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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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은 미국 █████주 █████ ███████████의 공무원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허먼 풀러의 서커스라는 괴담을 퍼뜨리고 다니는 노인이 있다는 소문을 포착했다. 이는 그를 찾아가 수집한 허먼 풀러의 서커스에 대한 증언이다.

 


 
나는 당시 18살이었고, 텍사스 █████ ████████에서 카우보이 일을 하고 있었네. 당시는 목장이 참 안 좋은 시기였지. 그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때 이후로 쭉 안 좋았지만. 들판에서 소를 치는 일이라는 게. 점점 죽어가고 있었고,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네.

내가 일하던 목장의 주인은 넉살 좋고 여유로운 남자였지. 하지만 그런 남자도, 자고 일어날 때마다 소 값이 떨어지고 새 울타리가 생겨나고, 맹추위와 돌림병으로 소가 떼로 죽어 나가니 얼굴이 어두워지더군. 우리들 카우보이 임금도 줄어들거나 체납됐고, 목장 분위기는 점점 흉흉해져 갔어.

…모르겠군. 이걸 다 말해야 될지 아직도 모르겠어. 아니, 아니네. 말한다고 내가 뭘 당한다거나 하는 건 아닐세. 그럴 리가, 나는 그것들을 본지 수십년이 넘어간다고. 그동안 단 한 번도 놈들이 날 찾아와 위협같은 걸 한 적은 없어. 이제 와선 더더욱 벌어질 일이 없지. 내가 이런 얘길 한다고, 이제사 찾아와봤자, 나한테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이 늙은이한테? 죽음을 준다면 그러라고 하게. 지금 갑자기 나타나 그리 할 거라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겠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건… 어렵군. 뭐라더라, 일종의 자기방어일지도 모르겠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네들은 내 인생을 통째로 알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사건은 내 인생에 찍힌 인장이라는 말이네. 목장의 소처럼, 불타는 쇳덩이를 엉덩이에 찍어 누른 거야.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내 엉덩이의 주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여주는 것과 같네. 왜, 불편한가? 그러면 이렇게 얘기하지. 이 이야기는 악덕 서커스가 노예나 마찬가지인 일원들에게 찍은 낙인이라고 말일세. 혹은 옛 사회의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운명, 그러니까 친부모 손에 직접 서커스에 팔려, 그들 소유가 되어 원숭이처럼 평생 일하게 될 거라는, 선천적인 육체적 낙인과 다름없다고 하세.

하, 그래. 알고 있네. 방금 말했듯 이 늙은이가 뭘 더 숨기겠는가?

그래… 이야기를 시작하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그날은 목요일이었지. 서커스가 왔다는 소식은 그날 당일에, 뜬금없이 지역을 휩쓸었어. 광고나 소문 같은 전조 하나 없었으니 모두들 놀랐지. 하지만 왜인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네. 오히려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지. 앞서 말했듯이 쓸데없는 데 돈 쓰기 어려운 불경기였는데도 말야.

목장이나 관련 업종 사람들, 그리고 그들 돈으로 돌아가던 동네- 모두 상황이 상황이니 지쳐 있었지. 그래서였을까? 그래서였는지도 몰라. 그런 분위기에서 서커스의 등장은 분명 반길만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정말 그래서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활기는 비정상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 그 지역 전체에 이상한 힘이 개입한 것처럼.

여하튼 정말로, 서커스에 대한 소문은 하루아침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네. 순식간이었지. 소문이 막 퍼지고 있을 시점에, 우리는 평원에서 들개의 흔적을 좇고 있었어. 우린 거기서 서커스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지. 사회로부터 수 킬로는 떨어진 곳에서 말야. 나보다 두어살 더 많은 존 허밍이라는 친구가, 마른 개똥을 발로 부숴대며 처음으로 서커스를 전했네. 이렇게 말이네.

“그러고보니 오늘 서커스가 문을 연다는데?”

우리는 되물었지. 누가 그러느냐고. 존은 ‘언젠가 누군가한테서’ 들었다고 답했지.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와 동갑이었던 제랄드라는 친구는 꼬치꼬치 캐물어댔지.

