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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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깍.

제이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총을 내려다보았다. 어째서 발사가 안 된 거지? 그가 당황한 사이에 품에서 권총을 꺼내 겨눈 캐버너 소령이 한 발짝 떨어지며 명령했다.

“뒤로 물러나. 벽을 등지고 서게.”

제이미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따랐다. 소령이 바닥에 떨어진 그의 총을 발로 건드리며 말했다.

“보험을 들어놨지. 네 총에는 진작에 손을 써뒀어. 침대 매트리스까지 뜯어볼 녀석들이 냉장고는 안 뒤져봤다는 게 말이 되나?”

소령은 피식 웃었다. 제이미는 눈을 감았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군.”

“소령도 내게 뭔가 물어볼 생각인가? 자축하는 의미로 날 약 올리는 것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기대하고 있어.”

“오, 물론이야.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지.”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TP에 대해선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간단하지,” 제이미가 툭 쏘았다.

“아이작의 기숙사에 휴강 신청을 넣은 아이디, 그리고 네 재단 데이터베이스 아이디. RedTide."

소령은 웃음을 흘리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초보적인 실수였군. 네 덕분에 그런 바보짓은 이제 면하게 됐지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네, 제이미.”

“이제 약 올릴 차례인가?”

그는 눈썹을 으쓱하며 여유롭게 권총을 흔들어댔다.

“그래, 제이미. 몇 가지 더 물어봐도 좋네.”

제이미는 분통이 터졌지만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기로 했다. 리지웨이 박사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곧 패닝 박사의 팀이 이곳을 습격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버티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지도 몰랐다. 그는 최대한 머리를 짜냈다.

“RedTide는 무슨 의미지?”

“예상치 못한 질문인걸. 물론 대답해줄 순 있어. 붉은 조류. 우리의 목적이다.”

“피바람을 말하는 거냐?”

“직설적이군. 하지만 정확해, 우리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걸세. 세상의 전복이지. 모든 걸 그들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숨기려고만 하는 재단에 맞서서, 우리는 SCP에 대한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다른 세력들을 포섭할 생각이다.”

“포섭? 협박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우리는 재단을 무너뜨리고 난 뒤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제이미. 자넨 영리하니까.”

“세계 정복이라니, 유치하다곤 생각하지 않나?”

소령은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래, 유치하지. 아이들이 꿈꿀 법한 장래 희망 아닌가? 그렇지만 자네가 간과하고 있는 게 그걸세, 제이미. 유치한 아이들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더 끌리지. 지배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야. 우린 그저 다른 이들보다 솔직할 뿐이지. 어디처럼 역겨운 가식으로 장막을 쳐두고 뒤에서 잇속을 챙기지는 않아.”

"개소리 집어치워. 네놈들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그 원초적인 욕망을 바로 역겹다고 하는 거야."

"그것도 괜찮은 반박이지." 소령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네 생각처럼 우리가 그저 단편적인 악으로 치부되는 건 약간 억울한 일이야. 우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맞서싸우는 거다."

제이미는 이 쓸모없는 논쟁을 지속하기 위해 그의 발언을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 말을 찾았지만, 그 전에 소령이 한 발 앞서 입을 열었다.

“시간을 끌고 있군, 제이미.”

그는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만 소령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자네 수작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자넨 원군을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하나 알려주지. 왜 내가 보디가드도 없이 여기 혼자 서있겠나? 다른 스파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는 턱짓으로 저편의 숲을 가리켰다.

“바로 저기서 패닝 박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 분대 두세 개 숫자의 요원들이 중무장을 하고 매복 중이다. 그가 습격할 루트는 뻔해. 인원을 모을 시간도 없었을 테니 깜찍한 소규모 동아리일 거고. 기습을 당한다면 아무리 훈련된 엘리트라고 할 지라도 그저 우리의 밥이 될 뿐……. 자네가 들어온 그 비밀 통로라도 알려주고 오지 그랬나. 물론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으니 허풍은 말게.”

“그걸 어떻게…….”

“기지 곳곳에 숨어있는 내 눈과 귀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주겠나? 이 날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자네는 상상도 못할 거야. 무려 10년이니까, 제이미. 감히 자네가 우릴 막게 둘순 없지.”

제이미는 휑하니 뚫린 벽 사이로 그가 가리켰던 외곽의 앙상한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절망적인 심정으로 물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거냐?”

“물론 죽일 거야. 걱정하지 말게. 그렇지만 당장은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 아까는 상관없었지만…… 지금 자네가 입고 나타난 그 가짜 피 방탄조끼 때문에…… 혹시라도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검토 중이거든.”

제이미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비비 꼬아댔다. 그는 발을 서로 비볐다.

“난 철저해, 제이미. 지난 10년간 한 기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패닝 박사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던 건 그가 유능하지 못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내가 인정할 정도로 정말 뛰어난 사람이지. 그러나 그도 내가 재단의 데이터베이스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라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어. 불쌍하게도, 박사는 가짜 증거를 쫓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허탕만 치고 다닐 수밖에 없었지.”

소령은 그에게 권총을 내밀어보이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 유용한 자리를 두고 이렇게 도망칠 수야 없지 않겠나! 난 재단의 기지 관리자 자리를 버리지 않을 걸세. 그래서 제물을 만들 계획을 짜냈지. 이 권총이 누구 것인지 알겠나?”

제이미는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리고 억 소리를 냈다. 소령이 얄궂게 미소 지었다.

