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추적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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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임시로 배정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부상자도 많고 멀쩡한 사람들은 모두 잔업으로 바빴기 때문에 방은 텅 비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보고 그는 살짝 놀랐다. 펠릭스였다. 그녀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겸연쩍은 듯이 서있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살짝 놓였다. 그는 먼저 입을 열었다.

“아, 펠릭스.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 펠릭스. 아까는 뭐가 뭔지 도통 이해가 안 되서…… 불쑥 화부터 냈어. 사과할게.”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살짝 웃어보였다. 제이미에게는 기쁘지 않을 수 없는 희소식이었다. 이 미묘한 공기 속에서 그녀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헛기침을 하고 그동안 말 하려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음, 펠릭스, 내가 취조실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그녀는 흥미가 동한 듯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사망자 명단에 없어, 그렇지?”

펠릭스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무슨 말을 기대한 거지? 제이미는 잠깐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곧이어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몰아내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추측에 따르면, 아이작은 이곳에 고의적으로 끌려들어온 거야. 데이터베이스에도 올라오지 않는 비밀스러운 실험을 위해서. 그런데 습격 사건이 터지면서 아이작이 없어졌어. 시체도 없고, 그냥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지. 어때? 내 생각인데, 아이작은 혼돈의 반란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뭐?”

펠릭스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이며 자신의 가설을 풀어놓았다.

“이 기지가 공격당한 타이밍과 겹치는 미심쩍은 부분은 그 기밀 실험밖에 없어. 아마 아이작만이 가능한 무언가, 결과적으로는 기밀 프로젝트가 탐났던 혼돈의 반란이, 스파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이번 일을 꾸민 거겠지. 아이작이 놈들에게 붙잡힌 거야.”

“아이작이?”

“그 말은 곧 아이작이 아직 살아있다는 얘기가 되겠지. 그렇다면 아이작을 되찾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역시 아이작이 참가하게 될 실험을 알아내야 한다는 거야.”

그녀는 불안하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되물었다.

“결국 원점이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니.”

제이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팔짱을 꼈다.

“서버실에서 했던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지. 난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에 사고로 폐쇄된 기밀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어. 그리고 정확히 11년 전에, 아이작의 납치 소동이 일어났었지. 몸값 요구도 없었고, 그냥 사라졌다가 이틀 뒤에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아이작이 나타났던 그 사건. 이 사건에서도 이상한 게 있긴 했는데, 아이작이 사라진 지 하루가 다 가는데도 너희 부모님께선 실종 신고는 커녕 아무 대처도 하지 않은 것.”

펠릭스는 이제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의 쥐어뜯다시피 하며 초조하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제이미는 그녀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가설이 너무 그럴듯한 나머지 도취되어 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난 스파이의 아이디로 요구된 실험 요청 목록에서 기억 재생 장치에 대한 걸 발견했어. 당연히 잃어버린 아이작의 기억을 복구시키기 위한 것이겠지. 재단에서 아이작이 그 날 그 프로젝트에 대해 무언가를 봤던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지, 우린 부모님 덕에 자주 이 기지에 들락날락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만한 꼬마도 봤을 만큼 뭔가 크게 터졌던 일이라면, 아마 사고가 일어났던 당일이었을 거야. 그렇다면 재단에서 아이작의 기억을 소거시켰을 게 당연해. 레인 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어. 아이작이 재단에 안전하게 있었다는 걸 연락을 받고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납치 소동으로 번졌던 아이작의 이틀간의 공백은 기억 소거와 사후 처리를 위한 회복 기간이었겠지. 어쨌든 기밀 프로젝트는 그 사고로 폐쇄됐어. 그런데 혼돈의 반란 측 스파이가 이것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뒤 아이작을 수소문해서 다시 끌고 들어오게 한 거야. 그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그들의 손에 넣기 위해. 기밀 프로젝트 ‘TP'에 대한 걸 말야.”

“그…… 그걸 어떻게…….”

펠릭스는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제이미는 그제야 펠릭스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RedTide라는 단어를 검색해봤어. 스파이의 계정이 맞는 것 같더라구. 페이지 접속 내역에 아이작 관련 글이 주르륵 떴어. 기억 재생 장치랑 'TP'에 대한 것도. 근데 너 왜 그래? 괜찮은 거야?”

“아니, 아냐…… 괜찮아. 그냥 좀 몸이…….”

“쉬는 게 좋겠다. 리지웨이 아저씨한테는 내가 말씀 드릴 테니까, 넌─”

“괜찮다니까! 계속 해봐, 제이미.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제이미는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기세에 위축되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게…… 사실 나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그냥─”

“어쩔 생각인데? ‘TP’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라도 파보시려고?”

“그래야지. 내 가설이 들어맞으려면, 그 프로젝트는 이 기지에서 시행됐어야 해. 그러지 않고서야 평생 이 근처에서만 살았던 아이작이 기밀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 리가 없잖아? 그러면 이 기지에 적어도 11년은 있었던 게 확실한 리지웨이 박사님께 물어보면─”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리지웨이 박사님이 모르면 어떡할 건데? 기밀 프로젝트였다며?”

펠릭스는 자꾸만 그의 말을 끊었다. 제이미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이상했다.

“펠릭스, 왜 이래?”

“뭐?”

“거부 반응이 너무 심하잖아. 네 동생 구하자고 하는 일인데 왜 그렇게 노골적으로 반대야?”

“내…… 내가?”

“네가. 네가 무슨 투로 말했는지 녹음해서 들려주고 싶다.”

“나, 난 그냥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미로…….”

“뭐 좋아. 어쨌든 리지웨이 박사님께 말해볼 테니까, 넌─”

“내가 할게, 제이미!”

펠릭스의 목소리는 굉장히 다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이미는 수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 오늘 많이 이상하다. 알고 있지?”

“나, 난─”

“아까부터 아이작 얘기만 나오면 안절부절 못하고, ‘TP’ 때도 마찬가지야. 너 뭐 나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어? 따로 알고 있는 게 있는 거야?”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이미는 그녀를 지켜보다가 소리 질렀다.

“대체 뭐가 문제야?! 말을 해봐!”

“난 네가…… 이 일에서 빠졌으면 해.”

제이미는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뭐라고?”

“이건 위험한 일이야, 제이미. 난 네가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아.”

그녀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무엇을 가지고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을 정한듯 싶었다. 그러나 제이미는 그 결정이 자신에게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위험하긴 너도 마찬가지야, 펠릭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야. 믿어줘, 제이미. 물론 이건 모두에게 위험한 짓거리지만, 누군가에게 있어서 ‘절대로’ 끼어들어선 안 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만 빠져 줘, 제이미. 다시는 ‘TP’에 대해서도, 아이작에 대한 것도 파고들지 마.”

펠릭스는 차가운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뭐, 뭐라고?”

그녀는 제이미를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제이미는 얼굴을 문지르다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유라도 알자. 내가 끼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

펠릭스는 우뚝 멈춰 섰다.

“만약 사실을 알게 되면 네가 날…….”

그녀는 잠시 그렇게 서 있더니 고개를 흔들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제이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펠릭스가 사라진 방향만 바라보았다.

잠시 뒤, 문이 다시 삐걱거리며 열렸다. 제이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펠릭스라고 생각하고 담은 말은 갈 데를 잃고 입 속에서 맴돌았다. 그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눈앞에, 또 다른 제이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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