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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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부신 흰색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눈을 깜빡거리며 밝은 빛에 익숙해지길 기다린 뒤 고개를 들었다. 누워있는 침대는 아주 깨끗했다. 아무래도 병원인 것 같았다. 제이미는 갑자기 깨질듯이 아파오는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제이미? 괜찮아?”

고개를 돌리자 펠릭스가 의자를 끌어다놓고 앉아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이미는 아직 잘 움직여지지 않는 입 꼬리를 억지로 들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앉는 데 성공했다.

“병원이라니, 이거 참. 꼴이 말이 아니군 그래.”

제이미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펠릭스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래, 어떻게 된 거야? 얼마나 누워있었지?”

“입원한 시점부터 따지면 이틀.”

“고작 이틀? 제대로 휴가도 못 받겠네.”

“실종된 시점부터는 5일이야.”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실종이라고?”

“음, 아무래도 내내 기절해있었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네.”

“내가 6일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 나랑 전화 통화하다가 갑자기 없어진 뒤로 엿새가 지났어. 지금 1월 23일 아침이야.”

제이미는 천장을 바라보며 날짜를 세 보는 듯 했다. 펠릭스는 그가 머리를 다친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됐다. 그는 다시 펠릭스에게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뒤통수 치고 도망간 자식은 잡았어?”

“그게, 아니…….”

“재단에선 뭘 하는 거야? 직원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데 손 놓고 있었나.”

“제이미, 지금 기지 전체가 쑥대밭이야.”

펠릭스는 코를 문지르며 말했다. 제이미는 그녀를 멍청하게 쳐다보다가 병실을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한적해야할 침대들이 쓰러진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가 보기에 모조리 정신을 잃은 상태인 것 같았다. 복도로 통하는 창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보였다. 기절한 환자로 꽉 차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방에 올만큼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무슨 일이야?”

펠릭스는 눈을 비비더니 지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보니 그녀의 눈 밑도 시커먼 그늘이 져있었다.

“혼돈의 반란이 기지를 습격했어. 네가 사라지고 3일째 되던 날 자정에. 분실된 SCP는 없는 것 같은데, 있는 것 없는 것 몽땅 때려 부수고 지나간 모양이야. 시설의 62%가 파괴되었다나 뭐라나…….”

“혼돈의 반란이 여길 뭐 하러? 여긴 변두리 작은 실험용 기지일 뿐인데, 더군다나 여기서 보관 중인 것도 지금은 거의 없는 상태고.”

“난들 알아? 아예 가져간 게 없다니까. 그냥 부수고 갔어. 그게 끝이야.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마주치는 요원들은 죄다 두들겨 패고, 유리는 깨뜨리고, 실험 장비는 약탈하거나 아예 불까지 질러놓더라니까. 그리곤 빠르게 도망갔지. 아무도 못 잡았어.”

“한 명도?”

“한 명도. 본부에서 지원팀과 조사단이 파견됐어. 내부 협력자를 반드시 색출하겠대. 그렇게 손쉽게 우릴 털어간 걸 보면 스파이가 있긴 있는가봐. 저번에 D계급 인원 탈주 사건을 도와줬다는 놈 기억하지? 무슨 목적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 기억나. 혼돈의 반란이 여길 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있었지. 하지만 정말 모르겠네……. 이런 곳을 습격하면서 챙긴 소득이 현미경 나부랭이 정도라니. 뭔가 다른 수를 써놓고 간 게 아닐까?”

“…….”

펠릭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제이미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리지웨이부터 시작해서 ‘괜찮느냐’는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피해는 어때?”

“시설의 62%가 날아갔다는 얘기는 아까 한 것 같고…… 부상자나 실종자는 수두룩해. D계급 인원들은 습격으로 통제 마비된 와중에 폭동. 지금은 전부 사살됐어. 우리 측 사망자도 꽤 될 걸…….”

“리지웨이 박사님은?”

“바빠서 죽어. 의사잖아.”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너도 이렇게 보니 멀쩡한 것 같다.”

