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ough Man Show

1. 개요

아가야, 너는 해낼 수 있단다.

루핀 박사가 소지하고 있던 사진 뒷면에 쓰인 글

 
2. 본문: XL 가상 시나리오 #2

(7) Through Man Show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1

항목 ████-█, 최고 지휘부에 전송된 항의문

말장난은 그만하죠. 낯간지러운 격식도 집어치웁시다. 이번 사건의 규모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건 재단과 우리 세계 오컬트 연합, UIU가 힘을 모아도 처리할 수 없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정말로, 재단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정보가 있다면 모든 것을 우리와 공유해야 합니다. 글 한 줄 남김없이 자료를 보내주십시오. 연방수사국에도 연락을 취할 겁니다. 협조하세요. 이건 제안이 아닙니다. 필수 불가결한 요소란 말입니다.

GOC

2ND1176-33d5

브라이트 박사: (인상을 쓰며) 염병할.

클레프 박사: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브라이트 박사: 한 시간 삼십 분.

클레프 박사: 한 시간.

브라이트 박사: 내기하자는 거야?

클레프 박사: 흠, 뭐, 아까 내가 잃었잖아.

브라이트 박사: 도로 따시겠다고? 절대 사양이야. 진지하게 하지.

클레프 박사: 누구 입이라고 헛소리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브라이트 박사: 아냐, 정말로 진지하다고.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게 내 바람이야.

클레프 박사: 이유는?

브라이트 박사: 목욕을 하고 싶다고 했잖아.

클레프 박사: 그거 말고, 신경 쓰이는 거 따로 있잖아.

브라이트 박사: 내가 먼저 진입한다.

클레프 박사: (총을 고쳐 쥐며) 엄호해주지.

제17기지 보안 기록

루핀 박사: 통신 시설은 점거했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우리를 막기 위한 조촐한 부대가 찾아올 겁니다. 모두 대문으로 갑시다! 놈들은 절대, 우리들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D계급 인원 무리: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

루핀 박사: 무기를 높이! 우리는 새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

D계급 인원 무리: 새 나라를 건설한다!

루핀 박사: 자, 달려나갑시다! 우리들의 승리를, 우리들의 영광을 위하여!

D계급 인원 무리: 만세! 우리들의 구원자를 따르라!

?

자기 존재를 위해 싸울 각오도 능력도 없는 자가 있는 것은 영원히 공정한 섭리가 이미 종말을 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겁쟁이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

██████ ██, ██-██에서 녹취 기록: ██&████

앨버트 박사: 저거 혹시 기동부대 아냐? (총성) 맞지? 기동부대 맞지? (폭발음) 너도 보여? 그래!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한 거야! 망할 자식들, 너희들 이제 큰일 났다. (금속성 파열음) 이제 저 친구들이 총을 쏴 대면서 우리를 구하러 올 거야. 공식도 다 써넣었고 (총성) 이젠 임무도 끝났겠다, (사이렌 소리) 떠날 채비를 해볼까…… 잠깐, 저 자식들 어디 가는 거야? 어? (폭발음) 이봐!! 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이런 니미럴! (알아들을 수 없음) 생각이 있는 건가? 꼴랑 저거 남겨두고 떠나면 (파열음) 여기까지 뚫는데 진도가 잘도 나가겠다. 전멸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비명) 그림, 괜찮아요?! (폭발음)

[데이터 말소]

크로우 교수: 아뇨!! 못 버티겠습니다!! 기지까지 진입하는 덴 성공했지만,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겠어요!! 아니, 모든 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교단 세력이 이렇게 많았나요?! 샘플이 있는 유닛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이대로라면 반나절도 더 걸리겠어요!! 뭐라고요? 제17기지?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SCP요?!! 지금 거기 갇혀있는 녀석들이 자기보호도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잖습니까, 아니, 이런 [편집됨], 이 머저리들아, 지금 당장 지원 부대가 필요하다고!!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총체적인 대혼란이었소. 여기저기서 지원부대를 요청하는 통에 펜리르 쪽은 그냥 절망적이었고, 크로우 교수도 진땀을 빼고 있었지. 제17기지는 솔직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대충 들은 바야 있어. 거기도 만만찮았다면서? 뭐, D놈들 하는 일이 다 정해져있지 않겠나. 때리고, 부수고, 불 지르고. SCP-053하고 SCP-105는 더 심했지. 물론 꼬맹이 쪽은 건드릴 수도 없었겠지만 정신적 외상라는 게 있잖아. 혹시 알아,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제17기지 보안 기록

(D계급 인원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연구 설비들을 파괴하고, 창고 내의 물품을 갈취하고 있다. 루핀 박사는 복도 중앙을 걸으면서 지시를 내리고 있다.)

루핀 박사: 지금 지하에 우리 편이 없는 게 확실하나?

D-?: 그럴 겁니다.

루핀 박사: 좋아, 5조, 6조! 지하로 통하는 연결 통로를 모두 봉쇄한다.

D-?: 왭니까?

루핀 박사: 지하에는 나 같은 녀석들이 많아. 혹시라도 재단 쪽에 붙으면 골치 아파질 테니, 지금은 그냥 놔두자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하나하나 설득하면 돼.

