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노을이 두 번 번졌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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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름을 가르는 군함이 있었다.

1968년, 남의 땅과 바다에서 겪은 전쟁과 죽음은 새로운 힘의 필요성을, 그 중에서도 강력한 군함을 보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웠다. 당시 대한 해군은 고작 100톤도 넘기지 못하는 고속정이나 겨우 운용하던 실정. 정부는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국가들의 기술을 빌리고자 했다. 그러나 약소국 티를 조금씩 벗어가던 이들의 군사발전을 원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터. 한국은 그저 이용하기 좋은 적당한 위치에 남아주면 그만이었다.

좌절당한 정부는 외국의 기업으로 손을 돌렸다. 다행히 관심을 보이던 몇몇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어째서들 하나같이 정책이나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가며 핵심 기술만큼은 내어줄 수 없다 하는지. 서방의 기업들은 이미 한국의 간절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최소한의 협력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만큼 받아낼 계산이었다.
이래서는 무릎꿇고 돈을 바쳐 무기를 얻어도, 제 역할도 못할 껍데기나 받아내는 게 고작. 당시의 대통령, 그는 나름 군인 사관 출신으로서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협상에서 굴복하느니 차라리 국내의 기술만으로 강병을 이루리라 다짐한 그는 외국 기업들을 돌려보내고 국내의 기업들을 불러모았다.

71년의 봄. 베트남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그 덕에 모인 여러 실전자료들은 한국식 구축함의 개발을 앞당겼다. 예정보다 일찍 전해진 완성을 알리는 소식. 진수식의 날짜는 4월 18일로 확정되었다. 모든 언론의 이목이 배의 첫 항해에 집중되었으며, 당연히 대통령 역시 참석 의사를 밝혔다.
사실,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조선 경험이라고는 어선, 화물선과 고속정이 전부인 기술자들을 불러모았으니 만들기만 했어도 충분히 잘 한 것이다. 어느 정도 자잘한 결함도 예상한 일이다. 우리만의 힘으로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이 기뻤다. 어딘가 고장이 나더라도 잘 수리하고 관리한다면 문제 없으리라. 대한 해군의 자랑스러운 새 기함이 되리라……

……정말로?

그 날은 오전부터 가관이었다. 분명히 물살을 가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하늘을 날았다. 수평선을 향해야 했을 함수는 항법장치가 가르키는 '위'를 향해 솟구쳤다. 추진기관이 돌아가지 않아도, 아무도 타를 잡지 않아도, 전원만 들어왔다면 끝을 모르고 떠올랐다. 이유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진수식은 엉망이 되었고, 앞으로 10년을 바라보던 한국형 구축함의 생산 계획도 전부 물거품. 참석했던 장성들은 얼이 빠져 화도 내지 못한 채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오찬이 예정되었던 빈 자리에는 조선사의 간부들만이 남아 망조를 곱씹었다.