“……그래.”

“다행이야, 펠릭스. 그래도 모두 무사하잖아.”

“그게, 제이미…….”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제이미는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뒤흔드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를 주시했다. 펠릭스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이작이 없어졌어.”

“제길, 세상에.”

그는 다시 벽에 머리를 박았다. 아이작이 없어져? 어쩌면 이건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탈출했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감옥 같은 숙소에 갇혀있었을 터, 도피는 고사하고 싸움에 휘말렸으리라는 게 당연하다. 기지 전체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없어진 일개 D계급 인원 한 명…… 구조 작업이 있었을 리 만무한데 여태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죽은 건 아니지?”

“사망자 목록에는 아직 없어…….”

펠릭스는 고개를 숙이고 신경질적으로 팔을 문질렀다. 제이미는 그녀에게 초조한 어조로 따지기 시작했다.

“리지웨이 아저씨는 뭐했어? 아저씨가 아이작을 계속 보고 있을 거라고 했잖아.”

“몰라.”

“사살된 녀석들 중에 아이작이 낀 건 아니겠지? 응?”

“모른다고 했잖아.”

“그 녀석이 탈출했을까? 그럴 수도 있지 않아?”

“제이미, 나도 몰라. 그만 해.”

그녀의 무미건조한 태도에 제이미는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만하라고? 어떻게! 적이 습격을 해왔고 내부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가 있어?!”

펠릭스가 몸을 떨며 소리 질렀다.

“너만 답답한 거 아냐! 날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아이작을 찾아야지!”

“웃기지 마, 여기서 아이작을 어떻게 찾으라고? 기지는 뒤집어졌고 혼자 동떨어져서 그나마 유일하게 멀쩡한 여기 B동 말고는 모조리 출입 봉쇄됐어. 본부에서 파견된 조사단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와중에 나한텐 서버 복구 명령이 떨어졌지. 그래, 어떻게 할까? 명령은 갖다버리라는 데는 찬성할게. 그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들 사이로 폴리스 라인을 넘어 파편이나 헤집고 다니면서 조사단이랑 맞닥뜨려? 뭐라고 할까? 내 동생이 D계급 인원으로 잡혀왔는데 실종됐으니 좀 도와달라고? 그 인간들한테?”

“그럼 이러고 있을 거야? 아이작이 그 파편에 밑에 깔려서 옴싹달싹 못하고 있다면? 그래! 좋다고! 넌 빠져있어. 난 그 가능성도 버리지 않겠어. 너 같이 촐랑거리는 애가 위험한 일에 끼지 않으면 나도 신경 쓸 일 없으니 오히려 좋지. 낭비할 시간이 없어, 내가 직접 찾으러 갈 거야.”

그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곧바로 그의 어깨를 떠밀며 다시 눕혔다.

“앉아, 제이미!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환자면 잠이나 쳐잘 것이지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제발, 펠릭스. 나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이러지 마. 아이작을 구해야 해.”

“힘들어? 힘들다구? 그 애 누나는 나야! 네가 그 애 형인 게 아니라고! 누가 더 힘들 것 같은데? 쓰잘데기 없는 책임감 가지고 헛소리 좀 작작해! 나도 너만큼이나 절박한 심정이라는 걸 몰라?!”

“그 앤 내 동생이나 다름없어, 내가 형이나 다름없다는 소리야. 알아?! 그런데 왜 내가 책임감을 갖는 게 쓰잘데기 없다는 거야? 네가 뭔데 그걸 마음대로 정해?!”

그 때 갑자기 병실 문이 삐걱거리면서 열렸다.

“제이미 애로우?”

베이커 형사였다. 그는 당황한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두 사람을 향해 침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들 앞에 내보였다.

“보아하니 충분히 회복된 것 같군요. 일어나시죠.”

제이미는 형사의 손에 들린 것을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구속 명령서였다.

“제이미 애로우, 보안 협약 위반 혐의로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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