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시추탑

평가: +13+x

ideological-imbroglio 04/12/12 (화) 12:06:22 #12766349


towerb.png

Tower-B.

심해포화잠수사들은 연예인과 비슷한 직종이다. 일단 머릿수가 적고 — 전 세계에 한 이백 명 정도 되려나.

이유는 이렇다. shipbelly 밑에 강철제 가압튜브가 붙어 있는 건 아냐? 그 크기가 사람이 들어갈 만한 옷장 정도거든? 이제 고수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거기서 2주 동안 먹고 자고 싸며 살아야 한다. 배 위의 놈들이 주입하는 가스 때문에 목소리는 도널드덕처럼 되고, 목사네 딸내미 괄약근보다 더 조이는 호스를 통해 식사가 나온다.

결국 요점은 — 위험하고 미친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멋진 이야기들을 듣는다. 남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현역시절의 나는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상 달리 여한이 없었다.

내 마지막 잠수는 1981년이었다. 장소는 B시추탑 — 북해의 노르웨이 영해 연안의 석유굴착장이었지. 그리고 내가 떠나고 2달 뒤, 기술자들이 "폭발적 감압사태"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일어났고, 다니엘Daniel 발레스트리Balestri(내 파트너였던 동료)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내 친구 하나가 나한테 상세한 내용을 알려줬다.

발레스트리가 파트너하고 함께 잠수를 했는데, 잠수종(잠수사들이 내려가거나 올라오는 도중 앉아 쉬는, 약간 가압된 용기)이 고압산소실과 연결되면서 (아주 느린) 감압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 작업자가 메이팅플랜지로 작업하는 동안, 다른 작업자가 기밀을 여는 바람에 잠수사들이 외부 대기에 노출되었다.

body.png

다니엘 발레스트리였던 것

검시관은 발레스트리가 “직경 45 센티미터의 강철 구멍으로 빨려들어가, 흉복강이 이등분되고, 내장 거의 대부분이 난폭하게 빨려나갔다”고 부검했다. 다시 말하자면, 신장 6 피트의 남자가 크기 1.5 피트의 구멍으로 8기압의 압력으로 빨려들어갔다는 말이다. 그의 대장은 30피트 이상 날아가 머리 위로 15피트 떨어진 강철 서까래에 매달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즉사했다.

이 사고와 1985년의 바이퍼드 돌핀호Byford Dolphin 사고 이후,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압시스템의 안전장치가 재정비되었다. 하지만 이 사고와 바이퍼드 돌핀호 사고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이 사고에서 기밀을 연 작업자는 베테랑 잠수사였다. 의사소통 오류나 혼란이 일어났을 리도 없다. 그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생각이 한밤중에 나를 깨운다. 무엇이 그가 억지로 문을 열게 만들었을까?

ideological-imbroglio 04/12/12 (화) 12:31:09 #28993436


axolotl.png

유형성숙한 아홀로틀.

포화잠수를 할 때는 시간이 썩어난다. 나는 독서로 그 시간을 때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에, 아홀로틀이라는 특이한 멕시코산 도롱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홀로틀을 다른 도롱뇽들과 구분시켜 주는 특이한 점이란 이렇다. 대부분의 도롱뇽은 아가미로 숨을 쉬는 수서생물로 삶을 시작한다. 그러다 성체로 성숙하면 아가미가 없어지고 폐가 발달한다.

아홀로틀은 폐를 발달시키지 않는다. 대신 평생을 물 속에서 살아간다.

1863년, 한 프랑스 동물학자가 멕시코에서 배편으로 보낸 아홀로틀을 받았다. 그런데 상자를 열어보니 완전히 다른 종의 도롱뇽이, 몸이 어두운 색이고 뭍에서도 살 수 있는 도롱뇽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그는 이것이 사실 같은 아홀로틀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화 과정의 어느 순간 아홀로틀은 성숙된 형태를 버리고, 어린이 단계의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 — 이 경우 단단히 밀폐된 닫힌 상자 — 에 놓이게 되면, 그들은 잊어버렸던 “성체”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생명체가 성체가 되어도 어렸을 때의 유용한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유형성숙neoteny이라고 한다. 가축들(개나 고양이)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 어느 정도는 — 인간에게서도 볼 수 있다.

유형성숙이란 본질적으로 생명체가 애벌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생명체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때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를 적절한 환경으로 옮기면? 변태를 거치게 된다. 수백만 년 전 진화에 의해 잊어버렸던 발달의 경로를 다시 기억하고, 성숙해서, 우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변태를 거치면, 원래의 모습이 전혀 남지 않을 수도 있다.

ideological-imbroglio 04/12/12 (화) 12:42:11 #12968544


석유 시추대는 그 자체로 자급자족하는 하나의 생태계다. 전력이나 식수를 스스로 생산해야 하고, 심지어 오수도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바깥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항공이나 바다 뿐이고, 폭풍이 불어오면 그 둘이 한꺼번에 불가능해진다.

