아.

넌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이야.
내가 존경하고, 흠모하고, 또 사랑했던 남자가 입던 옷이야.
그분께 내가 받은 하나 뿐인 옷이야.
내가 가진 다른 어떤 옷도 너와 비교할 순 없어.
나의 제일 가는 보물이 바로 너란다.
누구든 너에게 손을 대거나 널 가지려 한다면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넌 그분의 것이고, 또 나의 것이야.
누구도 우릴 떼어놓을 수 없어.

널 처음 만난 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이 널 입고 계셨거든.
그 뿐인 줄 아니?
우리 사랑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마다 그분은 너를 입은 채 나를 어루만지셨단다.
가장 슬펐던 순간에도 너와 함께 있었지.
내 옷아, 지금도 네 품에 얼굴을 묻을 때면 마치 그분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구나.
그 느낌에 행복해지는 나를 너는 바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을 너라면 이해해 주겠지?
내게 너는 그분이고, 그분이 남긴 기억이고, 그분을 향한 내 마음의 증표인 걸.

너를 받았던 날도 생각이 난다.
그날따라 어두웠던 그분의 표정을 너는 몰랐겠지만, 난 잊을 수가 없구나.
또 그날따라 그분이 걸치신 너는 정말로 아름다웠단다.
너의 어깨죽지부터 소매까지 아름답게 뻗어갔던 수려한 곡선,
너의 목덜미에 흘렀던 그분의 눈물 방울,
팽팽히 당겨진 가죽의 매끈한 감촉,
어느샌가 그분보다도 그분이 입은 네게 시선을 빼앗길 만큼 그날의 너는 빛이 났단다.
그분께 너를 받았다는 사실은 평생 나의 자부심이 될 거야.

오늘도 아침에 깨어나면 옷장을 열어 너를 봐.
저녁에 잠이 들 때도 너를 확인해야 안심이 돼.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다시 너를 보며 네 축복에 고마워하고,
속상한 날에도 너를 끌어안으면 네 향기에 위로를 얻어.
네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황홀함이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든단다.
언제나 하루하루를 살아갈 기력을 주는 너에게 어떤 말로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네게 바치는 이 서투른 소야곡을 부디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내 사랑하는 옷아.
내게 과분했던, 떠나간 사랑의 흔적아.
지금에야 말하는 거지만 난 그분을 감당하는 게 힘들었단다.
나같은 사람과 어울리기에 그분은 너무 고결했지.
말로 꺼내시진 않았지만 언젠가 부족한 나를 떠나갔을 거야.
그분을 품어낼 수도, 그분을 보낼 수도 없었던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해답은 너 뿐이었어.
너라면 나와 평생 함께 해 줄 테니까.
그분께 드리던 내 사랑을 이제 온전히 네게 바칠게.

내 소중한 옷아, 널 사랑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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