D-?: 알겠습니다.

루핀 박사: 7조는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옥상에 불을 지르게!

D-?: 알겠습니다!

루핀 박사: 그리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다 함께 정문으로 간다. 들어오려고 하는 놈들을 막으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게. 나는 '의식'을 준비할 테니…….

2ND1176-33f9

클레프 박사: 지원은 없나?

브라이트 박사: 자네 인정머리만큼이나.

클레프 박사: 훌륭하군.

브라이트 박사: 설마. 저 녀석들 자기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고 있는 거야?

클레프 박사: 옥상에만 지른 거 같은데.

브라이트 박사: 왜?

클레프 박사: 헬기 착륙장이 거기 있잖아.

브라이트 박사: 하지만 우린 헬기가 없잖아.

클레프 박사: (미소는 유지한 채 눈썹을 찡그리며) 진지하게 하자며?

브라이트 박사: 난 지금 정말 진지해.

클레프 박사: 누가 알겠어.

기어스 박사의 기록

루핀 박사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재단의 조치가 미흡했던 관계로 그는 진실이라는 정보에 노출되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가 원하는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사태는 몰라보게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오직 박사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췄고, 결국 앨버트 박사를 간과했다. 그는 일이 터지기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 ██-██에서 녹취 기록: ██&████

앨버트 박사: 그림?! 그림, 괜찮습니까?!

그림: (왼쪽 어깨를 붙잡고) 그래, 어깨를 한 번 물렸을 뿐이야. 이 정도는…… 큭.

앨버트 박사: 빌어먹을 기동부대는 산등성이 바깥까지 밀려나고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림: 괜찮아, 이제까지 나 혼자서도 잘 버텨오지 않았─으윽…….

앨버트 박사: 이제 충분해요?

그림: 크흠…… 정 그러면, 보안 요원들 시체를 뒤져서 무기라도 찾아보게.

앨버트 박사: 어디 있습니까?

그림: 저쪽 벽 아래에 모아뒀네. 자네 친구들이었을 텐데, 지켜내지 못해 미안하네.

앨버트 박사: 아닙니다. 덕분에 저는 아직 살아있으니까요. (달려간다)

그림: ……(알아들을 수 없음)(폭발음)

?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로 하여금 헛되이 살지 않게 하라.

랠프 왈도 에머슨

[데이터 말소]

크로우 교수: 지원부대요? 잘 됐군요, 망할, 이십 년 전부터 기다려왔는데. 어디서 끌어온 겁니까? ……뭐? 뭐요? 앨버트는? 지금 장난치는 겁니까? ……대체 얼마나? ……뭐라고? 뭐라고?! 뭐, 겨우 백오십?! 야 이 등신 같은 [편집됨] 대체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머저리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쪼그만 신참을 갖다 버리고 날 보고 여길 뚫으라는 거야?! 지금 그 녀석이 어떤 놈들한테 둘러싸여서 거기 있는데?! 지금 그놈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뻔히 알면서 여기로 지원을 돌려?! 당신들 도대체가 [편집됨]<통화 중단됨>

제17기지 보안 기록

브라이트 박사: 2시! (파열음) 11시! (파열음) 좋았어, 클레프! 우리는 아무래도 환상의 조합인 것 같군!

클레프 박사: 궂은일은 내가 다 하는 것 같은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게.

함성: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

브라이트 박사: 하지만 사냥총은 그쪽에 있잖아. 내가 가진 무기라곤 오랑우탄의 억센 손아귀뿐인데 그나마도 이번엔 안 데려왔어.

함성: 새 나라를 건설한다!!

클레프 박사: 루핀은 안 보이나?

D-?: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브라이트 박사: 클레프, 들었어?

함성: 우리들의 구원자를 따르라!!

클레프 박사: 그래, 앉혀놓고 들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군.

(파열음)

0GM4766

글라스 박사: 경고했잖소, 박사의 이성이 버텨내지 못할 거라고. 가치관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 거요.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뭐라고? 뭐라고 했소? 아니, 싫소. 절대로 싫소.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알고서 하는 말이오? 헤까닥 돌아버린 정신병자가 사방에 총기를 난사하고 있는데, 그가 어렸을 적 만나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더러 찾아가서 상담을 하라는 소리요. 장난하시오? 내가 그 자 앞에 서서 조목조목 '자네는 정신분열증의 증상을 보이고 있네' 어쩌고저쩌고 소견을 밝힌 뒤에 그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그가 어쩔 것 같소? 내 가슴에 제일 먼저 구멍이 뚫린단 말이오, 제기랄. 방법? 방법이야 차고도 넘쳤었지! 당신들이 내 권고를 죄다 무시했잖소. ……후……. 알겠다고.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어디로 가라는 거요? ……빌어먹을, 지옥에나 가시오.

제17기지 보안 기록

D-?: 젠장, 왜 통로가 막혔지?

D-?: 뭐라고?

D-?: 올라갈 수가 없어. 차폐……라던가 뭐라던가.

D-?: 역시 그런가? 흐음…… 우리 지금 여기 갇혔다고?

D-?: 그래, 완전히 갇혔어, 빌어먹을!

