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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싸늘한 기운이 전해졌다. 그것은 직후 무섭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속이 끓어올랐다. 손이 저절로 올라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천천히 살코기를 찢는 나이프처럼, 상처를 쑤시는 아픔은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종이 가방이 손에서 떨어졌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 뒤로 캐버너 소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펠릭스가 소리를 질렀다.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의 눈빛으로 소령을 쳐다보다가, 그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이건 정말 근소한 차이였다. 그 사실에 억울해해야 할까? 이윽고 무릎이 꿇렸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소령이 총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구두가 뒤로 돌아 뚜벅뚜벅 소리 내며 걸어가 버렸다. 손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피가 쏟아졌다.

이제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으슬으슬한 것이 춥다. 피가 빠져나가서 그런 것 같은데. 시야가 흐릿해졌다 말다를 반복했다. 펠릭스는 안간힘을 쓰며 뒤로 묶인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애쓸 필요 없을 텐데. 사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입이 벌어졌다. 손에 힘이 풀렸다. 고통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듯했다. 가까스로 눈을 들었다. 타오르는 해가 지평선에 걸려있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공연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눈앞에 익숙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주마등, 주마등인가?

그건 허무하게 끝났다.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주마등이 끝나면 바로 편안하게 죽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고개가 다시 떨어졌다. 얼핏 보니 펠릭스는 이제 매듭을 푸는 걸 포기하고 울고 있었다. 죽어가는 날 위해 울어주는 것이겠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숨이 가빠져왔다. 눈이 자꾸만 감기려고 했다. 아니, 벌써 감은 걸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온통 새까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쉽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고개를 숙이자, 펠릭스에게 이런 꼴을 보일 순 없지.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른해졌다. 잠이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헐떡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겨우 눈치 챘다. 숨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시원한 땅바닥이 편안했다. 눈을 감자 어둠이 날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는 것 같았다. 그래, 잠을 자자. 이 순간이 오도록 계속해서 지치고 노곤했을 이 불쌍한 몸을, 나는 그렇게 영원한 어둠 속에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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