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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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지웨이 박사가 이들에게 이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를 아직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 아이작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냐면, 10년도 더 된 오래 묵은 이야기였다.

리지웨이 박사는 그 때 잔뜩 골이 나 있었다. 갓 들어온 신입 연구원에게 할 일을 통보받게 된 기지 최고참이라는 입장으로 보나 새 프로젝트로 인해 야단법석인 주변 분위기로 보나 그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단순히 편안한 생활을 꿈꾸며 변두리 촌구석에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기지에 자원했었다. 그곳은 '보류' 판정 SCP 보관 창고 정도로만 취급당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가 바란 것은 이런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투자자 접대라는 명목으로 짜증스러운 부르주아 나부랭이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대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다. 웅장하지만 쓸 데 없이 요란한 크기였다. 박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맞는 집사(박사는 요즘 세상에도 이런 직업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으로 여겼다)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는 박사의 무례한 태도를 힘겹게 무시하면서 응접실로 안내하고, 주인을 부르기 위해 다시 사라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복도 쪽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두 명이 방문을 살짝 열고 틈으로 박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던 리지웨이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여자 아이 쪽은 까르륵거리며 다시 저 쪽으로 뛰어가 버렸지만, 그보다 키가 작았던 남자 아이는 그 자리에서 박사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대담하게 문을 열고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리지웨이는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문지른 뒤, 최대한 활기차게 미소지으며 소년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안녕, 꼬마야! 네 이름은 뭐니?"

아이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마치 외워놓은 것처럼 대답했다.

"제 이름은 아이작 레인이고 일곱 살이에요. 방금 보신 제 누나는 펠릭스 레인이고 저보다 두 살 더 많고요."

아이작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9살이죠."

리지웨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좀 더 골칫덩이라는 얘기다.

"아저씨 의사에요?"

그는 박사가 걸친 흰 가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흰 가운이면 죄다 의사인줄 아느냐'라고 말하려다가, 사실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그렇게까지 쫄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던 리지웨이는 가능한 한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아저씨는 의사란다."

"우와, 저 의사 처음 봐요."

아이작은 그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박사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렇구나, 꼬마야. 이제 곧 네 아버지가 오실 텐데 잠깐 어디 놀러가 있지 않으련?"

그의 회심의 한 마디에 꼬마의 표정이 다시 뚱해졌다.

"난 꼬마가 아녜요."

"아니, 미안하지만 꼬마가 맞단다."

"게다가 난 놀러갈 데도 없단 말이죠."

아이작은 박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조적으로 이렇게 내뱉은 뒤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리지웨이는 아이의 뒷모습을 찝찝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그가 나간 문으로 유력한 투자자 후보가 들어오자 다시 입 꼬리를 들어올렸다.


그건 생각보다 더 지루했다. 박사는 그가 급조해낸 실험 계획의 효용성과 경제적 파급력에 대해 열변했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얼굴 근육을 잔뜩 쭈그려가며 웃고 박수치고 떠들었다. 항상 두루뭉술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지껄였지만, 개미 더듬이만큼이나 상관없는 상승 그래프와 경기 추세 도표를 눈앞에 대고 어지럽게 흔들어대자 남자는 마침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면서, 리지웨이는 자신이 이 짓을 조금만 더 계속한다면 이십…… 삼십 년은 일찍 죽을 거라고 되뇌었다.

조금도 뿌듯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으리으리한 대문을 나서 기지로 발걸음을 옮기던 리지웨이 박사는 주택가 놀이터 근처에서 아이작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혼자 벽에 기대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아이는 박사가 나타나자 예의 뚱한 얼굴을 디밀었다.

"꼬마야, 이런 데서 뭐하고 있니?"

"놀아보려고 시도하는 중이죠. 그리고 꼬마 아니라니까요."

아이의 냉소적인 말대꾸에 박사는 피식 웃었다.

"야, 어른이 말하는 데 너무하는 태도라고 생각 안하냐?"

"아저씨야말로 그게 꼬마를 대하는 말투라고 생각해요?"

"이것 보게, 아까는 꼬마 아니라더니."

