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어진 머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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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오컬트 라이터 미야기 테츠히로씨의 USB 메모리에 남아 있던 미발표 원고 데이터다. 참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야기 테츠히로씨의 자료에 카가와의 자료를 추가. 또한 일부 자료를 정리.

2021/11/22 카가와香川 코쿠메이克明










『월간 카르덱』 2018년 7월호 원고 (미게재)
작성자 미야기宮木 테츠히로哲弘

◎ 소문의 괴담 철저추적 레포트 제4탄

일가족 전멸… 관계자의 잇따른 괴사…
현대의 괴이 「저주받은 인모」의 수수께끼를 쫓아서!


1. 진실 혹은 거짓… 「저주의 인모」 괴담

 필자가 「저주의 인모」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7년 8월 모일, 매월 한 차례 있는 괴담 라이브를 마치고 괴담작가 카토加藤 쥰야ジュンヤ씨와 동경도내의 모처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얼근히 취한 필자는 카토씨에게 「소문의 괴담 철저추적 레포트」 제4탄을 위한 소재를 찾고 있다고 말하고, 무언가 좋은 소재를 아느냐고 물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컬트 라이터가 괴담작가에게 괴담 소재를 제공해 달라니 참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카토씨는 뜻밖에도 「있습니다. 드러나지 못한 소재가」라며, 어떠한 소재를 열정적으로 제공했다. 그 소재란, 한 가족이 발견한 섬뜩한 인모에 얽힌 괴담이었다. ───때는 1980년대 중엽, 이와테현의 한 독챗집의 붙박이장에서 종이에 싸인 가발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붙박이장에서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가족 누구도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 터럭을 대학에 가져가 조사해 보니, 그것은 사람의 모발과 두피였다. 그리고 그것이 밝혀진 직후, 그 가족은 화재를 당해 일가족 전원이 숨졌다. 불가해한 것은, 가족 모두 머리카락이 발견된 붙박이장 속에서 불타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머리카락은 화재로 타 없어졌다고 여겨졌으나, 곧 다른 현의 한 사원에 똑같은 물건이 들어왔다. 그 머리카락을 가져온 남자는 스님에게 「공양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그것을 두고 떠났다. 스님은 그것을 태워 공양하려 했으나, 그 전에 광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흔해빠진 괴담 같은데, 왜 이 이야기가 「드러나지 못한 소재」인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와 연대를 바탕으로 조사를 해 보니 말이죠, 아무래도 진짜로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 같거든요. 그렇게 진짜 사람이 죽은 사건은 어째 컴플라하지 못하잖아요 (웃음)」라는 카토씨의 대답. 괴담업계 큰손인 카토 쥰야씨에게 컴플라이언스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함과 동시에, 맹렬하게 이 이야기에 흥미가 이끌렸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저주인형…, 난데없이 솟아나온 긴 머리카락…, 등등. 머리터럭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는 이미 세간에 많이 있다. 2007년 개봉한 공포영화 「에쿠스테」 등, 머리터럭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 스릴러 작품도 많다. 왜 사람들은 머리터럭에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로, 예로부터 머리카락이 영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배경이 있다. 인체에서 튀어나오며 성장하는 머리털이라는 부위는, 다른 기관과 비교해 이질적이며 고대인들에게는 신비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가 제창한 정의에 감염주술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주술이란 인류학적 시점에서 본 학술적 개념이며, 오컬트적인 주술과는 다르다는 것을 우선 밝혀둔다. 옷, 발톱, 머리카락 등을 주술에 이용해 그것들의 원 주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감염주술의 전형적 사례다. 요컨대, 원래 하나였던 것은 떨어져도 이어져 있다는 관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일본의 주술이나 신앙에서도 이러한 관념에서 머리카락을 영적인 존재로 보는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축시의 참배의 바리에이션 중에는 제웅 속에 저주하는 상대의 머리털을 섞어넣는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감염주술의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머리터럭의 주술적 의미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잃어버렸지만, 그 관념 자체는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 현대에도 막연히 머리터럭이 영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번 추적은 그 머리터럭을 소재로 한 괴담, 「저주의 인모」를 추적한다. 여러 오컬트 잡지에서 기사를 써온 지 어언 14년. 일본의 오컬트에 어느 정도 정통했다고 생각했던 필자이지만, 부끄럽게도 카토 쥰야씨의 제보기 있기 전까지 이 「저주의 인모」는 풍문으로도 알지 못했다. 호기심에 몸을 맡기고,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해 갔더니, 거기에는 분명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의 영역을 벗어난 끔찍한 사건들, 그리고 현대에 맹위를 떨친 수수께끼의 「저주받은 인모」의 모습이 있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독자 제현과 함께 그 괴이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자료 1
발견된 두피 및 모발.
보존가공된 흔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현재로선 상세불명.
(1987년 1월 26일 촬영 나카모토 마사히로씨 제공)