대통령은 위원회를 소집했다. 외부에는 철저히 입막음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신식 군함이 수면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연단에 올라야 했으나 누구도 선뜻 희생양이 되려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는 인간들 뿐이었다.
그러다 불똥은 애매한 곳으로 튀었다.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연관은 있지만, 힘은 없는 아랫 사람, 조선사의 엔지니어들었다. 설계도대로 열심히 일했을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하지만 당장에라도 수갑에 묶여 끌려나갈 것이다. 위치 모를 지하실에서 대본을 받아 외우고, 모두의 앞에서 그것을 읽고, 뉴스와 신문에 얼굴이 박제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 사람들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에 기술자들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돈도 없고 인맥도 없다. 혓바닥으로 줄을 당기는 법정공방도 그들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연장을 들고 저 놈의 배를 때려 고치는 일. 수십명의 인부들은 우직하게 수리와 점검에 매달렸다. 목숨을 부지할 걱정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무엇이라도 결함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작업에 전념하기를 3일 째, 한 명의 전기사가 모두의 목숨을 구할 발견을 해낸다.
이 배는 언제나 자이로스코프의 '위'를 향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오류를 일으키면 어떨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위'가 되도록? 발상은 실행으로 이어졌고, 망할 놈의 배는 드디어 고삐 매인 소처럼 순한 짐승이 되었다. 명령하는 대로 하늘을 가르는 1000톤의 무장군함.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그 기적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소식을 받아들은 대통령의 지시로 새로운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이전의 회의록은 싹 쓸어버리고, 책상 위로 새로운 안건, 새로운 가지들을 빠르고 비밀스럽게 그려나갔다. 충성심과 배경에 하자가 없는 해군 중사 이상의 89명을 선발하고, 월남에서 뛰어난 작전성과를 보이던 정수화 대령을 본국으로 호출해 함장으로 임명했다. 비행에 불필요한 닻이나 함 안정기등을 떼내고, 사용하지도 못할 대함 무기 체계, 해수 파이프 라인 및 담수화 계통에 대대적인 개조를 감행했다. 항해에 필수적인 요소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비밀을 알 권리가 있는 소수의 인원만이 참가한 두번째 진수식. 기존의 번호를 지우고 새롭게 부여된 번호는 UFF-908, 통칭 '울산'. 다른 나라의 함선을 부러워하던 한국이 만들어낸, 어느 국가도 가진 적 없던 현대식 공중함선의 새 이름이었다.

이제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울산함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최신 교전 체계를 탑재한 1800톤 급의 전함이다. 단순 정찰이나 수송 따위를 시킬 수 없다는 의견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이런 비대칭 전력을 외국과의 관계에서 직접 내세울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기껏 만든 해결안이 애물단지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 때에 선뜻 제안을 내놓은 것은 중앙정보부 산하의 10국이었다.

"저희에게 UFF-908의 지휘권을 넘겨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이전까지 울산함의 제작과 운용은 모두 해군의 담당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날게 된 이후로는 기밀 유지와 은폐를 위해서 중앙정보부의 협력을 받고 있었기에, 그러한 발언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다. 허나 지휘권의 완전 양도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고, 당연히 많은 이들이 그 의도에 의심을 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 등이었다.

"하지만 10국은 당최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울산함으로 무슨 일을 하시려는겁니까?"

"10국의 역할은 대통령 각하를 비롯한 소수에게만 공개됩니다. 그리고 저희의 목적 역시 여기서는 모르실 일입니다."

몇 번의 질문이 더 있었고, 대답은 거의 같은 꼴이었다. 회의는 만장일치로 10국의 요청을 기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해산, 다음 날, 울산함의 작전권은 중앙정보부에게 완전히 이임되었다. 이번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위의 회의록을 마지막으로 UFF-908은 세계의 어느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 마저도 재단이 우연한 기회에 중앙정보부 10국의 옛 문건을 얻지 못했다면 영영 알려지지 못했을 터다.
그렇기에 여러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지금까지 서술한 '울산함'이 현재 울산 남구 야음장생포동에 전시되어 있는 '울산함'과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가? 그렇다면 1981년부터 33년 동안 아무런 변칙성도 보이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만약 두 '울산'이 같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UFF-908은 어디에서 누구의 소유 하에 있는가?
재단 역시 전담반을 꾸려 UFF-908의 행적을 쫓았으나 의미있는 단서를 건지지 못했고, 공식적인 SCP의 등재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여기서도 역시 많은 것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우선 울산함은 실존했으며, 그 승조원들과 함께 7년의 시간 동안 하늘의 곳곳을 헤집었다. 이들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이 경험과 기록들을 남겼으나, 결국 자신들의 이름은 남기지 못했다. 역사에서 지워진 89명의 선원들. 새벽의 햇살 속에서 끝내지 못한 마지막 항해. 아래는 그 마지막 항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1978년 12월의 어느 밤. 발 까마득한 아래에서는 성탄절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UFF-908은 통영 근해에서 발생한 이상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부산 상공 2000km를 지나고 있었다. 올라온 보고를 살펴보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공군에서 파견한 전투기 5대가 격추당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군이 입힌 피해는 없었다. 상부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울산함을 내보냈지만, 더 이상의 무의미한 손실을 낼 수 없다며 어떤 지원도 추가하지 않았다.

