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재단만이 예술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와 봉사자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공모전, 미술품 거래 활성화 운동, 음악과 함께하는 각종 축제… 사람들은 활기를 잃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해 노력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익숙한 것에 대한 지루함이 곧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가볍게 즐길 거리를 넘어선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세상에는 '대가'라 불린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시간을 초월했다.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았고, 바쁜 일상에 치여 '가진 자들의 사치'라 여기며 애써 무시했던 값비싼 미술품과 많은 시간이 드는 어렵고 긴 음악 등은 사람들의 허전함을 간신히 채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약소국의 미술품을 약탈하는 강대국. 부유층의 미술품을 추징하려는 정부와 자신의 수집품을 더욱 늘리고 더욱 숨기는 권력자. 평범한 사람들은 미술을 잃었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각종 음악과 문학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이미 있는 것을 베끼는 것조차 자그마한 영감이라도 있어야 비로소 그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존에 출판된 각종 도서와 음반의 값은 고가의 미술품 못지않게 치솟았고, 예술은 다른 방법으로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온갖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내는 막강한 재단이었지만, 이런 미묘한 비틀림은 그 누구도 고치지 못했다.

한계에 부딪힌 재단은 결국 비탄 프로토콜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미 세상 곳곳에 침투했던 사소한 예술의 흔적은 단순히 숨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발휘한 사소한 영감의 결과물 하나하나가 가진 힘은 별 볼일 없었지만 이들은 결국 인간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열심히 굴러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톱니바퀴들이었고 더 나아가 세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비탄 프로토콜은 세상의 붕괴 속도를 낮추는 데에 일조했다. 예술을 잊은 사람들은 세상 곳곳에 남은 예술의 흔적에 새로운 자극을 얻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갈증을 해소했다. 하지만 마치 고기를 대신해 두부를 먹는 것과 같은 효과의 임시방편이 오래 갈 리가 없었고 인간성이 사라질 조짐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재단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예술을 다시 되살려야했다. 그렇다고 비탄 프로토콜로 바뀐 세상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기억을 지우거나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였고,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였다. 더군다나, 이미 재단이 없애버릴 수 있는 예술은 모두 없애버렸는데 그에 대한 기억이 돌아온다면 이 세상에 어떤 충격이 올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여 새로 시작하기는 무리였다. 사람들은 영감을 잃었고 재단 역시 예술은 너무나 정교하고 복잡한 부속품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재단은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RH-A 계획이었다.

비탄 프로토콜로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RH-A 계획에 배정된 인원은 모두 95명이었다. SCP-095-KO를 대신할 존재를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를 반영해 맞춰진 수였다. 그 중심에는 카잔 박사, 클레프 박사, 카에스틴 차장이 있었고 그들은 시작부터 충돌했다. 이미 한번 큰 실수를 겪은 클레프 박사는 모든 연구에서 C 요원과 브릴러 박사에 대한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과격한 방법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반면, 개인적인 욕심으로 삐뚤어진 카잔 박사와 카에스틴 차장은 공리를 내세우며 저들을 배려한 계획에는 허점이 있거나 위험성이나 비용에 문제가 있다며 좀 더 강압적인 방법으로 계획을 진행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로 90여명의 두뇌에서 나온 수많은 기획안 중에는 C 요원과 브릴러 박사가 반기지 않을만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충돌에 O5 평의회는 '대의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희생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윤리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클레프 박사의 의견대로 계획을 진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찬성 12표 반대 1표.

예술은 억지로 쥐어짜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사고 친 것만 보더라도 충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텐데요. - 클레프 박사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SCP-222였다. 하지만 그 한계는 이내 명확해졌다. 브릴러 박사는 복제되지 않았다. 다른 우주의 인간이 가지는 미묘한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C 요원의 클론도 RH-A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든 클론은 기술적 재능만을 가졌고, 해당 개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저 본 것을 따라 그리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C에게는 행할 수 없는 위험하거나 비윤리적인 실험 대상으로서의 가치도 이내 상실했다. 클론은 생물학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예술을 '이해'하긴 했지만, '말로는 어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결론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C의 충성은 재단이 아닌, 특정한 개인을 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C의 충성도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자, 프로젝트를 좀 더 강압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온갖 제안과 기획들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하지만 윤리위원회는 C의 증언을 옹호했고, O5 평의회의는 이를 적극 반영하여 해당 안건에 대해 프로젝트를 현행대로 유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찬성 10표, 반대 3표.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저의 클론은 그저 아내에 대한 저의 사랑이 재단에 대한 충성심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여러분이 재단에 충성하는 이유도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까? - C

