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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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야말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지. 그리고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야."

인상 좋은 노인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대신 요리의 재료로 쓴다면, 행복해지는 건 바로 내가 될 테지. 내가 직접 요리하는 게 가장 즐겁지만 말이야."

인상 나쁜 노인이 말했다.


[바로 이게 문제라네.]

목소리가 나오는 동시에 O5-7이라 적힌 모니터가 잠깐 지직거리더니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 양식으로 쓰여진 일종의 전단지였다.

"이 몸은 아무래도 눈에 문제가 있나 봐. 다시 태어나야겠는데, 어디 적당한 D계급 없냐?"

내용을 살펴본 브라이트박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의 벽이 터져 얼떨결에 따라왔다가 멀뚱히 서 있던 K████ 요원도 회의에 끼어들게 되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으나 크게 다르진 않았다. K████ 요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고만 있었고, 콘드라키의 표정은 짜증으로 가득 차 잔뜩 구겨졌다. 심지어 그 유명한 기어스박사 머지도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글쎄, 난 채식이 좋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고기는 질리도록 먹었거든. 그러고 보니 평생 고기만 먹어야 하는 농사꾼 한 놈을 아는데, 제발 그 새끼를 여기 데려온 건 아니라고 말해 줘."

인상 나쁜 청년이 말했다.

"육식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죠. 이유야 어찌 됐건, 육식을 멀리하게 된 건 잘 된 일입니다."

인상 좋은 청년이 말했다.


"우리 쪽 정보원이 말하길, 아벨과 늙은이가 탈주했다는군. 그러게 진작 없애버리라 그러지 않았나."

GOC 측의 아바타가 말했다.

"형편없는 정보원이군요. 탈주가 아닙니다.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허가를 받았고, 모두 통제 하에 있… 잠깐. 아벨이라고요? 이번 일에는 늙은이만 투입하기로 했는데?"

재단 측 아바타가 말했다.

"저희 쪽 정보원이 말하길, 그 자식들이 빌어먹을 도마뱀도 데리고 나갔다던데. 문단속 좀 잘하지 그랬어."

'P' 부서 측 아바타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뭐라고? 682도 탈취당했다고? 682 없이 이번 일을 어떻게 진행하란 건가? 682를 나누겠다더니, 혹시 우릴 속인 거였나?"

혼돈의 반란 측 아바타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쪽과 교환하기로 한 품목은 저희 쪽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란말입니다! 젠장, 그 늙은이, 이상하리만치 협조적이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재단 측 아바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벨의 탈주는 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도 자격은 충분합니다만."

유한회사 측 아바타가 말했다.

"하아. 카터 씨. 카인이 왜 아벨을 죽였는지, 그리고 아벨이 왜 그런 미치광이가 됐는지 아십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말이 쏙 들어가 버릴 겁니다."

재단 측 아바타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난 너희를 요리해버리고 싶은걸.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해봐. 너희 모두 뼈와 살을 분리해주지."

뒤편에 놓은 거대한 컨테이너에서 거슬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자 두 늙은이와 두 청년이 동시에 말했다.

"재료는 좀 닥쳐."


"이게 뭐야? 화면 잘못 뛰운 거 아닙니까?"

콘드라키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

[자네, 원더테인먼트 박사를 아는가? 난 잘 알지. 절친했던 친구였거든. 그의 공학적 재능은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다다랐어. 하지만…]

모니터의 목소리가 이해한다는 듯이 타이르며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그… 자기가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정신병자가 그 녀석들을 도와줬다던데, 괜찮은 겁니까?"

UIU 측 아바타가 건성으로 말했다. 그는 통신용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며 새로 설치한 앱 게임의 최고기록을 깨기 위해 변칙개체를 활용하여 점수를 높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그 녀석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이번 계획에 참여하겠다는 녀석들을 알맞은 장소로 옮겨주고, 계획의 경과를 살필 심판 비슷한 것일 뿐이니까."

유한회사 측 아바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전단지가 들려있었다. 저 멀리 제19기지의 O5-7이 띄운 화면과 같은 내용이었다.


K████ 요원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기지 곳곳이 터져나가는 상황에도 넋을 놓게 만든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제6회 마셜, 카터 & 다크 배 초인 요리 경연 대회

주제: 특별한 스테이크
일시: ####년 ##월 ##일 ##시 00분 ~
후원: 아무도 아닌 자(심사위원), SPC 그룹, 플러그 소프트, 방랑자의 도서관, (주)샤크 펀칭 수산

같은 시각, 재단 측 아바타가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벨은 정말 끔찍한 요리치야. 카인이 식물을 죄다 말라죽게 만드는 능력아닌 능력을 얻은 것도 그의 요리 때문이었고, 농부였던 카인은 식물을 다루지 못하게 된 것 때문에 아벨에게 분노하여 그런 죽어도 죽는 게 아닌 저주를 얹어주고야 말았지. 아벨이 정신 나간 살인귀가 된 것도 자신의 요리를 잘못 먹었기 때문이었어. 그 자식이 682 꼬리 스테이크를 만들면 무슨 재앙이 벌어질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네."

제19기지에서는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더테인먼트 박사는 음식만 만들면 어지간한 변칙개체급으로 만들어버리는 요리치야. 천재적인 공학 능력으로도 까딱 실수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장난감을 만드는 박사가, 엄청난 요리치이면서도 682를 탈취하여 이번 요리대회의 재료로 쓰고자 하네. 의도하는 건 아니겠지만, 평범한 재료로도 변칙개체가 튀어나오는데 682 꼬리 스테이크라면 뭐가 튀어나올지 생각도 하기 싫군.]

하지만 우리 기술자가 분석하길, 원더테인먼트 박사와 아벨이 682로 요리를 하면 XK급 세계멸망 시나리오가 떡 하니 튀어나온다는군. 우린 어떻게든 그들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아야 해.

세계 오컬트 연합, UIU, 총참모부 정보총국 'P' 부서, 유한회사 마셜, 카터 & 다크 그리고 혼돈의 반란의 아바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벨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원더테인먼트의 악명은 그들도 익히 알고 있던 터였기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K████ 요원의 일행은 아직도 사방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 폭발소리가 섞여 터져 나오는 제19기지의 번호 모를 복도에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허탈하게 O5-7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니터가 꺼진 후에도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바로 옆의 벽이 폭발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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