D-?: 바깥 상황 기억나? 한 놈이 설치느라 아주 개판이었잖아.

D-?: 구원자 말이야?

D-?: 구원자 좋아하네. 그놈은 사기꾼이야.

D-?: 정말?

D-?: '새 나라'라니, 장난하자는 거야? 그걸 믿는 놈들은 다 고등학교도 안 나온 놈들일 거야.

D-?: 그게 정말이야?

D-?: 정말이고말고.

D-?: 그럼 이제 어떡하지?

D-?: 이건 말하자면 보안에 문제가 생긴 거야. 그렇지?

D-?: 그렇지.

D-?: 그러니 저 위쪽은 혼란스러운 상태일 테고, 우리가 여기서 뭘 하든 신경을 쓰지 못하겠지?

D-?: 그렇지.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도 여기서 못 나가는 거잖아.

D-?: 지금 밑에 그 자식들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해?

D-?: 어? 어어, 없어.

D-?: 그럼…… 이건 위에서도 못 내려온다는 뜻이니까?

D-?: 그래서?

D-?: 뭐긴 뭐야? 그거밖에 더 있어? 이 안에 그 금발 년이 있잖아.

D-?: 그렇군. 그럼 그 뒤에는 어떡해?

D-?: 감시 카메라만 피하면 돼. 누가 증명하겠어?

D-?: 꼬맹이는?

D-?: 이런 미친 새끼, 네가 알아서 해.

██████ ██, ██-██에서 녹취 기록: ██&████

(파열음)

앨버트 박사: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파열음) 잘 모르겠네요.

그림: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군. 해질 때까지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앨버트 박사: (파열음) 다른 늑대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면서요?

그림: 그렇지만 노을이 질 때, 낮과 밤의 경계 부근에는 둘 다 접근할 수 없어. (파열음) 그 안에 지원 부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걸세.

앨버트 박사: 그렇지만 처음에 우리들과 같이 온 요원들은 모두 순식간에 당하지 않았나요? (파열음) 제길, 장전.

그림: 그때랑 비교해선 확실히 수가 줄었어. 이 정도면 그들만으로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걸세. (알아들을 수 없음)(폭발음)

앨버트 박사 : 와우.

기어스 박사의 기록

어째서 그림과 펜리르를 진작 연관시키지 못했을까? 그는 펜리르가 봉인된 건물 속에서 도망쳐 나오기는커녕 살림을 꾸리고 그곳에서 동화를 쓰면서 지내왔다고 했다. 비정상적인 담력은 둘째치고, 시간상 가능할 수가 없는 이론이었다. 그림은 자신이 ██세기부터 살아왔다고 발언했지만 동화들은 그 시점보다 훨씬 이전부터 구전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시 신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역시 오딘과 같은 종족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17기지 보안 기록

브라이트 박사: 세상에.

클레프 박사: ……그래서, 루핀이 교주 노릇을 하고 다닌다고?

D-?: (떨리는 목소리로 눈치를 살피며) 분명…… 분명 그분은 구원자이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브라이트 박사: 정신이 나갔군.

클레프 박사: 누구 말이야? Dr, 아니면 D?

브라이트 박사: 둘 다. 루핀을 당장 찾아내야 해.

클레프 박사: 자네가 맡게, 브라이트.

브라이트 박사: 자네는 어디 가는 겐가?

클레프 박사: 경력을 인정받아 선택받은 대피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곳으로.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루핀 박사는 도망쳤소. 애초에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 옳겠지. 박사는 폭동을 이용해 관심을 돌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문 반대쪽의 다른 입구로 나갔소. 거기도 물론 요원들이 있긴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 대피가 진행 중이었던 모양이오. 두들겨맞은 연구원들 사이로 몰래 끼어들어간 게지. 흠…… 좀 억측인가? 하긴, 누구 때문에 두들겨맞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을 리가 없지……. 아니야, 아니지. 박사가 D계급 인원들을 부렸잖아. 누구 때문에 두들겨맞았는지 몰랐을 가능성도 있잖소. 아닌가?

제17기지 보안 기록

브라이트 박사: 루핀 박사!

루핀 박사: (흠칫 놀라 뒤돌아보더니 브라이트 박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자, 저 자를 막으시오! 저 자가 의식을 파멸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함성)

브라이트 박사: 염병할.

?

모든 인간은 죽음에 몹시 반발하여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우고 베티

항목 ████-█, 항의문에 대한 최고 지휘부의 답신

거절합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 경과는 밝히겠지만 정보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 상황은 정말 예외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주시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려고 할 때에는 즉각 통보하겠습니다.

제17기지 보안 기록

클레프 박사: 내가 '일을 개시'하는데 방해를 했나? 신사 분들, 공공장소에서 이러면 곤란해요.

D-?: 어떻게…… 분명히 '차폐'라고 전광판에 나와있었는데!

클레프 박사: (한심하다는 듯이) 차폐는 아는데 어떻게 '개방'을 몰라? 전 기지에 방송됐다고.

D-?: 제길, 손 들어.

클레프 박사: 인질극으로 가자고? 좋아 좋아, 나도 좋아하는 종목이지.

