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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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 박사의 사무실은 그 주인만큼이나 깔끔했다. 제이미와 펠릭스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만, 박사는 그들이 방 안을 어지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심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작‘이라는 한 마디를 들은 뒤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놓칠 새라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

“두 분 다 아무것도 모르세요. 그대로 기숙사에서 지내는 줄 알고 있어요.”

“아직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니까, 일단은 아무 말도 안했어요.”

펠릭스의 대답에 제이미가 덧붙였다. 리지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정을 알고 싶다면 내가 면담 요청을 해줄 수는 있네, 그렇지만…… 아이작이 물론 진짜로 무슨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충분해. 알고 있지?”

“아저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알아, 욘석아. 나도 아이작이 그런─ 그게 뭐든 간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곤 생각 안 해. 하지만 만약의 경우도 생각하자고.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안 그런가?”

펠릭스는 앞으로 나서며 박사의 말에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제이미가 잽싸게 말을 받았다.

“그럼요, 박사님. 친한 동생이라고 그런 일을 벌이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렇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이작이 나쁜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기 있게 할 순 없어요.”

“탈옥이라도 시킬 셈인가?”

리지웨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펠릭스와 제이미는 서로 눈길을 교환하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순진한 눈빛을 리지웨이 앞으로 보냈다. 리지웨이는 이제 오만상을 썼다.

“좋아, 그건 그 때 가서 알아보고. 일단은 면담 허가를 받는 게 급선무겠지. 그런데 문제는─”

“박사님 등급으로는 허가가 안 떨어지나요?!”

제이미가 소리치자 리지웨이 박사는 그를 골칫거리 바라보는듯 하며 말했다.

“말 끊지 마, 버릇없는 것아. 면담 허가 자체는 별 문제가 없어. 면담 녹취 기록 부분도 내가 약간 손을 대면 없던 걸로 할 수 있고. 평소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문제는, 요즘 기지가 뒤숭숭하다는 거야.”

“기지가 뒤숭숭해요?”

“그래, 요즘 내부 보안부다 뭐다 말이 많아.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곧 보안부 조사단이 이 기지에 파견될 거라는 소문이 벌써 간부들 사이에 좍 퍼졌어. 제이미, 얼마 전에 출동했던 사건 있지? D계급 인원 몇 명이 기지 외부까지 탈주하는데 성공했던 일말이야. 누군가가 그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해. 소지품 중에서 기지 도면과 몇 가지 행동 지침이 쓰여진 메모 같은 것들이 발견됐다는군.”

제이미는 리지웨이의 말을 곱씹어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기지 안 어딘가에 스파이가 있다는 뜻인가요?”

“맞아! 바로 그거야. 그래서 보안 요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언제 불심검문이 들이닥칠지도 몰라. 말하자면 일을 벌이는 건 쉬운데, 그 뒤에 덮는 게 힘들다는 거지.”

리지웨이가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리자 찰나의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펠릭스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잠시 리지웨이의 말을 되짚은 뒤,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저씨가 방금 면담 기록을 지울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요?”

“허허, 아가씨가 아직 뭘 잘 모르시나보군. 면담 기록은 지워도 사람들 기억은 못 지우지. 구역을 통과할 때마다 긁는 카드는 또 어떻고? 누가 봐도 면담실에 출입했던 인간이 면담 기록에 없다? 그건 진짜 수상하잖냐.”

의자가 들썩였다. 제이미가 벌떡 일어서며 리지웨이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아저씨가─”

“보안 기록은 나도 손 못 대. 꿈 깨셔.”

리지웨이의 너무도 단호한 어조에 제이미는 툴툴거리며 다시 제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말 끊지 말라고 하신 게 누군데…….”

“자!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리지웨이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펠릭스의 눈치를 살폈다. 펠릭스는 두 눈길을 마주하면서 그들이 지금 큰 위험을 앞두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유난히 가벼운 태도를 유지했던 것도 그걸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천장을 쳐다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찌됐든 전 해야한다는 쪽이에요.”