“그러니까 누가 그랬는데?” 그는 계속 추궁했네. 그에겐 존의 말을 못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어. “난 그저께 사장님이랑 도심에도 갔다 왔는데 그런 소린 들어보지도 못했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거네. 존은 짜증을 내며, 자기도 그저께 술집에서 다른 치들이 하는 얘길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지. 제랄드는 여전히 헛소문이라며 비웃었네. 사실 그의 말처럼 이상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존의 정보를 받아들였지. ‘아, 그래? 오늘부터 서커스가 열린다니. 신기한 일이군.’

그날 들개를 잡는 건 완전히 허탕이었으며, 꼭 오늘 해야만 할 일도 없었고- 뭐 그래서였어. 말을 타고 목장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우리는 같이 서커스를 보러 가기로 했지. 목장주 가족도 마침 서커스를 보러 간다고 했고. 우리는 우리끼리, 이웃 목장의 주인 아들인, 우리보다 나이가 더 많은 톰 쿤치라는 친구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네. 아무래도 먼 거리였으니까. 존이 졸라대서 자기가 운전대를 잡았고. 덜커덩대면서, 어둠 속에서 한참을 달렸어.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네. 얼룩덜룩한 색동옷을 입은 사람 서너 명이 도로변을 걷는 걸 본 거지. 운전을 하던 존이 보고는 소리쳤어. “야, 저 사람들은 걸어서 서커스하러 가나?”하고. “서커스에 면접이라도 보러 가는 건가” 하고 말이야.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나도 그 사람들을 봤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제랄드는 이렇게 답했지. “무슨 사람들?”

“방금 지나간 애들 있잖아.” 존이 말했어.
“무슨 소리야? 아무도 못 봤는데.” 제랄드가 말했고.
“어떻게 그걸 못 볼 수가 있냐? 완전히 광대 옷차림이었잖아.”
“잘못 본 거겠지. 서커스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광대가 뭐하러 걸어가겠어?”

이런 식으로 계속 논쟁을 했지. 둘의 대화는 곧 말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돈을 걸고 내기를 하게 됐네. 톰은 끼어들어 존이 헛것을 봤다는 편에 돈을 걸었지만,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 뭔가 오싹했거든. 광대들은 제랄드가 앉은 조수석 쪽에서 걷고 있었단 말이야. 그리고 그 애는 계속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고.

존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차를 돌려 반대 반향으로 몰았지. 하지만 계속 몰아도 보이는 거라곤 겨우 토끼들 뿐이었네. 존은 화를 냈고 제랄드는 의기양양 웃었어. 그런데 어둠 속에서 그들이 나타난 거야. 광대들이. 존은 신나서 창으로 고갤 내밀고 소리 쳤어. 태워주겠다고 했지. 그러자 광대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와서는 인사를 했어. 분명 적당히 격식을 차리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 것뿐이었는데, 옷차림이 그래서였는지 마치 우스꽝스런 희극 연기를 하는 듯 했네. 그들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네만, 인사말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글쎄, 어쩌면 아예 인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으며 차에 탔을 수도.

그 후 분위기는 어색했지. 좁은 차에 처음 만난 광대들로 한가득이었으니까. 존도 그들을 태우자마자 실수를 했구나 깨달은 기색이었고, 톰은 그가 자기 허락없이 차에 태운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어. 뭐 그렇게 계속 가다가 존이 그들에게 물었네. 뭐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서커스까지 걸어가고 있었느냐고. 광대 하나가 싱긋 웃더니 이렇게 말했네. “저희들은 서커스에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중이었걸랑요?”

“그런데 왜…?” 존은 계속 말하려다 뭔갈 깨닫고 입을 다물었어.

그리고 모두가 숨죽였지. 공포스런 침묵이 이어졌어. 그리고 광대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네. 존은 깜짝 놀라 운전대를 놓쳐서 하마터면 도로를 벗어나 바위에 박을 뻔 했어. 하지만 곧 그들을 따라 신경질적으로 웃어대더군. 제랄드도 따라 웃었어. 톰은 길길이 화를 내며 “빌어먹을 광대 새끼들! 이 좆 같은 광대 새끼들!” 하고 욕했지. 나도 화났지만 가만히 있었네. 아주 기분 나쁜, 무례한 장난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네.

그리고 우리는 서커스에 도착했어.

