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마무리

이전 이야기 » 2013년 1월 23일

“이…… 게 무슨 짓…….”

오리지널은 가슴을 감싸 쥐고 헐떡이며 말했다. 클론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종이 가방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걱정 마, 방탄조끼는 못 뚫을 테니. 그리고 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건 내게 꼭 필요한 일이야.”

“이게 뭐…… 피?”

“가짜 피지. 그게 핵심이라고. 펠릭스가 내 존재에 대해서 알면 안 된단 말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 가지 조언하자면, 이 일을 네가 원만하게 끝낸 뒤 얘기지만, 펠릭스에게 연결 통로 앞에서 나와 나눴던 대화에 대해 물어봐. 너도 봤지? 그 형사랑 처음 만나기 직전에 말이야. 그 대화 내용이 펠릭스의 처지를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 정도의 내용은 펠릭스가 밝혀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안 좋은 부분 찌를까봐 걱정하지 말고. 물론 그 때 대화를 했던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명심해."

제이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펠릭스가 혼돈의 반란의 첩자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지만, 클론은 더 이상의 얘기를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제이미의 가슴에서 퍼져나오는 붉은 반점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제 준비는 다 됐군. 넌 이제 리지웨이 박사님께 가서 D동으로 향하는 출입구를 물어보러 가. 나는 먼저 갈 테니까. 네가 무조건 나보다 늦게 도착해야하니까 그런 줄 알고, 따라오진 말라고.”

클론은 이빨을 드러내며 유쾌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다 왔어, 우리가 펠릭스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샌드위치를 위하여.”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아래에서, 제이미는 클론의 시체를 착잡한 심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가짜 피라니, 이런 의미였나……. 그는 입술을 깨물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다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 네게도 웃을 날이 찾아왔었기를, 그리고 우리의 바람대로 그녀를 구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 가방을 천천히 주워들었다.

샌드위치를 위하여.

그는 광장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거짓말 같게도, 얼마 가지 않아 다음 방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자마자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어라 악을 쓰고 있었다. 제이미는 권총을 꺼내들고 조심스레 문에 다가가 귀를 댔다. 캐버너 소령이 그녀를 비웃는 듯 했다. 한참이 지나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제이미는 소리 없이 문을 열고 권총을 겨누었다.

펠릭스가 방 한 구석에서 아이작과 함께 쓰러진 상태로 소령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소령은 그녀를 바라보며 제이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펠릭스가 문득 말을 멈추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뒤편을 응시하자 고개를 돌렸다. 제이미는 캐버너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반갑군, 소령.”

캐버너 소령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분명 가슴팍에 총을 맞았는데…….”

소령의 눈이 제이미의 핏자국을 훑었다.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탄조끼에 가짜 피? 하, 얕은 수에 넘어갔군.”

“제이미!”

“그래, 펠릭스! 이제 괜찮아. 내가 곧 구해줄게.”

제이미는 소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자 소령이 빈정거렸다.

“눈물겹군, 그렇지 않은가?”

“닥쳐.”

소령이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제이미는 의아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그가 총을 흔들어대며 위협했지만, 소령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만, 자네도 듣고 싶은 말이 분명 있겠지. 안 그런가?”

“왜 아이작을 잡아온 거냐?”

“저 구석에 누워있는 아이를 말하는 거지, 제이미?”

“뜸들이지 말고 말해!”

제이미가 소리 질렀다. 소령은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리더니 한 손으로 콧수염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그의 여유로운 태도가 불안했다. 주변에 그의 수족들이 숨어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저 꼬맹이는 ‘타임 패러독스’ 장치의 열쇠를 쥐고 있지. 아, 배경을 먼저 설명해야겠군. TP에 대해서 알게 된 뒤로, 나는 내 휘하의 인력을 모조리 투입해 시간 역행 장치의 잔해를 찾아내고 수 년 간의 연구와 탐색을 통해 장치를 복원하는데 성공했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제이미. 우리도 나름 엘리트니까 말일세. 우리가 혼돈의 반란인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 전에는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군. 내가 바보 노릇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비웃었겠지.”

“연기는 훌륭하더군.”

“고마워, 오, 고맙군. 사실 평가 받을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거든.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면, 우린 장치의 모양새를 복원하긴 했지만 이미 주요 기기들의 대부분은 파손되어 있었고 얻어낸 정보를 가지고선 완전한 비율로 완벽한 조립을 해내는 건 불가능했어. 그래서 완성을 해놓고 보니, 한 번 가동하면 전처럼 다시 폭발해버릴 것 같더군. 그래서 실제로 검증을 해보진 못했지.”

소령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제이미가 입을 여는 것을 다른 손을 들어 막으며,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잠깐 담배 좀 필 수 있겠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그리고서는 대답도 듣지 않고 불쑥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제이미는 초조한 심정으로 그가 불을 댕기는 것을 지켜보다가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다시 이야기를 재촉했다.

“딴청은 그만 피우고 어서 하던 얘기나 계속하시지.”

“꽤나 적극적이군, 이제껏 자네에겐 사람을 위협하는데 재능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네 뒤에서 펠릭스가 널 물어뜯을 기세로 지켜보고 있는 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 같으면 벌써 그 살기 때문에 죽었을 거야.”

소령은 담배를 씹으며 웃었다.

