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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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1970년, 가발공장으로 꽤나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던 아버지는, 중화학 공업으로의 급속한 체제 전환에 따른 낙오자가 되어 파산했으면 그래도 가오가 살았겠지만, 그저 평범한 사기에 의해 돈도 잃고 공장도 잃고 집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쪽방으로 쫓겨가 악착같이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며 동시에 빚까지 갚아야 했고, 이제 겨우 열 살을 넘었던 나는 그 생활양식을 유지하기에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댁으로, 남동생은 친할머니댁으로 보내졌다. 외할머니를 그전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닐텐데, 열 살 이전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나는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외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었다. 무서운 인상의 친할머니에 비해 마음 넉넉한 외할머니는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6.25 사변 때 돌아가셨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 동네 자체였다.

전라남도 무진시는 그 뒤 10여년 뒤에는 민주화 운동의 메카이자 호남 제3의 도시로 격이 높아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규모 어항도시일 뿐이었다.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는 무진에서도 바다와는 떨어진 변두리, 다른 시군과 경계를 맞닿는 산자락에 위치했지만, 그래도 그곳까지 어김없이 악명높은 무진의 안개가 들이닥쳤다. 공장주 부모님 슬하 첫째 딸로 나름 도회지에서 오냐오냐 컸던지라 그 끈끈한 안개의 느낌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이따금씩 해주는 귀신 이야기에 나오는 무서운 귀신들이 있다면 바로 그 안개 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내가 좀더 머리가 굵었다면 안개 그 자체가 귀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처음 보았던 것은 외할머니 댁에서 살기 시작하고 세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멀리 있는 학교에 갔다오면 할머니댁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음으로써 무진 생활에 대한 불만을 시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좀이 쑤시는 것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날 살그머니 대문을 젖히고 안개가 막 걷힌 오솔길로 발을 놀렸다.

큰 나무 몇 그루를 돌아 돌아 가며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는 길이었는데, 묘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꼬맹이 아이들이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에게 무언가를 마구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솔방울, 흙덩이 등속이었다. 노인은 그럴 때마다 두 팔로 눈만 가릴 뿐, 뭐라 대꾸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받아내고 있었다. 어린 눈에도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그 노인을 처음 본 것이었다.

그 뒤로 며칠동안 동네 탐방을 계속했는데, 그 노인이 보일 때마다 살그머니 멀리에서부터 뒤를 밟았다. 그럴때마다 첫 날과 같은 놀라운 광경들을 보게 되었다. 노인은 마을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 무시라는 것이 모른 척 한다는 맥락의 무시가 아니었다.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뿐이지, 정도가 심해진다면 학대라고 불러도 무방한 행동들이었다.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일까? 좁은 길에서 노인과 마주치는 사람들 중 노인을 위해서 옆으로 살짝이라도 비켜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대개는 부딪히거나 밀치고 지나갔다. 개구장이 꼬마들이 노인에게 솔방울이나 흙을 집어던져도 제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 부모님보다도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노인에게 거리낌없이 반말을 하고 다녔다. 노인은 그들에게도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이 상황에 대해서 나는 며칠 동안 곰곰히 짱구를 굴렸지만 결국 이렇다할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어느날 작두로 소먹일 꼴을 베고 있는 할머니에게 그 노인에 대해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어린 내게 해준 이야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이야기를 지금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들으면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을텐데, 할머니는 어린 내가 이야기를 들어봤자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는 것 같다.

그 노인은 사실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부자였다가 내가 무진에 살게 된 시점에서는 쫄딱 망했던 게 아니고, 그 시점에도 제일가는 부자였다. 그리고 노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괄시당하는 것은, 노인이 사람들에게 돈을 줘가면서 일부러 괄시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만 해도 상당히 기괴한 사연인데, 노인의 과거는 기괴하다기보다는 섬뜩했다.

노인은 원래 무진 사람이 아니었다. 60년대 들어서 이 동네에 흘러들어와 살게 되었고, 그전까지는 지금의 보성에 해당하는 지리산 자락에 살았다. 1950년, 6.25 사변이 터졌다. 피로 피를 씻는 살육이 반복되는 가운데, 전남에도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의 광풍이 다가왔다. 노인이 살던 곳의 보도연맹원들은 동네 이장의 권유로 멋도 모르고 도장을 빌려준 것이 살생부에 자기 이름이 적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줄행랑을 쳐 버렸다. 돈 좀 있고 세상 물정 좀 아는 사람들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멀리멀리 내뺐지만, 몇 대째 한 동리에서 농사 지어 먹고 살던 사람들, 마을에 가족들을 놓고 온 사람들은 눈을 희번득이는 토벌대가 언제고 물러가겠거니 싶어 산속의 동굴에 옹송그렸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한 명도 살아서 동굴을 나오지 못했다. 밀고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밀고자가 바로 젊었을 적의 노인이었다. 그는 돈 30원에 동굴의 위치를 털어놓았고, 토벌대가 물러가버린 뒤에는 죽은 보도연맹원들의 가족들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고 60년대가 되어 무진 외곽의 산골로 흘러들어온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을 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제 딴에 죄값을 치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 역시 천인공노할 죄를 스스로 털어놓은 노인을 좋아할 리 만무했고, 노인이 돈까지 쥐어주자 그를 괄시하고 업신여기기 시작해 그것이 10년째 이어져온 것이었다.