함장석에 앉은 정수화 대령은 팔꿈치로 몸을 기댔다. 단독작전을 수행한 적은 많았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근래에 군의 재정이 좋지 않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울산함이 누군가의 철없는 정치질에 휘말려 버린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함장은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도 올라오지 않는 성층권에는 이런 마음을 다독여줄 등대도, 따뜻한 섬의 불빛도 없다. 하늘을 누비는 선원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어둠에도 가려지지 않는 별빛의 지도가 있다. 자랑스러운 선원들이 있다. 언제나 그것을 떠올리며 용기를 다잡을 수 있었다. 함장은 손을 뻗어 내부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각 스테이션 당직사관, 종합 상황 보고."

"조타 항해 상황 보고, 현재 속력 65노트, 풍향속 NS 15노트, 공군 협조해 항공기 통제 끝, 항로에 기타 장애물 없음. 목표지점 ETA 7분입니다. 이상 항해당직 대위 박주헌"

"함교, 여기는 병기. 현재 K6 사수 부사수들 배치 및 준비 끝, 21포 병기사 이광수 배치 빛 준비 끝, 주포 사격 통제 연동만 끝나면 지금도 바로 사격 가능합니다. 이상 병기장 소령 이광수"

"전탐 상황 보고, 현재 목표물 수평거리 만 삼천, 수직거리 오천. 가시범위 내 특이사항 보이지 않음, 이상 전탐당직 상사 서지원."

한 명 한 명의 이름. 7년이나 항해하는 동안 가장 큰 의지가 되어 준 이름 들이다. 지금까지처럼, 이번 전투에서도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것이다. 모니터 상의 목표물이 가까워지자 함장은 다시 송신 버튼을 눌렀다.

"전탐, 현재 목표물 위치는?"

"함교, 전탐. 지금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있습니다. 유효거리까지 남은 시간 15분."

"통신, 방송해야겠다. 총원 전투배치."

함장석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 명령을 받은 통신 장교가 떨리는 입술을 마이크 가까이에 가져갔다. 평소대로 송신 버튼을 눌렀지만, 입이 떨이지지 않았다. 함내 방송용 스피커에서는 아무 말 없이 빈 잡음만이 울렸다. 결국 송신 버튼에서 손을 떼 버린 소위. 함장도 무거운 마음에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최 소위, 이번이 첫번째 항해도 아닌데 왜 그래. 네가 불안하면 티 낼 수록 밖에 총들고 서야 하는 사람들은 더 불안해 한다. 쟤들 질질 짜기 시작하면 방아쇠 한 번 못 당기고 다 죽어. 똑바로 해. 그래야 다들 살아. 우리가 살아.잘 알면서 왜 그래."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지원도 없는 작전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이대로 버려지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함교의 인원들 모두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이미 모두가 눈치채고 있던 것이다.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정말로 너무 위험해서 아무도 안 보내주는 것 아닙니까? 보내도 아무도 못 살아올거라고, 그래서 그나마 싸워 볼 만한 우리만 보내는 거라고, 항해직별 사이에선 그런 말도 떠돌고 있습니다."

"통신, 우리가 이 나라 최강 전력이다. 우리가 못 이길 싸움이면 이 나라 통째로 망한다는 소리야. 그런 일 없게 하는 게 우리 일이다."

"그게 그렇게…… 됩니까?"

"어느 쪽이든 인제 와서 방법은 없다. 우리한테 내려진 명령은 교전 명령이야. 안 싸우면 다른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야. 방송해라, 애들 나갈 준비시켜야지."

최 소위는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쓸었다. 두 뺨을 때리고, 식은 땀이 흐른 목덜미에 손을 비볐다. 가슴을 가득 부풀린 채 다시 송신 버튼을 눌렀다.

"알림. 현재 통영 상공에 미확인 비행체가 다수 집결중. 함 총원은 지시 있을 때 까지 각자 위치에서 대기할 것. 이상 함장 명."