毛

2. 나카모토가에서 인모를 발견
 「저주의 인모」로 여겨진 것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의 한 민가였다고 한다. 카토씨에게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1980년대에 발생한 화재를 조사한 결과, 한 가족의 존재가 부상했다. 그것이 바로 과거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 거주했던 나카모토 일가다. 1987년 1월 26일, 그 민가에 살고 있던 나카모토 일가는 어쩌다 보니 자택의 붙박이장에서 기름종이 같은 것에 싸인 털뭉치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머리에서 머리털과 가죽을 그대로 뜯어낸 것 같았고, 그것을 본 가족은 그것을 가발인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기묘한 것은 그 털뭉치가 이 집의 붙박이장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집을 구입했던 아버지나 어머니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이 털뭉치의 존재를 몰랐다.

 그 털뭉치는 나카모토가의 차남인 M씨의 친구를 통해 모 국립대학에서 감정하게 되었다. 감정 결과, 털뭉치의 정체는 「보존가공된 사람의 머리카락과 두피」임이 판명되었고, M씨와 친구는 아마 옛날의 가발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확실히 합성섬유가 개발되기 전에는 가발을 만들 때 주로 인모(人毛), 사람 머리털이 이용되었다. 현대에도 인모로 만든 가발이 의료용 가발 등으로 멀쩡히 유통되고 있고, 머리를 길러서 가발업체에 판매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리 옛날 가발이라 할지라도, 가발에 사람의 두피는 보통 쓰이지 않는다. 만약 정말로 이 털뭉치의 정체가 가발이라면, 상당히 특수한 가발임에 틀림없다. 정체 모를 인모에 섬뜩함을 느낀 양친과 달리, M씨는 자신의 일기에 「뜻밖에 진품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고 적었으며, 이 인모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 2
나카모토가 개요
이와테일보 요코야마横山 기자의 메모를 바탕으로 미야기가 작성

나카모토中本 마사무네正宗씨의 아내는 키에キエ씨이며, 부부 슬하에 장남 마사히로正弘씨와 차남 마사오正男씨 두 명이 있다. 1955년에 마사무네씨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사쿠라다이에 주거를 구입함으로써 일가족이 이와테현 니노헤군 코즈야촌(현 니노헤군 이치노헤정)에서 이사왔다.

마사히로씨는 1962년에 동경의 금융업체에 취직하여 집을 떠났다. 마사오씨는 대학 졸업 후 모리오카시로 돌아와 시내의 대학에서 근무했고 본가에서 양친, 그리고 아내 마사코雅子씨와 함께 살았다. 또한 마사코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마사타카正孝군을 얻었다.


자료 3
나카모토 마사오씨의 일기 중 불타지 않은 부분을 발췌

1987년 1월 26일

마사타카가 붙박이장에서 기름종이인지 뭔지로 포장된 털뭉치를 찾았다.
부친, 엄마 모두 털의 존재를 알지 못함.
뿌리 부근에 건조된 가죽 같은 것이 있고, 아버지는 가발이 아니겠느냐 그랬다.
종이에 털뭉치와 함께 종잇조각도 함께 포장되어 있었지만, 열화가 심해 알아볼 수 없다.
일단 원래대로 종이에 싸서 보류. 근처 난바(*) 연줄이 있는 대학에 감정을 의뢰해볼 예정.

