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콜드 그린
평가: +9+x

2022년 7월 19일
방랑자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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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고폭탄과 종이 파편, 기관총의 탄환을 피해, 세검과 로레인은 빠르게 다른 서가의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저거 어케 해야지?"

"몰라. 일단 새빠지게 토끼고 다녀야지!" 소총을 든 로레인이 대답했다.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 옆의 서가가 다시 한 번 박살나며 파편을 흩뿌렸다.

"조종수 헤스, 한 7m 정도만 전진해. 카르, 지금 1시 방향에 있다. 그쪽으로 포 돌려." 슈판다우가 전차의 해치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 승무원들을 향해 외쳤다.

"저거 지금 이쪽으로 쫓아 오잖아. 다른 방법 없어?"

"방금 그 데스크로 가야 해."

"그게 해결책이야?"

"방랑자의 도서관은 엄청 크거든. 사서들도 그만큼 많고. 사서들 수백이 동시에 몰려들면 아무리 전차라도 한계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데스크로 가서 사서들을 불러야 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저 전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거기로 갈 때까지 우리가 살 수 있을까?"

다만, 한계가 있는 것은 세검과 로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세검이 숨은 서가를 아예 관통하고는 그 뒤쪽의 서가까지 작살을 내 버렸다.

"둘로 갈라지자." 잠시 뜸을 들인 후, 로레인이 .38구경 탄이 물린 스피드 로더 3개와 녹색 카드를 세검에게 건내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전차를 붙들고 있을게. 너는 데스크로 가서 기록보존사에게 이 대출증을 보여줘. 무슨 일인지, 뭐가 필요한지 단번에 알아차릴 거야. 길 기억하지?"

"응? 어…" 세검이 답했다.

"그래, 빨리 가."

"하지만—"

"이래봬도 타입 블루 기적사라 했잖아.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봐."

잠시 머뭇거리던 세검이 이내 자신을 등지고 뛰어가기 시작하자, 로레인은 전차의 해치를 향해서 소총을 몇 발 쏜 뒤 외쳤다.

"비겁한 버러지 같은 새꺄! 오늘 내가 니 포탄에 작살이 날지, 니 머리가 내 총에 작살이 날지 한 번 해 보자!"

슈판다우는 총성과 도탄음, 그리고 로레인이 날린 육두문자를 묵묵히 들으며 조용히 대꾸했다.

"비겁하다니, 전략이지. 헤스, 차체 우측으로 90° 선회해. 카르는 포탑 차체 기준 11시 방향으로 돌리고 지시하면 발포해."

전차가 세검이 아닌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본 로레인은 입 안의 마른 침을 삼키고는 긴장된 몸을 서가 뒤로 이끌었다. 그리고, 전차의 반대편으로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헤스, 기어 2단으로 넣고 천천히 추격해. 지금 우리 반대편으로 뛰어가고 있다. 카르, 포탑 11시 위치에서 반 시간 정도만 더 오른쪽으로 돌려."

슈판다우의 지시가 떨어지자, 전차가 엔진 소리와 함께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포탑이 불길한 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고폭탄, 150m 정도. 발포!"

포성으로 도서관의 바닥이 흔들림과 동시에, 105mm 고폭탄이 로레인 바로 앞쪽의 서가를 향했다.

"으각!" 서가가 부서짐과 동시에, 로레인은 충격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떨어진 안경이 무너진 서가에 깔려 망가졌다.

"하탄, 빨리 장전하고 다시 발포해."

도서관에 다시 한 번 울려 퍼진 굉음과 함께, 고폭탄이 로레인 위쪽의 서가에 직격했다. 안경을 잃어버려서인지, 아니면 포탄의 충격 때문인지, 어지럼증을 느낀 로레인은 잠시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마에서 손을 떼자, 로레인은 자신의 손에 피가 묻어 나온 것을 발견했다. 로레인이 다시 한 번 손을 갖다 대자, 화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더 많은 피가 묻어 나왔다.

"…그래, 타입 블루 기적사도 이건 힘들지." 로레인은 소매로 상처에서 솟아 나오는 피를 대충 눌러 닦아낸 뒤, 다시 일어서 온 힘을 쥐어짜 뛰었다.

"이번엔 상탄." 슈판다우가 전차 승무원들을 향해 말했다. "근접해서 처리한다. 카르, 일단은 포탑 정위치로 돌려놓은 뒤 명령 없어도 목표 보이면 쏴. 헤스, 좌측으로 20° 정도 선회해. 기어 6단으로 맞춰서 속도 올리고."

전차가 서가를 밀치고 무너뜨리며 다가오기 시작하자, 세검은 더욱 더 방랑자의 도서관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젠장할, 더 깊이 들어가잖아. 칼, 플라스틱 고폭탄 장전해. 카르, 포탑 9시 방향으로 돌려 쏴."

아까와 같은 굉음이 울려퍼지고, 무너진 서가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 로레인은 질주를 멈추었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책장을 짓밟고 나타난 전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망할!" 짧게 한 마디 내뱉은 후, 로레인은 옆쪽의 책장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인다. 카르, 공축기관총 사격해."

이내, 서가 위에서 반대편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로레인은 뜨거운 것이 순간적으로 왼쪽 정강이를 후벼파는 느낌을 받았다. 로레인은 넘어진 채 바닥을 기어 자신이 뛰어내린 책장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카르, 10시 방향, 고폭탄 사격."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숨어 있던 책장이 박살나자, 거친 숨을 몰아쉬던 로레인은 기어서 그 옆의 책장으로 움직였다. 반면에, 전차는 지침이나 부상 같은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서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되면 안 돼. 세검, 빨리, 제발…"

"헤스, 정지. 칼, 다시 플라스틱 고폭탄 장전해. 카르, 차체 기준 1시 방향 서가야. 책장과 함께 날려버려. 이젠 끝이다."

궤도 소리가 멈추고 포탑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로레인은 최후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판다우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그러한 생각은 곧 멈추었다.

"차체 180° 선회! 카르, 포탑 우측으로! 보이면 쏴!"

로레인은 전차의 포가 향하는 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셀 수 없이 많은 도서관의 해설사들이 열과 행을 갖추어 다가오고 있었다. 맨 앞의 해설사 무리들이 포탄과 기관총에 맞아 하나씩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가루로 변해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했구나."

한 마디를 남긴 채, 로레인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머리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렀다. 계속,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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