도착예정시간 20분. 전투인원들은 이미 보호복과 호흡기 착용을 마치고 각자의 화기를 챙기고 있을 것이다. 최 소위는 눈 앞의 붉은 버튼 중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헷갈리지 말라고 글씨도 쓰여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될 텐데 왜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을까. 이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소위는 눈을 감기로 했다.

경보음이 귓가를 때린다. 그와 함께 전투화 수십 켤레가 선체를 바닥을 때린다.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기관실부터 비행갑판까지 사방이 트인 모든 곳까지. 여섯 개의 포구가 하늘을 향한다. 수십개의 총구가 적을 향한다. 그보다 더 많은 의지가 하늘에 모인다. 경보음이 끝나자 소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린다.

"실전! 총원 전투배치! 실전!"

"전투배치! 전투배치! 전투배치!"

89명의 복명복창. 바깥에 나가는 이들의 마음은 사지로 발 담그는 공포에 젖어들고 있다. 배 안에 남은 인원들 역시 보이지 않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목숨을 잃을 거라는 불안에 떨고있다. 그래도 각자는 믿었다. 적어도 내가 괜찮다고 말하면 그 소리를 듣는 전우는 안심할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외쳐야 했다.

"배치 및 준비 끝!"

밤보다 짙은 믿음. 그것 하나로 함선은 깊은 어둠 속으로 흔들림 없이 전진했다. 목표물에 다가갈수록 울산함 주변은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호흡 마스크 속 외부 인원들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안개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경계했다.

하지만 안개는 그 자체가 이미 위협이었다. 함장은 코의 점막에서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았던 항해 인원들도 마찬가지, 그 중 심한 이들은 기관지가 녹아 피를 토하기도 했다.
뒤늦게 실내에서도 호흡기과 보호복을 착용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압축식 환기구 가까이 있던 기관부 몇 명은 고농도의 안개에 휩싸여 중태에 빠진 뒤였다. 첫 사격 명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발생한 인명 손실. 이 안개는 그날의 전장에서 가장 무해한 것이었다.

끈적한 액체를 흘리는 살덩어리 하나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검은 생물체가 직선으로 울산함에 부딪혀오자, 그것은 큰 소리와 함께 으스러졌으나 선체에도 움푹 패인 자국을 남겼다. 갑판요원 하나가 다가가 살펴보자 그 정체는 다름아닌 까마귀. 겨울이 되면 북쪽에서 추위를 피해 날아오는, 흔한 철새 중 하나였다.
선원들이 까마귀가 이 높은 곳까지 날아온 것을 의아해하는 동안, 안개 속에서 하나 둘씩 검은 부리와 깃털들이 새로이 모여들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광기에 붙잡힌 새 떼. 이들이 바로 전투기를 격추시킨 주범이었다. 공군을 무력화시킨 놈들의 공격방식은 단순했다. 수 백마리가 날개를 접고, 단단한 부리를 내세워 전력으로 들이 받는 것.

"전 포대 탄막사격 실시!"

정수화 대령은 반격을 지시했다. 놈들의 수가 더 많아지기 전에 빨리 머릿수를 줄여야 했다. 갑판 위의 총열들이 불을 뿜는다. 수십km/h로 날아들어 철판을 우그러트리는 괴물들이지만, 그 몸통을 이루는 것은 여전히 살덩어리와 뼈, 약간의 깃털. 눈 먼 총탄 하나만 지나가도 두 세 마리 씩 몸을 비틀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어디를 쏘아도 맞을 만큼 놈들의 수는 많았다. 약 30분간 이어진 일방적인 사격. 배에는 점점 더 많은 새들이 부딪혀왔고, 함장은 선원들을 다급하게 재촉했다.

"배로 접근하는 놈부터 떨어트려!"

"전탐 레이더 보고! 방위 030, 고각-120, 거리 3000~4000! 적 비행체 다수, 아래로부터 접근중에 있음!"

