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1. 개요

SCP-990: 봉인이 깨졌네. 물론 남아있는 게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 시점에서 이건 큰 타격일세. 내가 이걸 자네들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자네들은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없어. 사안이 너무 복잡하네. 조언을 해줄 수가 없군. 그러니 해결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들에게 모두 전달하게.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네. 잊을 수 없을 테니.

이하의 내용은 약 7시간 전 연구원 ████ ██가 꿈꾼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가상의 보고서로, SCP-990이 나타나 앞으로 닥칠 어떠한 사건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부분을 검토해보았을 때 최소 █년 이내의 근미래에 대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꿈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 ██를 심문실로 불러 O5 요원이 직접 작성한 것이며 형식의 특수성은 SCP-990의 묘사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함이다(그는 사건을 마치 보고서를 읊어나가듯 묘사했다).

현재 이 보고서는 O5-X 목록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재단 내 어떤 인물도(기어스 박사와 SCP-073을 제외하고) 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 ██의 처분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이나 그의 신진대사의 비정상적인 과열 상태를 보아 이전의 사례를 고려하면 주변 인물과의 접촉 차단 외에 굳이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내용이 너무 긴 관계로 몇 가지 단락으로 나누어서 보관한다. 각각의 부제는 SCP-990이 명명한 바를 그대로 따른다.

 
2. 본문: XL 가상 시나리오 #2

(1) 경고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쇠렌 키르케고르

SCP-003-KO의 담당 박사였을 당시 빅터 N. 루핀 박사는 해당 변칙 개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순식간에 5등급 보안 승인을 얻게 되었다. 이후 재단은 루핀 박사의 데이터베이스 접속을 제한하고 SCP와의 접촉도 최대한 줄여, 그를 위험성이 없는 변칙 개체에만 파견하고 있었다.

'농가'에서 괴수의 으르렁거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두어 번은 크게 울부짖기까지 했습니다. 보안 요원들이 두려워서 근처에 발도 못 붙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괴물이 곧 깨어난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원인 규명과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13Rf-8 구역 보안 책임자

가상의 시나리오를 담은 보고서는 SCP-003-KO, 즉 '농가'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것을 담당했던 루핀 박사가 경유 차 제17기지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17기지 보안 기록(██.██.████)

루핀 박사: 세상에, 얼마 만에 보는 다른 기지인지.

앨버트 박사: 루핀? 루핀 박사님이에요?

루핀 박사: 그럼, 루핀이고말고! 이런데서 또 만나다니 반갑기 짝이 없지만, 아무래도 나한테 시킬 일이 있으니 부른 거겠지?

앨버트 박사: 유감스럽게도 그래요. '농가'가 또 말썽인가 봐요. (손가락에 대고) 그래, 나도 거기는 싫어. 기분 나쁘거든.

루핀 박사: 아…… 거기 말인가……. 그다지 다시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었는데.

앨버트 박사: 왜, 뭐가 문제에요?

루핀 박사: 자네도 알잖은가. 요즘도 그곳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우울해져.

앨버트 박사: 설마.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거예요? (고개를 저으며) 박사님도 어쩔 수 없으시네요. 그렇지? 더 심하다고? 과장하지 마.

루핀 박사: (웃으며) 그놈의 혼잣말 좀 그만하고 뭐가 문젠지 알려줄 자료실로 안내해주지 않겠나?

앨버트 박사: (우스꽝스러운 몸짓) 좋아요, 따라오시죠.

기록 33DX-6990

크로우 교수: 루핀……?

브라이트 박사: 허.

루핀 박사: 반갑네, 노인장들. 근데 그다지 반겨주는 낯빛이 아니군.

클레프 박사: 자네는 그 멍청해빠진 기지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지 않나? 내 말은, 그러길 바란다는 게 아니고 방침상 말일세.

루핀 박사: 누군지 그 농가인가 뭔가 하는 데에 일이 터져서 내가 꼭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하더군.

앨버트 박사: 사실 저예요, 박사님.

루핀 박사: 뭐라고? 자네 그런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나?

앨버트 박사: 뭐, 보안 5레벨이니까요.

클레프 박사: ……앨버트, 농가 관련 자문은 자네로 충분했어.

