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심쩍은 것

이전 이야기 » 작전 타임

제이미는 또 다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복도 저 편에서 펠릭스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거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나한테 진짜 일란성 쌍둥이가 있었나?’

제이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두 사람의 모습을 관찰했다. 펠릭스는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상대에게 무어라 쏘아붙였다. 제이미의 모습을 한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손짓하고 연결 통로를 향해 사라졌다.

‘진짜 제이미’는 멀뚱거리며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펠릭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놀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이미? 넌 방금 저 쪽으로…….”

펠릭스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제이미는 초조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펠릭스, 아까 그 녀석은─”

“제이미 애로우?”

뒤편에서 부르는 소리에 제이미는 말을 멈추고 돌아섰다. 키 큰 남자가 수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펠릭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말했다.

“이름이 제이미 애로우, 맞습니까?”

제이미는 남자의 앞에 서서 펠릭스를 가로막고 말했다.

“제가 제이미 애로우인데요.”

“아, 그럼 이 분이 펠릭스……? 죄송합니다, 여자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그만. 두 분이 함께 계실 거라 들었거든요.”

“자주 착각하고들 하죠.”

펠릭스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기지의 자랑’을 마주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다. 제이미는 그를 찜찜하게 바라보다가 조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저는 베이커 형사라고 합니다. 이번 탈주 사건의 주모자를 수사하고 있지요.”

제이미는 진저리를 쳤다.

“또 증언입니까? 스파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고 세 번이나 진술했는데요.”

짜증에 가까운 불만을 토로하는 제이미의 표정을 관찰하던 베이커 형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제이미는 그것의 위압감에 순간 말을 삼켰다.

“죄송합니다만, 이번에는 증인이 아니라 용의자로서 찾아온 겁니다.”

펠릭스의 눈이 커졌다. 제이미는 멍청히 상대방을 쳐다보다가 뺨을 문지르며 물었다.

“용의자라구요?”

베이커 형사는 수첩을 천천히 넘기더니 다시 제이미에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초리에 제이미는 움찔했다. 그는 베이커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내렸다.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그는 갈색 수첩 겉표지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탈주 사건을 진압한 장소에서 D계급 인원들이 잠시 동안 머물렀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애로우 씨도 참가하신 작전이니 아시겠지요? 이미 기지를 빠져나간 그들이 굳이 그 곳에서 멈출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아마 주모자의 지시라고 생각하는 데 말입니다. 어쩌면 이미 한 번 만난 뒤였을 지도 모르고요.”

“무슨 뜻입니까?”

제이미는 형사의 냉정한 목소리에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혹시 이 점이 그에게 불리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제이미는 이 형사라는 남자 앞에서 어쩐지 당당해질 수 없었다. 베이커 형사는 구두로 바닥을 구르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제이미는 자신이 점점 안절부절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바로 그 곳에서 토마토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웃긴 얘기죠. 그 사람들이 슬라이스로 잘린 토마토 조각을 싸들고 탈출했을 리도 없고, 거기 주변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공간도 아니니까요. 피크닉 장소라기에는 놀거리와 너무 동떨어진 곳이 아닙니까? 오죽하면 지역민들에게 ‘으스스한 언덕’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요. 요즈음 이 기지 급식에서 토마토가 나온 적도 없었구요. 그런데 보아하니 ‘제이미 애로우’라는 분께서 토마토를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났더군요.”

“지금 겨우 토마토 조각 하나 가지고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겁니까?”

제이미는 벌컥 화를 냈다. 안 돼, 너무 감정적이잖아, 제이미는 자신이 베이커 형사의 술수에 말려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펠릭스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베어물은 자국에서 DNA 검사를 하고 있으니 거기서 D계급 인원들을 기다린 자가 누군지 곧 밝혀질 겁니다.”

베이커 형사는 갑자기 굳은 표정을 풀며 밝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 제이미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걱정하실 일은 없겠지요. 사실 이건 좋은 의미로 경고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곳에 토마토 조각이라니 너무 눈에 띄면서도 허술하니까요. 당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누군가가 놓아두었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신빙성 있죠. 원한을 산 적이 있다면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이미는 형사가 방금 한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대체 누가? 분명히 토마토 조각이 그 곳에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놓아두었을 가능성이 그나마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진짜로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토마토는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도 무리 없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 기지 사람들에겐 토마토하면 바로 자기 자신, 제이미 애로우가 떠오를 테니.

“……좀 억지스러운 거 아닙니까? 토마토 주인이 탈주 사건과 관계있다는 증거도 없고요.”

제이미가 미심쩍은 듯 수첩을 눈짓하며 물어보자 형사는 익살스럽게 눈알을 굴렸다.

“그렇긴 하죠. 그렇지만 일단은 수상쩍기 때문에……. 저도 토마토가 왜 하필 거기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가 놔뒀다면 역시 정신 나간 녀석이겠죠. 그렇지만 제이미 씨, 어쨌든 일은 일이니까요. 용의자 자격으로 진술서를 써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혐의는 딱히 두고 있지 않지만, 저도 이름값은 해야죠.”

“예, 이해합니다.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거리네요. 또 한두 시간동안 씨름해야겠군요.”

“절차라는 게 다 그렇죠. 느려터지고, 지루하기 짝이 없고, 융통성이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그렇…… 잠깐.”

번개 같은 생각이 제이미의 머릿속을 스쳤다. 잠시 동안 바닥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베이커 형사를 내버려두고 펠릭스에게 다가가서 다짜고짜 물었다.

“펠릭스, 아이작이 잡혀 들어온 게 언제지?”

“어? 어, 삼 일 전?”

“그리고 그가 누명을 쓰게 만든 D계급 인원의 탈주 사건은 겨우 일주일 전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확히 8일 전에, 아이작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잡혔어. 그 뒤 구치소로 호송되고, 재판 받고, 감옥을 거쳐서 다시 여기까지 오는 데 5일 밖에 안 걸렸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제이미의 소곤거림에 펠릭스는 경악했다.

“뭐…….”

“누군가가 아이작을 고의적으로 재단 내부에 끌어들인 거야. 그래, 정확히 아이작을 지목한 거지. 누명도 전부 계획적이었겠지? 아까 형사가 한 말 들었어? ‘사람이 돌아다니는 공간도 아니다’. 아이작이 붙잡혔던 곳인 ‘으스스한 언덕’에 대한 얘기야. 그렇지만, 아이작은 거기 왜 갔지? 친구의 메일을 받고. 생각해 봐, 펠릭스. 대체 어떤 친구가 하필 재미없게 텅텅 비어있는 언덕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 거긴 온갖 소문이 무성한 여기 ‘기지’ 근처야. 웬만한 민간인은 얼씬거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곳이라구.”

“제이미 씨, 아직 멀었습니까?”

제이미는 베이커 형사의 재촉에 몸을 돌리며 펠릭스에게 당부했다.

“그 메일에 대해 조사해 봐. 아이작의 기숙사에 휴강 신청을 넣은 사람도 확인해보고.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펠릭스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제이미는 바닥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그녀의 모습을 뒤로 하고 베이커 형사를 따라갔다.
 

다음 이야기 » 전운?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