아이작은 자신이 범한 오류에 순간 당황하여 말대답을 멈추었다. 리지웨이는 그의 옆에 기대서서 말을 이었다.

"왜 저 녀석들하고 놀지 않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냐?"

아이작은 코를 문지르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날 보고 '토마토'라고 놀려요. 머리가 좀 빨갛다고. 바보 같은 짓이죠."

"네 누나는?"

"누나는 구석집 제이미 형이랑 놀러나갔어요."

아이는 불만 가득한 말투로 얘기했다.

"제 생각에 둘이 사귀는 것 같아요."

리지웨이 박사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작은 키득거리는 그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도 제가 우스워요? 난 도대체 사람들이 왜 절보고 피식거리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요."

"꼴에 말이다, '꼴에'."

"뭐라구요?"

"너 정말이지 웃긴 녀석이로구나. 아저씨가 아무래도 앞으로 네 집에 자주 들락날락거리게 될 것 같은데, 우리 친구하지 않으련?"

"꼬마하고 아저씨하고 친구가 된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아이작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리지웨이는 팔짱을 끼고 그에게 끄덕여보였다.

"물론이지, 이 토마토 꼬맹이 녀석아! 너 의사는 처음 본다고 했지?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지 물어봐라!"

박사는 이후 레인 씨의 주택을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그 집 꼬마들과 만났다. 가끔은 '구석집' 제이미까지 함께였다. 아이들은 리지웨이와 점점 친해져서, 이제 그들의 관계는 일로 바빴던 두 집의 부모님과의 사이보다도 가까워지기에 이르렀다.


“캠핑카는 비싸, 아이작.”

두 사람이 만난 지 거의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작과 함께 '으스스한 언덕'에 올라 저물어가는 해를 구경하며 리지웨이가 말하고 있었다.

“음…… 괜찮아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작은 많이 아쉬워하는 듯 했다. 리지웨이는 그를 쳐다보다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

“글쎄, 아이작, 한 오년 만 더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그 때라도 같이 가보자, 그곳들 하나하나 전부.”

두 사람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한 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서 리지웨이는 문득 말했다.

"아이작, 만약 내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면 꼭 너 같은 애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작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는 결혼하기 싫었던 거 아니었어요?"

"그래, 그랬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구나. 덕분에 난 이제 가족이 없거든."

리지웨이의 쓴 웃음에 아이작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돌리고 붉은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발갛게 비친 얼굴이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는 듯도 했다.

"저도 같이 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심심했어요. 아빠 엄마는 일하기 바쁘고, 누나는 밖으로 놀러 다니고……. 아저씨 덕분에 형편이 좀 나아졌죠."

"'형편이 좀 나아져'? 이 쪼그만한 게……."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다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홀연히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진짜 제 아빠 같아요."

리지웨이는 움찔하며 아이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손이 움츠러들면서 아이작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아이작은 그를 돌아보더니 이를 보이며 씩 웃었다.

"그렇지만 난 아빠가 벌써 있으니까…… 삼촌 어때요?"

리지웨이는 멍하게 꼬마를 바라보다가 바보같이 입을 벌리며 크게 웃었다.

"그래, 그래! 삼촌! 삼촌 좋지……!"


"기억 소거요?"

리지웨이 박사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렇소. 그걸 보고 나서도 멀쩡히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 아니오?"

"그럼……."

"아이의 소거 절차는 이미 모두 끝났소. 이제 아이는 재단에 대한 건 전부 잊어버렸을 거요. 뭐 이번 모델을 아동에게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별다른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억이 그렇게 단순한 작용은 아니니까 말이오. 알고 있겠지만."

박사는 기지 관리자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멍하게 그가 이번 강제 전출 건에 대해 불만과 한탄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만 있다가 무기력하게 사무실을 나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억 소거 절차가 진행되었을 실험 병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지웨이는 공교롭게도 아이작이 그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막 복도로 나오는 모습과 마주쳤다. 박사는 곧장 미소 지으며 아이작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이작이 그를 쳐다보는 표정을 본 순간 그는 절망스러움 속에 팔을 슬그머니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그의 흰 가운을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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