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학적인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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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꽤 훤칠한 것처럼 보이는 남성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한창 때는 운동선수라도 했음직한 모습이었다. 그는 간간히 감탄사를 터뜨려가며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기색으로 최근 기사를 읽어나갔다. 베이커 형사는 그의 앞자리에서 컴퓨터를 사이로 제이미와 마주하고 문서 작성 프로그램과 씨름하고 있었다. 가끔 다른 창을 띄워 참고할 증거 자료를 찾으면서, 상부에 보고할 그럴 듯한 공식 문안을 만들기 위해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는 중이었다.

“거기서 뭘 했다고요?”

“대체 몇 번씩이나 말합니까, 펠릭스랑 만났다니까요.”

“무슨 대화를?”

“열심히 하고 돌아오라는 엄마 같은 작별 인사.”

“거 이럴 때 그 놈의 유머 감각 좀 자랑하지 맙시다.”

“진짜라고요, 빌어먹을.”

베이커 형사는 도무지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설렁설렁’인 지금은 저번 수사할 때 본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다 잡았다 이건가, 제이미는 맥이 풀렸다.

“여자 친구라도 됩니까?”

“여, 여자 친…… 소꿉친굽니다.”

“좋겠군요.”

“예…… 예? 뭐라고요?”

“면회 올 여자 친구도 있어서 좋겠다고요.”

“이봐요,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흔 하고도 다섯 번째죠. 네, 저도 그 말 마흔 다섯 번째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미는 분통이 터졌다.

“도대체 내 알리바이 확인이나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카메라에 다 찍혔는데.”

“근데 왜 내 말을 안 믿는 겁니까?”

“여기 있네요, 당신.”

베이커 형사는 모니터를 돌려 제이미에게 보여주었다. 감시 카메라 화면에는 자신이 기지 밖에서 막 들어오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보이죠? 여기 밑에 시간. 3층에 있었다던 당신 말하곤 다른데요.”

“말했잖습니까─”

“그 말도 한 서른 번은 들은 것 같네요.”

“나랑 똑같이 생긴 자식이 이 기지에서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좀, 확인이라도 제발!”

베이커 형사는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며 건성으로 물었다.

“물어보죠, 당신. 일란성 쌍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님이 녀석의 존재를 숨겼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유전자학의 권위자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박사의 인큐베이터에 DNA 샘플을 주입한 적은 있나요?”

“매드 사이언티스트? 여기 재단도 쳐줍니까?”

“장난이 아니고, 진짜 웃긴 친군데 이거.”

신문지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이미의 보안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것 봐요. 단순히 닮은 수준이 아니잖아요. 사건 장소에서 발견된 토마토에서도, 당신 DNA가 나왔는데 그럼 어쩝니까? 기지에 침 흘리고 다니다가 누가 그걸 주워다 쓰지 않은 이상 당신이 베어 먹은 게 확실하잖아요. 게다가 치아 자국도 일치하고. 언제까지 도플갱어 타령입니까.”

“뭐, 뭔, 뭐…….”

“거기서 뭘 한 겁니까? 작전 회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신 거 같은데…… 맞는지 아닌지 대답만 하쇼. 말이 통할 인간처럼 보이니까 순순히 우리 패를 보여주는 겁니다. 가설은 이거요. 당신은 D계급 인원들에게 탈출 방법을 제시하고, 탈출 직후 ‘으스스한 언덕’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경보가 울렸을 때 기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싶어서였겠죠. 필요한 허점을 모두 파악하고, 쓸모없어진 D들은 모두 죽게 둔다. 옛 친구들을 쏠 때 기분이 어땠을랑가 모르겠네. 그 뒤 혼돈의 반란과 접촉해서 정보를 넘겨주고 이번 침입 사건을 벌였다. 맞습니까?”

제이미는 답답했다. 그들은 완전히 헛짚고 있었다. 이번 D계급 탈주 사건은 아이작을 재단에 끌어들이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 사실을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D계급 인원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던 자신들에게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만한 일을 벌인다는 것은 분명 아이작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제이비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이작을 역으로 채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그 녀석의 생존 여부조차도 알 수 없지만.

“모릅니다.”

“에이, 우리도 다 아는데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곱게 말할 때 대답하세요. 자백하면 '말소'는 면할 테니.”

“내가 가보질 않았는데 어떻게 아냐고요!”

형사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알을 굴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박사님, 이런 정신병자가 제대로 된 첩자일 리가 없잖아요. 잔챙이 같은데요.”

“글쎄 애초에 첩자가 아닙니다. 이 기지엔 제가 ‘두 명’ 있다니까요.”

“퍽이나…….”

“저렇게 애원하는데 확인이라도 해 줘.”

신문지 뒤의 목소리였다. 베이커 형사는 별 수 없이 키보드를 두들겨 3층 복도 카메라 촬영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제이미는 거기 찍혀있었다.

“뭐야? 허, 참.”

“있죠? 있잖아요?”

