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1. 개요

루핀 박사의 정신 검사 소견 말이오? 그래, 방금 나왔소. 이게 벌써 일곱 번째 소견이오, 알고 있나?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이 왜 그렇게 루핀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는 모르겠소. 재단에서 일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인물인데.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겠지. 본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착하다.' 인간성은 좋겠지, 하지만 그딴 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소. 당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지? 이 자는 마음이 약해서 중요한 상황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요. 실제로 행동 기록을 훑어봐도 그렇소. 그다지 효율적인 판단은 내리지 못했어. 이타심이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더군. 그렇게 아끼지 마지않는 남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소중함 따위는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전형적인 부모와 같은 사랑이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대상을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그렇게 한다는 거요. 사회적인 측면의 사랑 말이오. 그는 봉사활동을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다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오. 알겠소? 그냥 '해야 하니까.' 재단의 그 뭐시냐…… 말 좋은 '공리주의'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거요. 이 자가 재단에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군. 몬톡 절차를 알고 있긴 한 거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그렇지? 어떻게 된 건가? 당신들 혹시 이 자에게 그런 일들을 고의적으로 숨기고 있어? ……좋아. 그렇다면야.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는…… 재단을 표면적인 <위험 요소 봉쇄 집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군……. 자기가 몸담은 곳에서 해 먹은 짓거리들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될 거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아마 돌아버리겠지.

글라스 박사의 소견 - Lp13#07

 
2. 본문: XL 가상 시나리오 #2

(2) 폭로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존 F. 케네디

그림SCP-343과 혼돈의 반란에 관련된 사건 중에 나타난 인물로, 특별한 능력은 없으나 SCP-006의 능력을 통해 약 400년 가까이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건 도중 관련 SCP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했으며 재단에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바 제17기지 내에 머무르도록 조치했으며 본인도 그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상세한 내용은 OdiA 사건 자료집을 참고할 것.

기록 33DX-6994(Lv5)

그림: 징조! 저게 뭔지는 알고나 있소?! 대체─(보안 요원들이 그를 끌고 가려고 한다)

크로우 교수: 잠깐, 자네들은 물러나있게. 자네들은 당장 비상등 울리고 전지구 차폐시켜. 창문 하나 남기지 말고 모조리!

XX XXXXX: 알겠습니다. (보안요원들이 물러간다)

크로우 교수: 자네는 이 녀석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림: 모를 수가 없지, 빌어먹을. 이건 징조란 말이오. 징조라고!

클레프 박사: 거 참, 아까부터 징조 징조. 무슨 징조란 거야?

그림: 종말 말이야, 이 빌어먹을 돌대가리야.

클레프 박사: 웁스.

루핀 박사: 잠깐만,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림: (눈을 치켜뜨며) 밖을 보시오. 저 염병할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그림자를 보란 말요.

루핀 박사: 뭐? 태양의 그림자? 그거 설마…….

크로우 교수: 루핀, 나가지 말게.

루핀 박사: 그건 SCP-19██이잖아! 크로우, 이건 심각한 사건이라고.

그림: 심각? 이건 심각한 수준이 아니지. 이건 종말 중에서도 빛의 종말에 대한 징조라고. 알아들었소? 빛의 종말.

(사이렌 소리)

앨버트 박사: 그럼 다른 종류의 종말도 있는 겁니까?

그림: 말 잘했군. 일곱 개의 종말 중에 네 번째 종말의 신호탄이지.

지휘부는 제17기지의 비상사태 발령 소식을 보고받고 책임자인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용무 중'이었던 관계로 혼란을 잠재울 역할로써 기어스 박사를 파견했다. 기어스 박사는 사건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으나 그 해결에 관해서만큼은 (간접적으로)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에 지휘부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책임자들의 호출 묵살에 관한 건은 시간을 두고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기록 33DX-6695(Lv4)

클레프 박사: 벌써 종말의 징조 세 개가 있었다고?

그림: 징조가 꼭 순서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진 마시오. 그리고 지금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 그 뒤에서 기어 다니는 광염은 신경 쓸 바가 아니오.

브라이트 박사: 어째서 그게 문제가 아닐 수가 있다는 거지.

그림: 이런, 망할, 발등에 있는 불만 끄면 거기서 도망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원인만 막으면 종말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단 말이오.