*나카모토 마사오씨와 교우관계가 있었던 난바 코지로 준교수일까

1987년 2월 14일

털뭉치가 감정결과와 함께 돌아옴.
감정 결과, 보존가공한 사람 머리카락과 두피라고 함.
난바 말로는 옛날의 가발일까 뭘까 싶지만 두피가 붙은 가발은 들어본 바가 없다고. 더 조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랬다.
부친과 엄마는 섬뜩하게 여기는 것 같지만, 뜻밖에 진품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직후, 나카모토 일가에 슬픔이 불시에 닥쳐오니, 그 해 3월 1일 오전 2시경, 나카모토가의 2층 붙박이장을 발화점으로 화재가 발생해 나카모토가는 전소, 나카모토 일가족은 전원 사망하는 대참사가 되었다. 이 화재로 집이 홀랑 타버려 문제의 인모도 동시에 타 없어졌으리라 여겨졌다. 잿더미에서 발견된 일가족의 시신은 처음엔 성별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묘하게도 일가족의 시신이 모두 발화점인 2층 붙박이장 안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와테현경은 조사 결과 화재 원인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와테현경은 방화살인과 동반자살 두 가지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타살의 증거를 찾지 못해 최종적으로는 동기 불명의 동반자살로 판단했다. 나카모토가는 일반 가정에 비해 유복한 가정이었고, 눈에 띄는 트러블도 없었다고 한다. 일부러 붙박이장 속에서 동반자살을 할 이유가 있었을까? 전혀 불가해하다. 아무래도 카토씨의 이야기대로, 저주의 인모에 관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인 듯하다.


자료 4
나카모토가 화재의 초기 보도
이와테일보 1987년 3월 2일 조간에서 일부 발췌


모리오카시에서 민가 화재
일가족 연락되지 않고 있어
 1일 오전 2시 15분경`모리오카시 사쿠라다이의 무직 나카모토 마사무네씨(78세) 자택에서 불이 나`목조 2층 주택 부지 총 120 평방미터가 전소했다˚ 불은 서쪽 옆의 건설업자 카나자와 산에이씨(43세)의 주택으로 옮겨붙어 2층 동쪽 벽과 천장을 태웠지만`산에이씨와 그 처(45세)`장녀(16세)는 무사했다˚ 불은 2시간 반만에 꺼졌지만`마사무네씨의 주택이 전소한 터에서 성별 불명의 시신 5구가 발견되었다˚ 마사무네씨와 그 처(71세)`차남(47세)`며느리(49세)`손자(11세) 모두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경찰은 일가족이 화재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시신의 신원파악을 서두르고 있다˚ 5구의 시신은 모두 2층 붙박이장에서 발견되었으며`심하게 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화지점도 2층 붙박이장으로 보인다˚ 이와테현경은 사건과 사고 양 쪽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3. 다시 나타난 인모, 제2의 사건
 나카모토가의 화재로부터 1년 반이 지난 1988년 10월.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한 사원에 그 인모로 생각되는 것이 나타났다. 가져온 것은 난바難波라고 이름을 댄 남자. 그 남자는 주지에게 「낡은 가발 같은 것인데, 아무래도 기분나쁘기 때문에 타키아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독자 제현에게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란 고인의 유품 같은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을 불태워 공양하는 것이다. 종교마다 해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본에서는 신사와 불각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주지가 그 털뭉치를 제대로 타키아게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그것이 이 사원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는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증언을 얻었다. 그리고 10월 18일 오후 5시경, 털뭉치가 반입된 이 사원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주지가 광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단 채 발견된 것이다. 상태를 보아 자살로 단정되었으나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았고, 자살동기도 불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카토씨가 말해준 「저주의 인모」 이야기 내용과 일치했다.


자료 5
인모가 들어왔던 것으로 보이는 사원의 주지 키타 카츠유키勝之씨의 사망 당시 상황
고인의 장남이며 현 주지인 키타 야스오泰生씨의 증언을 토대로 미야기가 작성

自殺状況

상황설명
카츠유키씨는 고리 모양으로 묶은 수건을 문손잡이에 걸고 주저앉아 액사했다. 청소를 하기 위해 광에 들어가던 야스오씨가 그것을 발견했다.
광의 안길이는 100 센티미터. 폭은 85 센티미터 (시렁 부분 제외).
시렁에는 화장지 등의 잡화를 올려놓았다는 것 같다.


자료 6
키타 카츠유키씨가 발견되었던 광의 현황
(2018년 2월 6일 미야기 테츠히로 촬영)

物置

 「아버지는 온화하고 성실한 승려였고, 절대 자살 같은 것을 하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숨진 전 주지의 친아들로서 사원을 이어받은 현 주지였다. 현 주지는 그 때 받았던 머리털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주지는 그 머리털에 흥미를 갖고 신문지에 싸서 광에 둔 것 같다고 했다. 상세는 불명이지만, 주지는 아무래도 태울 만한 곳을 찾으려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신문지로 싼 상태라 현 주지는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주지는 그것을 「두피째로 떼어낸 듯한 가발」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것이 그저 과장된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두피에서 그대로 떼어낸 듯이 정교한 가발」이라는 의도로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건을 알게 되었을 때, 이것이 아마 나카모토가에서 발견된 인모와 같은 것, 즉 「저주의 인모」라고 확신했다. 설령 주지가 「정교한 가발」이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주지의 자살이 불가해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카모토가의 사건과 주지의 자살. 쌍방에 공통되는 수상한 인모와 의문스러운 죽음을 결부짓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만약 이것이 나카모토가에서 발견된 인모와 같은 것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카모토가는 화재로 전소했으니 상식적으로 그 인모도 동시에 불타 없어졌어야 할 것이다. 수수께끼는 깊어지기만 한다. 카토씨의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난바라는 남자. 그가 이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인물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조사를 하면서 이 난바로 생각되는 인물에 도달했다. 그것이 나카모토가의 차남 M씨의 친구였던 난바 K씨다.


