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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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이 병원으로 호송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이었다. 에릭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병원으로 보이는 곳의 침대에 누워있단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 에선 묘한 섬뜩함마저 느껴져왔다. 그때가 마침 의사가 병실을 방문하는 시간이었고, 에릭의 병실로 들어온 의사는 크게 기뻐하며 에릭의 상태를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잠시 뒤에 오겠다고 말한 뒤 병실을 떠났다. 의사가 떠난 직후, 연구복 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박사는 우선 에릭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네."
"깨어나자마자 이러는 게 실례인 줄은 알지만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박사의 질문 중 대부분은 평소 케빈의 행동과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케빈이 평소에도 해당 이론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는지, 행동은 얼마나 과격했는지 같은 시시한 질문들이었다. 에릭은 박사의 질문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박사는 이런저런 질문을 한 뒤에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연구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고계십니까?"
"아… 그때 바로 기절해버려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잘 모릅니다."
"흠… 일단은 알고 계시는 게 좋을 테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박사는 우선 케빈의 이론에 관한 말을 했다.

"케빈 씨가 실험 직전에 자신의 연구 자료들을 백업해두셨더군요. 이런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논문은 모두 재단의 서버에 저장되어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이론에 대한 연구 자료는 다른 연구원들에게 넘어갔죠."

박사는 또 다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의 얼굴은 갑자기 불편해진 것이 티가 날 정도로 찡그려져 있었다.

"연구 결과는, 그래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이론은 한 치도 틀린 점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죠."
"그게 대체 무슨…?"
"불확정성의 세계는 실존합니다. 그리고 그의 기계는 실제로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죠. 그가 실패했던 이유는 뇌파의 파장을 너무 크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기계가 그 파장을 버티기에는 내구도가 너무 약했던 점도 있구요."

박사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에릭은 최대한 박사의 말에 집중하려 했지만, 대부분은 그의 이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었고, 에릭은 케빈에게서 이미 지겹도록 들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야기에 별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에릭은 자신이 얼마나 쓰러져있었는지 궁금해졌고, 적당한 타이밍을 재다가 박사에게 자신이 쓰러진 날로 부터 얼마나 지났는가를 물어보았다.

"저, 실례지만 제가 얼마동안 쓰러져 있었던겁니까?"
"…아마 말해도 믿지 못하실 겁니다. 에릭씨. 당신은 한 달 동안 쓰러져있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만히 멈춰있었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한 달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롭니다. 당신은 '멈춰'있었어요. 한 달의 기간 동안 당신은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이 지나면 당신이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처분할 예정이었는데… 운이 좋으시군요."

에릭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떠한 영양공급도 없이 살아있었다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에릭은 박사에게서 현재 케빈의 상태 대한 얘기도 전해 들었다.

"케빈은… 사실 그 생명체를 그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그때 바로 기절하셔서 정확한 기억은 없으시겠지만, 현재 그는 어류의 일부분과 상체가 완전히 융합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우리는 그 원인을 그의 실험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사의 말에 따르면, 케빈의 기계를 자세히 알아본 결과, 마무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불확정성의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과부하로 인해 폭발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케빈의 몸의 분자구조는 현재 굉장히 불안해져있고, 자칫하면 전과 같은 참사를 다시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에릭은 박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평소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케빈을 보고 동정을 느껴 그를 챙겨주고 있었던 것인데, 사실상 에릭이 케빈과 그 주제에 대해 얘기했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케빈이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이 실험을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 에릭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면,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에릭밖에 없었다.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우리가 해결책을 찾아낼 거예요."

에릭의 자책을 눈치 챈 박사는 에릭을 위로했다. 하지만 박사의 위로와 달리, 한참이 지나도 별다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참사가 일어난 연구소 주변에서 이상한 현상만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구소를 정리하던 인부들 중 일부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인부는 에릭과 마찬가지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멈춰있었다. 하지만 한 달 뒤 깨어난 에릭과 달리, 그 인부는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재단의 박사들은 해당 지역 주변을 격리하고, 케빈의 기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체모를 어류인간이 되어버린 케빈에 대한 조사도 시작되었다.

케빈은 미친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문어 친구가 있었다느니, 폐수를 맞고 이렇게 된 거라느니, 온통 뜬금없고 이상한 말들뿐이었지만, 확실한건 그에게 과거 케빈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케빈이 수면을 취할 때 몸의 분자구조가 안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박사들은, 케빈을 강제수면상태로 만들었다. 케빈의 기계를 한참동안 연구하던 박사들은, 그 기계를 좀 더 개조해서 안전하게 불확정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안전상의 문제로 최대 체류가능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해당 장치를 통해 요원들이 수집해온 데이터들을 통해, 케빈의 이론은 점점 완성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불확정성의 세계를 어떻게 취급해야 되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해졌다. SCP로 지정해 관리해야한다는 의견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당장 기계를 파괴해야 된다는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서로 대립했다. 그러던 와중, 불확정성의 세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던 레인이라는 이름의 요원은 특이한 빛을 내는 돌을 발견하게 된다.

