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와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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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방랑자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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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과 위쪽으로 끝없이 펼처진 서가들과 경이를 자아내는 도서관의 분위기에, 세검은 놀란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어때, 멋지지?" 로레인이 세검에게 말했다.

"이게 다 뭐야? 혹시 너 요주의 단체 소속이야?

"아니 전혀." 로레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저 들어오는 '길'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야."

"아하…" 세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는 괜찮아?"

"응." 로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봬도 나 타입 블루 기적사야. 이 정도는 충분히 부상 없이 막아낼 수 있어."

"뭐, 니가 정 괜찮다면야…" 세검은 찜찜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로레인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론 재단 인원들은 방랑자의 도서관에 못 들어간다는데..."

"에이, '초대'를 받으면 괜찮아. 내가 널 초대하면 되잖아."

"그렇다면야. 그런데, 너도 '초대'를 받은 거야?"

"음… 맞기는 해. 문제는 누가 그랬는지 모른다는 거지.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맞지. 저 슈판다우,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이전에 방랑자의 도서관 안에서 제01K기지 근처로 통하는 '길'을 찾았었어. 거기를 통해 직접 01K기지로 가 관리이사관에게 이 사실을 알려보자."

로레인의 말을 들은 세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하나의 기동특무부대를 지휘하는 슈판다우라 해도, 한국사령부의 최고위, 최선임 인원인 그레이스 노래마인 관리이사관의 명령을 어길 순 없을 것이었다.

"좋아. 빨리 가자!" 세검이 외쳤다.

"길 잃기 쉬우니까, 내 뒤에 꼭 붙어 있어."

세검은 로레인을 따라 서로를 잇는 어떤 줄이라도 있는 것처럼 잽싸게 그녀를 쫓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끝없을 것만 같던 서가들 사이로 일종의 광장처럼 보이는 공간과 일종의 데스크가 나타났다.

"저기, 혹시 리처드 할로웨이의『음악적 흑마술과 그 역사』어디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로레인이 초록색의 카드를 보이며 질문하자, 데스크의 얼굴 없는 누군가는 꾸르륵거리는 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로레인은 알겠다는 듯 고개 숙여 인사하곤 세검을 향해 다시 돌아왔다.

"따라와, 한 10분 정도만 쭉 가면 되겠어."

"저 달걀귀신은 뭐야?"

"도서관의 사서들 중 하나인 기록보존사는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모두 알고 있어. 방금 내가 물어본 책이 있는 곳에 01K기지로 가는 '길'이 있을 거야."

"좋아. 가 보자." 세검이 결심을 굳혔다는 듯 대답했다.







"…원래는 해설사들이 책이 있는 곳까지 안내를 해줘야 하는데, 이번에는 길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그냥 가기로 했어."

방랑자의 도서관에 들어온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세검은 이 도서관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지금까지 쓰여진 책과 쓰여지고 있는 책, 쓰여질 책까지 있는 도서관이란 그녀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였다.

"이곳이 마음에 드나 봐? 나는 초상 사회 토박이라 딱히 감흥이 없는데…"

"응. 어렸을 때 책 읽기를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곳의 조용한 분위기가 되게 좋아서."

"보존서고에 가면 그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데."

"보존서고? 그게 어딘데?"

"아, 너는 알 필요 없어. 그나저나 도착한 것 같네."

로레인은 어느 서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책 하나를 뽑아들었다. 검은색 표지에 금빛으로 쓰여 있는 『음악적 흑마술과 그 역사』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선 이걸 이렇게 하면…" 로레인은 책을 거꾸로 뒤집은 후,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천천히 밀어넣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폭발하며 서가를 박살내고는 로레인과 세검을 뒤로 튕겨냈다. 종이와 나무 조각들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뭐야? 야, 뭘 어떻게 한 거야!"

"내가 한 거 아니야!"

그 순간, 박살난 서가를 짓밟으며 전차 하나가 엔진 소리와 함께 도서관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둥근 차체 전면과 이질적으로 각진 포탑, 그리고 흙받이에 선명히 찍힌 삼색 삼각형 모양의 휘장이 눈에 들어왔다. 궤도에 짓밟혀 표지가 뜯어지고 페이지가 찢겨진 책들이 그 주변에 흩어졌다.

"이런 썰어 죽일 새끼들, 재단에서 이런 외부차원 통로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전차의 해치를 열고 슈판다우가 나타나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왼눈에 감은 붕대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길'을 열려면 분명히 특정한 '노크'가 필요할 텐데…" 로레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어 브리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나 보군." 슈판다우가 해치 안쪽으로 몸을 구겨 넣으며 소리쳤다. "장전수 칼, 고폭탄 장전해. 포수 카르, 포탑 11시 방향으로. 저 빌어먹을 놈의 배신자를 날려버려."

"너 총 없댔지?" 로레인이 경직된 채 세검에게 질문했다.

"응." 세검 역시 경직된 상태로 대답했다.

세검의 대답을 듣고, 로레인은 품속에서 엔필드 No.2 리볼버를 꺼내 세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무래도 너 이거 받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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