‘허먼 풀러의 불온한 서커스’! 수십년이 지났고 늙어서 뇌가 쪼그라들었는데도, 그 문장의 철자와 양식까지 완벽하게 기억해. 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정작 내 이름은 어떻게 쓰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야! 그 서커스 이름 아래에는 소제목도 붙어 있었네. ‘기형 특집: 뒤틀린 세상과 왜곡된 당신’

광대들은 차에서 내리고, 운전을 한 존이나 차주인 톰이 아닌, 제랄드에게만 감사를 표했네. 나머지에겐 말 하나 없이 군중 속으로 사라지더군.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안도했다네. 그리고 이제 아무 생각없이 화려한 축제에 몸을 맡기기로 했지. 아직 시작하지 않은 메인 쇼의 티켓을 미리 끊어놓고, 주변의 먹거리나 점집, 기구, 전시장 등등을 보러 다니기로 했어.

아니. 그 주변에 그런 건 없었어. 하… 이제 자네들이 찾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자네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겠군. 걱정 말게. 아예 없었다는 말은 아니네. 바깥 마당에는 없었다는 얘기지. 아니 그리고,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물건이나 현상이라고? 애초에 서커스에 일반인이 보기에 현실적인 것이 있나? 그런 게 있었고, 내가 봤다고 해도, 그걸 정말 자네들이 찾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나? 거긴 서커스였어! 알아, 알고 있네. 물론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이해하고 있네. 하지만 내 기억엔 전부 그냥 서커스였을 따름이야.

우리가 ‘변이의 가마솥’을 발견했을 때, 난 기분이 아주 나빠진 상태였어. 나는 그때 서커스란 걸 처음 경험한 거였는데, 난 서커스란 게 마냥 즐겁고 웃긴 것으로만 기대하고 있었거든. 서커스의 구성- 그러니까 기형아들이 곡예를 하고 광대가 만담을 하는, 서커스의 내용물은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네. 하지만 실제 그것들을 봤을 때? 전혀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어. 상상 속에선 아주 흥미로웠던 게 실제로는 그렇게 역겹고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네. 잠깐 확실히 해두세. 이건 미천한 광대 계급이나 신체장애자 자체에 대한 혐오가 아니었어. 그들을 가지고 우스꽝스레 치장해서 돈을 버는 서커스 산업이 역겨웠던 거지.

하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어. 특히 제랄드가 좋아했지. 난쟁이들이 인간 탑을 쌓다가 과장된 연기를 하며 일부러 무너질 때, 그는 누구보다도 크게 웃었네. 다리가 없는 여인이 팔힘만으로 걸으며 불길 사이를 뛰어넘는 걸 보면서, 그는 가장 열렬히 박수를 쳤지. 존과 톰도 즐거워하고 있었기에, 나는 가만히 있었지. 불평을 했다간 서커스를 무서워하는 겁쟁이 취급을 받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변이의 가마솥’에 들어가려 할 땐 도무지 참을 수가 없더군.

“뭐가 문제야?” 제랄드가 물었어.
난 이렇게 말했지. “서커스 자체가 문제야. 여긴 너무 역겨워.”
“우우우! 우리 꼬맹이가 겁을 먹었구나!” 존이 놀려댔어.
“뭐가 역겹다는 건데?” 제랄드가 또 물었네.
“저런 장애인들을 웃음거리 구경거리로 만들면서 돈을 버는 건 잘못 됐어. 그러니까, 생각해봐. 넌 우리 목장이 기형으로 태어난 송아지를 사람들에게 전시해서 돈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존은 코웃음을 쳤지만, 제랄드는 내 말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어.

“그럼 너는 서커스가 아니면 저 사람들이 뭘하고 먹고 살 거 같은데? 사람들이 일자리를 줄까? 그러니까 이런 거지. 서커스는 저런 사람들만을 위한 전용 직장인 거야.”

그가 말했네. 거기에 존이 덧붙였지.

“그리고 내가 듣기론 서커스 사람들은 서로 가족 같아서 같이 위안이 된다던데. 전부 괴물들이니까. 그럼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니냐?”

아는 거라곤 소치는 것뿐이었던 나로선, 그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릴 찾지 못했어. 마음 속으로는 잘못된 말이라고 느꼈지만 말이네. 톰도 웃으면서 내게 말했지.

“그래. 괴짜들의 전용직장인 거지. 진짜 사나이들만 카우보이를 할 수 있듯이 말야. 안 그래?”