D-?: 헛소리 집어치워! 지금 당장 그 총 내려놓고 저 방 안으로─

(파열음)

D-?: ……난 아무 짓도 안 했─

(파열음)

클레프 박사: 숙녀분, 꼬마야, 이쪽이다.

[데이터 말소]

크로우 교수: 아, 알았다고, 난 지금 전투 상황이야! 이성을 잃을 수도 있지, 당연한 걸 가지고 이러고 있나? 뚫고 있어, 뚫고 있으니까, 빌어먹을 근황 보고 좀 그만두게 해주면 안 될까? 지금 정말 바쁘거든, 그래, 지원 부대도 없이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우리 기지를 뚫어야 하는 저희들 상황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 지원을 물린 게 누구냐고? 그런 사람 없어, 다만 상황 파악을 정말 못하는 상관이 있을 뿐이지.<통화 중단됨>

제17기지 보안 기록

XX XXXX XXX: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야?

X XX: 모르겠어요, 비행 허가 내려진 적 있습니까?

XX XXXX XXX: 아니, 없어. 이봐! 당장 멈춰! 활주로를 폐쇄시켜!

X XX: 안됩니다, 늦었어요. 벌써 엔진이…….

XX XXXX XXX: 저기 누가 타고 있지?

X XX: 어디, 잠깐만요…… 기동부대들은 이미 안에 들어가고 없을 테고, 구출한 연구원들도 모두 저쪽에 모여있는데…….

XX XXXX XXX: 폭동자들이 도망친 거야. 무전기 가져와!

기어스 박사의 기록

루핀 박사의 계획은 철저했다. 탈출에 앞서 그는 연료와 활주로, 조종 기술까지 확보했다. 그럼에도 알 수 없었던 점은 그의 목적지다. 그는 왜 그곳으로 향한 걸까? 본인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라고 답한 바 있지만…… 어떻게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SCP-738? 재단의 데이터베이스? 아니면 단순히 근본적으로 타고난 존재적 이끌림?

2ND1178-30d9

글라스 박사: 뭐야, 루핀이 여기 없다고?

클레프 박사: 방금 전용기를 훔쳐타고 도망쳤어. 그 녀석 비행기 조종도 할 줄 알았나?

글라스 박사: 모르지, 여기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클레프 박사: 상담할 때 그런 거 안 물어봐?

글라스 박사: 본인이 밝히기 거북해할 경우에는. 근데 우리는 지금 안 쫓아가고 뭐하고 있는 겐가?

클레프 박사: 브라이트가 빠져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야.

제17기지 보안 기록

브라이트 박사: 염병할!!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돌아갔을 때는 난장판이더군. 직원 시설이 반쯤 내려앉았더라고. 옥상은 잿더미가 됐고.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자기들 감방은 아주 말짱했다는 거야. 그래도 자기들 집이라고 반반하게 보존했더군. 루핀 박사가 말했던 '인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더라, 이거지.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정신병자? 아니면 이해받지 못해 순간 울컥했던 이웃집 아저씨? 아마 우린 영원히 그걸 알 수 없겠지.

██████ ██, ██-██에서 녹취 기록: ██&████

앨버트 박사: 벌써, 네 시간 째…… (파열음) 총알도 이제 거의 다 떨어졌어요.

그림: 한 시간, 아니 사십 분만 있으면 해가 떨어질 거야. 그 정도 버틸 총알도 없나?

앨버트 박사: 좀 아끼면 되겠─(파열음) ……글쎄요, 솔직히 자신은 없군요.

그림: 해낼 수 있네.

앨버트 박사: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림: 돌아갈 수 있어. 있고말고.

(울부짖음)

제17기지 보안 기록

XX X. XXX: A-6, 11번 창고에서 쓰러진 남성을 발견했다. 테이블 다리에 수갑이 채워져있다. 보안 요원, XX G. XXX. 신원 확인.

XXX X. XX: 알겠다, 상태는?

XX X. XXX: 후두부에 출혈이 있다. 현재…… 방금 정신을 차렸다. 현기증이 있지만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XXX X. XX: 응급처치 전문 요원을 보내겠다. 이상.

XX G. XXX: 으으…… 루핀 박사는……?

XX X. XXX: 괜찮나? 걸을 수 있겠어?

XX G. XXX: 걸을 수 있습니다. 루핀 박사는 어디 있습니까?

XX X. XXX: 도망쳤다. 전용기를 훔쳤어.

XX G. XXX: (눈을 감는다) 빌어먹을…….

?

나에게 영웅을 보여라, 비극을 써줄 테니.

F. 스콧 피츠제럴드

2ND1177-01a2

클레프 박사: 브라이트, 이번에도 유감이야.

브라이트 박사: 그래, 아직 살아있다고. 알겠어. 비행기 준비됐지? 어서 가자고.

클레프 박사: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브라이트 박사: 어, 아니. 어디로 가는데?

클레프 박사: 추적 중이야.

브라이트 박사: 어, 뭐라고?

클레프 박사: 비행기가 어딨는지는 알겠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안 탈 건가?

브라이트 박사: 어, 알았어. 근데 무슨 소리야?

글라스 박사: 파일럿, 출발하게.

