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의 도서관만으론 부족하다

방랑자의 도서관의 셋째 남권사가 쓴 사설

우리 조직에서 교육담당을 맡고 있는 몸으로서, 그리고 또한 방랑자의 도서관을 집으로 삼고 있는 몸으로서, 부사수들에게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질문은 단연 이것이다. 왜 굳이 이런 기사를 써야 합니까? 어차피 모든 지식이 방랑자의 도서관에 다 있는데, 뭘 또 보존을 한다는 거죠?

어쩌다 이런 의문을 품게 되는지 그 이유는 뻔히 알 수 있다. 이 다중우주에 잠재적으로 실존하는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다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쓸 마음은 꺾이기 마련이다. 다음 주 기삿거리도 도서관에서 대충 슬쩍하면 되는데 뭣하러 수고를 해야 할까?

하지만, 필자는 도서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 도서관으로의 여행이 언론을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이유 1: 무한한 도서관은 무한한 잡정보를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면 화낼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방랑자의 도서관에서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내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긴급한 질문에 대한 답이 라디오 방송 녹취록 더미와 아무개의 철자오류 사이에 끼어 묻혀 숨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길"에 능하여 필요한 지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가는 데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당사의 가판대를 이용하는 것과 비교해 보자. 편집주간들이 가장 중요한 기사 또는 가장 잘 쓴 기사라고 판단해 선별한 정기간행물을 비롯해서, 세심하게 정제되고 엄선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자기가 사는 국소적인 지역만 다루는 간행물도 있어서 집중된 현지 정보를 쉽게 모두 얻어볼 수 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봐라. 세계의 모든 지식의 원천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히 엄청나게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완벽한 컵케이크 조리법이 실린 요리책을 찾겠다고 수천 년 동안 책더미를 뒤지는 시간과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지점에서 언론인들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또한 필자의 논리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또는 이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무수한 항의편지의 질타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주지하는 바, 애초에 도서관을 무한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며, 아무리 부분적으로 전능성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다.


이유 2: 때론 산이 마호메트에게 와야 한다

방랑자의 도서관이 여러 커다란 "길"로 통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중우주를 꿰뚫는 지식유통망이 완벽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그 주변에 다른 무엇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고 착각한다.

필자로선 그런 사람들은 차원간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방랑자의 도서관으로 직통할 수 없는 차원들이 무수하게 많다. 어떤 무시무시한 신이 그 차원을 감옥 또는 손댈 수 없는 성지 같은 용도로 격리시켰거나, 차원 현지문화의 조직들이 차원간 여행을 능동적으로 규제하는 활동을 하거나, 그런 이유들로 말이다. 지구 출신의 아무나 잡고 방랑자의 도서관이라고 들어 봤냐고 물어 봐라. 거의 무조건 모른다고 할 거다.

이런 고립된 지역들에 도서관의 지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언론인과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다. 차원들 사이의 경로들을 계속 탐색하고 개척하는 제도사들cartographers, 그 경로들을 따라 격오지까지 기사를 배달해주는 응사들hawkers이 없다면, 무수한 지적존재들이 자기 차원 밖에 진실이 존재한다는 관념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이유 3: 거짓말쟁이, 협잡꾼, 사기꾼들의 존재

불행하게도, 드넓은 다중우주에 완전 돌팔이들의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방랑자의 도서관에 모든 책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진실된 기록과 관찰만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감추고자 하는 가장 괴이한 허구들도 소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창의적 글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구연하는 것은 오후의 소일거리, 또는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런 허구의 작품들 중 다수는 거짓이나 잘못된 표현으로 대중을 조종하려는 의도로 설계된 것이다.

장담하건대, 필자는 평생동안 사악한 목적을 위해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기망하는 데 전념하는 수많은 “언론조직”들을 보아왔다.

이런 가짜 정보들을 소장하고 있는 방랑자의 도서관 자체는 솔직히 괜찮다. 그 이야기들의 뒤에 숨겨진 진실을 긁어모으고, 기망의 방법들을 분석할 줄 안다면 그런 이야기들도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충 서가에서 책을 집어들고 그 내용을 문자 그대로 참이라 받아들이는 도서관 방문객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처럼 정직을 추구하는 언론사라면 이런 세태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심원한 연구결과를 다중우주와 공유하지 않는다면, 많은 도서관 이용객들은 자기들이 기망당했음조차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유 4: 도서관은 무적이 아니다

착각해선 안 된다. 방랑자의 도서관은 최대한 저절로 보호되며 재건되고 있지만, 근년 들어 적대적 세력들의 공격이 점점 더 많이 목격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는 세계오컬트연합이라는 단체가 결국 직원들에게 격퇴되기는 했지만 도서관의 한 구획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 무참한 만행으로 우리가 영영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는 많은 책들이 소실되었다.

이와 같은 공격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도서관에 반(反)하여 책동하는 사악한 세력들이 경험으로부터 교묘함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번은 필자가 방랑자의 도서관의 한 서가에서 책 한 권을 찾았는데, 누가 읽지 않고 내버려두면 그 구획에 있는 목매달린 왕에 관한 다른 모든 책을 집어삼키게 되어 있는 책이었다. 필자가 간신히 그것을 억눌러 해주했는데, 얼마나 많은 세력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도서관을 조종할 수 있을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필자는 도서관에 들어설 때 여러분이 경험할 믿지 못할 경이의 감각을 빼앗고자 함이 아니요, 필자 자신의 오랜 집을 헐뜯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다만 무한한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 언론 분야에서도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모두 도서관에서 가만히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탐구해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아는 것 역시 신나는 일 아닐까!

원본 발행: 『권사단 공보』 5-4-20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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