요점은 시추대의 일은 고립적이고 싫증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이상한 짓들을 한다. 어떤 때는 마초이즘, 어떤 때는 권태감, 어떤 때는 순수밀실공포증. 거기에 포화잠수사의 단골 소재인 “격리된 가압실에서 남하고 단 둘이 살기”가 더해지면, 핵폭탄급 개뻘짓의 레시피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다.

발레스트리와 내가 언제부터 더 깊이 잠수하고 더 빨리 올라오는 것을 경쟁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졸라 멍청한 짓인 줄은 안다 — 그리고 그 때도 알고 있었다.

감압증은 장난이 아니다. 고압 및 저압 환경에 인체가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 환경에 느리고 서서히 노출되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급격한 변화는 몸 속에 팽창하는 기체 주머니를 만들어낸다. 혈관, 장기, 심지어 뇌 속에도. 눈은 피를 흘리고, 심장은 멈추고, 폐는 (문자 그대로) 터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뭔가 할 만한 뻘짓이 있고, 그것을 또 같이 할 사람도 한 명 있으면, 권태감이 덮쳐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관절통과 두통은 입장료인 셈 치고.

발레스트리는 등이 자꾸 말썽이었다. 자기 등이 “구부정한” 것 같다고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냐고 내가 물은 적도 몇 번 있다. 그러면 그는 아스피린 몇 알 삼키고 웃어넘기곤 했다.

계속 그 밀봉된 상자 속에 갇힌 아홀로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밀폐된 공간의 어둠 속에서 어떻게 아홀로틀이 변화하기 시작할지, 그 생각을 계속 했다. 내 등도 좀 아프기 시작하는가, 그런 생각도 자꾸 들었다.

ideological-imbroglio 04/12/12 (화) 12:49:19 #38389309


수면 아래 천 피트, 내 해골이 압력에 구겨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해골 안에 찬 체액 뿐인 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있으면, 무언가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어머니 대자연에 비하면 러브크래프트 따위 개좆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본 것들 중 가장 야생스러운 것, 절대적으로 야생스러운 게 뭔줄 아냐?

바다지네.

해양생물학을 조금이라고 알고 있다면, 바다지네 같은 건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어쩌면 내가 본 바다지네처럼 보이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할 수도 있겠지. (갯지렁이, 갯지네, 등각류의 일종, 좀 이상하게 생긴 해삼까지)

하지만 내가 뭘 봤는지는 내가 안다. 그건 해삼 같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 때 라이저 라인에 클램프를 설치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발레스트리와 함께 일했지만, 등 때문에 곤란해했고 — 상사는 그 클램프가 필요하다고 우리한테 어제 말했었다. 그래서 내가 내려가야 했다 — 혼자서.

나는 가압복을 입고 해저의 바닥, 머리 안팎으로 액체가 울렁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장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시야 가장자리에 그것이 포착되었다 — 바닷속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분절된 몸체. 뼈 같은 흰색. 신장은 거의 3 피트. 그것은 해저를 굼실거리며, 30쌍이 넘는 다리로 바위와 모래들을 넘어와 — 곧바로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 꼴을 봐서 진지하게 나를 노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전에 단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던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내가 감압실로 돌아왔을 때, 발레스트리는 등을 내고 누워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뭔가 힘들고 치열했다. 그 모든 것을 웃어넘기려고 필사적인 것 같았다.

바로 그 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 날이 포화잠수사로서 내 마지막 날이었다. 감압을 마친 즉시 나는 굴착장에서 내렸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ideological-imbroglio 04/12/12 (화) 12:55:21 #61192724


사고가 일어난 뒤, 당국은 현장 기록을 모두 압수하고 B시추탑 운용요원들을 기간선원 20명으로 감원했다. 이어진 조사 결과 “안전에 반하는 경영문화”가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즉 경영자 놈들은 우리가 뒤지건 말건 돈만 벌면 좆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을 깔쌈하게 포장한 말일 뿐이다. B시추탑은 폐쇄되었고 1989년 퇴역되었다.

그 뒤로 나는 1981년 발레스트리 사고에 대해 생각할 많은 시간이 있었다. 많은 세부사항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기밀을 연 작업자가 있었던 장소가 어디였는 줄 아나? 잠수종은 바로 위에 강철로 강화한 원형창이 있다. 그 말은, 그 작업자가 자신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 가압실을 연다는 행위를 하면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다니엘 발레스트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게 가장 이상한 부분이고, 내가 밤잠을 설치게 하는 원인이며, 또한 내가 1981년 이래로 극심한 요통을 겪고 있음에도 10년 이상 의사를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다.

다니엘 발레스트리는 그 사고로 죽지 않았다. 다른 잠수사도 마찬가지였다. 검시관은 두 사람이 감압실이 열리기 전에 이미 불특정한 “심각한 등의 외상”을 입음으로써 살해된 상태였다고 검시했다. 그리고 최악이 뭐게?

그 두 사람 모두 척추가 발견되지 않았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