사람들은 결국 C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가 가진 것을 근본적으로 파헤치기 위한 안전한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C 요원은 RH-A 계획에서 빠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예술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생긴 공허함을 채워나가는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브릴러 박사 역시 '뮤즈'에 감염되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뮤즈'는 이 우주의 인간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고, 다른 우주만의 어떤 특별하고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는 생물학적 지식만이 조금 알려졌을 뿐이었다. 브릴러 박사는 곧 RH-A 계획에서 제명되었고, 다시 기억소거 절차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각하지 못한 채 C 요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는 중 카잔 연구원는 단순한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다른 존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물어볼 곳은 많았다.

이 말했다. "내가 준비한 계획에는 문제가 없어. 언제나 그랬듯이 자네들은 해답을 찾을 걸세. 물론 이건 나의 실수야. 생각지도 못한 곰팡이의 출현으로 인간은 소중한 것을 잃을 뻔 했지. 하지만 나는 위기에 처한 자네들을 구원했고, 이 정도라면 나의 도움은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만."

악마가 말했다. "하! 웃기지도 않는군. 인간이 예술을 되찾을 방법을 알려달라고? 인간은 애초에 예술을 가진 적도 없어. 게다가, 자네가 되찾고 싶어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그 아리따운 피들러 아가씨 같은데. 바이올린에 그렇게 열중한건 그 사람이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 아니었나?"

요정이 말했다. "오, 드디어 뭔가 요구를 하는 친구가 생겼군! 바라는 게 뭔가? … 흐음, 예술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과 교환하기 위해 내가 바라는 선물이 무엇이냐고? 하하, 자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자네 같은 친구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인데, 뭘 더 바라는 거야? 그냥 아무 선물이나 줘 봐. 예술 따위보다 더 근사한 걸 줄게!"

디즈씨가 말했다. "기교에 대한 개인 교습이라면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이라. 노력만 한다면, 기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A에서 회신이 왔다. "오늘도 저희 A.A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인류가 예술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문의하셨는데요, 예술이란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여 우선 그 정의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결국 저희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잇는 기준을 정했고, 예술의 사전적 정의에 따라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으로 간주, 당사에서 인류는 이미 충분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직원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요금을 책정해야겠지만, 결국은 무의미한 질문인데다가, 직원들이 오랫만에 찾아 온 재미있는 질문을 매우 즐겼으므로, 따로 요금을 청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커피 전문점 사장님께서 말했다. "정말 큰 고민이겠네요. 하지만 너무 얽매이진 마세요.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게 인생의 진리 아니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에요."

책 속에는 길이 있다는 옛 격언도 RH-A 계획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이 SCP-826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2페이지 분량의 "예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재단이 결국은 하룻밤 만에 목적을 이룬 감동적인 이야기"가 변한 700여 페이지의 난해한 장편 "무지한 자들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 뿐이었다.

예술 한 컵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순간적일 뿐이었고, 음료가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리나 그 성분의 분석 역시 모두 실패했다. 관련된 지식에 대한 음료는 '적절한 의료 지식'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카잔 연구원의 여러 가지 시도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심한 혼란을 선사했고, 다시 한 번 과격한 방법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새로운 보고서가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왔다.

일련번호: SCP-220F

등급: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SCP-220F 개체가 출현할 시 최초 접촉자의 반응을 살핀 후 적절한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연대 측정 결과 50년 이상의 개체는 빛과 습도, 공기 등 대상에 맞는 적절한 환경을 유지하여 보관한다.