앨버트 박사: 결국 임시방편이군요.

그림: (싸늘하게 상대를 바라보며) 원한다면 불바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도 상관없어.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 이 시점은 종말이 일어나기엔 너무 때가 이르단 말이야. 봉인을 건드린 자극제가 있었다는 뜻이지.

크로우 교수: 봉인?

그림: 그래, 봉인. 일곱 개의 종말을 묶어둔 봉인이 각각 하나씩 있소. 그리고 이번의 빛의 종말에 대한 봉인은…… 펜리르의 속박이오.

클레프 박사: 펜리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림: 세상에, 여기 살면서 북유럽 신화도 못 들어 봤다는 거요? (고개를 저으며) 아니지, 빌어먹을. 여기 인간들한테 뭘 바란 내가 잘못이지.

클레프 박사: 내가 여기서 자네를 쏴도 될까?

앨버트 박사: 혹시 러시아에 있는 그놈입니까?

루핀 박사: 뭐?

앨버트 박사: 농가의 그거요.

루핀 박사: 아, 난 이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크로우 교수: 그렇군. 그곳에 있는 괴물이 늑대의 형상과 유사했어.

브라이트 박사: 그래, 그 웃기는 옷을 입고 말이지.

그림: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그게 펜리르네. 놈은 '존재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묶여있어. 누군가가 그걸…… 흠, '존재하게' 만들어 버렸다라고 밖엔 볼 수 없는데…….

크로우 교수: 자네, 정체가 도대체 뭔가?

그림: 동화작가.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펜리르의 속박을 지키는 파수꾼이오.

기록 33DX-6696(Lv5)

그림: 우선 저 그림자가 나타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아야겠소.

클레프 박사: 어…….

브라이트 박사: 그게…… 실은…….

크로우 교수: SCP-19██이 처음으로 나타난지 근 2년은 지났네.

그림: 뭐……? 어떻게 그동안 단 한 번도 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있지?! 빌어먹을, 문제가 훨씬 심각해졌군.

루핀 박사: 잠깐만, 뭐라고?

크로우 교수: 아무 문제 없어, 루핀.

그림: 아무 문제가 없다니?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루핀 박사: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SCP-19██가 처음으로 나타난지'라니? 한 번만 나타났던 게 아니란 소리인가?

앨버트 박사: 교수님, 이제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크로우 교수: …….

그림: 뭐지?

브라이트 박사: 흠, 쫄딱 망했네.

그림: 말해보게, 한 시가 시급해. 이번 일에 관련된 거라면 무엇이든 중요하다고.

크로우 교수: ……좋네. 한 손을 흔드는 그 그림자는 몇 주 간격으로 지금껏 계속 예고 없이 등장하곤 했지. 그게 최초로 나타난 시점은 루핀 박사가 펜리르와 관련해서 특정한 실험을 진행한 날. SCP-085에 관한 실험이었지. 그 때부터 그림자는 루핀 박사 주변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했어.

루핀 박사: (소스라치게 놀라며) 뭐가 어쩌고 어째?

크로우 교수: 미안하네, 어쩔 도리가 없었어. 자네를 외딴곳에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네. 두 번째 출현부터 SCP-19██은 강력한 최면 효과를 동반했어. 다른 기지 한복판에서 그게 나타났다면 피해자를 막을 수 없었을 걸세.

루핀 박사: (아연실색하며) 뭐라고?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최면 효과라고? 그렇다면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앨버트 박사 역시 크로우 교수를 바라본다)

그림: 제길, 이럴 시간이 없네. 이럴 시간이 없다고. 지금 당장, 그 뭐냐, 그 실험에 대해서 들어야 해.

크로우 교수: 루핀, 우선은 일에 집중하세.

루핀 박사: …….

그림: SCP-085가 뭐지?

브라이트 박사: 캐시.

클레프 박사: 움직이는 그림이지.

그림: ……혹시 소녀의 형상인가?

브라이트 박사: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뭔지 알아?

그림: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브라이트 박사: 빙고.

그림: 아…… 돌겠군.

크로우 교수: 그 그림이 오두막 안에 들어가자 이 차원 속에 실재하게 되었네. 종이에서 빠져나와 우리처럼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그림: 그녀가 동화 속 인물과 같은 행동을 했나?