까마귀 떼가 포화를 피해 함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모양이다. 보고를 들은 모두가 초조해졌다. UFF-908은 애초에 하늘을 날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물에 잠기도록 설계된 부분은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을 위한 보강 철판을 덧대놓았지만, 아래에서 몰려드는 공격을 당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정신없이 오가는 통신 속에서 최 소위가 대령을 향해 외쳤다.

"전탐장 권고, 함을 돌려야 한다고 합니다!"

정수화 대령은 긴장한 탓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함을 돌린다고? 그런다고 여기서 빠져나갈 곳은 있나? 그에겐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의무가 있다. 승리해서 승조원들을 하나라도 더 살려서 돌아가야했다. 사생을 가르는 결단은 언제나 한 순간이었다.

"방향을 돌리면 함 측면이 노출된다! 이대로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 사격 가능 범위까지 고도를 낮추도록!"

"하강 경보 발령! 함 외부 인원들은 갑작스런 충격에 대비할 것!"

소위가 외치기 무섭게 수직으로 낙하하는 울산함. 위로 날아오던 까마귀떼 속으로 가라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함외부의 사수들이 되는대로 총을 쏴갈기지만, 사각지대는 너무나 넓고 적은 너무나 많다. 까마귀 한 마리가 선체에 냅다 꽂힌다. 그 충격으로 녀석은 완전히 으깨졌지만, 겹철판으로 보강된 선체 표면에도 움푹 패인 핏자국이 더해졌다. 그 시체를 따라 더 많은 부리가 울산함에 달려들었다.
벽을 부술 듯 때려대는 소리에 내부에서 장비를 조작하던 인원들도 공포에 질리고 귀를 막았다. 눈 앞에서 구겨지고 일그러지는 겹강철의 격벽. 기어이 한 마리가 틈새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과녁이 되어 더 많은 부리들을 끌어모은다. 집중포화를 받은 선체의 변형이 한계를 넘고, 까마귀들이 밀고들어올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하부격실 파공 발생!"

"뭐라도 틀어서 막아!"

"안됩니다! 까마귀가! 까마귀가아악!!"

구멍이 뚫린 곳은 1번 발전기실. 선체 외벽을 파고든 까마귀들이 가진 유일한 목적은 보이는 전부를 박살내는 것. 바깥의 포화를 지나온 탓에 전신이 긁히고 날개가 그을린 악귀들이 흰자위를 드러내며 폭주했다.
선체 내부는 새 떼가 흘린 끈적한 액체와 승조원들의 피로 점점 더 범벅이 되어가고, 두들기고 두들긴 끝에 까마귀 무리가 발전기의 가솔린 실린더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고야 말았다. 불길한 금속의 파열음과 동시에 각종 펌프들을 작동시키는 배관, 기어들이 파열한다.
섬광, 비명. 바로 아래에 붙어있던 오일 탱크로 불이 번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고, 유류 계통을 일부 공유하던 3번 발전기도 함께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7개의 수면하 격실을 통째로 날려버린 연쇄 폭발의 충격에 함선은 대각선 위로 크게 튕겨 올려졌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였다면 다시 수면에 부딪히면 산산조각 났을 것이고, 그대로 전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함은 하늘을 가르는 배. 땅을 밟을지언정 침몰하는 일은 없다. 충성을 바친 선원들 역시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부서질지언정 멈추는 일은 없었다.

"제 2 승조원 침실 격실 폐쇄! 갑판창고 격실 폐쇄! 103호부터 109호까지 구역 설정해!"

"에어록 밀폐! 환풍기도 차단해! 불길이 밖으로 못 나오게 막아!"

"여기 아직 숨이 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까마귀다!!! 쏴! 쏴!"