"뭐지 이 돌은…?"

레인은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 돌은 마치 오팔처럼 형형색색의 어두운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레인은 곧 그 돌의 빛깔에 매혹되었고, 그는 이후 그 돌이 보이는 족족 모두 수거해 현실로 가져왔다. 원칙대로라면 그 돌들은 모두 연구 자료로 제출되어야 했지만, 그는 하나의 돌만을 제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서랍으로 들어갔다. 레인은 그 돌이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상부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그 돌은 케빈이 에릭에게 보여줬던 그의 서랍에 들어있던 돌과 동일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돌의 특이한 점은 빛난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해당 돌은 다음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던지면 날아가서 떨어진다던지, 들고 있어도 가만히 있는다던지. 현실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쪽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런 현상을 보이는 물체는 그쪽 세계에서 레인이 가져온 그 돌이 유일했다. 박사들은 곧장 그 신비한 돌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박사들의 연구 결과, 확실하진 않았지만 그 돌이 주변의 분자구조를 비정상적으로 안정시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돌이 케빈의 분자구조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케빈은 강제수면 상태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드십니까?"

케빈이 깨어나자마자 주변의 박사들이 그에게 건넨 말이었다. 케빈은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두 팔과 다리는 결박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이상한 장치가 씌워져 있었다. 아무리 움직여보려해도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케빈은 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대체 뭐야? 당장 풀어!"
"흠… 역시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납득이 빠를 것 같군요."
"뭔 개소리야! 젠장.. 이거 풀라고!"

박사 중 한 명이 케빈의 앞으로 거울을 가지고 왔다. 그곳엔 이미 너무 변해버린 케빈의 모습이 있었다. 케빈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조작이라기에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케빈은 다시 원래의 기억을 되찾은 상태였고, 자신이 실험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의 기억만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박사들에게서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전해 들었다. 자신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과, 자신의 모습이 흉측하게 변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에릭마저 위험에 빠져들게 했다는 것. 모든 소식을 들은 케빈은 절망했다.

"나는… 아니야…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요! 내 이론은 완벽했다구요!"
"그래, 이론은 완벽했지. 단지 그걸 실행할 방법이 엉성했을 뿐일세."
"아니야… 내 실험은…"
"자네의 실험은 불완전했어."

케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구소가 그렇게 된 건 모두 성급하게 가시적 성과를 내려했던 그의 잘못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케빈은 자신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될 지 상상했다.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결과를 떠올리려 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은 연구소 하나를 완전히 파괴해버린 중징계건 이었다. 어떻게 해도 처분을 피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재단에서의 처분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원래대로라면 당신은 바로 처분대상이지만,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네."
"…무슨?"
"자네가 있던 연구소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어. 이미 연구소 주변은 모두 영향권에 들어온 지 오래네. 이 기세로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면, 앞으로 약 2달 만에 민간인의 거주구역까지 늘어나게 될 거라는 게 현재 연구진의 예측일세."

박사는 케빈이 해당 현상의 정확한 발생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멈춘다면, 처분까지는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사는 이전의 몰아붙이는 던 어조와 다르게, 최대한 정중한 어투로 케빈에게 연구의 참여의사를 물었다. 케빈은 연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케빈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연구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바로 죽게 되었을 것이고, 그 이론은 그가 어릴 적부터 세워왔고, 그동안 그만이 연구해왔기 때문에 그보다 해당 이상 현상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케빈은 자신의 이론이 인정받은 것 같아 내심 기뻤지만, 이런 말을 밖으로 내놓는다면 질책을 받을 것이라는 눈치 정도는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좋아. 그러면 연구복으로 갈아입고 날 따라오게. 아, 그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는 절대로 벗어선 안 되네. 잘 때도 마찬가지 일세. 그 목걸이가 자네의 기억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이니 말이야.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케빈은 연구복으로 갈아입었다. 비록 머리와 상체 일부는 어류의 모습이었지만, 팔은 다행히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케빈은 비교적 수월하게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케빈은 따라오라는 말을 한 뒤 먼저 문 밖으로 나간 박사를 다급하게 따라 나갔다.

"이봐. 케빈. 자네는 얼마 만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나? 대충 어림짐작으로."
"확실하진 않지만. 두 달 안에는 끝낼 수 있습니다."
"멍청한 자신감이군. 내 이름은 올리비아일세. 자네의 존재 사실은 자네의 조사에 참여한 일부 인원들을 제외하곤 모두에게 기밀사항이라서 말이야. 자네를 부를 다른 이름이 필요한데, 쓰고 싶은 이름 있나?"
"흠… 대충 피쉬 박사라고 부르시죠."
"이름 좀 잘 지을 수 없나? 그리고 누구 맘대로 박사야?"

케빈과 올리비아 박사는 서로 투닥대며 케빈이 갇혀있던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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