루핀 박사: 그래, 이전 실험들과 비슷하게. 옆에 있던 빨간 망토를 뒤집어쓰고 올라가려고 해서 다시 밖으로 데리고 나왔어. 그러니까 다시 종이 속으로 돌아가더군. 농가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고.

그림: 이전 실험?

루핀 박사: 신데렐라, 빨간망토, 헨젤과 그레텔, 오즈의 마법사.

그림: 미치겠군…… 얼마나 많이 실험했지?

루핀 박사: 유리 구두 실험에서…… 첫 번째 여성 참가자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고 난 뒤로 그 실험은 중단했어. 빵조각도 데여보는 것 한 번으로 족했고, 유리 구두 뒤축을 세 번 부딪히는 건 남자에게 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 자는 거기서 완전히 사라졌어. 기묘한 비명만 메아리치는데 너무 기겁해서 실험 계획을 백지화시켰지. 그 남자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지 못할 거야. 빨간 망토는…… 나이를 낮춰가면서 몇 번 해보다가 나중에 여자애 한 명이 트라우마로 쇼크사하는 사건이 있었지. 기억을 지웠는데도 꿈에서 자꾸 늑대가 나왔다고 하네. 그 사건 이후로 농가에서는 실험을 전면 폐지시켰어.

브라이트 박사: 확실하네. 이후 그곳에서 제삼자가 별도로 진행한 실험은 없어.

그림: 그래서 죽은 건 네 명인가?

앨버트 박사: 아뇨, 어…… 빵조각 실험에서 죽은 사람은 없어요.

그림: 그렇다면 희생자는 세 명…… 아니 한 명은 단순한 트라우마였으니 두 명이군. 좋아, 잘했네. 실험을 빨리 중단시켜서 제물이 많지 않았어. 다행이야. 그렇지만 2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었으니…… 제물 때문에 약해진 봉인 속에서 펜리르가 몸부림치고 있는 게 눈에 선하군. 너무 많은 시간을 내줬어. 그 곳으로 직접 가야겠네. 어떻게든 보강할 방법을 찾아야겠지. 날 거기로 돌려보내 주겠나? 불가능한 것이라…… 이야기 말고 다른 걸 생각해봐야겠어.

크로우 교수: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앨버트 박사 역시 루핀 박사와 함께 '농가'에서 <캐시 실험>을 발견하여 5단계 보안 승인을 얻어낸 연구원이었다. 루핀 박사와는 절친한 사이지만 재단에서 만나기 이전에 둘 사이의 접촉은 없었다. 재단은 루핀 박사와 마찬가지로 앨버트 박사에게 데이터베이스 접속을 일부 차단했었으나 이후 앨버트 박사의 예상치 못한 유용성을 발견한 뒤 두 번의 심리 검사를 통해 감시 태세를 풀었다. 그는 우리들이 찾던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17기지 보안 기록(██.██.████)

루핀 박사: 크로우, 기다려.

크로우 교수: (뒤를 돌아보며) 뭔가?

(앨버트 박사도 함께 멈춘다)

루핀 박사: 그 일을 왜 숨겼는지 말해줘야지.

크로우 교수: 숨긴 게 아니야, 루핀. 자네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들려줬어.

루핀 박사: 뭘 들려줬단 말인가? 내가 외딴 기지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그놈은 아무것도 못할 거라던 이야기? 얘기가 틀리잖아. 그 그림자는 내가 갇혀 산 뒤에도 계속해서 나타났다고 바로 자네가 말했어.

크로우 교수: 회의 도중에 얘기가 나왔다시피, 그 그림자는 두 번째 출현 이후로 이상한 최면 효과를 동반했네. 그걸 보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그저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걷게 되지. 죽을 때까지 말이야. 그런데 그림자는 자네 주변에서만 나타났으니 자네를 격리할 수밖에 없었어.

루핀 박사: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왜 또 해주지 않았던 거지? 숨길 이유가 있었나?

크로우 교수: 숨긴 게 아니라고 했네. 자네에게 모든 걸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어, 루핀.

루핀 박사: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그것 때문에 2년을 갇혀 살아야 했는데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크로우 교수: 그래서 뭔가? 그걸 몰라서 자네가 견디지 못했나? 아니, 자네는 2년 동안 거기서 잠자코 지내고 있었어.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 건 그뿐이야. 자네가 잠자코 있는 것.

