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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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먼 옛날,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던 어느 날, 가죽옷을 걸친 한 동굴 인간이 캄캄한 숲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먹을 것을 찾아 어두운 숲을 한참동안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그가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은 이제 없었지만, 굶어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잡아먹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조그만 들쥐 하나라도 잡아보려 이 거친 숲까지 들어왔지만 여태까지 벌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망했다. 길까지 잃었어.' 사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동굴로 돌아가 푹 쉬고 싶었던 동굴 인간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나무가 울창해 길을 헤매기가 쉬운 숲인데다가 구름이 껴서 날까지 어두우니 그야말로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사냥에 열중하느라 신경 쓰지 않고 잘만 돌아다녔지만, 막상 주변을 의식하고 나니 그는 발 한 짝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지금쯤 해가 졌을 것이다. 여태껏 이 숲에서 짐승은커녕 벌레 한 마리 못 봤지만 그건 해가 떠있었을 때의 이야기. 해가 진 지금은 밤에만 돌아다니는 위험한 짐승들이 숲을 돌아다닐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그의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그래 일단 움직이자. 언젠가는 숲의 끝이 나오겠지.' 동굴 인간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여기서 멍하니 있다가 사나운 짐승에게 산체로 잡아먹히거나 얼어 죽는 것 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았다. 천천히, 차분하게, 그는 한 발짝씩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신중하게 한 발짝씩 움직였지만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가끔씩 돌부리나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손을 더듬어가며 살금살금 걸어가던 동굴 인간은 저 멀리서 밝은 빛이 번쩍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콰쾅! 하는 거대한 소리도 들었다. '저게 도대체 뭘까?' 큰 소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그는 생각했다. 번쩍이는 빛과 그거에 뒤따라오는 거대한 소리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걸 만든 게 무엇인지는 본 적이 없었다. 아직 가족이 있었을 때, 그의 할머니께서 빛을 내는 벌레나 버섯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낸 빛이라기엔 너무 밝았었다. 그리고 벌레와 버섯은 빛에 뒤따라오는 소리처럼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번쩍이는 빛을 낸 것이랑 소리를 낸 것이 서로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빛과 소리는 언제나 함께 나타났다. '어쩌면 짐승일지도 몰라! 빛을 번쩍이고 큰 소리를 내뿜는 짐승. 소리가 아주 크니까 덩치도 아주 크겠지? 빛을 내는 짐승은 본 적이 없긴 하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동굴 인간이 생각했다.

다시 번쩍, 그리고 콰쾅! 이번에는 더 거대한 소리였다. 얼마나 거대했는지 동굴 인간은 귀가 먹먹했다. 저게 짐승인지 벌레인지 아님 전혀 다른 무언가 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까보다 가까워졌음은 확실했다. 그는 순간 겁에 질렸다. '설마 나한테 다가오는 건가? 제발 그냥 지나가는 거였으면 좋을 텐데. 뭐가 되었든 빨리 여기서 벋어나야 갰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굴 인간의 발바닥은 땅바닥에 들러붙어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 이 멍청한 발아! 얼른 달아나야 한다고!' 그가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그의 몸뚱이는 공포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다. 다시 번쩍, 그리고 콰쾅!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콰쾅! 이번에는 빛과 소리가 동시에 나타났다. 그리고 너무나 밝고 너무나 시끄러워, 동굴 인간은 순간 눈과 귀가 머는 줄 알았다. 다시 앞이 보기고 소리가 들려와 안심한 그의 앞에는 거대하고 붉은 짐승이 있었다. 짐승은 나무 위에 있었고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정말 거대한 짐승이었잖아!' 잠깐이었지만 동굴 인간은 자기가 한 추측이 옮았다고 생각해 우쭐해졌다. 그가 우쭐해져있던 사이, 붉은 짐승이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러고 나서는 울창한 숲의 나무들과 풀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풀과 나무들을 먹어치울수록 짐승은 더욱 커지고, 더욱 밝아지고, 더욱 뜨거워졌다. 그 빛과 열기에 정신을 차린 동굴 인간은 그곳에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이미 붉은 짐승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일렁거리는 짐승의 몸뚱이가 마치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 속 악령들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붉은 짐승은 동굴 인간의 주변 전체들 뒤덮어버렸다. 짐승은 더욱 거대해졌고 이제는 기괴한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동굴 인간은 움직일 수 없었다. 온 몸이 녹아내릴 듯이 뜨거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두려움이 그의 온 몸을 돌처럼 굳게 만들어서기도 했다. 그는 가랑이에서 지린내 나는 액체를 쏟았지만 금방 말라붙어 더러운 얼룩만을 남겼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보이는 데로 보고, 들리는 데로 듣고, 느끼는 데로 느낄 뿐이었다. '뜨겁고, 밝고, 거대하고, 붉은…'

마침내 붉은 짐승이 동굴 인간을 집어삼켰다. 짐승이 그의 팔을 핥자 끔직한 고통이 그의 팔로 파고들었다. 고통이 두려움마저 넘어서자 마침내 다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팔을 휘둘러봤자 그곳은 붉은 짐승의 입 안이었고, 다리를 들어봤자 그곳은 붉은 짐승의 위장 안이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 안이 바짝 말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붉은 짐승의 이빨이 동굴 인간의 온 몸에 박혔고 그의 몸뚱이가 검게 변하며 오그라들어갔다. 그의 눈에는 이제 붉은 짐승만이 보였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붉은 짐승 같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그 무언가는 마침내 고통마저 넘어섰고 동굴 인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동맥에서 샘솟는 시뻘건 피보다도 붉고… 해질녘의 장대한 노을보다도 거대한… 위대하신 존재여…' 그의 뇌가 부글거리다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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