“농담까지 해주는 걸 보자니 자네는 역시 친절한 사람이라고밖에 볼 수 없겠는걸. 우린 그 장치로 실험을 시도해보는 대신 복원한 메모리에 남아있는 데이터만 추출해서 적합한 새 장치를 하나 더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지. 그래서 프로세스를 통째로 다운로드 받는데, 다시 보니 실행 프로그램에 잠금 장치가 걸려있더군. 원래라면 내 재단 보안 승인 코드로 해제가 가능했겠지만, 사고 당시에 장치가 강제로 셧다운되면서 그 때 지정된 설정 상태 그대로 동작이 제한되어버린 거야. 다시 말하자면, 그 때 사용했던 샘플을 그대로 사용해야 구동이 가능했다는 거지. 근데 자료가 모조리 날아갔으니 샘플이 뭐였는지 알 턱이 있나? 그건 지금 광장에 서있는 저것도 마찬가지야. 장치가 구동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설명을 해줘야 할까?”

제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 그럼 계속하지. 그걸 수정하려면 마스터 코드가 필요한데, 설정 변경이 잦은 프로토타입이었던 사고 당시에는 샘플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코드가 입력됐어. 보조 장치의 액정 화면에 친절하게 띄워줬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연구원들은 모두 죽었으니, 그 코드를 알 만한 녀석은 그걸 직접 본 저 꼬마밖에 없었지.”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냐?”

제이미는 아이작을 힐끗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다. 소령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왜냐하면 내가 저 녀석을 들여보냈었거든. 샘플을 몰래 바꾸려고 했었지. 도무지 진척이 없어서 말이야. 궁금해할까봐 덧붙이지만, 무생물을 살아있는 미생물로 바꾸는 일이었어. 그게 실수였지. 난 샘플을 정해놓고 장치를 돌리는 줄 몰랐거든.”

“그것 때문에 모두가 죽었어!”

갑자기 펠릭스가 소리 질렀다. 제이미는 흠칫했지만, 캐버너 소령은 눈을 돌리고 그녀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설정에 부합하지 않는 샘플입니다’라며 장치가 제멋대로 멈췄을 때 그만뒀다면 그걸 막을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별 일 있겠나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연구원들에게 장치를 강제로 작동시키라고 해두고 꼬마를 데리고 기지를 빠져나왔더니, 말하자면…… 그저 굉장한 소리가 났네. 그 멍청이들이 진짜로 그걸 그대로 돌려버린 거지. 감독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멀쩡하던 장치가 갑자기 고장이 났으니 속이 탔겠지만…… 그건 부주의하고 경솔한 행동이었어. 덕분에 기지 관리자가 쫓겨나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됐지. 그리고 십 년간 장치를 복원한 결과가 이걸세, 제이미. 드디어 자네 부모님의 작업이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지.”

제이미는 심신이 뒤틀리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소령은 상당히 놀란 눈치로 되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이 기술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제이미. 돈은 이제 보너스에 불과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모두를 무릎 꿇릴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게 되는 거지. 심지어 너희들 재단까지도. 그런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나?”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세계겠지. 안 그래?”

“과연, 자네들에겐 그렇겠군.”

그는 껄껄거리며 말했다. 제이미는 그 머리털이 곤두서는 웃음소리를 중간에 끊고 다시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그래서, 아이작을 어떻게 한 거냐!”

“우린 녀석을 기숙사에서 빼낸 뒤 D계급 인원들의 탈주 사건을 조장해 재단에 끌어들였지. D계급 녀석들에겐 지령을 써둔 종이를 태워버리라고 일렀건만…… 역시 못 배운 것들은 티가 나더군. 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으니 상관은 없었네. 어차피 끈질긴 추적자들은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었으니 말일세.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굳이 꾸몄느냐, 단순한 납치가 아니었느냐하면, 당연히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야. 실험 대상이 아니고서야 우리들의 장치들을 대놓고 사용할 수 없지 않았겠나. 가만, 그렇지, 우리가 만난 이래로 줄곧 저렇게 누워만 있으니 걱정이 되겠군.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린 벌써 마스터 코드를 알아내는데 성공했고 더 이상 저 꼬마를 괴롭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기억 재생 장치를 응용해서 무의식 속에 숨겨진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기술을 고안해냈다. 물론 방법이 좀 야만적이긴 하지만…… 뇌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거니까 말이야.”

“뭐라고!”

제이미와 펠릭스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 엎어졌다. 제이미는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이제 저 친구도 누웠군. 들고 돌아가기 힘들겠어.”

소령이 이죽거리자 제이미는 이를 꽉 깨물고 아껴왔던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지. 날 복제한 이유가 뭐냐?”

“마지막이라.”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빨더니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비벼 껐다.

“그래, 그렇군. 그게 가장 궁금했겠지. 하지만 미안한데, 정말 별 건 없다네, 제이미. 그건 내가 자주 써먹던 방법이야. SCP-222를 사용해서 주요 인물을 복제한 뒤 잠재된 기억을 재생시키면, 오리지널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서도 정보를 뽑아낼 수 있게 되지. 원래라면 꼬맹이의 누나인 펠릭스 양을 복제할 생각이었지만, 부하들이 이름만 듣고서는 남자로 착각해버렸지. 그래도 차라리 다행인 게, 그게 애로우 부부의 아들이었던 너였기 때문에, 우리는 네 기억을 뽑아내보기로 했지. 성과는 없었지만 말일세. 사실 네 꼬마 친구 아이작도 복제한 녀석만 사용하고 원본은 풀어줄 생각이었고, 펠릭스 양도 다시 잡아서 복제만 해놓을 생각이었지만, 10년 간의 추적이 탄력이 붙었더군. 휠체어 타고 다니던 박사는 자네도 봤지? 그 자가 이번엔 꽤나 제대로 짚었던 것 같아서, 일을 그냥 진행할 수밖에 없었네. 기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뽑아든 데이터를 챙겨 빠져나가는 것 말일세.”

그리고 약간의 적막이 흘렀다. 소령은 제이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제이미는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씹어뱉듯 한마디 던졌다.

“땅바닥과 키스하게 만들어주지.”

그가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짤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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