세 사람은 그러면서 ‘변이의 가마솥’ 천막의 입구로 갔네. 어쩔 수 없었지. 나는 열일곱 살이었고, 또래에게 꼬맹이 취급당하기는 싫었어. 자존심 때문에. 허. 너무도 안쓰러운 이유이지 않은가? 그 한 번의 행동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자면, 너무 같잖은 동기였지.

천막 안은 구불거리는 통로로 이어져 있었어. 조명은 누리끼리한 게 침침했고, 아예 공기 자체가 달랐지. 무겁고 둔하며, 냄새 나고 미끈거리는 공기. 들어서자마자 시야가 어지러웠다고. 옆으로는 철창이나 유리 벽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 있었네. 생명들이 말이네. 각자가 손님에게 분주히 자신의 기괴함을 자랑하면서. 그리고 나는 그 광경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네.

어떤 사내의 얼굴엔 피부를 잡아당기며 무거이 축 처져 있는 코끼리 코가 달렸고, 흉부에는 코끼리 폐도 함께 달았는지 거대한 살덩어리 두 개가 매달려 있었지. 그는 우리가 다가오자 열심히 괴성을 내질렀는데, 코끼리 소리로 들리진 않았다네. 그저 고통스런 소음에 불과했지. 어떤 어린 소년(정말 어린아이였을까?)은 인도 풍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어. 특이한 점은 없었는데, 나는 등 뒤에서 새로운 팔 한두 쌍을 꺼내 우릴 놀래킬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대신 그는 위로 살짝 떠올랐다네. 그의 엉덩이에서, 아주 자글자글 주름진 굵은 거북이 발 같은 것들이 그를 위로 떠밀고 있었지. 나는, 세상에- 이 부분은 확실치 않지만, 아니 확실해. 나는 그의 벌거벗은 엉덩이 한쪽이 마찬가지로 주름진 눈코입을 움찔거리며, 발들 사이로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았어. 괴물과 함께 있는 늙은 여인도 보았네. 겉이 수없이 많은 손으로 뒤덮인 살덩어리는 끊임없이 움찔거리며 무언가를 만지고자 했네. 뱃가죽 안에 새끼 짐승을 품고 있는 여인도 있었어. 굵은 탯줄 같은 것이 구불구불 머리 쪽으로 이어졌고, 곰이나 사자 같은 맹수의 새끼인 듯한 그 짐승은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며 기묘한 소리로 울었다네. ‘의자를 삼킨 남자’라는 이름의 사내에겐 정말로 의자처럼 생긴 것이 몸 안에 들어 있었지. 진짜 의자로 보이진 않았네. 그 형태는 비스듬하게 박혀 있었는데, 가슴과 배로 의자 다리가 사선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등받이 부분은 등 뒤로 뻗어 있었어. 의자를 덮은 피부는 팽팽한 게 터질 듯 했고, 일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네. 그는 우리가 자신을 충분히 관찰하게 한 뒤, 조심스레 몸을 굽혀 의자가 서있는 형태가 되게끔 자세를 잡았어. 그러자 어딘가에서 지나치게 뚱뚱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그 위에 앉았네. 우리 또래의 한 소녀는 뒤를 돌더니 엉덩이를 열어 보였네. 그러자 그곳에 또다른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매우 차가웠네. 죽어 있던 걸까? 아니, 아니지. 소녀는 지친 얼굴로 우리에게 사랑해, 라고 말했거든. 제랄드가 밖으로 뛰쳐나간 건 그때였어. 서커스를 제일 좋아하더니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남은 우리는 계속해서 관람했네.

머리가 하나 뿐인 어떤 동양인 남성은 몸이 두 개였고, 그 둘은 서로 다투고 있었네. 어떤 여인의 머리통은 고리 모양이어서, 나는 그녀의 눈과 눈 사이로 그녀의 뒤편을 볼 수 있었어.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훌륭한 솜씨로 그려져 있었다네. 어떤 소녀는 하반신뿐이었네. 다른 한 소녀는 삼각형 트램펄린이었네. 또 어떤 노인네는 껌을 두 판 사이에 넣고 누른 뒤 다시 잡아뗀 것 같았네. 바닥과 천장을 연결하며 달라붙어 있었지. 어떤 남자는 책처럼 펼쳐볼 수 있었어. 나는 그를 직접 펼쳐 읽어봤다네. 한 여성은 머리가 말그대로 풍선이었고, 그 풍선은 쇠막대기에 묶여 있었네. 우리 또래의 어떤 소년은 점액덩어리로서 유리상자 안에 담겨 있었는데, 내가 자세히 보려고 철창 앞으로 다가가자, 그는 유리 벽에 붙은 입 같은 것을 뻐끔거리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했네.