브라이트 박사: 잘 됐군. 뭐 잘 된 일이야, 루핀이 거기 꽤 관여한 건 맞으니까 말이야. 함께 해도 상관없겠지.

크로우 교수: (회의실을 둘러보며) 잠깐 실례하겠네. ……앨버트, 나 좀 보지.

루핀 박사는 SCP-19██에 관련된 문제로 재단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것은 황혼이 질 무렵 지면에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 형상의 SCP인데, 이상하게도 루핀 박사 주변에서만 계속해서 나타났다. 첫 번째였던 전 세계 규모의 관측을 제외하고, 초기 몇 번의 등장에서 운이 따라 루핀 박사가 해당 SCP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재단 측에서는 루핀 박사가 이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결론적으로 루핀은 SCP-19██를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루핀은 이후 외딴 지역에 유폐되었고 그 몰래 파견된 조사원들이 그를 관찰하며 SCP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

기록 33DX-6992(UO)

크로우 교수: 자네, 미쳤나?

앨버트 박사: 하지만 교수님─

크로우 교수: 루핀이 거기 왜 있었는지 몰라? 그 망할 그림자가 제17기지 한복판에서 나타나면 어떤 꼴이 날지 모르냐고?

앨버트 박사: …….

크로우 교수: 앨버트, 자네가 그렇게 멍청할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이건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안되면 되돌리기'로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이 기지에 격리된 SCP들이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수많은 박사들과 연구원들 그리고 안 그래도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는 D계급들이 그걸 본다면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는 상상해봤어?

앨버트 박사: 그렇지만─

크로우 교수: 앨버트, 내 말 믿어줬으면 하네만, 이건 또한 루핀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네. 그가 SCP-19██에 대해 알아선 안 돼. 아니, 진심일세. 저 안에 있는 브라이트, 클레프, 다른 박사들과도 의견의 일치를 본 거야. 자네는 이게 단지 그놈의 빌어먹을 재단 방침이 어쩌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그런 문제와는 달라. 자네는 우리 판단을 믿어야 하네. 우리는 이제껏 재단의 멍청한 짓거리들을 모두 헤쳐 나왔어. 자만이 아닐세, 앨버트. O5와 우리들이 생각하는 현장은 전혀 다르고, 우린 수많은 실전을 겪은 사람들이야. 자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을 경험해왔다는 말일세.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에 따라 판단한 루핀은……. 하여튼 이렇게 굴지 말아주게.

앨버트 박사: 이건 O5…… 알았어요.

크로우 교수: 좋아. 그럼 루핀을 어떻게 해야 될지가 문제로군. 일단 지금 벌써 여섯 시쯤 되니까…… 해가 질 때가 됐어. 루핀을 이동시키는 건 미뤄두고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게 해야겠고, 혹여나 그림자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다른 인원들이 루핀에게 접촉하지 못하게 손을 써놓겠네. 보안 요원들에게 연락을 해두지. 이 회의실도 누가 지키고 있어야겠군…….

앨버트 박사: 이 모든 게 언제 끝날까요?

크로우 교수: …….

앨버트 박사: …….

크로우 교수: 들어가지.

기록 33DX-6693(Lv5)

루핀 박사: 그래서, 정확히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클레프 박사: 사실 잘 모르겠네. 무슨 변화가 그놈 비위를 상하게 했는지 아직 모르겠거든.

루핀 박사: 언제부터 시작됐지?

브라이트 박사: 흠……. 여기 쓰여있군. XX년 X월 XX일. 특정한 실험을 실시한 뒤부터 이를 갈기 시작했다고. 무슨 실험이었지?

루핀 박사: 음…… 글쎄, 날짜만으론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앨버트 박사: 마지막 실험 얘기하는 거 아닌가요?

루핀 박사: 아! 캐시 실험.

클레프 박사: 자네들에게 5등급 보안 단계를 선사했던 그 실험 말인가?

브라이트 박사: 뭐라고!

크로우 교수: 무슨 실험이었지?

루핀 박사: 그건 농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종이에 관련한 이상한 현상들에 착안해서 진행했던 실험이지. 캐시 역시 종이였으니 모종의 효과가 나올지 어떨지 해서 시험 삼아 가져가 본 거야. 실험 자체는 간단했어. 그런데 농가 안에 들이자마자 캐시가 재구현되었네. 2D가 3D로. 색깔까지 입혀져서 진짜 사람처럼 말일세.