자료 7
난바 코지로씨 개요
관계자를 취재하여 미야기가 작성

난바難波 코지로幸次郎
1938년 11월 15일 야마가타현 카리가와정(현재의 쇼나이정) 출생.
나카모토가의 차남 나카모토 마사오씨와는 국립동경교육대학 시절부터 친구였으며, 대학 졸업 후에도 교우가 지속되었다. 나카모토가 가족 모두와 어울렸던 모양이다. 동북대학 문학부 문화인류학 준교수 역임. 1987년 징계해고. 2018년 현재 소재를 확인할 수 있는 친족은 남동생 키요시로清志郎씨의 아들인 조카 요시자와吉沢 쿠니히코邦彦씨 뿐. 1989년 1월 16일 사망. 마사오씨의 일기에 언급되는 「난바」가 이 사람으로 생각된다.


자료 8
나카모토 마사오씨(우측), 난바 코지로씨(좌측)의 사진
미야기가 잡지게재를 위해 편집한 것
(난바 코지로씨의 조카 요시자와 쿠니히코씨 제공)

居酒屋にて

4. 예상치 못한 제3의 사건, 모든 것과 연결된 난바씨의 죽음
 난바K씨는 동북대학 문학부의 문화인류학 준교수였다. 나카모토가의 차남인 M씨는 츠쿠바대학의 전신인 국립동경교육대학 시절부터 친구였고, 졸업 후에도 가족 모두와 교우가 있었다고 한다. 센다이에 정착한 K씨는 연휴마다 가족과 이와테현으로 놀러 와 친구인 M씨 가족을 찾았다. 바로 그 K씨가 집안에서 수수께끼의 인모를 발견한 M씨가 감정을 의뢰했던 인물이다. K씨의 친족을 방문했을 때, 친구 M씨와 술을 나누는 K씨의 사진이 가족사진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K삼촌은 조용한 사람이었고, 그야말로 똑똑한 대학 선생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생각이 깊어 보였달까」라고 K씨의 조카는 말했다. 1989년 11월, M씨의 친구이며 사원에 인모를 가져간 난바, 바로 그 사람으로 생각되는 K씨는 자기 방 옷장 안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 사인은 제초제인 그라목손을 대량음독한 중독자살이었다. 현재는 입수하기 어려워진 그라목손이지만, 예전에는 간단하게 입수할 수 있었다. 그라목손을 이용한 음독자살이 각지에서 빈발하고, 1985년에는 이 농약을 이용한 무차별 연쇄살인(통칭 연쇄독살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문제가 되어 비로소 규제가 강화되었던 것이다. 독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다이쿼트라는 제초제와 혼합한 제제가 발매되는 등 대책이 이루어져, 이후 중독사망자는 현저히 감소했다. 그러나 K씨가 음독했던 것은 대책이 강구된 1985년 이전에 나왔던 그라목손이었다. 이후 경찰 조사에 의해 이 그라목손은 K씨가 센다이시의 한 농가 창고에서 꺼내온 것임이 밝혀졌다.

 당시를 회고한 K씨의 조카는 「하필이면 옷장 같은 데서……」라고 탄식했다. 그리곤 「하지만, K삼촌이 자살한 것 자체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K씨는 자살하기 2년 전부터 조금씩 행실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K삼촌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2년 정도 전에 갑자기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곤 갑자기 집에 틀어박혀 버렸대요. 처음에는 백모님이 설득했던 것 같지만, 점점 백모님도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려서. 반년 정도 뒤 집을 나가 버렸다고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K씨의 조카의 증언을 믿고 동북대학에 문의해 보았더니, 「K씨는 1987년 12월 징계해고되었다」는 응답을 얻었다. 징계사유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장기간 무단결근에 따른 징계해고처분이었다고 생각하면 K씨의 조카의 증언과 앞뒤는 맞는다. 아내의 가출로 공중분해되었던 난바가는 K의 죽음이 결정타가 되어 이산가족이 되었다. 현재는 K씨의 조카 외에 다른 친족들은 소재불명이 되어버렸다고. 취재 중 K씨의 조카는 필자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갈색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그것은 흩어진 친족들 중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조카에게 남겨진, 단 하나뿐인 K씨의 유류품이라고 했다. K씨의 조카가 「유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그 종잇조각은, K씨의 시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자료 9
유류품 종잇조각
글에서 언급되는 료코란 난바 코지로씨의 아내였던 타시로田代 료코良子씨를 말하는 것이라 추측됨
(난바 코지로씨의 조카 요시자와 쿠니히코씨 제공)