브라이트 박사: 어…….

A31DD9 통화 수신 기록

루핀 박사가 향하고 있는 지점을 찾았습니다. 좌표는 ███.███, 러시아 북서쪽 ██████ ██ 숲입니다. 네, 맞습니다. '농가'가 거기 있습니다. 아무래도 목적지는 그곳인 것 같습니다. 거의 도착한 듯싶은데, 그쪽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행운을 빕니다.

██████ ██, ██-██에서 녹취 기록: ██&████

앨버트 박사: 이상한데요, 녀석들이 점점 흩어지고 있어요.

그림: 그렇군, 아직 해가 지려면 좀 더 남았을 텐데.

앨버트 박사: 하늘이 약간 노란 것 같기도 하고…… 저게 뭐지?

그림: 맙소사. 민간 항공기인가?

앨버트 박사: (눈을 가늘게 뜨고) 아니에요, 저건 여객기가 아닙니다. ……전에 타본 적이 있어요.

그림: 타본 적이 있다고?

앨버트 박사: 예……. 저건 재단 소속 비행기입니다.

[데이터 말소]

크로우 교수: 유닛에 거의 다 왔습니다. 당연히 줄기차게 공격해오고 있죠. 놈들이 유닛을 눈치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도착한 건 아니라니까요. 앨버트는 괜찮습니까? 제17기지는? 좋아요. 하여튼 뚫었으니 상관없겠죠. 보안 구역이 보이는군. 진입하겠습니다.

██████ ██, ██-██에서 녹취 기록: ██&████

앨버트 박사: 박사님?

루핀 박사: 비키게, 앨버트.

앨버트 박사: 어떻게 나오신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루핀 박사: 급한 지시를 받고 온 거네. 다른 녀석들은 귀환이 늦어서 나 혼자밖에 못 왔어. 그만 나와주겠나?

앨버트 박사: 아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긴 박사님이 혼자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루핀 박사: 자네가 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당장 비키게!

앨버트 박사: 박사님, 박사님은 '위험 가능성이 존재하는 모든 지역'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루핀 박사: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상관없어, 당장 비키지 않으면 이걸 쓸 수밖에 없네.

앨버트 박사: 그건……!

루핀 박사: 나도 자네를 쏘고 싶진 않네, 앨버트. 그냥 날 저 안으로 들여보내주기만 하면 돼.

그림: 잠깐…… 안 돼, 안 되네! 저 자를 들이면 안 돼!

앨버트 박사: 왜 그러십니까?

그림: 저 자가…… 봉인을 해제하려고 하네.

제17기지에서 송신된 전화

SCP-085가 사라졌습니다. 분명 격리된 곳이었는데, 거기는 보안 등급이 없으면 해제가 불가능하다고요, 알고 계시겠지만. 그런데 구출된 연구원들 중에서는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격리실 상태로 봐선 D계급 인원들이 부수고 들어가서 빼냈을 리도 만무하고요. 애당초 SCP-085를 왜 훔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훨씬 유용하고 편하게 써먹을 수 있는 다른 SCP도 많았을 텐데요. 아 물론, SCP-085의 유용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루핀 박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소. 표현하기로는, '타오를 듯한 눈빛'이라고…… 아니, 조용히 해, 제발. 지금 농담할 기분 아냐. 그는 어떤 광기에 사로잡혔소, 정말이지. 광(狂)인이라. 그의 행동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소. 손을 떨지도 않았고, 불안하게 몸을 들썩거리지도 않았다고. 아주 차분하게 행동했어. 침착하게 총을 겨눴지.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건 루핀이 아니었어.

?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변할 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 ██-██에서 녹취 기록: ██&████

그림: 저 자를 들이게 되면 당장에 펜리르가 눈을 뜰 거야…….

앨버트 박사: 박사님, 제발, 그만두세요.

루핀 박사: 자네가 날 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네.

앨버트 박사: 하지만 박사님도─

루핀 박사: 아니, 앨버트. 난 자네를 쏠 수 있어.

앨버트 박사: …….

루핀 박사: …….

앨버트 박사: …….

루핀 박사: 비켜.

앨버트 박사: ……안됩니다.

항목 ████-█, 최고 지휘부에 전송된 항의문

아니요, 당신들은 이번 상황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거만 떨지 말고 순순히 협조하세요. 이번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겁니다. 이런 태도가 당신들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요? 이번이 마지막 요청입니다. 만약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한다면 재단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겠습니다.

GOC

A31DD9-LP911

글라스 박사: 루핀이 앨버트를 쏴버리지 말아야 할 텐데.

브라이트 박사: 루핀이 정말 그렇게까지 할까?

클레프 박사: 할걸?

브라이트 박사: 설마.

글라스 박사: 박사의 정신 상태로 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이건 루핀 본인의 문제로군.

클레프 박사: 언제쯤 도착하지?

브라이트 박사: 거의 다 왔어. 거의 다.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브라이트 박사는 내내 오락가락했소. 동고동락하던 간부들과는 계속 시시덕거렸으면서 루핀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진지해졌지. 난 처음엔 그게 일종의 무슨 텃세라도 부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소.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브라이트 본인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군.