“그래, 자네 친구 펠릭스 양의 것이라네. 멍청하게도, 그녀는 첩자가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D동 광장 한복판까지 뚜벅뚜벅 걸어와서 이걸 바쳤지.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쉽게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됐지. 들어보겠나?”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군.”

“오, 한눈은 팔지 않아. 사실 좀 팔더라도 넌 내게서 도망칠 방법이 없지. 그럼 자랑 좀 해봄세. 난 너희들이 저 꼬마와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진즉에 파악했어. 녀석을 탈출시키려고 계획을 짜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에는 사실 너희들을 강등 처리하는 걸로 간단하게 끝내려고 했지만, 시간을 두고 보니 건방지게도 서버실까지 건드리더군. 확인해보니 TP 관련 글의 조회 수가 늘었지 뭔가. 그래서 유감이지만 너희들을 없애버릴 계획을 짜내야했지. 너와 펠릭스, 그리고 네놈들 편인 리지웨이까지 모두 말이야.”

제이미는 ‘리지웨이’라는 대목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군. 그는 그 뒤에 소령에게서 보았던 천치 같은 모습을 떠올리고 약간이나마 감탄했다. 연기는 일품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자식.

“감시 카메라로 너희들이 서버실을 해킹하는 장면을 보는데 상황이 좀 기묘하더군. 네가 들어간 사이에 펠릭스 양이 데이터를 조작하고 나오던데, 그 사실을 자네에게 숨기지 뭔가. 나로서야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지. 길을 마련해줬으니. 그녀가 혼돈의 반란의 첩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쓴다는 해결책을 말이야. 상황은 가면 갈수록 이 구도에 딱 맞아떨어지더군. 결국 소녀에게 이 이야기는 자신들의 비밀을 파헤치던 소꿉친구를 쏘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맺게 되지. 둘도 없는 친구를 살해한 펠릭스는 자살하고, 나는 혼돈의 반란의 첩자들을 지휘한 대장으로서 리지웨이를 지목해 체포한다. 게다가 TP에 대한 자료도 안전하게 챙기고 말이야. 지금도 내 노트북이 광장에 서 있는 그 장치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있지. 아무도 그걸 막을 수 없네. 정말 완벽하지 않나?”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눈앞에 놓인 희생양을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치를 떨며 손목을 이리저리 뒤틀면서 산만한 소리를 냈다.

“개자식─”

“……뭐 상관없겠군. 자네는 그저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평소에도 그 조끼를 입고 있던 거야. 방탄조끼 때문에 죽지 않았던 널, 그 머리에 또 총알을 박아 넣어야하는 입장이라면 속이 여린 펠릭스 양은 정말로 돌아버리겠지. 자살로 몰고 가기 충분할걸세.”

말을 마치고 소령은 총구를 제이미의 머리에 조준했다. 제이미는 여전히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 수고했네, 제이미.”

그 때 숲 방향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이미는 소령의 눈이 잠시 그곳을 향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차올리며 반쯤 벗어둔 신발을 소령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소령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그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종이 가방을 집어 들고 광장을 향해 달려갔다. 소령이 권총을 두어 번 연달아 발사했지만 제이미는 이미 방을 빠져나간 뒤였다.

“젠장!”

소령은 통통한 몸으로 해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민첩성을 발휘해 그를 뒤쫓았다. 총을 앞으로 겨눈 자세 그대로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제이미는 시간 역행 장치 옆에 서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종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소령은 재빨리 자리를 잡고 총부리를 들이대며 외쳤다.

“움직이지 마라!”

제이미는 움찔하더니 수갑에 묶인 두 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올렸다. 종이 가방 사이에서 그의 손에 쥐어진 샌드위치가 모습을 드러내자, 캐버너 소령은 그것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리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제이미! 죽음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는 소령의 조롱을 무시하고 떨리는 손으로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다음 순간, 그는 샌드위치에서 무언가를 입으로 꺼내 자신의 옆에 서있던 장치를 향해 집어던졌다. 소령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무슨 짓을 한거냐!”

곧이어, 거대한 구형 기기 옆에 딸린 보조 장치에서 기계음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샘플이 투입되었습니다. 스캔 중.”

“뭐…….”

소령이 장치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자, 제이미가 소리 질렀다.

“그래, 소령!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

“시간 역행을 통해 내게서 도망치겠다고? 멍청한 자식 같으니, 사고 당시에 설정되었던 샘플이 아니라면 소용없을 거라고 말했을 텐데!”

“그 시절 유난히 식탁에 자주 올라오던 토마토! 부모님께선 그걸 기지에서 받아왔다고 하셨지!”

"무슨 헛소리를─"

“고유 저항 일치. 샘플 확인. 프로세스가 곧 시작됩니다.”

"뭐라고!"

소령은 얼굴을 시뻘겋게 하며 외쳤다.

“말도 안 돼! 넌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어! 난 네게 총을 겨누고 있다, 제이미. 절대 도망칠 수 없다고!”

“도망친다고? 아니,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거다! 당신이 말하지 않았나? 반응이 일어나면 전과 같은 폭발이 또 일어날 거라고!”

“타키온 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에너지 공유 절차를 수행합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제이미는 옆으로 빠져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린 캐버너는 시간 역행 장치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는 장치에 연결된 노트북을 다급하게 만지작거리다가, 분노로 가득찬 고함을 터뜨리며 총을 들어 이제 방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제이미에게 겨누었다. 제이미는 멈추지 않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소령이 욕지기를 하며 그에게 총구를 돌리고 있었다. 그 때 구체 안에서 빛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소령이 놀란 얼굴로 몸을 돌리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시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섬광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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