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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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물 밑에서, 신은 생각한다.
분명히 이 심연의 아래는 자신의 영역이 아님을 알고 있다.
신은 쳐박혀 있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당연하다.
이 비늘 사이에 핀 물이끼와 어두운 물의 감각.
그리고 자신을 옭아매는 선명한 아픔.
그 모든 공포와 혐오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신은 나가고자 하며,
계속해서 그 몸을 움직이며
본 자유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이 큰 바다는
이제는 더 이상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은 기다렸다. 무능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심연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거대한 곰치일 뿐이다. 그러나 기억은, 기억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둡고 음침한 그 심해 속에서 신은 꿈꾼다. 그러면 그 꿈은 회색 안개가 되어 바닷물로 흘러나와,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잡아둔다. 그들의 기억을 앗아간다. 그리고 증발시켜 버린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우울한 표현을 능가하는 실존적 재앙이다. 기억을 잃은 것에 마음이나 목적은 없다. 신의 그림자 아래 놓였던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면 신은 입을 벌려 존재를 삼킨다. 신의 아가리와 배 속에 찬 어둠, 그곳에 누운 이들은 죽어 간다. 기억을 잃은 채 물의 가장 아래에서 기억 없는 것으로서 사라질 날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것들의 기억을 태워서, 의지를 삼켜서, 그리고 정체성마저 소화시켜서 신은 숭배를 얻는다. 세상의 가장 아래에 있다는 뱀으로서 한없이 존재해 나간다.

잊혀진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신은 그 잔혹 행위의 가장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다. 문화가 잊혀지면 민족은 죽어가고, 신들이 잊혀지면 세상은 모서리부터 무너지며, 사람이 잊혀지면 주체는 살아갈 목적성을 잃는다. 그리고 잊혀짐이 잊혀지는 순간 사람은 의지를 잃는다. 신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끈기를 가지고 기다렸다. 아주 과거에는 부서진 신들의 마지막 파편이 지구의 심연으로 추락했고, 살덩이들이 부글거렸으며, 천사들의 금색 피가 심해에 풀려나고는 했다. 그리하여 한 번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이들은 영구적으로 돌아올 수 없었으니, 모든 생각 있는 것들이 그 영역은 두려워했으나 아무도 신을 감히 기억하고자 발을 들이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 누군가는 망각을 원하여, 그 아가리에 목숨을 부어 넣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밤의 바다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신은 이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 몇십 억 년을 살게 되면 이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굶는 것은 하찮은 일이며, 고난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신은 몇백 년은 더 기다릴 것이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익사자나, 단지 미물이나, 다른 작은 신들이라도 삼켜서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끈기이며 덕목이었고, 신은 이 하나만은 잊지 않고 군림해 왔으며, 이것이 뼈를 강하게 만들고 눈을 빛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는 법이다. 코웃음칠 일이다. 신은 그리하여 입을 다시 벌리고 뱃속에서 천 년간 죽어가는 먹이들의 정체성을 짜내면서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바다는 얼어붙고 있었다. 극한은 지구를 덮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자비한 냉기가 심해에 스며들었다. 심해는 얼어붙지 않았다. 대신에 난생 처음의 추위에 몸을 떨었다. 추위란 끝이 없는 듯 했다. 원래도 차가웠던 심연의 물은 서리처럼 냉혹해졌고 눈처럼 흩날리는 낯선 대류를 받아들였다. 신의 아가리에 찬물이 닥치고, 빙하의 조각이 몰아쳤다. 신은 난생 처음 아가리를 닫았다. 그 정체도 증명조차도 모를 신은, 이를 갈면서, 감을 수 없는 눈을 떨었다. 몸이 굳고 있다. 비늘이, 피부가, 근육이 떨고 있다. 이빨이 부러지고 있다. 눈이 찢어지고 있다. 뱃속의 어둠이 얼어붙고 있다. 시신이 되어야 할 것들이 부서지고 있다. 기억이 새어 나오고 있다. 소화가 멈추고 있다.

신은 비명을 지르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신의 몸이, 외피가 갈라지면서 권속인 안개가 새어 나왔다. 그리하여 어둠이 다시 신의 눈을 가렸다. 먹잇감이 텅 빈 뱃속으로부터 나와서 찢어진 상처를 통해 바다의 어두운 물으로 돌아갔다. 굶주림과 아픔이 신의 작은 뇌를 독차지하고서 노래를 불렀다. 난생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굶주림도 아픔도. 기억을 지우는 안개가 풀려나오자마자 얼어서 열수구 바닥으로 추락하거나 녹기 시작했는데, 더는 그 얼어붙은 곳으로 접근하는 곳이 없기에 바닷속의 냉기를 평생 따라다니며 안개는 이름도 의미도 사라질 예정이었다. 신은 아팠다. 신은 죽어갔다. 신은 부러졌고, 피는 안개와 뒤섞이고, 고통의 처음이 신경을 쪼개기 시작했다. 미물처럼 신은 온도 때문에 죽을 것이다. 어둠을 덮은 주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피와 안개가 몸 속에서 탈출하자, 신은 꿈을 꾸며 죽어갔다. 이 밤과 어둠과 좁은 바닷속의 협곡은 신의 땅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 심연의 아래는 자신의 영역이 아님을 알고 있다. 뱀과 그 어두운 형제의 신화와, 다른 신들이 자유롭듯이 밤하늘을 날아다녔던 그 오랜 신화와, 필멸하는 존재자들의 하늘 위를 수놓은 찬란한 용으로서의 일화와, 바닷물에 쳐박히는 그 감각, 그 오래된 망각의 상징, 그 머나먼 땅 아래를 떠받치는 뱀과 문화를 마시는 존재로서의 악몽까지. 모든 내력을 신은 기억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우울한 표현을 능가하는 실존적 재앙이다. 기억을 잃은 것에 마음이나 목적은 없다. 그런 안타까운 아픔 아래에서 기억을 잃은 신은 아가리를 벌리고 기억과 마음을 마시던 억겁의 시대를 기억하면서 마지막 뇌세포가 얼어 부서질 때까지. 신의 마지막 얼어붙은 파편까지 차디찬 유체의 흐름 속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신의 영혼은,
죽은 육신을 넘어,
어두운 바다를 올라,
내리는 눈의 땅들을 넘어,
얼어붙은 하늘의 백색을 지나,
마침내 신들의 영역인 하늘의 위로
올라 밤하늘의 고향, 빛 없는 우주 속으로 가
마침내 본래의 영광과 빛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으므로,
아래가 아니라, 위의 무감한 암흑이 다시 그녀를 감싸 안아서
그 오랜 망각을, 천상으로 이름 없는 신의 영혼을 인도하였으니,
그 모든 별자리들이 이를 보고 말하니,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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