“좋아, 바로 그거야!”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미와 리지웨이가 동시에 외쳤다. 펠릭스의 예상대로 지나친 유쾌함으로 포장된 대답이었다. 그들 나름대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이미 이를 눈치채고 있던 펠릭스로써는 그것이 더 큰 짐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아이작이 잡혔는데 우리가 가만있을쏘냐? 지금 당장 허가 받으러 갈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서둘러 재킷을 챙겨 입은 리지웨이가 둘에게 손짓하고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자 펠릭스는 입을 뻐끔거렸다.

“정정하시기도 해라.”

“뭘, 보기 좋은데.”

펠릭스는 억지로 활기를 꾸며내는 두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일이 잘못됐을 때는 어떡할 거냐는 식으로 우리가 받을 패널티를 심각하게 경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텐데.

“별 수 없잖아? 어차피 막다른 길, 들이박을 거라면 즐겁게 하자고. 언젠간 웃을 날이 오겠지.”

“됐어!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아이작네 기숙사에는 전화해봤어?”

제이미는 펠릭스를 신경쓰다가 정작 중요한 문제를 잊어버린 듯 했다. 펠릭스는 진이 빠졌다.

“어, 지금 하려고.”

“당장 해!”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는 익살스러운 동작을 섞어가며 펠릭스에게 과장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슬슬 짜증이 났다. 제이미가 아이작의 학교에 전화를 거는 동안, 펠릭스는 노트북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아이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직 D계급 인원 목록이 업데이트 되지 않았는지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십 분 가량을 씨름하다가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닫은 펠릭스는 제이미가 전화를 끊기 무섭게 눈을 돌렸다. 제이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음…… 펠릭스, 기숙사 측에선 아이작이 여행을 떠난다면서 휴강 신청을 했다고 말하네.”

“뭐가 어쩌고 어째?!”

펠릭스는 경악했다. 아이작이 아무 연락 없이 무작정 휴강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펠릭스, 진정해, 아직 모르는 일이야.”

그러나 제이미의 혀에서는 이미 ‘아이작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나보다’는 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덕분에 결국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제이미는 어렵게만 생각한다면 아이작을 탈출시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여기고 평소와 같이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두 명이 상반된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그 때쯤 리지웨이 박사가 돌아왔다.

“따라오게, 아이작을 만나러 가야지!”


“뭐라고요?”

보안경비 팀장은 그들 모두를 들여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죄송합니다만, 이 서류로는 책임자 한 분이 직접 참석하는 것만 인정됩니다.”

리지웨이 역시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 사건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더불어 어디에서 그들을 지켜볼 지 모를 내부 보안부 소속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보안 절차가 갑자기 강화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서류를 일행의 눈 앞에서 흔들면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리지웨이 박사님을 제외하고 그만 돌아가주시겠습니까?”

“우리도 들어가야해요! 우리가 직접 물어봐야 할 것들이…….”

요원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안 됩니다."

"말 끊지마, 우린 들어가야겠어."

펠릭스가 단숨에 태도를 바꾸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자 보안 책임자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위협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뒤편에서 그의 부하인 듯한 요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팀장이 손에 쥔 종잇조각을 다루는 솜씨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과 더불어서, 그것은 제이미와 리지웨이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게 보였다.

“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 이건 보안 조항에 명시된 사안입니다. 자꾸 고집부리시면 경비 인원을 부르겠습니다.”

“하,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릴 끌어내겠다고? 이런 니기미─”

제이미의 두 번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그만, 그만! 펠릭스, 우린 돌아가자, 면담은 리지웨이 박사님이 알아서 다 해주실테니까, 응? 박사님, 기록을 가져와서 저희들에게도 보여주시죠. 팀장님, 그 정도는 괜찮겠죠? 기록을 반출하지 말라는 조항은 아직 없지 않습니까?”