戻ってきてしまいました

「M 다음은 나인 것 같습니다. (아내 이름)에게는 참 미안한 짓을 했습니다. (동생 이름) 있는 데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 있는 데로는 다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 어딘가 섬뜩한 문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K씨의 조카도 짐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적어도 경찰은 이 종이를 심신상실상태의 K씨가 쓴 유서로 판단하는 듯하다. 확실히 심신상실 상태에서 쓴 것이라면, 이 언뜻 의미불명으로 보이는 문장도, 정신적 문제로 인해 정상적인 문장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 나온 문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카모토가에서부터 「저주의 인모」를 뒤쫓아온 필자는 이 글을 보자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혹시 「다시 돌아와 버렸다」 함은 그 인모가 「돌아온」 것이 아닌까.

 K씨가 돌연 히키코모리가 된 것은 자살한 1989년 1월로부터 2년 전. 그것이 1987년 상반기라면, 시기적으로 나카모토가 화재사건 직후와 겹친다. 어쩌면 나카모토가가 전소했을 때, 인모가 K씨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K씨로 생각되는 남자가 사원에 수수께끼의 인모를 가져간 것이 1988년. 인모는 태워 공양할 예정이었으나, 잠시 광에 두기만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10월에 주지가 자살하고, 그 3개월 후인 1989년 1월 K씨가 자살을 도모했다. 만약 인모가 K씨에게 「나타난」 것이라면, 유서에서 「다시 돌아와 버렸다」 함은 즉 「절에 태워달라고 맡겼던 인모가 다시 돌아와 버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머리털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하는 것은 황당한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카모토가 사건과 주지 자살 사건과 K씨와 관련된 일련의 정보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역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나카모토가는 몰살했고, 당시 주지의 동향은 정보가 적어 조사할 수 없었다. 난바가는 친족 대부분이 이산가족이 되어서 K씨에 대해 더이상 자세히 추적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인모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우연이 겹친 것일 뿐, 인모는 나카모토가에서 이미 불타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라면, 「저주의 인모」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어쩌면 K씨의 친척들 중 누가 집어서 어딘가로 가져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카토씨의 이야기 너머에는, 알려진 바 없는 숨겨진 사건이 존재했다. 나카모토 M씨와 교우관계가 있던 난바 K씨의 죽음, 그리고 그 사건 뒤에 번뜩이는 섬뜩한 「저주의 인모」의 그림자. 어쩌면 「저주의 인모」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비극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

(레포트 미야기 테츠히로)


자료 10
난바가 친족일 가능성이 있는 행려병자
조사 미야기

2004년 09월 30일 관보 게재

행려사망인

 본적・주소・씨명 불상 (자칭 난바難波 유키하루之治)
 남성, 40〜70세, 신장 165 cm, 검은색 반팔 티셔츠
 검은색 바지, 흰색 삼각팬티, 사진
 상기자는 헤이세이 16년 9월 29일 이와테현 ██군 ██정 ████████ 소재 건물에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옷장 속에서 심하게 부패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불명. 평성 16년 8월 20일부터 동년 8월 31일경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변사체는 화장했고 유골은 ███묘원에 보관했으므로, 망자의 신원이 짐작가는 분은 정사무소 복지과에 말씀해 주시기 바람.

 평성 16년 9월 29일

  이와테현 ██정장 ██ ██


2007년 10월 17일 관보 게재

행려사망인

 본적・주소・씨명 불상 (자칭 난바 타카히로), 남성
 추정 30세〜40세, 신장 160 cm, 여윈 몸
 착의는 흰색 탱크톱, 검은색 사각팬티, 회색 양말
 소지품은 현금 941엔, 돈지갑(검은색 반지갑), 팔뚝시계
 기름종이 1장
 상기자는 헤이세이 19년 10월 15일 이와테현 오오후나토시 ███████에 소재한 호텔███의 붙박이장 안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헤이세이 19년 10월 14일 한밤중 3시경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변사체는 화장했고 유골은 ███묘원에 보관했으므로, 망자의 신원이 짐작가는 분은 시청 생활복지부 지역복지과에 말씀해 주시기 바람.

