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인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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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의자 팔걸이에 손이 묶인 채로 앉아있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을 두리번거렸다. 한가운데 있는 그의 의자를 제외하면 방은 텅 비어있었다. 칙칙하게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의 빛이 많이 바랜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곳인 것 같았다. 남자는 몸을 들썩이다가 묶인 손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끙끙대며 매듭을 어떻게 해보려고 손목 여기저기를 긁히고 있을 때 정면에 있던 회색 철문이 열리더니 연구원 복장을 한 남자가 들어왔다. 포로가 멍청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는 싱긋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펠릭스 레인 씨. 꼴이 말이 아니군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자해를 하거나 무력으로 도망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말이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뭐…… 뭐라고요?”

남자는 머리가 어지러운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레인 씨는 머리 부상으로 기억을 잃으셨었습니다. 기억 재생 장치로 복원을 시도했는데, 기기에 이상이 있는 건지 폭력성이 심해지거나 정신이 나가거나 하는 경우가 잦더군요. 때문에 지금 레인 씨를 묶어놓은 겁니다.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난…… 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기억 재생 과정의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 레인 씨와 면담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괜찮겠지요?”

연구원은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져온 서류철에 무엇인가 쓰더니 질문을 시작했다.

“레인 씨, 당신이 기억을 잃던 당시 정황을 말씀해 주시죠. 레인 씨는 둔탁한 흉기로 뒤통수를 맞고 기절하셨습니다.”

“정황이요? 어…… 음…… 정황, 그러니까, 떠올리기가 어려운데…… 제가 정신을 잃어버린 그 때 말하는 거죠? 음, 그래, 생각이 나네요, 복도를 걸으면서 전화를 하던 중에 뒤에서 누가 날 갈겼습니다. 한 번 쓰러졌을 때 흉기를 봤는데 몽둥이처럼 보였어요.”

남자는 눈을 감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직후 놈이 나한테 한 방 더 먹였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론 그래요. 다른 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훌륭하군요. 일치합니다. 최근 기억에 대해선 일단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군요…….”

“저기, 잠깐만요. 제가 기억을 잃었다고 했습니까? 치료되기까지 얼마나─”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 일일 뿐입니다. 지금은 2013년 1월 18일이죠. 부상은 완치되었고 지금 제가 보기엔 정신적인 부분도 멀쩡하신 것 같군요.”

“그동안 내내 기절해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옛날로 가보죠. 11년 전, 당신의 동생이 납치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남자의 몸이 움찔했다.

“어─ 뭐라고요?”

“레인 씨의 동생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때의 경황을 말해주세요.”

“전 동생이 없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레인 씨라고요?”

“예?”

“제 이름은 레인이 아닙니다.”

연구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자는 섬뜩한 기분을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제 이름은 제이미 애로우입니다. 아까 뭐라고 했죠? 펠릭스 레인? 그 녀석은…….”

제이미는 말을 문득 멈추었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그가 연구원을 노려보자 그는 서류철을 든 손을 내리고 제이미와 눈을 맞췄다.

“……이름이 펠릭스 레인, 아닙니까?”

“말씀 드렸잖습니까, 전 제이미 애로우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연구원은 서류철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제이미에게 다가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큰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1월 16일에 서버실에 출입한 남자, 당신이, 펠릭스 레인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걸 어떻게……!”

제이미의 가슴이 철렁했다.

“서버실 내부 입구 카메라에 다 찍혔습니다. 설마 안 들켰을 거라고 자신했던 건 아니겠죠? 우린 당신의 얼굴을 봤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펠릭스 레인이 아니라고요?”

“전…….”

“대답이나 하세요. 펠릭스 레인이 당신 맞습니까, 아닙니까?”

연구원은 점점 말투에서 짜증을 드러냈다. 제이미는 펠릭스 대신 자신이 들어가길 차라리 잘했다고 억지로 위안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이 알고 있는 이름은 펠릭스 레인. 그는 펠릭스의 보안 카드를 사용했고, 리지웨이의 승인 코드를 이용했다…….

‘서버실에 출입한 걸 알고 있어. 그렇다면 모두가 위험하다. 어떻게든 둘러대야겠는데, 펠릭스의 카드를 훔쳤다고 하는 게 먹힐까? 함부로 입을 열어선…….’

“빌어먹을.”

연구원은 씹어뱉듯 중얼거리고 팔짱을 끼며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는 모양이었다. 제이미는 불안했다. 분명 자신이 ‘말소’ 처리될 만큼의 죄를 저질렀다는 건 알지만, 이건 그가 예상한 최후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재단에서 사람을 시켜 뒤통수를 치게 하고 의자에 묶은 다음 외딴 방에서 단 둘이 심문을 시킨다? 무언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연구원은 기억 재생 운운하며 자신의 행적을 물었다. 심지어 날 펠릭스로 착각하고 과거에 있었던 아이작의 납치 사건까지. 그렇지만, 재단에서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 방대한 규모의 단체가 일개 직원의 가족 역사까지 파악할 정도로 철저했던가?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연구원은 구석으로 가서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쫑긋이 세웠다. 말본새를 보아하니 그 자의 상관인 것 같았다. 내부 보안부일까……?

“예, 아니랍니다. 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였어요. 아뇨, 재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무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 그러면 계획대로……? 예? 그렇게나 일찍이요? 그렇게 되면 복제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여자는 제쳐두고요? 잡아둔 애는요? 좋습니다. 그럼 그 녀석을 그대로 쓰죠. 네. 이 녀석이요? ‘제이미 애로우’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처리할까요? ……뭐라고요? 그렇군요. 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건질 게 있을까요? 한 번 해보죠. 네.”

그는 휴대폰을 딱 소리 내며 닫았다. 어느 새 눈을 들고 그를 지켜보고 있던 제이미가 소리쳤다.

“당신 도대체 누구요!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알 거 없고─”

연구원 옷차림의 사나이는 제이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보니, 당신도 꽤나 쓸모가 있어 뵈는군. 애로우 부부의 아들이라니, 우연도 이보다 좋을 순 없지. 펠릭스라는 년보다 널 잡아오길 차라리 잘했을 수도 있겠는데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뽑아낼 수 있는 건 모조리 뽑겠다. 거짓말은 벌써 들통 난 것 같으니 이제부턴 정직하게 대해주지. 네가 묶인 이유는 잘 알 테고, 도망은 꿈도 꾸지 마. 애로우 부부의 죽음에 대한 걸 말해줘야겠어.”

“우리 부모님은 사고로 죽었어. 바로 여기 재단에서! 알고 싶으면 나 말고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라고!”

제이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이작 다음엔 부모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남자는 내부 보안부도 아니야…….

“바로 그 부분이야, 제이미. 그 사고에 대해서 말해봐.”

“난 그 때 고작 10살 남짓이었어. 뭘 기대하는 거냐?”

그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남자는 피식 웃더니 서류철을 주워들었다. 그는 문을 향해 뒤돌아 걸어가며 말했다.

“오, 기억해낼 수밖에 없을걸. 내가 잘하는 거거든. 현장 요원 수칙이나 실컷 되뇌고 있어봐. 전부 쓸 데 없는 거였다는 걸 보여주지.”

문이 닫혔다. 남자가 무엇을 가지고 돌아올지는 뻔했다. 제이미는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고통스러운 일에 대한 상상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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