브라이트 박사: 3D라고?

클레프 박사: 5단계 보안급 치고는 좀 허무하지 않나?

크로우 교수: (눈썹을 치켜뜨며) 지휘부는 일종의 보험이라도 들어둘 생각이었나 보군. 거길 2차원과 3차원의 변환 지점 따위로 생각한 게 분명해.

앨버트 박사: 그런 건가요?

클레프 박사: 늑대가 발광한 건 그 실험 때문인가? 그렇다기엔 왠지 나도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날짜인데.

브라이트 박사: 나도 날짜가 익숙한걸. 기분 나쁜 우연인가?

클레프 박사: 기분이 나쁘다니?

크로우 교수: 그래, SCP-19██이 나타난 날이야.

(클레프와 브라이트, 크로우 교수를 쳐다본다)

앨버트 박사: 아, 맞아요. 그랬군요. 실험을 종료하고 오두막을 떠나는데 그 그림자를 봤어요. 우리는 우리가 그런 일을 저지른 줄 알고 깜짝 놀랐었죠.

루핀 박사: 그 번호……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정말 묘한 녀석이었지.

브라이트 박사: 글쎄, 이상하군. 자네들이 있던 곳은 그때 해질 시간이 아니었어. ██████ ██였지? 거긴 아직 해가 서쪽 하늘에 떠있어야 할 시간이었지. 어디…… 오! 있구먼. 그림자에 대한 보고가 있어. 그때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군. 그리고 몇 차례의 으르렁거림도 함께 보고되어 있군. 가만…… 여기만 예외적으로 그 그림자가 거의 두 시간 동안 손을 흔들어댔는데. 자네들이 저지른 일 맞는 것 아닌가?

앨버트 박사: 어…… 그게 정말입니까?

클레프 박사: 그 정도였으면 분명히 이 친구들은 다 죽었을 텐데, 아닌가? 멍하니 쳐다만 보다가 정신줄 놓고 걸어가는 거 말이야.

루핀 박사: 무슨 농담이야? 너무 진지하게 그런 소리 하지 마, 클레프.

클레프 박사: 무슨……?

브라이트 박사: 클레프, SCP-██78에는 최면 효과가 없었어. 그날에.

클레프 박사: ……아, 그래, 그렇군. 미안하네. 다른 녀석이랑 착각했군.

크로우 교수: 그러니까 그 늑대의 이상 행동이 SCP-19██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다른 SCP들은 어땠지?

브라이트 박사: 별 거 없네. 다들 평범한 호기심이나 놀라움 정도…… 아니군. 이런. 그때 아벨 쪽에서 약간 사건이 있었나 봐. 그 큼지막한 상자가 부르르 떨렸다고 했어. 깨어나는 줄 알고 전 기지가 비상사태였다고.

앨버트 박사: 깨어나진 않았다는 거예요?

브라이트 박사: 그래, 이상하군. 상자만 떨린 게 다였어. 이것 좀 보게? 정말 이상하군. SCP-682 쪽도 비슷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방을 빙글빙글 돌았다고 하는데…… 그게 끝이야.

크로우 교수: 수상하군…….

루핀 박사: SCP-19██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은 게 다행인데? 한 번만 더 나왔으면 아주 초토화가 될 뻔했구먼.

(박사들, 시선을 교환한다. 그런 일은 없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젓는 브라이트 박사.)

브라이트 박사: 결론적으로, SCP-19██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네만…… 솔직히 말해 깜깜하군.

(고함소리)

크로우 교수: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고, '농가'의 늑대 괴물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여왔는지에 관한 걸로…….

(발소리)

클레프 박사: 젠장, 이게 무슨 소리야?

앨버트 박사: 나가서 살펴보는 게 좋겠네요.

크로우 박사: (시계를 보며) 해가 졌군…….

브라이트 박사: 뭐─

루핀 박사: 아직 완전히 지지는 않았을걸?

클레프 박사: ……귀찮게 됐는데.

(더 큰 고함소리)

앨버트 박사: 이런…….

루핀 박사: (어리둥절해하며) 뭐야, 무슨 일이야? 나만 모르는 것 같은 기분인데?

(갑자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린다)

그림: 제기랄! 밖에 저거 봤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브라이트 박사: ……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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