 평성 19년 10월 17일

  이와테현 오오후나토시장 아마타케甘竹 카츠로勝郎


자료 11
미야기 테츠히로와 카토 쥰야씨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 (2018년 5월 2일~5월 5일)

メールアイコン

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2일
・・・

취재 부탁에 대하여


카토 선생님.
늘 신세지고 있습니다. 미야기입니다.
요전 취재 때 만나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원고 꼴은 갖추었고, 무사히 7월호 마감에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8월호에서 이번 건을 계속 다룰 생각입니다. 그 때 또 카토 선생님의 힘을 빌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조만간 그 건에 대해 만나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만날 장소는 늘 가던 가게이든, 카토 선생님께서 지정하시는 장소이든 상관 없습니다.
답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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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藤ジュンヤ
받는 사람: 당신

2018년 5월 2일
・・・

Re: 취재 부탁에 대하여


미야기씨, 연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습니다. 저번 주에 만났던 느낌대로라면, 다음번에는 그 털 이야기의 출처를 알려달라는 것이겠지요. 다음 만남은 5일 17시에 늘 가던 가게가 어떻겠습니까. 만약 안 된다면 6일 오후, 8일은 하루 내내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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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3일
・・・

Re: 취재 부탁에 대하여


네, 다음 호에서는 그 방향으로 쓰려고 합니다. 거듭 혐력에 감사드립니다.
만날 시각과 장소는 숙지했습니다. 5일 17시에 늘 가던 가게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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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藤ジュンヤ
받는 사람: 당신

2018년 5월 3일
・・・

Re: 취재 부탁에 대하여


미야기씨가 조사한 난바 집안 이야기와 별도로, 머리털 관련해서 재미있는 것을 찾았기 때문에 저도 자료를 가져가겠습니다. 나머지는 술 마시면서 생각합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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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5일
・・・

도착했습니다


미야기입니다. 먼저 도착했으니 룸 쪽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마스터에게 이야기해 두었으니 안내해 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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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5일
・・・

미야기입니다


오늘 약속 오실 수 있으십니까? 혹시 못 오시게 되셨다면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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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5일
・・・

무슨 일 있으세요?


문자에 반응이 없어서 전화를 했었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시다면 나중으로 미루어도 되니까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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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木哲弘
받는 사람: "加藤ジュンヤ"

2018년 5월 6일
・・・

미야기입니다


바쁘시다면 미팅은 나중에 해도 괜찮습니다. 나중에 일정이 비는 시간과 장소를 연락해 주세요.
오늘은 이제 슬슬 가게가 닫으려 해서 저는 귀가해야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미야기





카토 쥰야씨 5일경부터 소식 불통.
연락 없음.

2018/5/7 미야기 테츠히로








편집부에서 연락. 카토 쥰야씨가 행방불명. 가족이 수색원을 제출했다고.

2018/5/8 미야기 테츠히로








카토 쥰야씨 서거에 따라 게재 연기.
게재 시기에 대해서는 상담 필요.

2018/5/13 미야기 테츠히로





자료 12
야후 뉴스!
IBC 이와테방송 2018년 5월 14일 월요일 게재

모리오카시 ████공원의 분신시체 신원 밝혀지나… 동경도내 거주 남성 작가인듯 / 이와테・모리오카시


2018/5/14(월) 14:3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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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현경찰본부

 6일 이른 아침,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공원을 산보하던 주민이 「공원 화장실에서 연기가 난다」고 신고, 소방대가 출동했는데 남자화장실 변기칸에서 성별 불명, 신원 불명의 소사체가 발견되었다. 이와테현경은 이 변사체의 신원이 지난 11일까지 도내에 거주했던 작가 카토 쥰야씨(37세)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카토씨는 5일 오전 8시경 가족들에게 「모리오카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외출한 뒤 연락이 끊겼으며, 8일에 가족이 경찰에 수색원을 제출했다.

