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래왔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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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아 씨, 그래서 이걸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보시다시피 이 악기는 겉보기에는 그냥 트럼펫처럼 보이지만.. 이걸 입에다 대고 연주하면 주변의 식물들이.."

남자가 갑자기 아드레아의 말을 끊었다. 아드레아는 당황한 듯 멍하니 안경 다리를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며 아드레아가 한눈에 보기에도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드레아 씨, 저희가 우선은 환경 단체를 표방하고 있고 저희 단체를 지원해주셔서 사람들을 돕겠다는 당신이 소속된 그 떡갈나무인지 뭐시기인지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충분히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신네 단체에서 기껏 돕겠다고 제작하신 물건들 중에서, 정말로 뭔가 도움이 되는 게 있기는 했습니까?"

"하지만, 그건-"

남자가 또다시 단호하게 아드레아의 말을 끊으면서 대답했다. 아드레아의 동공이 조금씩 흔들렸다.

"저번에 보내주신 그 물건들도 전부 처리했습니다. 오늘부로 당신 단체와의 계약을 중지하겠습니다. 빨리 돌아가셔서 이 사실을 그들에게 전달해 주시고 앞으로는 누구를 돕겠다고 이런 일 벌이지 마세요. 민폐만 끼칠 뿐입니다. 이제 나가주십시오."

"잠시만요,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나가주십시오."

아드레아는 포기하기 싫었지만 이런 일방적인 무례한 태도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가는 문까지의 거리는 참 멀게도 느껴졌다. 무거운 공기가 아드레아를 감싸고 돌면서 아드레아는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칙칙한 공간에서는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은 것처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드레아는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아드레아는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다. 오늘 이 건이 그녀가 맡은 처음 일인데 말이지.

문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아드레아의 부드러운 살결을 흘리듯이 스쳐 지나갔다. 아드레아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호호 입김을 불어 보았다. 하얀 김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 위까지 높게 피어 오르며 사라졌다. 그 모습이 상처 입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는 듯 싶었다.

아드레아는 빈민가 출신이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매일 술을 퍼마시며 돈을 벌어오라고 소리만 질러대는 아버지, 그래서 그녀는 쥐 떼들이 넘쳐나고 냄새나는 더러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했다. 아드레아의 그런 비참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한 것이자 그녀의 돈벌이 수단은 노래였다. 아드레아는 평소에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 하진 못했지만, 노래만은 예외였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냥 구걸하는 것보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었다. 힘겨운 삶이였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떠한 기회조차 없었다.

아드레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건 한 노인이였다. 아드레아가 늘상 그렇듯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하던 도중에, 노인이 다가왔다. 그 노인은 덥수룩한 콧수염도 인상적이였지만, 더욱 눈에 띄였던 건 그 노인이 악기 없이, 그저 손짓만으로 악기의 소리를 내면서 아드레아에게 천천히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소리는 피아노 소리, 트럼펫 소리, 바이올린 소리로 바뀌면서 원래 아드레아가 불렀던 노래였던 것처럼 그녀의 귓속에서 서서히 울려퍼졌다. 남자는 갑자기 우뚝 아드레아 앞에 멈춰 서더니, 말을 걸었다.

"얘야, 날 따라오지 않겠니? 노래를 참 잘 부르는구나, 우리 극단에서 널 먹여 주고 재워 주겠다. 어때? 너의 재능을 이런 빈민가에서 썩히기엔 너무 아까워. 너의 장래를 우리 극단이 보장해주마."

"좋아요."

그것은 아드레아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아드레아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노인을 따라갔다. 그녀가 그 극단이 자신과 같았던 빈민들을 돕는 단체였다는 걸 알은 건 나중의 일이였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해 보는 일은 아드레아에게 있어서 새로운 하나의 즐거움이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극단은 상당히 자주 실패하고 있었다. 빈민들을 도우려고 심혈을 기울여봐도 오히려 작물을 망치거나, 소음 공해로 신고받는 둥 의도와는 다르게 엇나가기만 했다. 아드레아는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자신만은 꼭 성공해 보여서 실패만 한다는 이미지를 바꿔 보이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나왔거늘, 오늘 일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이번 계약을 실패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화를 내면 어쩌나 하고 아드레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드레아는 눈을 몇번 빠르게 깜박였다. 눈물은 들어갔지만 눈가는 아직 시큰거렸다. 시큰거리는 눈가를 매만지며 그녀는 극단원들이 오늘 결과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날따라 유독 바람이 많이 불던 주차장엔 회색 밴 한 대가 서 있었다. 아드레아는 밴을 본 순간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녀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무렵, 알아채기라도 한 듯 문이 드르륵하고 열렸다.

"오늘은 잘 됐니?"

아드레아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목에 힘을 주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다시 눈가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요,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잘.."

목소리는 거기서 멈추었다. 목이 메여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드레아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고 가만히 숨을 몰아쉬며 서 있을 무렵, 단원들이 밴에서 내렸다. 아드레아는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아드레아가 느낀 건 그녀를 향한 격려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여러 개의 팔들이였다.

아까까지 눈을 깜박이면서까지 참으려고 노력했던 눈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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