“이 서커스는 미쳤어.”

……뭐? 아니. 아니, 그건 제랄드가 말한 거야. 내가 헷갈리게 말했군. 미안하네. 제랄드가 말한 거네. 그가 그렇게 말했네. 이 서커스는 미쳤다고. 우리는 그를 톰의 차 뒤편에서 찾아냈지. 흙바닥에 앉아 있었어. 창백한 얼굴로 두 손을 맞잡고. 톰은 걱정하며 무슨 일이냐고 했지. 무슨 일이냐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속으로 반문했어. 당연히 저 안에 있었던 것들 때문에 충격 받은 거잖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톰의 의도에 동조했다네. 대체 무슨 일이야? 이건 그냥 서커스야. 그리고 저 안에 있었던 건 어마어마하게 흥미로운 괴물들이었을 뿐이야. 그뿐이라고. 문제를 제기할 것은 없다고. 이곳은 끝내주는 서커스고,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관람하기만 하면 된다고. 우리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고, 윤리적인 책임은 서커스와, 괴물들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놀랍고 진귀한 풍경을 찬찬히 음미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왜냐고? 우리는 철창 밖에 있으니까. 우리는 그런 자격이 있는 정상인이니까, 라고 말이네.

하지만 제랄드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어. 제정신이 아닌 듯 했네. 존은 그를 한껏 비웃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네. 재미가 없어진 존과 톰은 제랄드를 두고 다른 것들을 구경하러 가버렸어. 나는 그의 옆에 서서 가만히 어둠 속을 바라봤네. 찬 바람이 더운 몸을 천천히 식혔어. 내가 방금까지 무슨 생각들을 한 거지? 내가 이 서커스를 지지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네. 나는 제랄드를 데리고 이 괴물 같은 서커스에서 도망쳐야 했어. “저희들은 서커스에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중이었걸랑요?” 광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네. 차안을 봤더니 광대 얼굴이 그려진 빨간 풍선 하나가 조수석에 떠있었지. 머리를 천장에 붙이고. 갸웃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네. 내가 이곳을 벗어나자고 제랄드에게 말하려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권총을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서 있었어.

“그 사람들을 구해줘야 해.”

그가 말했네.

유리상자 안의 점액질 소년이 한 말은 “살려줘”였지. 제랄드는 엉덩이 속의 소녀에게서 “사랑해”가 아닌 다른 말을 들었던 걸까? 그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서커스 안으로 향했네. 나는 뒤따라갔지. 그는 총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한 손에 꼭 쥔 채, ‘변이의 가마솥’으로 들어갔어. 그의 걸음이 빨라 나는 뒤늦게 그를 따라 들어갔네. 하! 하! 하! 그리고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하하하하하! 나는 그 괴물들에게 다시 한 번 완전히 매료되었다네! 하하, 그리고 총성이 울렸지. 한 번, 그리고 두어 번 더. 그리고 계속해서 더. 재장전을 하는 동안의 침묵. 그리고 또 총성. 코끼리 사내가 괴성을 질렀어. 그러자 괴물들이 통로 끝에서부터 튀어나와 입구를 향해 질주해왔네. 공포가 등을 쓸고 올랐어. 나는, 도망쳤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변이의 가마솥 바깥이었어. 제랄드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린 거였지. 뒤를 돌아보니 그는 우리가 태워준 광대 셋에게 붙잡혀 메인쇼가 벌어질 거대 천막 안으로 끌려가고 있었네. 두번째로 정신을 차린 건, 톰의 자동차 앞에서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였어. 헉헉거리며 고개를 드니 고리 모양 머리의 여자가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네. 성난 외침이 등뒤에서 터져나오며 가까워지자, 나는 몸을 굴려 차 밑으로 숨었어. 서커스 일원들이 나를 지나쳐 뛰어갔고. 한참을 있었네. 그렇게 한참을 있었어. 영원 같았지. 하지만 사람들이 고리 모양 머리의 여자를 다리만 잡고 질질 끌면서 나를 지나쳤고, 영원은 끝났네. 그 여자는 지나갈 때 나를 발견하고 돌아봤어. 나는 그녀의 눈과 눈 사이로 뒤편을 볼 수 있었네. 어둠 뿐이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네. 가만히 차안에 앉아 있다가, 나는 다시 서커스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어. 제랄드를 구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네. 서커스의 메인쇼를 보고 싶을 뿐이었을지도. 입구엔 ‘허먼 풀러의 서커스’라는 화려한 간판이 서있었고, 아래엔 소제목이 달려 있었네. ‘기형 특집: 뒤틀린 세상과 왜곡된 당신’. 나는 주머니에서 메인쇼의 티켓을 꺼내 쥐었네. 그리고 그곳으로 들어갔어.

