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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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가 컴퓨터를 끄고 막 자려던 참이었다. 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격렬한 노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참을성이 없는 듯 노크는 문까지 다가가기도 전에 두들기는 소리로 바뀌었다. 같은 방을 쓰는 동료들의 항의에 쫓겨 제이미가 허둥지둥 문을 열어보자 눈 앞에 펠릭스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펠릭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

“전화는 왜 안 봐? 따라와, 지금 당장!”

펠릭스는 제이미가 뭐라 물을 틈도 없이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제이미는 얼떨떨하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밖에 묻지 못했다.

“어디로?”

“외부 강당! 지금 오리엔테이션 하는 곳!”

펠릭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제이미는 별 수 없이 따라 뛰면서 휴대 전화를 꺼내 보았다. 문자가 여덟 통, 부재 중 전화가 다섯 번이었다. 펠릭스 성격을 생각해볼 때 문자 한 번에 전화 두 번은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날린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다급한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외부 강당에서 하는 건 D계급 오리엔테이션일텐데…….’

제이미는 강당에 도착할 때까지 혼자 골치를 썩이다가 펠릭스가 혹시 오리엔테이션 강사로 나오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상상)까지 하고 나서야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그 이상으로 심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당에 도착한 제이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펠릭스가 스탠드로 통하는 오른쪽 계단 위에서 그를 불렀다. 제이미는 이제 느긋하기까지 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서, 난간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는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왜, 무슨 일인데. 지금이 몇 신 줄 알고 손윗사람을 마음대로 오라가라…….”

제이미는 펠릭스가 조금도 웃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뭐야? 진짜 무슨 일이야?”

“저기, 열다섯 번째 줄, 뒤에서 일곱 번째 봐 봐.”

펠릭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가보니, 펠릭스와 마찬가지로 적갈색 머리를 가진 앳된 남자가 초조한 듯 아무데도 시선을 주지 못하고 불안하게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껏해야 갓 스무 살을 넘긴, 어쩌면 10대라고 해도 믿을만한 인상이었다. 제이미는 낯이 익은 그 모습에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녀석 혹시…….

“저거, 아이작 아니야?”

제이미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그건 아이작의 모습이었다. 10년 이상 한 집에 살아왔던 그에게는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제이미는 상황을 파악해보려고 노력했다. 겨우 열여덟 살의 나이에 불과할 아이작이 지금 죄수복을 입고 이 재단 기지의 강당에 서있다…… 어떻게?

“저거 아이작 아니냐고!”

펠릭스가 신경질을 냈다. 제이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제야 펠릭스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난간을 꼭 쥐고 당황한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가 혹시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제이미는 펠릭스를 부축해줄까 생각하다가, 다시 아이작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이작 레인, 펠릭스의 남동생. 의사의 꿈을 가지고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기숙사 생활 중……이었을 것이다. 제이미의 기억 속의 아이작은 벌레 하나 죽이지 못하는 착한 아이였다. 애초에 의사가 되고 싶다던 그 생각도……. 그랬던 그가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에 제이미는 큰 괴리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걱정되는 것은 펠릭스가 무슨 일을 벌일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데리고 나오자.”

“뭐라고?”

제이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데리고 나오자니까!”

“펠릭스,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거야?!”

펠릭스가 계단으로 달려가려하자 제이미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가 팔을 뿌리치려고 할수록 더 단단히 붙잡으면서, 제이미는 펠릭스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펠릭스, 지금 내려가 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 어차피 요원들한테 제지당할 거야.”

“그럼 어쩔건데? 이대로 놔두자고?”

“아냐, 그런 게 아냐,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자. 지금 네가 소란을 피우면 아이작이랑 네 관계가 전 기지에 다 퍼질거고 그러면 지금으로써는 아이작보다 네가 더 위험해져.”

펠릭스는 잠시 제이미를 노려보더니 스탠드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에, 어떻게 아이작이……. 아이작이 어떤 앤데…….”

제이미는 침묵을 지켰다. 펠릭스가 동생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동생을 아끼는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고 타박을 주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11년 전의 납치 사건 이후 아이작은 당시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누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펠릭스 역시 동생에게만큼은 부모님보다도 더 정성을 쏟았다. 그 모든 사연을 알고 있던 제이미였기에, 그는 더더욱 이번 사건이 당혹스러웠다. 정말 아이작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만큼 중죄를 저질렀을까? 제이미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제이미, 넌 아이작이 여기까지 올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해?”

제이미는 흠칫 놀랐다. 그는 펠릭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뻥뻥거리며 외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 걔는 벌레 한 마리도 휴지에 곱게 싸서 밖으로 내보내주는 애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큰소리를 친 뒤에 제이미는 난처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나 참, 소울 메이트라고 다 좋은 게 아니구먼.’

제이미와 펠릭스 사이에는 그 뒤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소집된 인원들이 각자 배정된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서있었다. 보안 요원 한 명이 그들을 향해 나가달라고 외칠 때가 돼서야, 펠릭스가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제이미.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자. 일단 아이작을 만나야 해.”

“면담을 요청하자고? 그렇지만 절차가 꽤 곤란하기도 할뿐더러, 모든 내용이 기록되잖아…….”

펠릭스는 제이미를 무심하게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익숙한 동작을 취한다는 것은 감정을 추스렸다는 좋은 신호였다.

“리지웨이 아저씨한테 부탁하자. 아저씨가 담당을 맡아주면 문제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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