루핀 박사: 사람을 다 쓴 걸레짝처럼 구석에 처박아두고 나 몰라라 했다는 얘기인가?

크로우 교수: 스스로 완벽한 설명을 찾았군, 루핀. 절반은 자네가 맞아. 하지만 자네를 무시한 결과는 아니었어.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지.

루핀 박사: 그러니까 왜 이 모든 사실을 숨겼느냔 말이야? 자네 말로는 아무런 답변이 되지 못해.

크로우 교수: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자네에게 알려줄 이유는 또 필요한가?

루핀 박사: 뭐라고?

크로우 교수: 인권 같은 걸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재단은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써주는 자선 단체가 아니야.

루핀 박사: 헛소리하지 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게 알려줬어야지. 그 정도 이유라면 나도 수용할 수 있었어. 나 자신이 스스로 격리되는데 동의했을 것 아닌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붙잡아두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더 편한 선택이지 않나?

크로우 교수: 내막을 알면 자네가 사사건건 참견할 테니까. 방금 말했지, 우리가 원한 건 그저 자네가 가만히 있어주는 것뿐이었다고.

루핀 박사: (흥분하여 빠른 어조로) 참견? 내가 그 상황에 참견할 게 어디 있어. 단지 그림자가 손바닥 흔들었다 가버리는 광경인데. 아니면 내가 참견할 일들이 있었나?

크로우 교수: …….

루핀 박사: 좋아, 내가 스스로 찾아보지.

크로우 교수: ……자네가 반대할 게 뻔했기 때문이야.

루핀 박사: 뭘 말인가?

크로우 교수: (눈을 감으며) 우리는 SCP-19██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네.

루핀 박사: 뭐?

크로우 교수: 그래, 사람을 이용한 실험 말일세. 솔직히 말하겠네. 우리는 D계급 인원들을 반강제적으로 최면 상태에 이르게 했지. 이후 최면을 푸는 방법을 생각나는 대로 다 동원했지만 모두 실패했네. 모두, 죽었다는 말일세.

루핀 박사: 뭘 했다고?

크로우 교수: 또한 그림자와 자네에 대한 관계 역시 파악하려고 했네. 최면 상태로 뭔가 중얼거리는 말 하나라도 잡아내기 위해서 인원들을 계속 투입했지. 결코 헛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 솔직히 지금 와서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성과는 보잘 것 없네.

루핀 박사: …….

크로우 교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루핀.

루핀 박사: 사람이 죽었어?

크로우 교수: 그래.

루핀 박사: 최면을 푸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최면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웃기는 실험으로?

크로우 교수: 어쩔 수 없었어. 우린 단지 '확보'와 '격리'만 하는 곳이 아니네.

루핀 박사: 대체 뭐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지? 애초에 지나가다가 최면에 걸리지 말라고 나를 가둬놨으니 그 사건은 그걸로 그만인 일이었어. 재단은 그런 쓸모없는 '보호'를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내던졌단 말인가?

크로우 교수: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게, 루핀. 우리는 그 그림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 첫 번째 사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현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훗날 자네가 죽고 없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될지 또 모르지. 그에 대한 대비는 해두고 있었어야 했어. 그건 재단의 책임 문제야.

루핀 박사: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말게, 크로우. 자네들은 분명히 내가 그렇게 숨어있는다면 아무런 인명 피해도 없을 거라고 했었어.

크로우 교수: 다시 말하지만……

루핀 박사: 난 내가 그곳에 오래 갇혀있으면 갇혀있을수록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네.

크로우 교수: …….

루핀 박사: 하지만 그게 아니었군.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하게 연필이나 굴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

크로우 교수: 루핀, 우리는─

루핀 박사: 교수,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네.

(루핀 박사, 크로우 교수를 뒤로 밀쳐내고 문을 나선다. 앨버트 박사가 머뭇거리며 그를 따라가다가 멈춰 선다.)

루핀 박사: 앨버트.

앨버트 박사: (움찔하며) 박사님.

루핀 박사: 지금 당장 SCP-19██ 관련 보고서를 죄다 가져와.

앨버트 박사: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루핀 박사: 잔말 말고 가져와. 빌어먹을, 당장 가져오라고!

앨버트 박사: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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