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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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방은 어두웠다. 천장에 위태로운 모양새로 매달려있는 전구가 비좁은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작은 책상과 의자를 비추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은 아직 앳된 얼굴의 남자였는데, 어딘가 불편한 듯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두 손목을 묶고 있는 수갑에서 달그락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지 요원은 카메라 너머의 남자를 응시하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은 카메라 화면으로만 보던 저 남자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에, 동요하는 모습을 숨길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 사람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까, 저 사람에게 윽박지를 수 있을까.

문앞에 푸른 불빛이 들어왔다. 들어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잠깐."

마지를 불러세운 상관은 감시 카메라에 시선을 유지한 채 무심히 말했다.

"시계는 빼놓고 가야지."

마지는 상관이 눈치채지 않을만큼만 표정을 찡그렸다. 손목시계라는 것은 분명 위험한 물건이 아니지만, 면담을 할 때만큼은 가져가서는 안되는 물건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지하실에 며칠을 가둬놓은 사람에게 구태여 시간개념을 되새겨줄 필요는 없으니까. 마지는 조용히 손목시계를 빼어 주변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는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스스로가 해야하는 일을 되새겼다. 편지를 쓰게 하는 일.


의자에 묶인 채 떨고만 있던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온 마지 요원을 보자마자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마지 요원이 생각하기에, 직접 마주한 그는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초췌해보였고, 어딘가 아파보였다. 마지 요원은 남자의 반대편 의자에 앉아 여러 서류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중 몇 가지를 집어들어 차분히 살피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남자는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마지 요원의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져온 서류들에 내리꽂혔다. 마지는 남자를 직접 바라보고 있지 않음에도 그 불안한 모습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는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앉은 채로 무의미한 내용이 담긴 종이들을 읽어내려갔다. 이런 환경에서는 침묵이 길어질 수록,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다는 뉘앙스를 취할 수록 상대방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심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자, 마지는 먼저 입을 열었다.

"김화도, 21세, 앵그리(angry)라는 예명의 변칙예술가로 활동."

"…!"

"주로 수도권 등지에서 변칙적인 조각품들을 만들어 무작위 위치에 전시, 스스로를 아방가르드적 성향을 가진 변칙예술단체인 Are We Cool Yet의 일원으로 칭한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변칙예술가들이 모이는 일종의 크루에 가입했으며, '변칙예술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담은 여러 질 높은 작품들을 조각함으로써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는 잠깐 말을 멈추고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방금 마지의 입에서 나온 정보들 중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었다면 그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안도할 것이고, 감시카메라는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낼 것이었다. 별다른 신호가 없는 것을 확인한 마지는 계속했다.

"크루의 리더는 강현석, 이 크루는 콘서트라는 명목으로 광범위한 정신재해를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점 조직의 형태를 띄어 추적을 피하고 있다…"

마지는 조용히 서류를 내려놓고,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남자는 눈에 띄게 움찔했고, 마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인데, 더 말할 거리가 있나?"

"연…합, 연합이죠. 당신들? 많이 들어봤어요. 변칙예술가들을 잡아다가 불구로 만들어버린다고..!"

부족한 정보를 조합해서 어떻게든 내뱉어보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답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마지는 약간의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모르는 척, 공포에 질린 척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재단의 기술력이 담긴 카메라가 그 작은 틈을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다. 마지는 마음 속 연민을 감추고 인위적인 짜증을 담아 얼굴을 찡그렸다.

"질문은, 나만 한다. 알아들었어?"

남자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너희 크루에서는 우편을 통해서 연락을 한다던데, 맞나?"

"…"

"몰라서 묻는 거 아니야. 대답."

"…예."

"너가 해줘야 하는 일은 간단해."

마지는 잠깐의 틈을 두었다. 상대방이 더 불안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떨림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당신 리더한테 편지를 써. 문제가 생겨서 조각품을 제시간에 옮길 수 없을 것 같다고, 도움이 필요하니 네 은신처에 와달라고."

마지가 그 말을 꺼내자 남자의 얼굴이 당혹감에 일그러졌다. 마지는 스스로의 얼굴에 철판이라도 덧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력감에 쓰러지는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얼마나 곤욕스러운가.

"협조한다면 무사히 돌려보내주지. 물론 몇가지 기억은 지워야 하겠지만."

"아, 안돼요. 못해요. 안해요."

남자는 수갑에 묶인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마지는 가져온 편지지 여러 장과 펜 한 자루를 책상에 올렸다.

"선택권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아? 바보같은 짓하지 말라고."

"리더가 바보인 줄 알아요? 안 올거에요. 당신들 속임수인 거 뻔히 눈치챌 거라고요."

"그럼 속을 수 있도록 잘 써봐."

남자는 아연실색한 채 편지지와 마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런 걸로 안 속는다고요. 리더는 이런 걸로 안 속아요. 소용없어요."

"상관 없어. 그 편지가 어디로 어떻게 향하는지만 추적해도 충분해."

남자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수갑에서는 미세한 달그락 소리가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마지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상대방을 응시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상대가 빨리 협조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안 해요."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침묵을 끊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해요. 이건, 이건 안돼요. 이것만큼은 안된다구요. 저희가 무슨 일을 했다고 이러시는 거에요, 네?"

마지는 답하지 않았다.

"물론 저희가 하는 예술이라는 게 조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네? 저희는 아무 짓도 안했다구요.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제발."

"못 들어주겠네."

마지의 말에 남자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의 귀 뒤로 흘러내리는 작은 땀방울이 보였다.

"우리가 너희를 전부 잡아내면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싸잡아 묶어놓고 총살이라도 할 것 같아? 협조 여하에 따라 가둬놓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너가 생각하는 그런 단체는 아니라고."

"…"

"제정신일 때 물어봐줬잖아?"

"…네?"

"너 하나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거 일도 아냐. 항정신성 약물을 밀어넣는다거나, 머리 속을 헤집어 놓는다거나. 다짜고짜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다만,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 괜히 상황 악화시키지 말고 쓰기나 해."

"…"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지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손 내밀어."

"예?"

"손 내밀라고."

남자는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내밀었다. 방금 전 약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터라, 남자는 머릿속으로 여러 상상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마지는 두 손을 받잡고 작은 열쇠를 밀어넣어 수갑을 풀었다. 그 직후 그의 손을 책상의 펜에 내려놓고, 최대한 냉정하게 들리도록 말했다.

"써."

남자는 몇 초동안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손에 펜을 쥐었다. 마지는 그 펜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불러주시는 걸 적어야 하나요?"

"네 말투로 써야지 그 사람들이 속겠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무슨 암호나 표식 따위를 숨기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거다."

남자, 김화도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천천히 종이에 펜을 올리고, 곧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SCP재단 소속 마지 요원은 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약간의 연민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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