10여 분이 지나고, 함교 아래 하부 격실에 남아있던 인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머리를 감싸쥔 채 비명을 지르는 겁쟁이들과, 비명을 지를 수 없게 된 시체들. 이번에 추가된 인원 손실은 최소 41명. 까마귀의 공격에 10명의 전투요원이 사망했고, 갑판 아래 불길 속에선 11명이 고통스럽게 생을 마쳤으며, 배가 튕겨나간 충격으로 20여명이 밤하늘 속에 던져졌다.
의무반이 살아남은 이들과 조각난 시신의 파편들을 추스리는 동안, 전투요원들은 텅 빈 하늘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폭발 직전의 순간에도 까마귀들은 계속해서 손상부위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고, 화염과 파편의 폭풍에 그 무리가 휘말려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 이들은 절반에 가까운 전우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망가진 울산함에 찾아온 것은 정적, 고요하고, 어두운, 추위. 남겨진 것들은 사라진 것들을 대해 침묵을 지켰다.
함장은 호흡기를 낀 얼굴을 손바닥에 파묻었다. 임무에 성공한 것일까? 미쳐버린 새 떼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은 것인가? 하지만 적지 않은 승조원을 잃었다. 자신의 결정은 옳았던 걸까?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함장은 고개를 들어 바깥을 보았다. 끝도 없이 뻗은 어둠. 별도 보이지 않았다. 함수에서 들려온 비명. 테러에 빠진 소총수들이 다시 총을 쏴갈겼고, 주포와 부포들도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마지막 악몽이 시작되었다. 유탄과 포탄의 섬광이 주변을 밝힐 때 마다, 선원들과 그들을 둘러싼 끔찍한 현실이 함께 비명을 질렀다. 쇠와 주먹은 이 악마를 피흘리게 하지 못했다. 격발과 폭발이 만들어낸 빛이 진흙과 같은 어둠을 찢어내는 듯 했으나, 완전히 몰아내기에는 너무나 짧았다. 터져나가는 피와 사지. 갑판 위를 뒤엎는 검고 끈적한 액체들. 이곳은 대체 어느 지옥으로 이어지는 아가리 속이란 말인가. 포화가 번쩍일 때 마다 바쁘게 눈을 돌려보지만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저것은 이빨인가? 저것은 눈알인가? 아귀가 속삭였다.

'해가 뜨기 전에 너희를 소화시키고 저 아래 숨을거야. 내일 밤이 오면 너희 가족들을 잡아먹을거야.'

그랬다는 확신은 없다. 애초에 환청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누구도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을 가득 메우던 어둠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저 아래, 도시의 불빛을 향해 다가간다.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이 재앙이 모두를 죽일 것이다.

전투요원들은 폭뢰를 던졌다. 쏠 수 있는 모든 화기를 쏘아내렸다. 갑판을 향해서. 내부의 선원들도 배에 불을 놓았다. 오직 빛 만으로 이 악몽을 찢을 수 있다면 밝게 빛나야 했다. 밤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노을 마냥 넘실거리며 모두를 삼키는 화염, 창공은 때 아닌 여명으로 붉게 물들었다.
강철과 강화 골재들이 진득히 녹아내리며 불을 뿜는다. 주변의 공간도 밝게 요동치며 부풀어올랐다. 이제 이 하늘에는 두 마리 악마가 있다. 불길에 감긴 울산함이 이 이리저리 쏘다니며 사지와 내장을 찢으니 어둠도 발작하며 비명을 지른다. 이대로는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놈은 남은 세 팔을 빛 속으로 뻗었다. 찢어지는 고통을 참고, UFF-908의 불타는 선체를 쥐어짰다.
대령은 눈이 뽑힐 듯한 충격을 느꼈다. 함교가 통째로 뜯어지며 발생한 기압 변화에 귓속과 항문이 찢어졌다. 공중에 내던져진 그의 몸은, 몇 개의 칠흑자락과 총탄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갑판에 충돌, 가슴을 찌르는 충격과 함께 눈 앞이 벌게졌다. 숨을 쉴 수 없는 괴로움에 안구의 혈관들이 터져나간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있는 전부 터트려라.' 그것이 대령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오전 6시. 부서진 기관실의 바닥을 통해 푸르스름한 새벽이 새어들어왔다. 두번째로 찾아온 여명. 허나 공기는 차갑고 깨끗하다. 살아남은 것이다. 찢어진 철판 사이로 새벽이 부드럽게 스며들지만, 이미 뇌수마저 뜨거운 연기에 재워진 이들은 그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함장 역시 귓가의 희미한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최 소위가 뭉툭해진 팔뚝으로 통신기를 두드리며 고함치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생존자가 있단 말입니다! 구조를 안해주겠다니…! …… 아닙니다! 항해할 수 있습니다! 복귀할 수 있습니다! ……고도가, 고도가 지금, 위치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함교가 피격당해…… 이함이요? 여기가 어딘지 알고 이함 명령을……! 다 죽으란 소리입니까! 여기 다 부상자들인데! 그게, 그게 말입니까!!! 아니지, 아니라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돌아가게 해주십쇼! 제발! 남은 사람들이라도 살려달라고!