 현장에는 복수의 유류품이 있었으나 모두 맹렬히 타올라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아 그동안 신원 불명으로 알려졌다. 8일 신고된 수색원을 바탕으로 이와테현경이 수사한 결과 신원이 특정되었다. 변기칸에서는 등유 성분과 불탄 제리캔 등이 발견되었고, 카토씨는 자기 스스로 등유를 뒤집어쓰고 5일 심야에 분신자살을 도모한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이와테현경은 상세한 자살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


자료 13
카토씨의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인 공원 화장실.
(2022년 1월 26일 카가와 코쿠메이 촬영)
현재는 봉쇄되어 있다.

発見現場




카토씨의 장례식에 참석.
그 뒤, 카토씨의 유족에게 유류품 사진을 받음. 아내 사야카씨 말에 따르면, 최근 조사하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나카모토가 건의 가능성 있음. 5일에 「모리오카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갔던 것은 사실이라 함.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짚이는 것이 없다고. 보도된 내용이 거의 사실인가.

2018/5/16 미야기 테츠히로





자료 14
이와테현경에서 유족에게 반환한 카토 쥰야씨의 유류품
수첩이 불타다 남은 것 (사진)
카토씨의 유족이 제공

加藤ジュンヤ氏のネタ帳

이하 내용 전사

〜의 50년 전(1933년)에 카네자와 타에가 언급
〜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구자체)한 분석」(카도자키 테이지로)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번지 현재의 사쿠라다이?
〜다





카나자와金沢 타에タエ에 대해서는 아직 성과 없음. 카도자키門崎 테이지로貞次郎는 사립이와테의학전문학교(현재의 이와테의과대학) 의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카도자키 테이지로의 논문 중에 「행동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한 분석」이라는 것이 있었다. 논문이 작성된 해는 1933년. 타다 남은 글에 있던 「〜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관(구자체)한 분석」이 이건가.

2018/5/17 미야기 테츠히로








그냥 우연 아닐까? 진짜일까?

2018/5/19 미야기 테츠히로








복사서비스로 입수한 카도자키 테이지로의 「행동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관한 분석」에서 카나자와 타에가 언급된 것을 발견. 기술된 번지수는 모리오카시 사쿠라다이로 생각됨. 나카모토가의 소재지도 사쿠라다이였지. 우연일까?

2018/6/8 미야기 테츠히로





자료 15
1933년 사립이와테의학전문학교(현재의 이와테의과대학) 카도자키 테이지로 의사의 논문 「행동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관한 분석」에서 카나자와 타에가 언급된 부분.


제104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〇〇〇〇〇번지˚ 평민˚ 카나자와 케이이치로의 장녀 카나자와 타에˚ 메이지 42년 8월 15일생˚ 병상` 망상성 치매와 같은 피해망상이 심했고` 수시로 이 망상으로 타자를 가해했다˚ 환자는 또한 주술(まじない)이라며 개 고양이 가축을 다수 살해하고 해체하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환자는 사택에서 광을 개축한 감치실에 감치되었다˚

환자는 이 무렵부터 손톱` 이빨 등을 이용해 자해했다˚ 환자의 자해는 주로 팔다리 피부 및 두발을 뜯어내는 등의 행위다˚ 환자는 부친에게는 순종하지만` 자해를 멈추는 것은 곤란해했다˚ 감금되기 시작할 무렵보다 망상이 심해져 모친과 오라비가 죽었을 때는 자기가 저주해서 죽였다고 의사에게 말하는 것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환자는 쇼와 7년 6월 20일` 어떻게인지 습득한 부친의 면도칼로 격렬한 자해를 했다˚ 환자는 두발을 잡고 면도칼로 두피를 머리뼈에서 완전히 박리시켰다˚ 환자는 이 자해를 심야에 수행하여 21일 아침에 사망했다˚

피부・체모를 뜯어내는 자해는 제26례・제99례・제101례 등 다른 환자들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되지만` 제104례 환자의 자해는 한층 더 가열찬 것이었다˚




(카도자키 테이지로, 1933년, 「행동이상자 특유의 자해에 관한 분석」, p.131)





메모
사택감치(私宅監置したくかんち)
옛날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제도. 자택의 방, 광 등에 정신장애인을 가두는(= 감치하는) 것이다. 1900년 정신병자감호법에서 규정되었다. 좌부뢰(座敷牢)를 제도화한 듯한 것.
사택감치를 당한 정신장애인의 생활상태, 위생문제는 아주 심각했던 것이다. 1918년 쿠레 슈조秀三가 내무성에 올린 보고서 「정신병자 사택감치의 실황 및 그 통게적 시찰」에서 사택감치는 「너무나 참담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감치실은 「국가의 치욕」이라고도 불렸다.

1950년 정신위생법이 시행되면서 본토에서는 폐지되었다.