제17기지 보안 기록

XXX X. XX: S-7. 기지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기지 내 전 대원들은 지금부터 찌꺼기 청소 작업을 실시한다. A동 19번 지역과 C동 34번 구역에 적들이 집결해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두 지점을 우선적으로 공격한다. 가스 방사형 소각 무기 사용이 허용되었다. 작전 개시.

기어스 박사의 기록

어쩌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일을 다시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종말이 정말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일을 해야만 한다. 예외는 없다. 그렇지만 어쩌면…… 어쩌면 좀 더 인간적인 방법이 의외의 효과를 보일 수도 있겠지.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 ██, ██-██에서 녹취 기록: ██&████

브라이트 박사: 루핀?

루핀 박사: …….

앨버트 박사: 박사님!

브라이트 박사: 무사해서 다행이군, 앨버트!

앨버트 박사: 클레프 박사님은요?

브라이트 박사: 비행기를 지키고 있─

루핀 박사: 헛수작 집어치워! 시간 끌지 말고 당장 비키지 않으면 죄다 쏴버리겠어.

모조리 죽여라.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이오시프 스탈린

글라스 박사: 루핀, 나 글라스네. 기억 하나? 자네 정신 소견을 맡고 있었지.

루핀 박사: (공격적인 태도로 쏘아보며) 그래, 기억나는군. 이렇게 될 거라고도 예상했나?

글라스 박사: 루핀, 자네는 지금 자신이 뭘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고 있네.

루핀 박사: 몰라? 내가? 자격증 시험을 다시 보셔야겠군.

글라스 박사: 자네는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자네가 정말 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려는 건 아니겠지?

루핀 박사: 알 게 뭐지?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들을 없애기 위해선 이 수밖에 없어.

글라스 박사: 아니네! 자네는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루핀 박사: '구원'? 지랄하지 마. 너희들이 그런 단어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너희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수천만 명이 괴물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아무도 거리끼지 않았지. 누가 그들을 위해 무덤을 팠지? 누가 그들에게 기도해줬지? 누가 그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해본 적 있나?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너희들은 단지 그들을 실험 도구 취급했을 뿐이야.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뿐이다.

에드먼드 버크

글라스 박사: 그들은 범죄자였네 루핀, 그것도 아주 극악무도한─

루핀 박사: 범죄자라고? 그들이 모두 범죄자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누명을 썼다면? 정신병자는 어때? 그들이 생명을 중히 여기지 못하게 된 것이 그들의 잘못인가? 혹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 녀석들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인간쓰레기들이라서, 반성의 기미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난 수많은 사람들을 봤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지옥에서 일하면서도 일과를 마치고 자기 방에 돌아와서는 기도를 올리고 가족사진에 입을 맞추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가족들의 사진에 말이야. 너희들이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너희들이 그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나라가, 이 세계가 너희들을 인정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아니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파울 요제프 괴벨스

글라스 박사: 박사, 그건 있을 수밖에 없는 희생이었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행동이었어.

루핀 박사: 대체 어디가?! 조각상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격리하면 되는지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계속 집어넣은 이유는 뭐지?! 다른 것까지 말할 필요도 없을 거야, 죄다 똑같았어. 너희들은 지금도,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낸 뒤에도 '추가적인 정보' 따위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가치 없는 죽음들을 생산해내고 있지. 이것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꼭 했어야만 했던 일인가?

글라스 박사: 그래서 자네는 D계급 인원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 건가?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루핀 박사: 그럼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글라스 박사: 그들은 모두 죽을 거야, 루핀.

루핀 박사: 난 그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세기 4:9

글라스 박사: 자네 역시 실패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았군.

루핀 박사: 난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어. 가능성은 충분했어.

글라스 박사: 아니, 자네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네. 자네는 그들이 정말로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루핀 박사: 그래서 날 비난할 셈인가? 어차피 그들에겐 가망이 없었어. 난 그들에게 기회를 줬을 뿐이야.

글라스 박사: 루핀, 자네는 그들을 단지 기지를 탈출하는데 쓸 도구로만 이용했을 뿐이네.

이성이 버린 환상은 믿을 수 없는 괴물들을 만들어 낸다.

프란시스코 고야

루핀 박사: 뭐라고─

글라스 박사: 자네 역시 자네가 비난했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네. 자네는 그들에게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어. 그들이 어떻게 될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았나? 지금쯤 총알 세례, 어쩌면 불 세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네.

루핀 박사: 그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닌가? 꼭 죽여야만 하는 건지─

글라스 박사: 말 돌리지 말게, 박사. 자네는 그들이 어떻게 진압될지 알고 있었을 거야. 자네는 이를테면 모두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피난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네. 그러나 자네는 자네를 구원자라고 믿게 만들고는 그들을 이용하고 혼자 도망쳤어. 자네는 자네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네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버렸네. 자네도 결국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어.

루핀 박사: 그건…… 아니, 그렇지 않아. 그건 모두 너희들의 잘못이야. 너희들이…… 너희들이 날 이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거라고!

세상이 널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널 가진 적이 없다.