“그러게요, 진짜네.”

“뭐라고?”

“박사님, 이 인간, 동시에 두 군데에서 찍혔어요.”

신문지가 곧장 치워지고 휠체어가 앞으로 굴러왔다. 베이커는 모니터를 다시 자신 쪽으로 돌렸다. 박사라고 불린 남자가 모니터에 띄워진 두 개의 녹화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마를 문질렀다.

“녹화 데이터가 뒤바뀐 게 아닐까 하는데.”

“그럼 이거랑 똑같은 장면이 언젠가 찍혀 있겠군요. 아니면 공백이라도 있겠죠.”

형사는 몇 십분 가량을 녹화 자료 비교에 투자했다. 제이미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루하게 바라보는 동안, 두 사람은 모니터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오히려 제이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빌어먹을, 진짜 두 놈이 판을 치잖아.”

이 상황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기이하다기보다는 일처리가 복잡해졌다는 데에 난감해하는 것에 가까웠다. 형사가 고개를 돌려 짜증이 샘솟는 얼굴로 물었다.

“왜 미리 보고 안했습니까?”

“알잖아요. 어차피 안 믿을 테니까요.”

제이미는 이들을 신통찮게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 기다려보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지 그래요?”

형사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제이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저도 모른다니까요…….”

“……크으, 잘 되가나 싶더니만 또 이 꼴이군.”

“저는 이만 가도 되겠지요?”

“아니, 음, 그러니까, 당신이 이 둘 중 어느 쪽인지 증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제이미 씨는 나갈 수 없습니다.”

“그거야 그 쪽에서 해결할 문제죠. 당신들은 제게 혐의가 있다는 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제 입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니 구속 명령서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겠죠. 틀립니까? 전 가겠습니다.”

“이런, 망할, 항상 이렇게 일이 꼬이네.”

뒤통수를 긁으며 한탄하는 형사를 뒤로하고, 제이미는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멍청한 친구는 아니네요, 박사님. 그래도 어떻게 된 일인진 모르는 것 같아요. SCP-222를 쓴 거겠죠? 레퍼토리 안 바꾸나?”

형사는 수첩을 꺼내들고 무언가를 끼적거렸다. 패닝 박사의 입이 열렸다.

“그래, 그렇지만 이번엔 좀 이상한 걸. 클론이 어떻게 저렇게 공개적으로 돌아다닐 수가 있지?”

“그러게요. 어떻게 어떻게 정신 상태를 유도해서 이용해먹는 게 아닐까요?”

“그럴 지도. 그래도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멍청하지 않은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저 친구의 클론이나 그 녀석이랑 맨날 붙어 다니는 여자, 아니면 둘 다 심부름꾼 역할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겠어요.”

패닝 박사는 휠체어를 움직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기지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어. 이번엔 빠져나갈 수 없을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캬, 놈을 추적한 지 벌써 6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첩자 놈들 자기 신상 숨기는 거 하난 대단하다니까요.”

“자네에겐 6년이겠지만, 난 벌써 10년을 넘은 것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놈이 어디 숨었는지 알 길이 없었지……. 그래도, 놈의 수단을 간파한 이상 이제 순순히 도망치진 못할 거야. 이 기지 안에 놈이 있어. 이만큼 바싹 따라온 건 처음이라고 봐야겠지.”

“뭐, 멍청한 놈도 아니고 근처까지 쫓겼다는 건 진즉에 눈치 챘을 테지만…… 도망치면 어떡하죠?”

박사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다시 신문을 집어 들었다.

“‘TP' 정도의 떡밥은 쉽게 포기하기 힘들지. 아마 물 거야……. ……멸종된 여행비둘기의 발견이라.”

“아, 그거. 이 근방이죠? 11년 전 사고의 영향일까요?”

“그럴 거야. 타키온 펄스겠지. 충격파의 범위가 약 17km 정도였으니…… 그렇지만 시간대 범위를 측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군. 게다가 활성화 주기도 불안정하니까. 좀 쉴 만하면 새로운 게 불쑥불쑥 나타나니 원……. 아직까진 청정 작업을 시도하기는 힘들 거야. 관리 인력이 조금 더 고생해야지 뭐.”

“전 그게 생물에도 적용될지는 몰랐어요. 좀 으스스한데요.”

“생물한테 적용이 되니까 그 연구에 투자를 한 거겠지.”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렇지만 사람도 그런 식으로 나타나면……?”

“괜찮아, 재단에서 사고 직후부터 철저하게 관리했으니. 나와도 그거 있잖아, ‘데이터 말소’.”

“흠, 그렇군요, 역시 괜한 걱정이구만. 그래도 들어봐서 나쁠 거 없잖아요. 찝찝한 거 다 사라지고 좋네요. 이제 데이터 접속 내역만 감시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요.”

“글쎄…… 하지만 잘 모르겠군. 저 제이미라는 남자와 빨강머리 여자…… 펠릭스라고 했나? 서버실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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