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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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한 구석에서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킬킬거리고 있었다. 적갈색 머리의 소녀가 짓궂은 소년들 한가운데 서서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골목대장처럼 보이는 한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야, 너 남자라며?”

“아, 아니야…….”

“펠릭스는 남자 이름인데? 치마는 왜 입었냐?”

“아…… 아니라니까! 남자 아냐!”

펠릭스는 도리질을 치며 쪼그려 앉았다.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다.

“얼레리꼴레리! 남자가 울어!”

“넌 결혼도 여자랑 하겠다!”

“웩!”

소녀는 머리를 무릎 사이에 묻고 훌쩍거렸다.

“아냐, 아니래두…….”

골목대장이 아이들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펠릭스는 남자니까, 앞으로는 바지만 입고 다녀야 한다! 다시는 치마를 입지 못하게 치마에 흙을 뿌려버리자!”

“와!”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움큼 쥐어들었다. 그 때 뒤에서 한 아이가 그들에게 소리 질렀다.

“뭐하는 짓거리야!”

펠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 아이가 달려가서 그녀와 아이들 사이를 막았다.

“뭐야, 구석집 제이미 아냐.”

제이미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골목대장은 기분이 상했다.

“이 찔찔배기 놈들아! 한 명을 여러 명이 둘러싸서 괴롭히면 영웅이 나타나서 구해준다는 건 슈퍼맨에서 안 배웠냐?”

“웃기고 자빠졌네!”

“망토도 없는 게 무슨 슈퍼맨!”

아이들의 빗발치는 비난 속에서 자신감을 얻은 골목대장은 아까의 작전을 다시 구사하기 시작했다.

“네 이름도 여자 이름인건 아냐? 끼리끼리 논다더니!”

골목대장은 어른들이 쓰는 말을 벌써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제이미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내 성은 애로우다, 로빈훗이 쓰는 무기 말이야! 이것도 여자애 같다고 어디 놀려보시지!”

예상 외로 먹혀들지 않자 골목대장은 잠깐 주춤하더니 다시 목소리를 올렸다.

“니네 부모님이 ‘기지’에서 일한다며? 프랑켄슈타인이라도 만드는 거냐?”

“한번만 더 우리 부모님 얘기하면 네가 잘 때 프랑켄슈타인이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온다!”

회심의 공격마저 통하지 않은데다 무시무시한 역공까지 맞은 소년은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망설였다. 프랑켄슈타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이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체면상 계속 서있어야 했다. 골목대장은 입술을 깨물더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얘들아! 이 기지 출신 계집애에게 흙을 던지자!”

아이들은 손에 있는 흙더미에 다시 목표가 생긴 것이 흡족한지 마구 고함을 지르며 제이미에게 그것을 던져댔다.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 제이미를 뒤로하고 아이들은 승리의 함성과 함께 모퉁이 저편으로 달려갔다. 골목대장만큼은 여전히 프랑켄슈타인 때문에 그 날 밤 어느 방에서 자야할 지 걱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펠릭스는 꿋꿋이 서있는 제이미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이미, 괜찮아……?”

제이미는 뒤돌아서서 펠릭스를 마주보고 한껏 폼을 잡았다.

“물론! 저깟 녀석들 하나도 안 무서워!”

“하지만, 옷이…….”

“집에 가서 갈아입으면 돼!”

펠릭스는 그를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걔네들 숫자가 훨씬 많았는데 어떻게 안 무서워할 수가 있는 거야?”

해가 지고 있었다. 배경은 완벽하다. 제이미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말이 뭘까 생각했다. 그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펼치며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거든!”

펠릭스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약간 당황한 제이미는 분위기가 약간 깨지는 것을 감수하고 좀 더 부가적인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일이 벌어졌든, 좋게 끝을 보면 무조건 잘된 일이 되는 거야!”

제이미는 말하는 도중에 이 대사가 이 상황에 어울리는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추가했다.

“우리 엄마가 또 그랬어.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그는 만화에서 영웅이 늘 그러듯이 뒤돌아서서 팔짱을 꼈다. 만족스러운 끝마무리였다.

“그러니까 무섭지 않아. 언젠가는 저 녀석들 앞에서 내가 웃을 날이 올 테니까!”

“우아! 제이미 멋있다!”

그 때가 펠릭스가 제이미를 좋아하기 시작한 때였다.
 

다음 이야기 » 2013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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