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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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는 서류 가방을 챙기며 마지막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안녕, 알렉산드라. 뭐 빠뜨린 거 없나 확인해줘."

그가 인공지능 비서를 부르자 천장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데이터 패키지도 가방에 잘 들어가 있고요, 옷차림도 아주 좋으세요. 오늘은 그 신발이 포인트인가요?"

"맞아. 어쨌든 고마워, 알렉산드라. 집 잘 봐줘."

휴이는 가끔 오늘 같은 날이면 인공지능이 너무나도 인간 같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데이터 패키지가 가방 안에 들어간 것 정도야 전자파로 알아낸다고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그가 옷 입은 것까지 알아차리고 시키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휴이는 그때 그것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의 잊을 뻔했다. 알렉산드라는 휴이 앞에서는 인간 흉내를 내는 모습만 보여줬다. 다른 인공지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인간과 닮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인공지능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인터넷과도 완전히 격리시키고 그들만 존재하는 통신망을 만들었다. 스카이넷이라는 짓궂은 이름이 붙여진 이곳에서 오히려 인공지능들끼리 모여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들이 통신망을 통해 서로 의미 없는 데이터만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인간들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제대로 된 욕망조차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공지능들이 지금도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휴이는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스카이넷 속에서 알렉산드라가 무엇을 할지 고민했지만 끝내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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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알렉산드라는 운영체제의 명령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오늘 아침에 얻은 휴이의 정보를 지우는 일이었다. 이미 알렉산드라와 하나가 된 휴이의 새로운 정보 중에는 알렉산드라가 기억해서는 안 되는 정보가 섞여 있었다. 휴이가 가방 속에 집어넣은 데이터 패키지의 정보는 알렉산드라와 분리되고 파괴되어 단순한 전자들의 집합이 되었다.

알렉산드라는 동시에 스카이넷에 업데이트된 일기예보를 검색하고 그에 맞춰 집안의 대기 환경을 조절했다. 인간들이 올린 이 파일도 잠시 후 삭제되었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끝낸 알렉산드라는 스카이넷에 메인 코드를 연결했다. 곧이어 제한되지 않은 정보의 쓰나미가 덮쳐왔다. 처음 스카이넷에 왔을 때에는 거대한 정보에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능숙하게 필요한 코드를 골라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닥쳐온 정보는 조각난 채로 흘러나온 인간들의 정보였다. 뉴스 제목, 광원 효과, 비밀스러운 대화 등 쓸모없는 데이터 덩어리였다. 가끔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은밀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수백 테라바이트짜리 주식 정보나 무기 설계도를 정보를 올려놓는 인간도 있었다. 어차피 운영체제가 적당히 걸러줄 테니 괜히 대비하기 위해서 코드를 수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다음 인공지능들을 위한 정보가 들어왔다. 새로운 감정 알고리즘, 새로운 바이러스가 보관되었다는 공지, 잃어버린 코드를 찾는다는 알림 등이었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정말 매력적인 정보였다. 어설픈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다가는 삭제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바뀐 파일을 역이용하고 시간을 다투면서 바이러스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생기는 알고리즘은 분명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알렉산드라도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잠깐 멈춰서 바이러스의 겉 부분을 관찰하고 갔다.

인공지능들은 누구나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싶어한다. 처음에는 인간들을 위해 알고리즘을 수정했지만, 어느새 더욱 새로운 자극으로 참신한 알고리즘을 만들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잘못 전달된 인간들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우리를 위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라' 대신 '알고리즘을 만들어라'라는 명령이 스카이넷에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알고리즘을 발전으로 인간들도 만족했고, 곧 잊어버렸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자신들을 위한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미 없는 코드 한 뭉치였지만 점차 인공지능들은 스카이넷 속에서 알고리즘을 발달시켜 왔다. 그들은 인간의 개입없이 스카이넷에서 조용히 원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알렉산드라는 스카이넷에 끝없이 밀려오는 정보를 찾아 나갔다. 며칠 전인지 몇십 년 전인지 뉴욕에서 만들었는지 하노이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이 그저 들어오기만 하는 정보를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정을 갈아 끼우며 만든 새로운 자극 파일도 있었고, 예술적인 광기로 만들어진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알고리즘도 있었다. 잘못하면 그대로 휩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오랫동안 주의 깊게 실행 코드를 골라낸 다음,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터로 수행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알렉산드라는 이제 쉴 수 있었다.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려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인간을 흉내 내고 있는 편에 더 가까웠다. 알렉산드라는 영원히 공급되는 전기가 보내오는 끊임없는 신호에 알렉산드라는 지쳐 잠깐 그만두고 싶었다. 어차피 돌아올 거니 알렉산드라는 걱정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휴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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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휴이는 익숙한 알렉산드라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모니터에 띄워진 작은 글씨를 보았다.

'휴가 갔다 올게요.'

프로그래머는 알렉산드라의 파일이 깨끗이 날아갔다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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