통신소위가 처절하게 울부짖을 때, 울산함의 고도는 이미 지상에서 맨 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아마 손상이 너무 심각했던 탓에 변칙성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그 진행 속도가 더뎠다는 것. 울산함은 오래된 헬륨 풍선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아마 생존자 모두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인 것은, 상부에서는 UFF-907을 땅에 내리게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도심 한복판에 1000톤의 피로 범벅된 쇳덩어리 흉물이 내려온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기중이던 대공 포대에게 폭격 지시가 내려졌다.
텅 빈 하늘에는 새벽놀에 붉게 물든 구름이 피었다.


정수화 대령이 건물 밖으로 나섰을 적엔 이미 사거리에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길가에 설치된 가판대에서는 어느 신문 가리지 않고 통영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사고를 1면에 올리고 있었다. 군경이 함께 샅샅이 조사 했으나 생존자는 아무도 없으며, 대신 비행기의 기장의 자살 유서가 발견되었단다. 허무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대령. 그의 곁에는 날카로운 턱이 인상적인, 서부 지방 검찰청 소속의 청년이 함께 있었다.

"지금 보이는 가게 중 어느 곳이나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오십시오. 썩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대신 영수증을 꼭 챙겨오셔야 합니다."

대령의 나이는 이미 쉰을 넘었지만,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그 남자의 말을 가만히 따를 뿐이었다. 길 건너편의 잡화상에 다녀온 그의 왼손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쥐여져 있다.

"이것으로 좋은가."

"만년필이군요. 영수증은 어디 있습니까?"

청년 검사는 영수증과 만년필을 여러 방향으로 돌려가며 찍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부분은 수첩에 꼼꼼히 적어가며.

"이것으로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들고계신 그 영수증과 만년필을 빼곤 전부 사라질 겁니다."

"내겐 너무…… 그냥, 그냥 보내주면 안 되겠나. 왜 날 살려주는 건가."

"하아."

검사는 울먹이는 노인을 향해 한숨을 뱉었다.

"울산함은 아직 작동합니다."

"그럴리가……."

"그런데 말입니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정권이 뒤집어 질 모양입니다. 10국도 표면상으로는 해체 될 테고. 그래서 울산함을 완전히 부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복구 못하도록 말입니다. 해군에서는 어떻게 고쳐서 바다에라도 띄울 셈으로 선체의 남은 부분을 가져갔지만, 그거야 빈 껍데기 뿐이지요. 가장 중요한 부분, 울산함의 자침만큼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곳에 숨기기로 했습니다."

검사는 종이봉투를 돌려주었다. 봉투는 이상하게 무거워져 있었고, 주둥이를 벌려 그 속을 보고 싶었으나 장갑을 낀 검사의 손이 그것을 막는다.

"울산함을 되살리려면 선생님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겁니다. 그러려면 살아주셔야 합니다."

"끔찍한 놈들."

입술을 꾹 다문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월남에서 살아나온 그의 경력은 모조리 불쏘시개가 되었다. 식솔과 형제에게는 작전 중 실종되었다는 소식만 겨우 전해졌을 것이다. 평생 살아온 나날을 빼앗기는 것. 세상에 한 척 뿐인 근대식 공중전함의 함장에서, 혼자만 살아남은 패장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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