에르빈 롬멜

글라스 박사: 아니, 루핀. 나는 자네가 참여했던 실험 기록들을 모두 훑어보았네. 바로 여기에서 실험한 부분도 살펴봤지. 세 명이 죽었더군. 그중 한 명은 16살이었어.

루핀 박사: 그건…….

글라스 박사: 자네는 피실험자들이 고통받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진행했어.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지. 이것까지 부정할 셈인가?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실험이었네. 하지만 자네는 보안 등급의 상승을 노리고…… 그만두지 못했지. 자네가 정말 자네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자네조차도 한때 뒤로 밀어낸 신념을,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시킬 건가? 그건 불가능하네, 박사.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자네는 자네 자신까지 속여왔어. 빤히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혹사시켰네. 루핀, 이제 그만두게.

루핀 박사: …….

전쟁의 최초 피해자는 진실이다.

아이스킬로스

글라스 박사: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네, 루핀. 그렇지만 재단이 하는 일도 자네와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 역시 죄책감을 느끼고 실험을 거부하기도 하지. 그러나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네. 이제 그만 자네 자신으로 돌아오게.

루핀 박사: …….

글라스 박사: 루핀?

루핀 박사: ……아니.

글라스 박사: 뭐라고 했나?

루핀 박사: 나 자신…… 난 이미 날 잃어버렸어.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돌아가게 된다면 모든 일들이 날 끊임없이 괴롭히겠지. 난…… 지긋지긋해.

글라스 박사: 박사─

루핀 박사: 왜 하필 나여야만 했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데 왜 하필 나였어야만 했냐고. 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간소한 삶을 원했다고. 그런데 왜 나를…… 왜, 나를, 택한 거지!!

죽음은 단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버나드 조셉 소린

브라이트 박사: 위험해!

루핀 박사: 아니야, 이젠 돌아가지 않겠어. 여기서 모든 걸 끝낼 거야. 이 종이가 보이나? 이 안에 SCP-085가 그려져있지. 저 안으로 이걸 가져가면, 그걸로 모든 고통이 사라져. 그러니까 제발 날 내버려 둬. 내가 편안할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그림: 안 돼…… 그렇게 되면 봉인이 풀릴 거요!

브라이트 박사: 루핀, 그거 내려놔, 지금 당장!

루핀 박사: 왜 날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 거지?! 왜 날 이런 지옥 구덩이 속에 밀어 넣은 거냐고!!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버트런드 러셀

앨버트 박사: 박사님!!

루핀 박사: 지옥에나 가버려, 난 그만둘 거야. 포기할 거라고. D계급 친구도 구하지 못했어. 피실험자였던 열여섯 살 먹은 아이 하나도 구하지 못했어.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왜 날 잡으려고 하지? 재단, 개자식들. 이젠 지쳤어. 그러니 저리 비켜.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으니. 이제 제발, 날 쉬게 해달라고! 빌어먹을, 저리 비키라는 말 안 들려?!

브라이트 박사: 그만둬, 루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기억은 생명체와 같다.

아리 폴만

루핀 박사: 집어치워!! 모조리 사기꾼들뿐이야, 이 사기꾼들!!

앨버트 박사: 박사님을 막으세요!! SCP-085가 입체화돼서 구현된다면 동화가 실현되버려요!! 봉인이─

루핀 박사: 모든 게 끝난다, 모든 걸 끝낼 거야!!

글라스 박사: 루핀!! 총 내려놔, 멈춰!!

루핀 박사: 당장 저리 비켜!!

(파열음)

의사의 임무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는 것이다.

잭 케보키언

(기어스 박사가 권총을 쥐고 일행들의 뒤에 서있다)

브라이트 박사: ……기어스?

(루핀 박사, 천천히 쓰러진다)

앨버트 박사: 안돼애애애애!!!

?

우리가 숨을 거두고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구세주가 되지 못했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에게 던져질 질문은 단 하나다. '너는 왜 너 자신으로 살지 못했는가?'

레오 버스카글리아

██████ ██, ██-██에서 녹취 기록: ██&████ <██>

루핀 박사: (숨을 헐떡거림) 헉…… 어……째서…….

기어스 박사: 우리는 박사를 여태껏 찾아왔습니다. 예레미야 5장에 나오는 '의인'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요약해서 인용하자면, 정직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했을 때에 성읍 전체를 구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이번에 밝혀진 '7개의 봉인'이라는 장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브라이트 박사: ……무슨 소린가?

기어스 박사: SCP-231의 부록을 읽어보셨다면 아실 테지만, '7인의 신부'는 각각 7개의 봉인과 모종의 연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휘부는 비밀리에 봉인들의 정체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었는데 밝혀진 것 중 대표적으로 'SCP-169의 수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봉인들이 모두 깨어지게 되면 XK급 멸망 시나리오가 진행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추가적으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봉인이 풀리기 전에는 경고의 의미로 '징조'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고, 이 때 의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의인은 봉인의 해제를 막는 또 다른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징조가 나타나면 의인은 무조건적으로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여전히 가설에 불과합니다만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사료되는군요. 그때 의인이 처한 상황에서 그를 구해낸다면 징조가 사라질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결국 봉인은 깨진다는 겁니다. 이는 성서의 목적에도 부합하는데, 의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의'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의인'이 발생하게 되는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예상하시다시피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측면에서 <박해>라는 역사를 고려해보았을 때 의인은 바로 그 '좋은' 성질 때문에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그렇게 되는군…….

