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를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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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 테일러는 아직도 불안한 듯, 흐릿해지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아까 막 기본 교육이 끝난 참이었다. 그는 이제 SCP 재단의 직원이 아니라, 혼돈의 반란의 정식적인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괜찮네, 그렇게 있지만 말고."

아마 그의 상관이 될 남자는 몸을 잘게 떨고 있는 그를 보고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테일러에겐 혼돈의 반란에 온 것을 환영한다- 라는 식의, 으레 형식적으로 하곤 하는 인사말이 건네졌으며, 불쌍한 개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나름의 감사를 표현하는 의미로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두려웠지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재단에서의 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졌으며, 변변한 대우도 받지 못했다. 그딴 능력 따위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지. 자신의 상사가 한 말을 그는 몇백 번이나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짓씹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자신의 동료들이 승진할 때 그는 제자리였고,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변하는 법은 없었다.

테일러는 따지고 본다면은 재단에서 꽤 오래 일했으나, 그 예의 사소한 기계장치의 부품 취급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발버둥을 쳐 봤자 재단은 차갑기만 했고, 그는 냉랭한 현실의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비유한다면, 그래. 마치 말 잘 듣는 개 같아서. 제 딴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참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이내 주체할 수 없이 파르르 떨리는 손을 우악스럽게 쥐었고, 얼마 전에도 동료들에게 형편없는 겁쟁이 취급을 받았다는 것까지 낱낱이 기억해냈다.

에든 테일러란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저 자신은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 어느 날 격리 실패라던가, 그런 사태에 휘말려 죽거나 정년이 채워져 지극히 평범하게 재단을 은퇴하는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몰랐고, 그는 부당하게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게 그가 지금까지 일해 오면서 든, 방대한 생각의 요약이었다.

결국, 그 헛짓거리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았다. 종국에 그는 자신이 반평생 몸담고 있던 단체를 가차 없이 멍청이 취급했고, 마음껏, 지칠 정도로 비웃어줬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간단히 말해 가벼운 기밀-실은, 그게 그의 최대 한계였다-을 몇 가지 빼돌려서 실컷 재단을 농락하고는 보란 듯이 혼돈의 반란으로 전향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 굉장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견고한 보안 능력을 가진 재단의 비밀을 얻어내다니, 그는 자신을 스스로 꽤 괜찮은 실력이라고 생각하고는 뿌듯해졌다. 드디어 여기서 나란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겠지, 가슴 한구석은 기대로 부풀었고 두근거렸다. 자신을 속박하는 빌어먹게도 딱딱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마음껏 미친 짓을 할 수 있다. 혼돈의 반란이란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무서웠으나, 테일러의 들뜬 마음조차 막지는 못했다.

이제야 자신은 정말로 쓸모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사무실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아까 제게 교육을 받으러 들어온 신입을 생각해 보았다. 에든 테일러라고 했던가. 짧게 이름이 떠올랐을 뿐이고, 그다음은 더는 그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얻어낸 기밀이라고 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아마도, 그의 낌새를 일찍이 눈치챈 재단의 노련한 술수였을 것이다. 보기 좋게 유린당한 거겠지. 이번에도 허탕이구나. 그는 짜증이 난 듯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남자는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은 주제에 저에게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끝에는 그만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쳐 버린 겁 많은 그를 좋게 대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걸 대체 어디다 써야 할까, 그는 잠깐 고민했다. 뭐,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 교전에서 유인할 미끼로 쓴다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변칙 개체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갈려 나갈 수도 있겠고. …남자는 그 무엇이든 좋았다. 애초에 그에게 희생자의 인격이란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테일러는 나름의 쓸데는 있는 셈이었다. 그것마저 하지 못할 정도의 쓰레기는 다행히도 아니었으니. 아아, 그렇군.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어디 그 방법이란 걸 천천히 생각해 볼까. …어차피 나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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