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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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 안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온통 쑥대밭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모조리 밖으로 빠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침대도 커버가 찢어진 상태로 들쑤셔져 있었다. 옷장에서 마구잡이로 집어던져진 옷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주머니도 하나하나 모두 뒤져본 듯 했다.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뭘 노린 건지 감도 잡지 못 하겠으니까. 제이미는 종이 가방을 내려놓고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앉혔다. 찢어진 틈으로 싸구려 솜이 날렸다. 그는 기침을 했다.

단순한 금품 절도? 그는 그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에게는 훔쳐갈 만한 남부러울 물건이 없었다. 현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곳 직원들은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외부인이 여길 털었을 리도 없을 테니…… 정신병자가 화풀이로 저지른 짓이 아니라면 이번 사건과 연관되었을 게 뻔했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로 침입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위협을 주기 위한 것일 지도. 어쩌면 이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었다. ‘침대 시트를 찢은 것처럼 너도 조금만 더 파고들면 찢어발겨지리라.’ 물론 효과적이었다. 제이미는 자신의 방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첩자의 존재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옷의 주머니까지 뒤진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냉장고를 향했다. 문을 열자 난장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선반에서 굴러 떨어져 터진 토마토 냄새가 확 올라왔다. 아마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리지웨이나 펠릭스 둘 중 하나가 채워놓은듯 싶었다. 제이미는 멀쩡한 녀석 몇 개를 추린 뒤 구석에 숨어있는 양상추 샐러드와 함께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치즈는 녀석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빼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위쪽의 선반에서 마구잡이로 뒤엉킨 양념 병들 사이로 식빵 한 꾸러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 됐어요, 됐어! 안 먹는다니까!”

어렸을 적, 집을 뛰쳐나가면서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그 때는 이상하게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토마토에 싫증이 나 잔뜩 성질을 부렸다. 그제도 토마토, 어제도 토마토였던 날, 기지에서 얻어왔다면서 집으로 토마토 한 박스를 통째로 들고 오며 함박웃음을 짓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는 거지만, 남기면 혼이 날까 억지로 먹던 것을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해서 일부러 더 챙겼을 거라고…….

식빵을 반듯하게 자르고 샐러드 접시에서 양상추를 골라 위에 깐다. 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얇게 썬 뒤 양상추 위에 올려놓는다. 생각해보니 들어가는 것이 너무 빈약할 것 같아 냉장고를 다시금 열어본다. 햄 같은 게 어디 없을까?

물론 자신도 그게 부모님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날이 주말이었는지, 아침을 굶은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바로 놀이터로 직행했다. 대여섯 명이 모래 위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지만 펠릭스나 아이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혼자 그네에 앉아 토마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햄은 없었지만, 더 좋은 것을 발견했다. 원래 누가 쓰던 방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죄의 말을 중얼거린 뒤에 냉동 스테이크를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넣으려다가, 뜨거워지면 썰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샌드위치 햄과 비슷한 두께로 자르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를 샌드위치에 쓰려니 왠지 고급 음식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 들어 묘했다.

그는 어렸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 ‘가난’한 것은 사실이었다. 당연하지 않을까, 펠릭스 같은 아이들은 항상 접시 위에 소시지가 올라온다고 하는데 자기 집에서는 옥수수 캔하고 빵이랑 치즈로 때우니. 그 와중에 공짜로 음식을 얻을 기회가 왔으니 그게 아무리 토마토라고 할지라도 부모님이 마다할 리가 없었다.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를 보다가 문득 냉동 스테이크만 넣고 돌리면 물기가 없어서 너무 푸석푸석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전자레인지를 중지시키고 물 한 컵을 따라 스테이크 옆에 놓아두었다. 다시 가동시키려는데, 아까 스테이크를 몇 분정도 돌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할까? 고민됐다.

요즘 들어 자꾸 토마토를 가지고 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부모님이 그 맛에 꽂힌 것 같았다. 자신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취향이었지만, 그래도 철 든 아이가 이해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돌아가서 부모님께 화냈던 걸 사과하자, 그리고 억지로라도 토마토를 맛있게 먹어보이자. 그렇게 생각한 어린 제이미는 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뭔가 부족해보였다. 원래라면 치즈를 넣었겠지만, 이건 자신의 몫이 아니니까……. 땅콩버터라도 넣으면 낫지 않을까 싶어 선반을 다시 열고 양념 병을 뒤적거려본다. 문득 이 곳은 자기 방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제이미는 현관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남자의 행동은 영화에서 보았던 ‘잠복 수사하는 사복의 경찰’과 너무 비슷했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며 초조한 듯 발을 탁탁 굴렀다. 초인종을 연달아 누르던 남자는 자신을 향해 쭈뼛쭈뼛 걸어오는 제이미를 발견하고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치즈도 없다는 것을 그제야 확인하고서, 스테이크 위에 그냥 샐러드를 한 번 더 얹은 뒤 빵으로 덮는 것으로 끝마쳤다. 이런 식으로 식빵을 다 써서 다섯 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펠릭스는 두 개만 먹고 살찐다면서 안 먹으려고 할 테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빵을 구워서 토스트로 만들 걸 그랬나?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정신 사납게 구두로 바닥을 계속 두드리면서 제이미에게 부모님의 죽음을 알렸다. 부모가 모두 죽는 경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 그는 머리를 긁으며 잠시 꼬마를 바라보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고개를 숙이고 형사의 발만 바라보았다. 쿵, 쿵, 발 구르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레인 씨 댁에 양자로 들어가면서 겪은 동정의 눈길과 어색한 관계, 기억을 잃은 아이작과 그가 나타날 때마다 눈치만 살피던 펠릭스 사이에 부대끼게 된 미묘한 위치,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야 했던 애물단지로서의 책임감. 그 온갖 것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들이, 지금 벌어지는 일들로 말미암아 위험에 빠졌다. 다시 짓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혼자서 아이작을 구하려 하고 있다. 자신이 그녀를 의심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면서.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마음이 편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그녀가 혼돈의 반란의 첩자라고 하던 ‘제이미’의 말을 이제 믿지 않았다. 제이미는 그녀를 뒤쫓아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작, 펠릭스, 자기 자신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아니, 쓸데없이 무게 잡지 말고 정직해져도 좋을 텐데……. 그는 종이 가방의 내용물을 비우고 펠릭스를 위해 싼 샌드위치를 넣었다. 가방에 원래 들어있던 ‘선물’은, 확실히 이 상황에 나쁘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제이미’라는 녀석는 누구 편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뭐 지금은 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은 없겠지.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그는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열었다. 그는 바닥의 보관 용기에 쌓인 과일들을 뒤적거려 아래에 깔려있는 권총을 꺼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걸 털리진 않았군.’

제이미는 허리춤에 권총을 집어넣고 종이 가방을 들었다. 그는 방 한가운데에서 “언젠간 웃을 날이 오겠지”를 마법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연달아 중얼거리다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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