기어스 박사: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정보를 끌어모아 의인의 특징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아다녔습니다. 루핀 박사 역시 의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발견한 이후, 우리는 그를 바깥 세계로부터 '안전하게' 격리시키기 위해서 재단에 들게 했고, 구실이 생기는 대로 곧바로 5등급 보안 레벨을 승인한 후 재단 내 가장 깊은 곳에서 그를 지키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재단 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속은 대부분 차단되었으며 위험할 거라고 생각되는 임무에는 파견되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시도였다고는 생각합니다. 참고로 앨버트 박사도 의인 후보 중 하나였습니다만, 행동 양상을 관찰한 뒤에는 루핀 박사 쪽으로 굳어졌지요.

루핀 박사: 그런…… 허헉…….

기어스 박사: 그러다 '징조'가 나타났고, 우리는 그것이 생성하는 이차적인 피해를 막을 방법과 함께 박사가 이번 일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는 법을 강구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다수결에 의해 유폐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선택되었습니다. 물론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겠지요. 우리는 그동안 '무엇이 박사를 구원할 것인가'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조사를 동시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밝힐 수 없는 우연들이 겹치면서…… 박사는 결국 모든 걸 알게 되고 말았지요. 박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방금까지 들은 대화 내용으로 보아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겠더군요.

브라이트 박사: 다 듣고 있었나?

앨버트 박사: 그래서 박사님을 쏘신 겁니까?

기어스 박사: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그런 행동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봉인을 깨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저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막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앨버트 박사: 그런…… 잠깐…… 그렇다면 설마…….

브라이트 박사: 왜 그러나?

앨버트 박사: 루핀 박사님이 제게 부탁한 게 있었어요…… 누명을 쓰고 재단에 오게 된 D계급 요원 한 명을 구해달라는 거였는데…… 혹시……. (글라스 박사를 쳐다본다)

글라스 박사: ……루핀이 마음을 돌렸을 가능성도 적지 않네. 아니, 아마 그랬을 거야.

기어스 박사: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도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앨버트 박사: 내 잘못이에요…… 내 잘못…….

브라이트 박사: 아닐세, 자네는─

클레프 박사: (일행들에게 달려오며) 이봐, 저걸 봐,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앨버트 박사: 저건……!

브라이트 박사: SCP-19██?!

그림: 징조!!

(커다란 울부짖음)

글라스 박사: 이게 무슨 소리지?!

그림: 오…… 설마…… 안 돼…….

브라이트 박사: 뭐…… 무슨 일이오?

(늑대 울음소리)

앨버트 박사: 그런…… 분명히 봉인이…….

(괴성)

('농가' 안에서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괴수가 일행들을 밀쳐내고 뛰쳐나옴)

그림: (허탈하게) 봉인이…… 풀렸소.

(괴수는 SCP-19██, 석양의 방향으로 달려감)

앨버트 박사: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림: 모르겠어, 분명히 봉인을 보강했는데…… 방법은 확실했어. 저길 보라고…… 아!

(그림이 벽 한 쪽을 가리킨다. 늑대의 형상을 한 핏자국이 튀어있다.)

그림: 내가 써넣은 함수식과 완전히 일치해…… 이럴 수가…….

브라이트 박사: ……어쩔 수 없는 일이로군.

루핀 박사: (기침) 앨버트…….

앨버트 박사: 박사님!

그림: (앨버트에게 말을 하려고 애쓰는 루핀 박사를 빤히 쳐다본다) ……저 자의 이름이 뭐라고 했소?

기어스 박사: ……빅터, 네메시오 루핀.

그림: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Ne messiah…… 우리들의 구원자가 아니었군.

클레프 박사: (무표정한 얼굴로 그림을 바라본다) 이건 판타지가 아니야.

그림: (재차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래. 알고 있었소.

루핀 박사: (숨을 헐떡거리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앨버트…… 아무것도……. (숨이 끊어짐)

앨버트 박사: (울먹이며) 모두 다 제 탓이에요, 박사님.

브라이트 박사: (앨버트 박사 옆에 서서 어깨에 손을 얹는다) 견뎌내야 하네, 앨버트.

(그림, 천천히 뒤돌아서 석양을 등지고 걸어감)

브라이트 박사: 견뎌내야 해.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그때 브라이트 박사가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지. '견뎌내라'……. 아니, 그럴 수가 없었소. 루핀 박사는 날 믿었어. 난…… 그걸 저버렸고. 그날 이후로 노을이 지는 걸 보질 못 해. 내가 그 소원을 들어줬다면 박사가 아직 살아있었을까……? 그래, 이것 역시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그렇지만 그때 난 정말, 정말로……(웃음을 터뜨림)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소.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 나는 정말……(신경질적인 웃음) 무력했지, 완벽하게 무력했어. 자네도 그런 경험 있나? 정말이지─<기록 종료>

?

신에게도 이것만은 없다. 과거를 새로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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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사항]빅터 N. 루핀 → 빅터 N. 루핀(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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