2018/6/8 미야기 테츠히로









카토씨의 메모는 카나자와 타에가 두피를 발라낸 자해로 사망한 것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다는 내용을 적은 것이었을까.
여성이 면도칼로 자기 머릿가죽을 벗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2018/6/8 미야기 테츠히로








소화 초기의 지도 「모리오카시가도」를 이용해 카나자와가의 주소를 조사한 결과, 나카모토가의 소재지와 동일함을 확인.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2018/6/13 미야기 테츠히로








정보의 정리

1909년 카나자와 타에 탄생.

19??년 카나자와 타에, 이상행동으로 집안 광을 개축한 감치실에 사택감치행.

19??년 카나자와 타에의 모친, 오라비가 사망 (상세 불명)

1932년 카나자와 타에, 면도칼로 두피를 벗겨내는 자해. 이 때 사망.

1955년 나카모토 마사무네씨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사쿠라다이의 거주지(카나자와가의 옛 집터에 세워진 집)를 구입. 나카모토 일가, 니노헤군 코즈야촌(현 니노헤군 이치노헤정)에서 이사옴.

1987년 나카모토 마사타카씨가 인모를 발견. 그 부친 마사오씨가 친구 난바 코지로 교수의 연줄로 감정을 의뢰, 인모임이 판명.
나카모토가에 화재 발생. 나카모토가, 동경에 살던 장남만 남기고 전멸. 전원 2층 붙박이장 안에서 소사.
이 무렵부터 난바 코지로 교수가 히키코모리가 됨.

1988년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사원에 난바 코지로씨로 생각되는 남성이 인모를 떠맡김. 주지 키타 카츠유키씨, 광에서 액사.

1989년 난바 코지로씨가 자택 옷장 속에서 음독자살. 유서 비슷한 문서를 남김.

2018/6/13 미야기 테츠히로








원고 게재 시기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묻힐지도 모르겠다.
조사는 계속한다.

2018/6/21 미야기 테츠히로








붙박이장, 광, 옷장, 화장실 변기칸. 억지로 공통점을 찾자면, 협소한 장소?

2018/6/26 미야기 테츠히로








불안.

2018/6/27 미야기 테츠히로








지금이라면 이 이야기가 드러나지 못할 이유를 알 것도 같다.

2018/6/29 미야기 테츠히로








조사해서 그런가?
나카모토가 때문인가?
난바가 때문인가?
카나자와 타에 때문인가?
어디서 뭘 잘못한 거지?
어째서 왜 내가?
어떡해야 하지?

2018/7/22 미야기 테츠히로








카나자와 타에인가?

2018/7/25 미야기 테츠히로








いち

2018/8/24 미야기 테츠히로








にい

2018/8/28 미야기 테츠히로








さん

2018/9/1 미야기 테츠히로









돌아오기 전에 간다

2018/9/2 미야기 테츠히로





자료 16
미야기 테츠히로씨의 행방불명에 관한 정보제공을 부탁합니다
이와테현 ██경찰서

사람을 찾습니다
ミヤギテツヒロ

(촬영년도 헤이세이 28년)

공표

이와테현 ██경찰서
헤이세이 30년 12월 9일 수리
헤이세이 30년 54호


씨명 미야기 테츠히로 宮木みやぎ 哲弘てつひろ
1981년 5월 22일생 (36세)


《행방불명시 복장》
복장 카키색 재킷


《인상・특징》
신장 약 175 센티미터
체격 마른형
두발 홍차색


《행방불명시 상황》
평성 30년 9월 3일 오후 17시경,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사쿠라다이 부근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됨.


짐작가는 분은 아래 경찰서, 혹은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이와테현 ██경찰서 생활안전과
(전화번호) ████-██-████










편집부 청소를 하던 중에 창고 안의 책상에서 USB 메모리를 발견.
원고와 일부 자료를 보니 2018년에 행불되었던 라이터 미야기 테츠히로씨의 물건인 듯.

2021/11/18 카가와 코쿠메이


















가제 「현대 최강의 괴이… 수수께끼의 『저주받은 인모』 철저 조사!」

미야기 테츠히로씨가 남긴 데이터를 이어받아 『월간 카르덱』 4월호 게재를 목표로 원고 제작 중.

2022/1/22 카가와 코쿠메이
































[파일 삭제에 실패했습니다]

갱신일: 2022/2/2 1:35
편집자: 카가와 코쿠메이
파일명: PAgjd2022/2/2.jpg

https://bit.ly/34nzN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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