설명: SCP-220F는 공통적인 성질의 정신자적 효과를 가진 시각적 자극을 유발하는 개체의 총칭이다. 섬유에 색의 조합이나 입체적인 모형으로 특정한 대상을 묘사하는 형태이다. 간혹 어떤 대상을 묘사했는지 불분명하거나 아예 규칙성이 없는 개체가 별견되기도 하며, 사진이 같은 효과를 유발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후략)

비탄 프로토콜 이후 미처 회수하지 못한 각종 미술품들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이다. RH-A 계획에 참여한 인원은 이런 웃지 못 할 사태를 잘 활용하기로 했다. 재단은 또 다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O5 평의회는 이번 기회를 활용하기로 했고, 현 체제를 유지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찬성 7표, 반대 6표.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무작위적인 것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수없이 많은 D계급 인원이 극도로 낮은 확률의 도박에 쓰였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무언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고, 불법 다운로드도 시도했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카에스틴 차장이 한 때 자신의 일을 도왔던 사서에게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까지의 각종 실험과 연구를 검토하다가 깨달았다. 바로 '뮤즈'를 배제한 예술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뮤즈'가 배제된 예술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술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에 더욱 혼란에 빠졌다.


결국 C 요원이 직접 나섰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신이 말했다. "내가 뭐랬나! 나의 계획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네. 여기 그 산 증인이 있지 않은가?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게."

악마가 말했다. "오, 이런. 너의 재능을 널리 퍼뜨리고 싶다고? 자네가 특별한 건 내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인간도 자네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요정이 말했다. "반갑네, 친구! 자네는 어떤 선물을 가지고 왔나? 흐음, 자네도 요구를 하는 친구로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자네의 요구는 너무 터무니없어. 그것보다, 내가 자네의 그림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하나 그려줄 수 없을까? 값은 후하게 쳐 주지!"

디즈씨가 말했다. "하하, 섣불리 그러다간, 모두가 똑같은 그림만을 그리는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하고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A. A에서 회신이 왔다. "오늘도 저희 A.A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문의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위해 책정된 요금은 고객님뿐만 아니라, 고객님이 일하고 계신 재단에서도 지불할 여력이 없으므로, 요금 안내에 대한 요금으로 5달러를 책정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커피 전문점 사장님께서 말했다. "모두가 장님이 됐다고 해서 당신까지 장님 행세를 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의 방황 따위 신경 쓰지 마시고, 그저 묵묵히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하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험 결과를 분석하던 도중, 누군가가 디즈씨의 중얼거림을 듣고야 만 것이다.

참 뻔뻔한 자식이군 그래. 자기 자신이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저들의 요구에 맞춰주며 모른 척 하고 있다니! - 실험-738-RH-A 녹취록

자백제를 사용한 심문 결과, C 요원이 벌인 대중적인 미술활동은 '뮤즈'의 멸종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으며 핵심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 요원에게는 D-01R74라는 번호가 붙었다. RH-A 계획의 최고 책임자는 클레프 박사에서 카에스틴 차장으로 바뀌었고, C 요원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던 클레프 박사는 카에스틴의 지시에 따라 RH-A 계획에서 제명되었다.


C 요원이 D계급으로 강등되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없이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졌다. 수 없이 많은 인격을 추출했으며, 영혼을 추출한 후, 제103-Γ01기지와 협력하여 추출한 영혼을 배양하거나, 그 외 각종 변칙 현상과 물체를 활용한 기상천외한 실험을 계속했다. 그동안 윤리위원회의 압력 때문에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 못했던, 소위 '영혼'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온갖 실험에 몇 몇 인원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RH-A 계획에서 손을 땠다.

그의 '영혼'만이 쓰인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곰팡이와 교배한 새로운 '뮤즈' 품종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아예 SCP-020 자체에 '뮤즈'와 같은 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수 없이 많은 SCP-500의 복제품이 투입되었고, 정상적인 SCP-500 2정이 투입되었다. 무고한 이가 대신 고통 받기도 했다. 마지막 남은 예술가의 목숨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정신, 질병, 예술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쓰였다. 급기야 브릴러 박사는 '다른 우주의 뮤즈'를 현지화 시키는 과정에서 유출된 SCP-020에 의해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무슨 짓을해도 사태는 오히려 미궁속으로 빠져들었고 RH-A 계획의 예술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인원들은 답답함에 시달리며 더욱 심한 광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카잔 연구원이 RH-A 계획을 위해 처음 C 요원과 마주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그의 옆에는 자신에게 '음악'을 선물했던 바로 그 여인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모든 자료를 교차 검증해가던 카에스틴 차장은 한 개인의 영감을 되찾게 해 줄 방법을 깨달았다.
 