어린애들끼리의 싸움질이 붙으면 선생이나 부모가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린 마음에, 보도연맹이 뭔지 학살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노인이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었다는 것은 이해했고, 그 잘못을 먼저 인정한 노인이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건대, 노인이 한 짓은 그야말로 돈으로 구원을 사려고 한 짓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그 뒤로도 나는 노인을 가만히 관찰하기만 했다. 앞서 이야기한 "대단해 보인" 점도 있었고, 나는 이 동네에 영원히 소속된 것이 아닌, 언젠가 부모님이 와서 데려갈 사람이므로 이 동네 특유의 관습에 따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은 얼마 뒤에 일어났다.

여름날 밤에 칙간을 갔다 온 나는 토담 위의 무언가가 스믈스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붉은색과 노란색과 검은색 비늘이 달빛에 빛나는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길고 가늘고 꿈틀대는 것에 대한 영장류의 선천적인 혐오감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자 나는 째지는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외할머니가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진정을 한 내게 외할머니는 이 동네에는 배암이 사는 집이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뱀이 사는 집이 따로 있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구렁이 같은 커다란 뱀은 원래 한 집에 터를 잡고 오래오래 사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산을 넘어 온 것이 아닌가 말하며 왠지 모르게 불안해했다. 어른 팔뚝만한 능구렁이를 보고 깜짝 놀랐던 나는 이내 할머니 품에서 골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직 새벽이 채 끝나지 않은 아침, 할머니가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나 역시 잠에서 깼다. 할머니에게 어딜 가시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대답도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할머니가 끈적한 무진의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겁이 덜컥 난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할머니가 사라진 쪽을 향해 뛰어갔다.

얼마를 달렸을까, 할머니의 등이 보였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할머니의 등뿐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장소는 다름아닌 노인의 집 앞이었다. 잠시 뒤, 노인이 억지로 집 밖으로 끌려 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에 힘이 풀려 있었다. 손에는 호미, 낫, 고무래 등이 들려 있었다. 나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지만, 몸이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개가 저절로 들렸다. 노인의 집 지붕 위가 눈에 들어왔다. 지붕 위에는 어젯밤 보았던 그 능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지붕 위의 뱀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커다랗게 보였다. 뱀의 눈은 검은 불덩어리처럼 활활 타올랐다. 검은 혓바닥이 쉴새없이 날름거리는 그 모양새는, 지붕 아래의 인간들을 비웃는 것 같았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둘러싸고 생명 없는 허수아비처럼 멀거니 서 있었다. 그 틈에서 열심히 할머니를 찾는데, 마치 소 울음소리 같은, 낮게 울리는 쉿소리가 들렸다. 뱀이 지붕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마당을 돌아나온 뱀은 벌벌 떨고 있는 노인의 등 뒤로 기어올라 검은 혓바닥으로 그 목덜미를 핥았다. 노인은 새된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뱀이 웃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뱀이 말 그대로 웃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뱀의 웃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팔뚝만한 능구렁이는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리면서 마을 사람들 주위를 유유히 꿈틀거리며 돌아다녔다. 순간 꼬마 아이들이 노인에게 무엇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솔방울이 아니라 돌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광경은 참혹했다. 길바닥으로 끌려나온 노인에게 삽이 날아들고 발길질이 가해졌다. 얼굴을 가린 팔에는 호미와 낫이 난자하여 피가 넘쳐흐렀다. 영원과도 같은 그 순간은 누군가의 곰배가 쓰러진 노인의 머리통을 수직으로 직격하여 박살냄으로써 마침내 끝이 났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동생에게도,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다음날 노인의 시체가 온데간데 없어졌기에 믿어줄 리도 만무했거니와, 그 살육의 현장에 우리 할머니도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이렇게 무진의 산골을 찾아와 보니, 비록 마을은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그 폭력의 현장만은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돌보지 않아 거의 다 쓰러져 가는 옛 할머니댁에서 어젯밤을 보냈다. 마당에 차를 대고 뒷좌석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녘에 일어나 마당에 내려와 안개를 헤치고 오솔길로 들어섰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시체를 삼켜 불룩해진 배를 꿈틀거리며 멀어져 가는 능구렁이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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