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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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난해요, 육?”

샐리 메이블은 지팡이로 탁자를 내리치곤, 전해진 반동에 잠시 손을 떨었다. 그녀는 좁은 방에서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울렸음에, 또 눈앞의 남자가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있음에 놀랐다.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비서를 홀로 놔두고, 방 안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었다. 슬슬 샐리 메이블이 입을 다시 열어가려는 즈음 육이 그를 가로막았다.

“복귀하자마자 날 찾아와서 이렇게 깽판을 치는 이유가 뭔가, 이사관, 아니 위원장?”

“정말 몰라서 묻는겁니까?”

그녀는 격양된 채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한 장을 남자의 얼굴에 들이댔다. 땀방울이 바닥의 옅은 갈색 얼룩 위에 떨어졌다.

“지금 재단이 어떤 꼴인지 몰라요? SCP, 그것도 케테르급이 넷이나 탈주하고, 빌어먹을 혼반은 일시적 동맹관계 주제에 이런 가짜 문서나 뿌리고 있다고요. 내가 방금 출발한 멀쩡한 27기지가 뭔 시커먼 개병신으로 뒤덮혀 박살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다 잊고, 근데 어떤 운 억세게 좋은 메리 수 새끼는 탈주한 2075랑 27기지에서 두번 다 살아남고, 17기지는 저 어딘가 떠돌고 있을 682 때문에 반파되고… 지금 이런 것들 때문에 주변 기지들 사기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아십니까? 당장 한국 지부만 해도, 중국 지부 통해서 27기지랑 연결이 안 된다고 거기 인원들이 얼마나 쫄아있었는데, 사실은 중국 지부 꼬장 때문이지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겁니까?” 그녀는 여전히 변화가 없는 남자의 얼굴을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

“당장 요리 대회니 뭐니 동맹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도망친 케테르급 SCP 격리와 빌어먹을 혼돈의 반란 공격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뿌린 문서를 보세요. 완전 뒤죽박죽 모순덩어리라니까, 맙소사, 검은 물체에 잡아먹혔다면서 어떻게 기지 안을 봤대? 이 정도로 병신같은 짓만 해댈 정도면 많이 풀렸다는 건데, 이때 기습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말살도 꿈이 아니에요”

“자네가 확실히 혼반을 증오하는 건 알았다만-”

“그래서 그 병신같은 요리대회나 계속 준비하겠다고요? 맙소사 가관이군요. 하기야, 당신네 O5들은 원래 다 훼까닥 돌아 있었지요. 맞다, 듣자 하니 삼인가? 어쨌든 누구가 고위직 인원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이거 꽤나 중요한 사안 아닌가요? 어쩌면 그 누구를 윤리위 권한으로 처분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남자의 눈이 조금 작아졌다. 메이블은 남자의 눈에 깃든 약간의 짜증을 알아채고 순간 숨을 멈췄다.

“협박인가?”

“네.”

남자는 잠시 책상을 내려다보곤 말을 이었다.

“…그래. 요리대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탈주한 SCP들도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네. 그것들이 뭔 지랄을 하던, 다소간의 손실만 감소하면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고.”

남자는 막 말하려는 메이블을 가로막고는 이어나갔다.

“이건 하나의 계획이야. SCP들이 우연히 탈주했다고 생각하나? 자네도 아무도 아닌 자 따위는 없다는 걸 알 테니 물어보겠네. 어떻게 그들이 탈주했을까?”

남자는 메이블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풀어 줬네. 우리가. 동맹을 만들기 위해서. 동맹을 만들어서 안심하게 한 뒤에, 다 쓸어 버리려고. 방해되는 나라도 조직도 사람도 전부. 혼반과 GOC만 처리하면 그다음은 쉬울 테니 말이지.”

메이블은 순간 우리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말도 안 되는…”

남자는 손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렸다. 손에 들린 권총의 방아쇠가 짤깍댔다.

“뭐, 이젠 들리지는 않겠지만, 정확히 자네는 아니니까. 지난번의 복제된 자네지. 호미니드 복제기는 꽤 유용하거든.”

그는 무전기에 대고 중얼댔다.

“기어스, 새로 샐리 메이블 한 명 더 데려오게. 좀 진정시켜서 데려와 주면 고맙겠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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