서커스 직원이 나를 안내한 통로는, 객석으로 가는 게 아니라 무대로 통하는 것이었지. 천을 들추고 통로를 빠져나오자 나는 무대의 등장인물이 되어 있었어. 객석의 한쪽 구석에서 목장주 가족이 내 이름을 부르며 열렬히 박수를 쳐댔네. 쇼는 이미 끝날 무렵이더군. 무대의 흙바닥에는, 변이의 가마솥에 있던 여러 괴물들이 그들의 기형에 어울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해당해 죽어 있었어.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제랄드가 풀어줬을 때 도망친 자들이란 걸 깨달았지. 피가 배수로를 따라 철철 흐르고, 일부는 아직 살아서 꿈틀거렸네. 중앙에는 얼굴이 뒤집힌 남자가, 화가 난 듯 기뻐하는 듯,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네. 나는 존과 톰을 찾아보았지만 객석에 없었어. 하지만 곧 찾을 수 있었지. 광대 셋이 그 애들과 제랄드를 무대로 끌고 나왔거든.

셋 다 심하게 얻어맞은 듯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네. 존은 두 다리가 모두 부러져 있었어. 울면서 연신 자기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살려달라고 빌었지. 톰은 기절한 채였는데, 광대뼈가 부서져 한쪽 얼굴이 무너져 내렸더군. 제랄드가 제일 멀쩡했어.

얼굴이 뒤집어진 남자는 이렇게 말했네.

"여러분, 여러분, 신사숙녀 여러분! 아,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오늘의 메인쇼 때문에 서커스의 귀중한 인적 자원이 줄어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멋진 소년들이 서커스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여, 스스로 서커스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땐, 정말로 기뻤답니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이 소년들은 기형이 아니라서, 서커스에 받아줄 수 없습니다. 아! 아아아아!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친절하고 친절하신 관객 여러분! 모든 일에는 항상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행스럽게도, 여러분, 기형이 정상이 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정상이 기형이 되는 건 아주아주 쉽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존과 톰의 팔다리를 잘라버렸다네.

제랄드에겐 목줄을 채우고, 말뚝으로 고정시켰어. 그리고 쇠주사기로 어떤 약물을 주사했지. 그러자 그의 몸이 덜덜 떨리더니,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네. 급격히 줄어드느라 뼈가 부숴지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터져나왔어. 그는 입으로 먹은 걸 모두 토해내고 비명을 질러댔네. 몸에선 털도 자라나기 시작했어. 뻣뻣하고 무성한 회색 털이, 순식간에 조그만 몸뚱이를 뒤덮었지. 비명은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되어, 점차 줄어들더니 결국 멎었어.

“이제 풀어주는 게 아니라 지키고 서야할 입장이 되었군!”

얼굴이 뒤집힌 남자가 말했네.

목장주 가족은 자기네 직원들이 그렇게 된 게 영광이라는 듯 자랑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네. 얼굴이 뒤집어진 사내는 뿌듯해했고. 광대 셋은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으며, 나는 엉엉 울었다네. 나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무 두려웠지. 하지만 자네들이 보고 있듯이, 나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그냥 보내줬네. 광대 셋이 나를 톰의 차에 태우고, 운전대를 몰아 도시에 내려주더군. 그들도 마찬가지로 차에서 내려서, 서커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사라졌다네.

그리고 나는 그 주를 아예 떠나 멀리 다른 곳에 터를 잡았어. 그리고 살아갔지.