 
카잔 연구원은 자신이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유는 절대로 옛 연인이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헛된 희망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뮤즈'가 사라지고, SCP-738이 그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놓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카잔 연구원은 옛 연인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녀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뮤즈'가 이 세상에 꼭 있어야만 했다.
 


 
카에스틴 차장은 자신의 고통에 눈이 멀어 C 요원의 안위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 희생할 것을 강요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죽음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가진 C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영감을 되찾기 위해서 C는 죽어야만 했다.
 


 
인류니, 예술의 부활이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류니, 예술의 부활이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클레프 박사가 윤리위원회와 함께 돌아온 것은 이들이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놓아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SCP-738을 이용한 실험의 녹취록 원본을 가져왔다. 카에스틴과 카잔 연구원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귀중한 자원인 C을 소모하려 했다는 핵심적인 증거가 포착되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C 요원이 명예를 회복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C를 죽여 영감을 되살릴 방법을 알아냈고, 이들의 징계 사유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연구 결과를 보고하지 않은 것이었고, 이렇게 알려진 새로운 방법을 전 인류로 확대시킬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O5 평의회는 독자적으로 카에스틴 차장이나 카잔 연구원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에 대해 검토했고, 그를 살려보려는 클레프 박사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지막 RH-A 계획이 시작되었다.

윤리위원회는 최소한의 양심을 발휘하여 C 요원에게 동의서를 들이밀었다. 그들은 카에스틴 차장과 카잔 연구원을 대신하여 사과했고, 그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재단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 부탁했다. 설득의 시간도,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C 요원은 선뜻 동의서에 서명했고, 그저 아내가 이 일을 모르게 해달라는 조건만을 걸었다.

하지만 C 요원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지막 RH-A 계획에서 그의 아내의 존재는 필수적이었고, 그녀는 받아 4등급에 준하는 고급 정보를 제공받았다. 한낱 현장요원일 뿐이었던 그녀는 건네받은 기획서가 어떤 내용인지는 도무지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 준비 과정에만 해도 이 안쓰러운 현장 요원은 보도 듣도 못했을 온갖 변칙적인 것들이 투입되었고, 무엇인가 진행될 때 마다 C는 차마 지켜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C의 아내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고, 새로운 성과가 나올 때 마다 정말로 이럴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커다란 성과인지를 따져 볼 것이라 다짐했다. 물론 그녀가 재단을 상대로 어찌 할 수는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예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술을 되찾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한 것이죠. 여러분의 이러한 광기도 그저 격변의 시대에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재단을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고 하셨죠? 이해? 당연히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용서라…. 당연히… - C

그는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집행자였던 카에스틴 차장은 일부러 C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계획을 실행한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말이 이어지면서 카에스틴 차장의 눈동자는 점점 더 심하게 흔들렸고, 결국 그는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RH-A 계획의 실패는 허무하다고 표현할 수도 없을만큼 금방 분명했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처음 시행되었던 비탄 프로토콜 때문에, '기술자'마저도 사라져버렸고, 사람들의 허전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수단을 잃었다는 사실은 재단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하지만 카에스틴 차장은 재단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었고, 비록 삐뚤어졌다 한들 무너지지 않은 카에스틴 차장의 능력은 여전히 필요했다. 그는 결국 O5 평의회의 비호 아래 또다시 '공리'를 내세워 교묘히 빠져나가 과실치사로서의 징계만 받았다. 하지만 그저 '능력 좋은 연구원' 카잔에게는 살인죄를 비롯한 온갖 죄가 적용되어 윤리위원회의 처분을 받았다. 카잔 연구원의 옛 연인이 위장 수사 중이었던 C의 아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리'라는 명분은 더 이상 그를 지켜주지 못했고, 완전히 무너져버린 그의 능력은 재단이 더 이상 활용할 수 없을만큼 부서진 후였다. 카잔 연구원의 이름은 세상에서 지워졌고, 오직 D-782264라는 번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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