그는 펠릭스를 억지로 붙들고 힘겹게 끌고 가면서, 리지웨이에게 행운을 비는 손짓을 보냈다. 리지웨이는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아이작은 눈에 띄게 수척해보였다. 재단 급식이 빈약하지는 않을 것이고, 당연하겠지만 심리적인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리지웨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카처럼 생각하던 아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이 곳에서 맡은 자신의 <D계급 인원 담당자>라는 역할이 부끄러웠다.

리지웨이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단지 범죄자가 받아야 마땅할 처분을 시행했을 뿐이다. 아이작에게 조금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면담실 안으로 들어섰다. 리지웨이를 바라보는 아이작의 눈이 점점 커졌다.

“리지웨이 선생님? 여기서 뵙다니…… 선생님, 전 억울합니다, 여기서 절 꺼내주세요. 전 정말─”

리지웨이는 아차했다. 여기서 아이작과 박사의 관계가 기록된다면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이 면담을 이끌 방법을 구상했다. 박사는 지금 이 면담을 방청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이곳에 들어오면서 확인했다. 평범한 D계급 인원의 조기 면담이니 이후에도 큰 관심을 끌지도 않을 터였다. 방금 전의 그 대사, 녹음 기록의 앞부분만 자신이 몰래 잘라낸다면……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서로 모른 척 얘기한다면 당분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이작,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그는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지만, 조금이라도 그를 동정하는 기색을 보이면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아이작, 자네가 체포된 경위를 듣고 싶네만.”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 제가 누구인지─”

박사는 아이작이 눈치채주길 바라며 눈을 감고 뻔한 거짓말을 했다.

“아이작, 나는 리지웨이 박사이고, 자네 변호사가 아닐세. 자네가 누구이건 간에 내 알 바 아냐. 그러니 무죄가 어쩌고 징징거리는 말은 당장 집어치우게. 나는 자네가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해주길 바라고, 그러면 자네가 받게 될 대우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약속하지.”

리지웨이는 이 말을 하면서 천장 모서리 방향으로 눈알을 굴렸다. 아이작의 눈매가 변하자 리지웨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감시 카메라를 생각했든 무엇을 생각했든 간에, 리지웨이는 아이작이 두뇌 회전이 빠른 편임에 감사했다. 지금처럼 냉정한 모습을 유지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면서도…… 무관심한 태도를.

“죄송합니다, 선생…… 아니, 박사님.”

“좋네, 아이작. 다시 물어보지, 자네가 체포된 경위를 먼저 듣고 싶군.”

아이작이 눈을 감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있다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게 누명이 씌워진 겁니다, 박사님. 저는 친구가 만나자는 메일을 받고 약속 장소에 갔습니다. ‘으스스한 언덕’ 말입니다. 음, 제가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부르곤 했었죠. 어쨌든 그 곳에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주변에 시체가 널려있더군요. 진짜입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부터 시체는 거기 있었습니다. 죄다 파란 경비원 복장이었어요. 기억이 납니다. 전부 다 총에 맞아 죽었더군요. 총상이 많은 걸 생각하면 기관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쩔 줄을 모르고 있던 차에 갑자기 제 뒤에서 특수 부대라도 되는 듯한 검은 옷의 경찰들이 나타나서는 저를 현행범으로 몰아가면서 체포하지 뭡니까? 흉기도 안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언제지?”

“사흘 전, 아니, 닷새 전입니다.”

“그만하면 됐네. 경위는 그만하면 넘어가지. 자네는 그러니까 자신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계속해서 주장할 생각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저는…….”


“방금 이 기록, 진짭니까? 아이작이 이렇게 말했나요?”

제이미가 말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놀란 리지웨이가 물었다.

“그래, 들은 대로야. 뭔가 잘못됐나?”

“아이작이…… ‘으스스한 언덕’에서 체포되었다구요? 바로 이 기지 앞 거기?”

“그래, 맞아. 닷새 전인 것도 확인했어. 제이미,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제이미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젠장, 캐버너 그 멍청이가……. 그 경비원 복장의 시체들, D계급 탈주 사건의 범인들입니다. ……저희 팀이 제압한 그 녀석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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