그 이후로 나는 어떤 면에서는 정상적인 삶을 살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어. 서커스의 저주에 걸린 것인지, 나는 평생을 타인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소비하는 작자들하고만 얽히게 되었네.

예를 들어 친구라고 사귄 놈들은 서로의 불행을 위안 삼아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자 했네. 그걸 알아차리고서 나는 모든 친구들과 연을 끊고 잠적했지. 내 첫번째 아내는 먼저 낳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나는 결혼 후 수년이 지나 그녀가 자기자신의 고통을 자식들에게 전시하고, 또 그걸 즐긴다는 걸 깨달은 뒤 이혼했다네. 두번째 아내는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거나 남의 고통을 양식 삼지 않는 듯 보였어. 그녀는 아주 상냥한 여자였고, 처음으로 내 서커스 이야기를 전부 듣고 믿어준 사람이었지. 우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네. 하지만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에, 나는 그녀가 나를 동정하는 식으로, 나를 서커스의 기형아로 여기며 관음하고 있음을 깨닫고야 말았다네.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기에, 또 이혼했고, 그 뒤로 더는 짝을 찾지 않았어.

친구와 연인 말고도, 겨우 몇 초 간이라도 나와 마주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추악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네. 제랄드 같은 자들은 한 명도 없었어. 단 한 명도! 모두가 그모양 그꼴이었네. 혹은, 어쩌면 모든 인간이 그러하고, 내가 모든 인류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보게, 자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보아하니 FBI나 그런 사람들 같은데, 자네들도 사람들을 자기들이 편히 볼 수 있게끔 가둬놓고 관찰하며 즐기고 있지 않나? 대답을 안 하는군. 하지만 난 알아. 자네들도 똑같은 부류라는 걸.

하지만 걱정 말게. 그런다고 내가 자네들을 쫓아내지는 않을 테니. 예전이었으면 처음부터 집안에 들이지 않았겠지만, 나도 많이 변했네. 자네들과 비슷해졌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들과 닮아간다는 게 느껴져. 그도 그럴 게 언제나 곁에 있으니까 말이네! 단 한 순간도 그 서커스의 흥취는 사라지질 않았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지고 있어. 나는 볼품없이 쪼그라들고 있고, 더는 저항할 힘이 남아있지 않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초침이 나아갈 때마다, 내 영혼은 스스로 허먼 풀러의 변이의 가마솥으로 나아간다네.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 위해.

나는 최근에 캠코더를 하나 새로 샀다네. 나는 그걸 TV 위에 설치해놓고,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내가 나오는 화면을 지켜보지. 이 뒤틀리고 왜곡된 영혼의 소유자를. 이 괴물을. 그러면 더없는 충족감과 함께 어떤 통찰을 느끼곤 하네. 내가 서커스 놈들이 나를 찾을 일은 없을 거라고, 앞서 말한 것 기억하나? 그런데 언젠가 내가 나를 보던 중에 어떤 강한 예감을 하나 느꼈어. 서커스 광대들이 나를 찾지는 않겠지만, 제랄드는 반드시 언젠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예감 말이네.

최근 들어 나는 개가 울부짖는 소리를 자주 듣게 돼. 낮에 TV를 보다가, 밤에 잠을 자다가. 나는, 그게 제랄드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네. 곧 그가 날 찾아올 거라고 난 확신하고 있어. 그가 나를 찾아오면, 그는 나를 풀어주겠지. 총을 쥐고 유리벽을 쏘았을 때처럼, TV를 부수고 나를 자유롭게 할 거야. 그러면 나는 드디어 이 서커스에서 풀려나게 될 거야. 이 평생의 광기에서 말일세….
 
 


 
 
증언을 마치고 이틀 후, 증인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목 부분이 짐승에게 물어 뜯겨 훼손되었다. 증인의 캠코더와 TV가 파손되었으며, 캠코더의 메모리는 복구가 불가능하게 망가졌다. 때문에 사건 당시의 모습은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증인이 목을 물어뜯기는 와중에도, TV를 향한 채 의자에 앉아 리모콘을 쥐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TV로 자기 모습을 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감시카메라엔 중형견의 모습이 확실히 포착되었다. 동시에 광대 차림의 남성 셋이 주변 지역을 배회하는 것 또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재단의 감시망에서 사라졌으며, 더 추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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