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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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주먹을 쥐고 벽을 때렸다. 억울하고도 분통이 터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얼얼한 손을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갔다.

그는 제이미를 보았다. 멀쩡하게 웃고 떠드는 자신의 본모습을.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바로 그 제이미가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우주의 이단자, 그는 자신을 그렇게 묘사했다.

제이미는 외투 깃을 최대한 세워 얼굴을 가렸다. B동에 숨어있는 것은 위험했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위험했다. 혼돈의 반란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찾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숨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나은 길이었다.

기절한 뒤 눈을 떴을 때, 그는 폐허 위에 쓰러져있었다. 몸 위에 타다 만 천 조각이 덮여있어서 구출팀이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검은 방에서 어딘가로 끌려 나가 옮겨져 묶인 뒤 고함 소리와 함께 일어난 화재 연기로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사실이었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제이미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끔찍한 시간이 지나가고 결국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스파이는 마침내 그를 포기했다. 자신을 화재 사고로 위장해서 태워 죽여 처리하려고 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이를 갈았다.

또 다시 한 사람이 스쳐지나갔다. 제이미는 제멋대로 올라온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이런 식으로 숨어 지내는 것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른다. 이 기지에 있는 한 자신은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기지를 나가서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몇 번이고 잘근잘근 씹은 끝에 부르튼 입술에서 다시 피가 났다. 자신은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그저 오리지널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마음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불공평했다. 그의 기억이 곧 자신의 기억이고 그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건만, 자신을 위한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 역시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모든 것을 가로채갔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스토커라도 된 듯 자신의 원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머리로는 이미 납득하면서 자신을 유치하다고 욕하고 있었지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었다.

그는 임시로 배정받았다는 자신의 방 앞까지 왔다. 아니, 자신의 방은 아니다. 그는 복도 뒤편에 숨어서 방의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방 안에 펠릭스의 모습이 보였다. 제이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눈을 돌렸다.

서러움이 북받치면서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 제이미는 순간적으로 방문을 열어젖히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멈칫거리면서 방문을 쏘아보던 그는 우연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내를 보게 되었다. 분명 아까 전에도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자신을 고문하던 그 연구원 자식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더욱 움츠렸다. 혼돈의 반란의 첩자는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는 못하고 제이미가 들어간 방만을 감시 중인 듯 했다. 그가 복제품인지 원형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혼돈의 반란, 놈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제이미는 그를 관찰하면서 제이미와 펠릭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절망적인 얼굴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틈 사이로 제이미가 멍청하게 서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병신 같은 자식. 저 자리에 내가 대신 서 있었다면. 그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상상을 고집했다. 분명 그것은 불가능했지만, 또한 너무도 포기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는 다시 첩자를 노려보면서 잠시 그 생각에 빠졌다.

방문이 열리는 것을 본 제이미가 정신을 차렸는데 모자를 눌러 쓴 누군가가 방에서 나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제기랄! 저 자식은 또 언제 들어간 거지! 내가 저렇게 인기가 많은 자식이었나. 그는 이제 모든 일에 화가 났다.

방 안에 있던 제이미는 잠시 방 안에서 생각에 잠기더니 복도 한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를 감시하던 남자는 제이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복제품은 그를 따라가 마음껏 패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제이미의 뒤를 따라갔다. 제이미는 리지웨이 박사를 만나기 위해 임시 병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이미는 박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바쁜 부모님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지냈던 자신들에게 괜히 찾아와 함께 놀아주셨던 아저씨. 이제는 실없는 바보 충고만 하는 아저씨였지만 그럼에도 제이미는 벌써 그가 그리웠다. 병상 앞에 서있던 박사는 진짜 제이미를 보고 손짓하며 한구석의 방으로 불렀다. ‘진짜’ 제이미? 그렇다면 자신은 가짜 제이미란 말인가? 리지웨이마저 잃은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외톨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억지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억지 같은 방법, 그렇지만 더 이상 불가능하지는 않은…… 끔찍하지만 정당한 방법. 그 때문에 사라져버린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그는 박사와 함께 대기실로 들어간 제이미가 나올 때까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숨어있었다. 콧노래라도 부르는 듯 그가 종이 가방을 들고 몸을 흔들거리며 다시 돌아갈 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뒷모습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리지웨이 박사는 방을 나선 뒤 다시 간이 수술실로 향했다. 제이미는 천천히 걸어가서 방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그는 망설이다가 도어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열리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주위를 살핀 뒤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장 벽 위쪽에 붙어있는 찬장을 뒤졌다. 나중에 가서 그는 만약 그 때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거기에 있었다. 늙은 의사에겐 필요 없는 물건일 것이다……. 그는 자그마한 권총을 꺼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를 죽인다면 자신이 그 자리를 꿰찰 수 있다. 혼돈의 반란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복제 인간의 행방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숨지 않고 당당히 복도를 걸을 수 있다. 맡은 일이 끝나고 리지웨이 박사와 맥주를 나눠 마실 수 있다. 펠릭스와 계속해서 웃으며 떠들 수도 있다.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

제이미…… 그가 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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